117. 야수의 투자
수영장에서 운동하고, 예하의 세 번째, 네 번째 노래가 나오고, 차분히 주가동향을 보는 사이 11월이 되었다.
물론 나 혼자 한가했지, 회사는 엄청나게 바빴고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다.
페북과 전쟁을 펼치고 있는 미래 IT만 만 명을 고용했고, 전 세계의 지사를 합치면 15만 명을 넘겼다.
언론 대응 팀만 천명을 넘겼고, 3교대로 일하면서 매일 10분 간격으로 떡밥을 던지고 있다.
미래 메신저는 두 달 만에 가입자 10억 명을 돌파했는데, 이건 폰허브의 가입자 증가곡선을 뛰어넘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네스 기록이다.
무섭게 성장 중이지만 아직 수익은 나지 않고 있다.
수수료를 워낙 낮게 책정했기에 투입되는 돈이 벌어들이는 돈보다 많다.
두 달간 6000억 원 적자.
모자란 돈은 미래 펀드에서 버는 돈으로 메우고 있다.
돈을 너무 많이 빼면 자칫 자금 경색이 올 수 있다.
한차례 더 대박을 노려야 하는데.
“음.”
기억에 따르면 11월에 비트코인이 50% 폭락한다.
다른 알트코인들은 100배 상승을 전부 뱉고 아예 태초마을로 돌아가고.
11월 폭락을 겪고 나면 -99% 인증이 줄을 잇게 된다.
문제는.
“이게 그대로 갈까.”
“응? 무슨 말이야?”
요가하던 예하가 반응했다.
“예하야. 넌 암호화폐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해?”
“좋은 거 아니야?”
“그치? 그렇게 생각하지?”
“어. 그래서 오빠가 미래블록을 베이스로 하는 거잖아.”
이게 문제다.
예하조차 암호화폐의 장점을 깨닫고 있다.
사실 먼 미래의 일을 앞당긴 거긴 한데.
과연 11월 폭락이 역사대로 이뤄질 건지.
본래 11월 폭락 후 게시판에선.
- 비캐 561층 : 차트를 보면 한강으로 들어가네요 한강에서 만나요
- 해시함수전문가 : 복사 붙여넣기 끝. 이걸 3000만원에 산 니들의 부모가 레전드
- 팩트폭력배 : 솔까 아무 의미 없는 프로그램 코드를 돈 주고 사놓고 누굴 원망하냐
- 환경운동가 : 산소 없애고 이산화탄소를 늘리는 똥만드는 기계들아. 지구를 위해 다 뒈져주세요
이런 분위기다.
꿈도 희망도 없고, 의미 없는 전자코드를 산 새끼들이 병신이라는 분위기로 팽배하다.
- 워렌 존버 핏 : 저 새끼들은 가치 존버 하랬더니 조가치 존버하고는 나한테 지랄이야
-리또속리또속신나는노래 : 형들. 그런데... 중간에 내리고 지금 샀으면 50배 이득 아니었어? 왜 모두가 존버하라고 한 걸까?
ㄴ 왜냐면 니가 내리면 가격이 내려가잖아. 자기가 내리기 전엔 아무도 안 내리는 게 이득이니까
ㄴㄴ 그럼 나 속은 거야? 세력에 당한거야?
ㄴㄴㄴ 세력은 개뿔. 개미들이 자기 돈 벌려고 늘상 지껄이는 옹알이에 속은 거지
특히 존버인들의 최후는 눈물겹다.
고점에 물린 이들은 200배 하락, -99.5%, 1억이 50만원 된 기적을 보게 된다.
존버.
존나게 버틴다.
존나 버티면 언젠가 무조건 빠져나갈 기회가 온다.
팔면 손해가 실현되지만, 팔지 않으면 아직 코인 개수는 그대로다.
뭐 이런 개소리를 지껄인다.
사람은 왜 이렇게 잔인한 걸까.
- 종합주가지수를 보면 매년 우상향 하잖아요. 버텨요.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면서 결국엔 올라요.
이런 참신한 개소리라니.
매년 상폐 되는 기업이 수십 개고 매년 새로 상장하는 기업이 수십 개다.
종합지수는 상폐 기업을 버리고 새싹의 가치를 합치기에 우상향 하는 거다.
눈을 감고 아무 종목이나 고른 후 영원히 존버하면 돈을 잃을 확률이 90% 이상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존버 하라고 시키는 걸까.
정말 그렇게 믿어서?
그렇다면 심각한 바보다. 주식하면 안 된다.
무조건이라니.
주식에 무조건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무조건 돈을 벌게?
아니면 자기를 위해서?
그렇다면 악마다.
죽여야 할 악마.
주식을 산 사람의 심리는 다 똑같다.
오르길 바란다.
누구나 한번쯤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
모두가 상한가에 주식을 놓고, 그 아래 가격에 아무도 팔지 않으면 그 주식은 상한가가 된다.
펀디멘탈이든 뭐든 필요 없다.
상한가 만들기 참 쉽다.
그래서 버티라고 하는 거다.
누군가 싸게 팔면?
그 주식은 가격이 떨어진다.
주식을 홀딩하고 있으면 싸게 파는 사람이 싫어진다.
이기적 멍청이는 그래서 파는 사람을 욕한다.
그런 마음에 존버하라고 하는 거다.
팔지마. 니가 싸게 팔아서 내가 손해 보잖아. 비싸게 팔아, 아니 내가 팔기 전까지 팔지 마.
이 심리가 남에게 존버를 전도한다.
쓰레기.
악마.
자신의 100원 이익을 위해 남을 지옥에 쳐넣는 방사능폐기물.
지인 중에 무조건 존버하라는 사람이 있다면 짱돌로 인중을 찍어도 무죄다.
알트코인들의 고점에 물려 존버한 이들은 11월 폭락을 겪으면 2년 후 2차 폭등의 축제에도 전고점 대비 20%까지만 회복하게 된다.
환희에 팔고 절망에 산다면 지금은 진짜 절망으로 가득 찬 상황.
실제로 11월이 바닥이니 지금 사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이 분위기에 사는 거야말로 진짜 도박꾼이지.
문제는 과연 그 일이 그대로 진행될지가 문제다.
“떨어지냐 마냐, 그게 문젠데.”
“어? 뭐가? 햄릿이야?”
과연 11월 폭락이 예정대로 일어나느냐 마느냐.
고민하다가 조금만 넣었다.
예전처럼 고배율 레버리지를 쓰지도 못했다.
비트맥스 말고도 바낸, 후오비 등 여러 사이트에 도박성 옵션이 열렸기에 10조까진 커버가 가능하다.
버리는 셈 치고 1조원을 10배율 숏으로 분산했다.
원래대로라면 코인 자금 6조를 20~50배 배율로 올인했을텐데 이제는 진짜 알 수 없다.
10억, 100억씩 분산해서 넣는데 손이 떨린다.
깜깜이 투자.
올인청산을 당해본 경험자만 알 수 있는 공포.
“아... 하지 말까.”
하지 않으면 손해는 없다.
이거 아니어도 돈 벌 곳 많은데.
회귀 후 처음으로 알 수 없는 투자를 한다.
해보니 밀림의 사냥꾼들이 존경스럽다.
오를지 내릴지 어떻게 알고 투자를 하신대.
숏에 10배율로 꾸준히 사니 1조 가까이 채웠고, 너무 큰 금액에 바낸 같은 대형 거래소마저 물량이 잠겼다.
매일 수수료만 숭덩숭덩 빠져나갔다.
정확히 11월 언제 폭락이었지.
수수료만으로 전부 청산당하겠는데.
미래블록과 그 안의 NFT가 세상에 너무 퍼져서 암호화폐에 대한 인식도 전반적으로 좋아졌고.
폭락이 안 오는 거 아니야?
불안하네.
세계의 주식시장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과 관세전쟁. 미국과 중남미의 마찰. 영국의 유로탈퇴와 이탈리아의 탈퇴검토. 전세계 경기 전망 하향.
다 기억 그대로인데 암호화폐만 오른다면 이건 미래블록 때문인데.
내 함정에 내가 빠질까봐 더 불안하다.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는데 조금씩 내려간다.
코인게시판엔 비명이 난무하고, 내려갔다 살짝 오르고 내려갔다 살짝 오르길 반복하던 비트코인이 폭락했다.
750만원에서 350만원까지 수직낙하.
여타 알트코인들은 아예 지옥에 발을 디뎠고.
스테이블 코인인 미래블록은 그대로지만, 거기서 파생된 NFT코인들도 반값으로 떨어졌다.
“우워어어어.”
짜릿하다.
쌀 뻔했다.
엔돌핀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이게 야수의 투자방식이구나.
“어? 오빠 이렇게 좋아하는 거 오랜만에 보네.”
그러게.
이 기분 오랜만이다.
깜깜이 투자는 엄청나게 짜릿하다.
“예하야. 내가 얼마 벌었는지 알아? 지금까지 7조 벌었어.”
“오빠한테 얼마 안 되는 돈이잖아.”
얘가.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돌 맞아.
7조가 얼마 안 된다니.
아.... 1조 말고 6조 다 넣을 걸.
그랬으면 42조 버는 거였는데.
항상 분할매수한 사람은 뒤늦은 후회를 하지.
“신난다. 일주일 놀자. 휴가다. 필리핀 섬으로 갈까?”
“오우 조우아.”
보름째 집에만 있었다.
본관에서 운동할 때도 차트만 봤고, 거의 매일 컴퓨터에 매달려 있었다.
보름간 7조 버는 거면 그 정도 치성은 드려야지.
-네. 비서실 나선혜입니다.
“휴가 잡아주세요. 필리핀 타우바트섬이요.”
-네. 앗. 그 섬은 현재 인도법인과 인니 법인 단체가 휴가차 쓰고 있습니다. 괜찮습니까?
어라?
그런 문제가 있네.
글로벌 기업이 되면서 내 섬을 여러 사람이 쓰게 됐구나.
각국 법인에서 섬을 구매하면서 세금은 줄었다고 좋아했는데.
“그럼 휴가지 물색해 주세요. 우리만 쓸 수 있는 곳으로. 그렇다고 쫓아내진 말고요.”
-네. 알겠습니다.
“따뜻한 곳으로요.”
곧 12월이 된다.
바깥은 벌써 꽤 춥다더라.
나가지 않으니 알 수가 있나.
“오빠. 여행가면 오빠 가족하고 같이 가자.”
“어? 불편하지 않겠어?”
“아니. 전혀. 나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받고 싶다라.
예하가 내 재산을 노리고 결혼하려고 획책 하는 건 아니라는 데 전재산을 걸 수 있다.
사람을 그 정도로 못 보면 전재산 뺏기고 거지가 되도 좋지.
“그래. 같이 가자. 사장형들도 같이 가고.”
착한 예하를 안아주며 가족과 형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급하게 일정을 잡아서 섬을 통째로 전세 낼 순 없었다.
타우바트처럼 현대적 리조트가 있는 무인도는 흔하지 않다.
아프리카 동남쪽, 마다가스카르 북쪽에 있는 세이셀의 작은 섬에 있는 5성급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민가가 10km 이상이니 경호도 쉽고 마음 편하게 쉴 수 있겠지.
“우왕. 언니. 예쁘당. 우왕.”
언제나 귀여운 민서가 나한테 달려오다가 예하를 보고 눈을 번쩍였다.
“우와. 예뻐어어어. 이름이 뭐니?”
“예뻐? 아닌뎅. 언니 더 예뻐. 우왕.”
“니가 더 예쁜데? 이름이?”
“우와앙.”
예하가 민서를 안고 빙글빙글 돌며 난리부르스를 췄다.
뒤따라오는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인사했고, 사촌들도 학교를 빠지고 전부 합류했다.
미래메신저의 동향을 계속 말했으니 다들 공부 따위에 목맬 필요 없다는 것 알고 있다.
전세기로 세이셀로 갔다가 배를 타고 호텔이 있는 섬으로 갔다.
남인도양의 따뜻한 공기가 산호초 가득한 바다와 만나 부서진다.
전 세계에서 산호초가 가장 잘 보존된 나라 세이셀.
인구 8만밖에 되지 않는 소국이지만, 그 덕분인지 정치가 안정되어 있고, 관광업이 국가 산업이기에 자연보존이 매우 잘 되어 있는 선진국이다.
여기도 지사를 만들었고, 10여명 고용했다.
시원하게 달리는 요트 주변으로 투명한 바다 속이 훤히 보인다.
물고기 군집이 시커멓게 춤을 추고, 간혹 상어가 등지느러미를 내밀고 유영한다.
“오빠. 거북이! 거북이!”
“우왕. 거북이. 우왕!”
애가 둘이 됐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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