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신문
지난화 줄거리
사랑을 했따
“오빠. 우린 잠깐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
“어?”
떨어져 있자고?
“우리 요즘 너무 많이 하는 거 같아. 자제해야 해.”
그 소리구나. 난 또 헤어지자는 줄 알고 철렁했네.
“왜? 어제 섹스하다가 기절해서?”
“꺄아.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그런 말이 왜 어디가 어때서.
“오빠. 우린...... 이게 익숙해지면 너무 슬플 것 같아.”
예하가 정색하고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용은 뭔가 웃겼지만.
“이보다 좋은 게 없을까봐?”
“어...... 음... 만약 이거에 익숙해져서 아무것도 못 느끼게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
“어제처럼 하늘을 나는 기분?”
“꺄아. 그만해. 그만 놀려어어어.”
더 놀렸다간 혼나겠다.
“그래.”
“너무 자주해서 이 행복이 숨 쉬는 것처럼 아무느낌 없어진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조금 아끼는 게 좋지 않을까 싶거든요.”
뉴스 앵커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을 하는데 참 귀엽다.
“예하야.”
“어.”
“그럼 처음 할 때랑 어제 할 때랑 어느 게 더 좋았어? 솔직하게.”
“어... 어제.”
“그치? 이건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게 아닐까?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진 게 아닐까? 중년의 성욕이 더 쎄다잖아.”
“어?”
“생각해봐. 지금은 젊어서 하루에 한 시간마다 열 번도 할 수 있어. 그런데 내가 40대가 되면 다섯시간은 쉬어야 한 번 더 할 수 있게 될 거야. 내가 60대가 되면 하루 한 번도 못 할 수도 있고, 그 전에 발기부전이 와서 아예 못 하게 될 지도 몰라. 그런데 아끼려고? 아끼다가 똥 된다.”
“어? 정말이야? 40대 되면 힘들어져?”
“지금보단 줄지. 젊다는 게 이래서 좋다는 거고.”
“아.”
예하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44살까지 살아본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재장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건 너무도 슬픈 일이다.
“한살이라도 젊을 때 한번이라도 더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예하야 너 40대 되고 나서 에휴,젊을 때 더 했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할 수도 있어.”
“어... 어... 그러면 안 되는 데.”
예하가 수능시험지를 받은 아이처럼 진지하게 고민했다.
너무 귀엽잖아.
“그치? 그러니 한살이라도 젊을 때 최대한 하자. 젊음은 젊은이한테 주기 아깝다잖아.”
“아... 알았어. 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래. 좋았어.”
큰 위기를 넘겼다.
식탁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예하에게 갔다.
“에? 오빠 나 방송가야 해.”
“됐어.”
“아침상 치우실분들 올 텐데. 꺄악.”
“연락하기 전에 안 와.”
예하를 번쩍, 들진 못하고 손을 잡고 침대로 갔다.
운동해야 하는데 항상 귀찮아서 미룬다.
운동은 영어공부와도 같다.
[백제 병원의 노사분규]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한 미래재단 이사회는 백제대학병원 교수와 부교수 등 의사 43명을 해고하는 악수를 뒀다. 이에 백제병원의 모든 의료진이 불안에 떨며 그로 인한 피해가 환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한편 한국의사협회에서는 이번 일을 자본가가 신성한 의료행위에 개입하는 행위로 규명하고 강력하게 규탄......
지랄.
지들이 박차고 나간 게 왜 해고야.
의사 43명이 줄고 대신 200명을 늘렸는데 피해가 왜 생겨.
내 돈만 피해 입었는데.
[백제건설 노동자의 눈물]
몇 달째 일을 찾지 못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노동자들이...
그들은 일을 잃기 전 백제건설 토목 현장에서 일했다고...
노가다 아저씨들은 원래 현장이 끝나면 다른 현장으로 가는데 그게 왜 우리 문젠데.
전국의 노가다 아재들을 우리가 다 챙기라고?
[엔터3사의 음악방송 지지선언]
음악방송은 출연하는 것 만으로 더 큰 도움이 된다. 엔터와 방송사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로 현재 계약체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엔터3사의 선언이 주목되는 이유는 미래그룹 홍보팀 소속 가수 제시의 선언 때문이다.
신인가수인 그녀는 방송사에 출연료를 더 요구했고, 무리한 요구에 방송사가 난감해하자 아예 보이콧을 선언했......
말하는 꼬라지가 참.
글의 어투란 건 대단하다.
이 기사만 읽는다면 누가 봐도 예하가 돈에 미친년으로 보이겠지.
[새벽에 명품관을 휩쓴 BJ제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새벽에 놋네백화점 명품관의 불이 켜졌다고 한다. 퇴근도 못하고 남은 종업원이 받은 손님은 제시와 정체불명의 남자 단 둘이었다고 하며 이들은 수억 원 상당의 사치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한편 신인가수 제시는 과거 미성년자 시절 룸출입과 성접대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아놔 시발새끼들.
기자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모두가 아는 진실을 무시하고 자기들 목적에 따라 정보를 가공해 멀쩡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든다.
[기획기사 : 불법의 온상 흥신소의 실태]
...... 도청 스토킹 등 온갖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는 흥신소 직원 대부분이 미래그룹의 사주를 받아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고 있다고 하며 그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들이...
정두진은 전직 경찰, 현직 흥신소 소장이다.
몇 달 전부터 미래그룹의 의뢰를 받아 움직이던 그는 현재 부안의 외딴 건물에 와 있다.
노숙자와 무연고자를 위한 시설.
주변정보부터 수집한 후 식자재배달업체를 통해 병원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 직원은 남자 단 둘로, 두 명이 300여명의 노숙자를 관리한다.
관리가 아니다.
감시다.
노숙자들은 감금된 상태로 지시에 따라야 하며, 반항할 경우 온몸이 묶여 독방에 갇힌다.
개사료와 수상양식장용 냉동 정어리를 큰 통에 부어 개죽을 쒀서 배식하는데, 조리하는 것도 배식하는 것도 노숙자가 직접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
노숙자 1인당 매 달 200만원의 보조금이 나온다.
300명 정도 감금인에게 들어가는 돈도 거의 없으니 매 달 6억원의 세금을 벌어들인다.
여기까지 조사한 정두진은 시설 원장의 이력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대생청부살인사건의 사모님을 병보석 형집행정지 진단서를 끊어준 의사 박우병이 여기에 와 있었다.
청부살인자는 합법적 탈옥을 시켜주고, 멀쩡한 사람은 감옥보다 못한 시설에 감금한다.
왜?
돈 때문에.
놀라운 것은 박우병의 의사면허가 취소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사협회는 강력하다.
정두진은 본인이 딱히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두고 볼 수 없다.
조사를 마치고 모든 증거를 취합한 후 경찰에 사건을 제보했다.
사흘 후 그에게 소환장이 날아왔다.
증인 출석을 요구하는 건 아니었다.
잠입, 감시, 도청, 해킹, 스토킹, 명예훼손 등 온갖 잡다한 경범죄에 대한 조사요구였다.
개인은 수사해선 안 된다.
검경의 신성한 권력에 기웃거리면 철퇴를 맞는다.
검경이 수사하지 않으면 범죄는 없던 일이 된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정두진은 미래그룹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살려달라는 소리였다.
조사의뢰만 받았는데 제멋대로 고소해서 죄송하오며 살려주십사, 하고 청했다.
정두진의 사연을 들은 윤동욱은 고민했다.
도와줄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 전까지 다양한 의뢰를 했으니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게 여러모로 좋다.
그리고 미래그룹의 의뢰를 받은 흥신소가 하는 일과 기자가 하는 일이 비슷하다.
정보를 조사하는 것.
미래그룹이 흥신소에 의뢰하는 일은 기자가 하는 일과 겹친다.
기자와 흥신소의 차이는 딱 하나, 언론고시 자격증이다.
한국에 수사권은 경찰검찰만 갖고 있다.
일반인 피해자조차 수사해서는 아니 된다.
다만 언론고시를 통과한 언론인은 뒷조사, 스토킹에서 자유롭다.
민중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나.
문제는 그 알권리를 자기들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거지.
조준선에게 돈을 받아먹고 미래그룹을 음해했던 기자들 전부 합의 없이 처벌했다.
고작 벌금형으로 끝났지만 그에 따른 언론사들 모두 체면에 먹칠을 했고, 적이 되었다.
방송사 또한 음악방송 보이콧을 계기로 적이 되었다.
이제 공식 언론 채널 모두 적이다.
이런 허위기사가 날 때마다 홍보방송에서 팩트체크를 해 반격하고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피해배상을 엄청 때려 수많은 고소장을 날리고 있지만, 서로 누가 죽나 해보자는 식으로 전쟁 중이다.
예전엔 언론사가 담합하면 모든 진실을 가릴 수 있었지만 이제 언론은 과거만큼의 힘이 없다.
개인 SNS, 개인방송, 인터넷 커뮤니티 등 수많은 채널로 진실을 알릴 수 있다.
그래도 아직까진 언론사가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인정한다.
해명하는 것만으로는 힘이 부족하다.
언론고시 자격증은 스토킹 등 각종 불법으로부터 자유롭다.
“예. 아부지. 예. 그래요? 그럼 가볼게요.”
전화를 끊자 요가를 하던 예하가 물어봤다.
“오빠, 어디 가?”
“양평. 외삼촌네 복숭아밭에서 다 같이 수확한대. 거기 가보려고.”
“어... 그래... 나 스케줄 없는데 같이 갈까?”
“응? 안 불편하겠어?”
“불편하기는. 오빠는 울 엄마 벌써 여러 번 봤잖아. 나도 인사하고 싶어.”
“너 소문나면 가수생활에 불리할 텐데.”
“필요 없거든요. 누가 물어보면 그냥 공개연애 할거야. 상관없어. 오빠네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어. 그래. 착하네. 같이 가자.”
“예압!”
예하가 멋들어진 옷을 입고, 자기 팀까지 불러서 풀메이크업을 했다.
바로 가려고 했는데 예하 때문에 두 시간 후에 출발하게 되었다.
외삼촌은 양평에 오천평 규모의 복숭아밭을 가지고 있다.
대충 가로 100m, 세로 150m 정도의 밭으로 년 5000정도 벌 수 있다.
막히는 길을 지나다 마주치는 못난이 복숭아 한 상자 만원, 하는 그런 과수원이다.
장마 전에 수확해야 맛이 좋기에 지금이 딱 수확철이다.
“안녕하세요.”
“오오. 동욱이. 오랜만이야. 니 아버지 저 쪽에 계신다.”
외삼촌에게 전화를 먼저 하고 과수원에 도착하니 외삼촌이 나와서 반겨줬다.
“네. 가볼게요.”
“그래. 그런데 이 쪽은?”
“제 여친이예요.”
“안녕하세요. 이예하라고 합니다.”
곱게 차려입은 예하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 미모에 압도당한 외삼촌이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네. 반갑습니다. 잘 놀다 가요.”
안내하려고 했던 외삼촌은 일꾼들이 일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예하야. 엄마 아빠 불러올까?”
“히익. 무슨 말씀을. 가서 인사드려야지.”
“너... 복장이.”
“힝. 몰랐어. 그냥 가자.”
예하의 손을 잡고 복숭아밭으로 들어갔다.
길고 하늘하늘하고 고운 원피스에 뾰족한 구두를 신은 예하는 과수원주위에 파 놓은 수로, 겉은 말라있지만 속은 촉촉한 수로에 발을 깊숙히 담갔다.
푸우욱.
“히이익.”
놀란 예하가 발을 번쩍 뽑는데 구두는 뻘흙 속에 남겨졌다.
“푸흡.”
“웃지만 말고 좀 도와주셈.”
“넴.”
예하의 손을 잡아 균형 잡게 도와주고, 몸을 숙여 진흙깊이 박힌 구두를 뽑았다.
뽕.
“잠깐 기다려.”
울상을 짓고 있는 예하를 남겨두고 경호팀을 모았다.
우리 각자 경호원이 5명씩이니 합이 열 명이다.
부모님의 경호원들도 와 있으니 스물에 달한다.
전 같으면 적당히 알아서 과수일을 돕고 잔심부름도 할 텐데 김상철 피습사건 이후로 지금은 경호만 한다.
이런 밭에서조차 바싹 긴장해 눈에 불을 켜고 위험요소를 찾고 있다.
“죄송한데요 예하가 갈아입을 만한 옷과 신발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돈은 몇 배로 지불할게요.”
“돈은 괜찮습니다.”
여자 경호원들이 모여 서로 묻고 예하의 발 사이즈를 물어본 후 옷과 신발을 가져왔다.
비밀경호가 기본이다 보니 각자 운동화와 캐주얼복장, 정장 등 여러 벌을 갖고 다니고 있었다.
부모님께 인사드린다고 한껏 치장한 예하는 울상을 지었지만, 분위기상 과수원일을 해야 할 것 같기에 말없이 갈아입었다.
다들 땀 흘리며 일하는데 공주님처럼 옆에 앉아 혼자서 하하호호하면 더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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