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집들이
“면회? 절대 안 돼.”
조승학의 얼굴을 보겠다는데 채인수가 반대했다.
“죽이겠다며? 그냥 무기징역 받게 만들 거야? 선택해.”
“죽일 거예요.”
“그럼 참아. 나중에 잡아오면 그때 얼굴 봐. 괜히 지금 갔다가 나중에 탈출시키면 의심받게 될 수도 있어.”
“...... 네. 하아. 흡. 시발. 그 새낀 어때요?”
“미쳤어. 얼굴 돌아가고, 무릎 돌아간 이유를 너 때문으로 생각하더라. 널 찔러 죽였다고 착각하더라. 정신병 치료를 위한 정신병원 통원.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후 빼 올 거야. 범죄자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범죄자가 아프다면 국가에세 세금으로 고쳐주거든.”
“...... 알았어요. 참을게요.”
“문제는 미쳐버려서 입을 맞추기 힘들다는 거지. 변호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웬만하면 미친척해서 뺄 수 있는데 진짜 미친놈은 오히려... 흠. 아니다.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네.”
살인자를 무죄로 만드는 것에 비해 병원에서 편안하게 살게 하는 건 매우 간단한 일이다.
유죄를 무죄로 만드는 것보다 천 배 편하다.
전국민을 분노하게 한 여대생 청부살인, 경남제분 사모님이 병원에서 여왕처럼 살고 있듯이.
돈만 많으면 너무너무 간단한 일이다.
조승학을 잡아오길 기다리면 되고, 흐지부지 헤어진 최태수를 만났다.
여전히 수술이 넘쳐나는 최태수와 밤늦은 시간에 만났다.
“일전엔 고마웠습니다.”
“아뇨. 제 실력이 부족해서 아직 중환자실에.”
세계 최고의 외과의가 바로 옆에 있었고, 처음부터 응급처치를 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김상철은 죽었겠지.
“아니에요. 그리고 의대는...... 모르겠어요. 매년 1조원씩 쏟아 부어서 얻는 소득이래 봤자 악습하나 없애는 것뿐인데, 내가 감히 의사의 세계에 간섭해도 되나 싶고......”
그냥 허무하다.
김상철 피습사건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공포도 느껴지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가야하나 싶은 허무함도 느껴진다.
돈을 썩어 넘칠 만큼 벌었는데 이제 적을 만들 필요 없잖아.
조승학처럼 악의 넘치는 적 하나가 사람의 정신을 이렇게 피폐하게 만들었는데 괜히 돈 잘 벌고 있는 의사협회 건드려 원한을 갖게 될 적 십만 명을 만들 필요 있을까.
그들이 악습을 유지하든 말든 작은 울타리 안에서 본분, 환자를 돌보는 건 열심히 하잖아.
친구 열을 만드는 것보다 적 하나를 안 만드는 게 더 낫다.
싸울 필요 없잖아.
피스 앤 평화.
애초에 회귀한 후 최우선 목표는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는 거였다.
이제 다 이뤘으니 얌전히 살아도 되잖아.
예하랑 사랑하면서 그냥 평온하게 살고 싶다.
내 말에 최태수가 당황한 듯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 생각을 해 봤는데 환자를 위해서라면 바뀌는 게 옳습니다. 과중한 업무로 의사들의 실수가 잦고, 편집증으로 인한 추행이나 고의로 살을 가르는 일도 잦은데 그런 게 없어지려면 의사들이 정상적으로 살게 하는 게 낫지 싶습니다.”
이 양반이.
그렇게 반대하더니 접으려고 하니까 또 해달라고 하네.
“후우. 내가 말을 꺼냈으니 책임은 져야죠. 돈은 그대로 드릴게요. 이제부터 주도해야 하는 거 아시죠?”
간판이니까.
미래그룹이 지껄여봤자 의료계에 전달되지도 않는다.
최태수 정도 되는 의사가 말해야 힘을 모을 수 있다.
앞으로 총대매야 할 최태수가 굳은 의지를 갖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의료계의 악습은 저도 없애고 싶었습니다.”
“잘 하시겠죠. 돈은 걱정 말고 열심히 해보세요.”
이 아저씨가 갑이었는데 이제야 내가 갑이 된 거 같네.
진작 이랬어야 하는데.
근성 열혈 성실의 표본인 최태수라면 잘 하겠지.
“백제 대학 병원은 미래종합병원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저희는 국가가 정한 노동법을 준수하며 인턴 레지에 대한 가혹행위와 간호사의 태움 문화를 인권침해로 보고 없앨 것입니다. 당직 포함 주 52시간 근무를 지킬 것이며 응급상황으로 인한 추가 근무 시간을 최대한 줄여 의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의료진을 충원하겠습니다.”
최태수가 기자들을 모아놓고 중대발표를 했다.
“현재 전문의 214명이 미래병원과 계약을 맺었으며 이들의 강좌를 개설해 미래대학 의대 정원을 6배 늘리겠습니다. 이에 동의한 의사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계적인 외과의 최태수.
그의 영향력은 한국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세계 각국의 의사들이 한국 의료계 전체를 바꾸는 프로젝트에 동의해 합류했으며 이 중엔 최태수와 비슷한 명성을 가진 유명 의사들도 있다.
“이들의 수업을 받을 미래대학 의대의 정원을 늘려주길 간곡히 바랍니다. 현재 수련의들의 업무과중은 인권침해를 넘어 노예노동 이상이며 그 노동강도에 대한 통계적 수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턴, 레지던트가 힘든 건 전국민이 다 안다.
그래도 의사협회가 무서워 아무도 고치자고 하지 않았다.
범죄자의 인권마저 사랑하는 인권단체들이 가장 대놓고 인권을 조지는 의료계에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이걸 내 돈 막 파줘서 고친다.
“또한 미래 그룹의 프로젝트는 여기에 멈추지 않습니다. 남아공, 인니, 인도, 브라질 등 10개국 정부와 협의하여 의대 건립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10개국에 의대를 개교해, 당국 학생 절반과 한국 유학생 절반을 키우겠습니다. 이 의대는 순수한 미래그룹 본사의 자금으로 운영되며 해당 학생들은......”
중대발표가 줄지어 이어진다.
지금까진 툭툭 건드려보는 간보기였다면 이제 전면전이다.
그리고 의사협회에서 어떤 대응을 하든 반박할 자료를 모으고 있다.
여론.
대중의 힘을 끌어와야 바꿀 수 있다.
아마도 긴 싸움이 될 것이다.
방에 틀어박혔다.
직접 다니며 진행상황을 보고 싶지만, 위험하다.
딱히 적을 만들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돈을 펑펑 쓸 성격도 아니다.
차트보고, 미래 기억을 더듬고, 전화로 보고받고 방향지시만 내리고.
“에첼비 팔고 동시에 공매도 때리세요.”
-어. 3일안에 다 털게. 거래량 터져서 간단해.
그냥 그런 평온한 나날이 이어진다.
세상은 여전히 똑같다.
메신저는 김상철 없이도 마무리작업이 진행중이고, 백제 자회사는 하나둘 팔려나가고, 에첼비는 폭등 후 폭락했으며, 우리는 꼭대기에서 전액 정리하고, 공매도를 쳤다.
그리고 6월이 되자 핀빙빙은 실종되었다.
“결국 이렇게 되네.”
“정말일까? 오빠. 정말 실종된 걸까? 음모론들이 사실일까.”
“아마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중국은 너무 무식하다는 거야. 절대 발 들이면 안 돼. 지나가던 공산당 간부가 예하 널 보고, 예쁘네, 데려와, 이 말 한마디 하면 그걸로 네 인생은 끝이야.”
세상은.
무섭다.
가진 게 많아지니 무서운 게 더욱 많아지는 것 같다.
“무서워.”
“그러니까 중국 여행 갈 생각은 절대 하지 마.”
“전엔 왜 갔는데? 그때도 무서워하면서 갔잖아.”
“네가 팬이라고 해서 데려오려고 갔지. 그때 이미 핀빙빙은 탈세니 뭐니 해서 위기였거든. 한국에서 활동한다면 이런 일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했는데. 어... 좀 늦었네. 메신저 알려줬어?”
“어. 초기모드 깔아줬고, 말도 걸어봤는데 열흘째 확인하지 않아. 우리가 찾을 수 없어?”
정식 계약할 때 메신저 초기모드를 알려줬다.
핀빙빙의 폰에 깔았고, 예하와 서로 등록되어 있는데 읽지를 못한다.
“공산당이 잡아갔는데? 미군이 출동하지 않는 한 무리야.”
“히잉. 언니......”
딱 한번 봤으면서 안타까워 하기는.
그래. 예하는 바탕이 선하다.
참 착하다.
그에 비해 나는 좀 식은 것 같다.
김상철이 다친 것은 허무하지만,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했던 심장은 지독한 슬픔에 적응했다.
핀빙빙도 나중에 풀려나는 걸 아니 좀 무덤덤하고.
“중국 공산당 망했으면 좋겠어.”
“아니지. 영원한 게 낫지 않아?”
“에? 빨갱이세요?”
예하가 진심 놀란 표정으로 물어봤다.
“중국은 쎄잖아. 그나마 공산당이 권력을 잡고 있으니 병신 같은 정치를 해서 중국의 잠재력을 누르는 게 아닐까. 만약 중국이 제대로 된 나라였어 봐. 유럽인구와 미국 인구를 합친 게 중국인구인데, 그 인구가 제대로 한다고 해봐. 더 무서워지지. 무식한 공산당이 병신 짓 하는 게 우리한텐 좋지.”
중국 제 1의 부자 마원을 말실수 했다고 한방에 죽여 버리는 공산당.
공산당이 있어야 그나마 중국이 약해진다.
한국의 개인투자자를 개미라고 부르듯 중국의 개인투자자를 부추라고 부른다.
중국의 가난한 젊은이들은 힘든 노동으로 돈을 번다.
그러면 공산당에선 낫질하듯 부추의 대가리를 호도독 잘라 먹는다.
그래도 부추는 다시 자라고 대가리를 내민다.
그러면 또 낫질해 수확하고.
어느나라나 비슷하다.
젊음이 힘겹게 재산을 모으면 기득권은 낫질 한번으로 수확해 부만 빼앗는다.
“너무해. 거기 고통 받는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핀빙빙 언니만 해도.”
“그냥. 그렇다고. 애초에 내가 바꿀 수도 없는 나라잖아.”
“쳇. 차가워.”
예하가 자꾸 흘겨본다.
“어머니는 괜찮으셔?”
“아... 그대로야.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의학의 한계래. 아. 우리엄마. 엄마. 어떡해.”
또 운다.
예하는 엄마만 생각하면 운다.
말없이 안아줬다.
돈은 많지만 돈으로 못하는 일이 너무 많다.
예하를 뒤에서 안은 채 창밖을 봤다.
한강이 있고, 그 건너 청담동과 압구정동이 보인다.
고작 강하나 차이인데 집값은 두 배.
심지어 이쪽은 한강이 남향이고, 저 쪽은 한강이 북향이라 햇빛도 제대로 안 들어오건만 강남이 두 배 더 비싸다.
부조리는 아니고, 비합리적이랄까.
당연히 다른 이유가 잇겠지.
수많은 빌딩과, 수많은 집들, 수많은 부자들.
저들 중 나의 적은 얼마나 될까.
백제그룹으로 인해 손해를 본 누군가.
연습생 시스템을 통해 피를 빨아먹던 누군가.
주식으로 잃은 돈을 전부 공매도 탓으로 넘기는 누군가.
언제나처럼 용돈 좀 받아먹었다가 고발당한 언론인들.
줄기차게 욕먹고 있는 방송사의 썩은 물들.
고생고생하다가 이제 좀 상황이 나아져 편하게 거금을 벌 준비를 마친 의료계 고인물들.
내가 여기저기 싸움 걸고 다녔구나.
“오빠. 오빠오빠. 오빤 왜 돈 안 써?”
“응? 내가 얼마나 많이 쓰는 지 모르냐?”
인턴레지를 사람답게 살게 하겠다고 얻을 것도 없이 매년 1조씩 부을 건데.
“오빤 오빠한테 돈을 안 쓰잖아. 호텔요리를 배달시키든 참치마요삼각김밥을 먹든 똑같잖아.”
“그야. 별 감흥이 없으니까.”
“옷도 그래. 돈이 많으면 비싸고 멋진 옷 사고 싶고, 입고 싶지 않아?”
“츄리닝이 제일 편한걸요.”
“시계도. 멋지고 비싼 시계 차고 싶지 않아?”
“핸드폰 시계가 제일 편한데?”
“차도. 남자는 멋진 차 좋아한다는데. 오빠는 공허해. 자기한테 돈을 너무 안 써. 남한테만 퍼주려고 하고. 사람이 너무 착해도 문제야.”
논리전개가 그렇게 가냐.
머 나쁜 건 아니니 오류를 바로잡아줄 필요는 없겠군.
소비하는 습관은 바닥인생 20년을 살면서 잃어버렸다.
너무 긴 시간을 최대한 싼 것, 생존에 필수적인 것만 찾아다녔으니까.
“하지만 차는 샀지. 해외 주문으로. 한 번에 세 대.”
“에에? 진짜?”
“어. 이번에 이사할 무수골 집에 도착했어.”
“우왕. 우와아아아. 드디어 택시타고 다니지 않아도 돼?”
“어. 니 차도 있어.”
“우와아. 구경가자. 구겨어어엉~”
“귀찮은데.”
“오빠아. 너무 집에만 있으면 안 돼. 가끔 나가고 광합성도 해야 사람이지. 집에서 돈만 벌면 안 돼에에에.”
“경호팀 고생시키면 미안하지 않아? 어차피 낼 모레 가니까 그때 봐.”
“칫. 게으름뱅이.”
무시하자.
사흘 후 이사를 했다.
딱히 가구를 옮기지는 않았다.
무수골 집엔 따로 가구를 들였고, 시내에서 자고 싶을 땐 옥수동 집에서 잔다.
핸드폰과 좋아하는 옷 몇 벌만 챙겨서 옮겨가면 된다.
“짜잔.”
“와. 너무 예쁘다.”
공사펜스가 철거된 무수골 저택이 공개되었다.
계곡을 따라 절로 올라가는 2차선 도로가 있고, 이 길은 동시에 국립공원으로 가는 등산로다.
등산로에서 북쪽으로 조금 꺾으면 붉은 벽돌을 높게 올린 벽이 둘러싸고 있다.
수많은 CCTV가 벽돌담을 감시하고, 경호팀이 철통경비하는 거대한 철문이 있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돌과 나무와 시냇물과 연못이 있는 넓은 정원.
정원 뒤편에 연구소 본관인 5층 빌딩이 있다.
수영장, 헬스장, 식당, 세미나실 등을 갖춘 연구소.
그 좌우에 나무로 둘러싸인 저택이 10채 있다.
“와아. 여기가 우리 집이야?”
“어. 여기가 내집, 여긴 예하 니꺼.”
“어? 우리 따로 살아?”
당연하지.
- 작가의말
멍청한 적은 아군이다!
공산당 힘내! 중국을 더 박살내줘! 중국공산당뽀레버~
아베신조 복귀하라 아베신조 종신! 아베신조뽀레버~
글이 갑자기 연중된다면 그건 제가 아마도 어딘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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