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정직원
예하는 꽤 오랫동안 의기소침했다.
아니 겉으로는 평소와 똑같았다.
오히려 더 정력적으로 움직였다.
신곡을 받고 연습하고, 여러 곡을 발표했다.
그저 혼자 있을 때 멍 한 일이 많았을 뿐이다.
“예하 너, 연기 생각은 없어? 평가도 좋잖아. 영화 한번 찍어보지?”
“그럴까...... 싫엉. 오빠랑 떨어져 있잖아.”
“그 정도쯤은......”
“전에 오빠가 말했잖아. 원양어선 1년은 큰돈과 인생 1년을 바꾸는 거라고. 난 영화 찍는 동안 떨어져 있는 게 큰돈과 오빠와의 시간을 바꾸는 것 같은데.”
“돈이 아니라 꿈이라면? 연기도 좋아하잖아.”
“에... 좋아해. 좋아하는데 노래가 더 좋아. 노래하는 게 더 좋아아아.”
“그렇다면야.”
말을 끝내려는데 예하가 내 무릎에 턱을 탁 올리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난 문제가 뭘까.”
갑자기?
“문제없어. 솔직히 너 정도면 굉장히 성공한 축이잖아.”
음원수익이 매달 1억 넘는다.
개인방송 수익도 1억이 넘는다.
그 정도면 엄청난 성공이지.
예쁘고, 노래 잘하고 춤도 잘 춘다.
미래 그룹의 간판으로 인지도도 엄청나다.
그런데 어째서 머라이어캐리와 같은 길을 걷지 못하는 걸까.
조건에 비하면 이상하리만치 인기가 부족하다.
세계 최고의 재능인데...
재능의 영역은... 어렵다.
지난달 데뷔한 세블펄즈가 빌보드 70위에 안착한 걸 생각하면 참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얼마 전 범내려온다가 데뷔했다.
미리 손을 뻗거나 남몰래 기부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의 재능과 피를 토하는 노력이 시운을 만나 단숨에 세계로 솟구치는 데 내가 섣불리 간섭했다가 명작이 사라질 수도 있다.
“내가 엔터를 좀 조졌거든.”
“힉. 하지마.”
“개발팀장의 분석은 이렇더라. 어느 아이돌 그룹에 가도 가장 빛나는 재능이라고. 다만 솔로로는 개성이 부족하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기억에 남지 않는다더라.”
예하하면 딱 하고 떠오르는 음색이나 특징이 부족하다.
엄청 예쁠 뿐이다.
“어... 왜 나한텐 그 말 하지 않았지?”
“글쎄...... 말한다고 고쳐지는 게 아니라서 그런 거겠지.”
“힝. 난 최고의 가수가 될 거야. 엄마랑 약속했어.”
“...... 그래. 열심히 해봐.”
“어.”
말할 땐 여상스럽다.
하지만 혼자 두면 또 멍하니 있는다.
그래도 위험한 생각은 하지 않겠지.
쇼파에 누워 메일을 보는데, 옆에서 뉴스를 보며 요가를 하던 예하가 콕 찌른다.
“할머니들 도와주면 안 돼? 오빠.”
티비엔 위안부할머니들이 눈물 흘리는 시위하고 있다.
한국 때리기에 정치생명을 건 아베가 목소리를 키울수록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주 반일 시위를 하신다.
“그러자.”
“어떻게 도울 거야?”
그게 어려운 거야. 그게 어려운거야.
“이게...... 정치권과 연결된 문제라서 쉽지 않아. 글로벌 중립도 생각해야 하고.”
미래메신저의 점유율을 보면 선진국 중에선 일본 점유율이 가장 낮다.
딱히 일본이 미래 메신저를 배척하는 건 아니다.
그냥 일본이 변화하지 않을 뿐이다.
30년 전에 멈춰버린 일본.
외제를 쓰지 않는 일본.
신기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
30년 전처럼 현금 사용만 고집하는 나라.
선진국 중 인터넷 사용률이 가장 낮고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 사용자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한다.
시대를 역행하는 일본.
참 이상한 나라다.
“가뜩이나 일본 시장 점유율이 낮은데 정치적 문제에 끼어들면 더욱 고전할 거 같은데. 일본의 기존 회사들은 이걸 정치적으로 물어뜯어서 일본 점유율이 박살날거야.”
“일본에서의 매출도 생각해야 하는 구나. 힝. 참 세상은 복잡해.”
“그리고 한국 정치권도 생각해야지. 할머니들이 시위하는 건 그 자체로 굉장히 상징적인 일이거든. 거기 딸린 직업들이 정말 많아. 할머니들의 시위. 거기서 모이는 모금액, 반일프레임으로 먹고 사는 단체. 반일프레임이 지지도로 이어지는 정당. 고의로 그걸 유도해 먹고 사는 회충들. 이런 다양한 욕구가 할머니들을 매주 시위현장에 떠미는 거지. 솔직히 100세 가까운 분들인데 편하게 좀 쉬게 하고 사회단체들이 대신 시위해야 할 텐데 여전히 할머니들이 매일 불려 나오는 건... 쯧쯧.”
“너무했다. 아니지. 할머니들이 스스로 나오셨을 수도 있잖아?”
“어. 일본에 대한 증오로 스스로 나오셨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오히려 말려야 하지 않을까? 힘드실 텐데.”
“그러네. 말리자. 할머니들 편히 쉬게 해 드리자.”
“그래.”
해버리자.
일본 시장은 버린다 치고.
정치권의 짜증은...... 아 몰라 돈 뿌리고 말래.
뚜루루.
비서실 인터폰이 왔다.
마침 전화하려고 했는데.
“예.”
“미래 메신저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제 인터폰도 불안하다.
상상도 못할 세계 최고의 도청기술이 개발되었다면 나에게 시험하고 있겠지.
핸드폰을 켜고 메신저에 들어갔다.
채인수의 메세지가 눈에 들어온다.
-미래 애니, 파업준비, 정직원채용 요구.
씁.
일해야겠네.
예하와 함께 본사로 갔다.
채인수의 사장실에 들어가니 채인수와 가오리가 있었다.
“미안하다.”
“어? 아... 니가 사장이지? 어차피 바지사장인데 뭘.”
“아이씨. 미안타고. 내가 우겨서 해달라고 한 건데.”
“됐어. 돈 벌려고 하는 사업인데 뭘. 경과부터 말해주세요.”
채인수가 대답했다.
“오늘 갑자기 선포했어. 사실 파업도 아니야. 뎀마프로젝트가 다음 달에 끝나거든. 계약이 종료되는 뎀마프로젝트 계약직 1200명이 정직원으로 전환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거야. 거기에 2번 프로젝트 혼자레벨업 팀에서도 300명이 합류했고. 내일까지 들어주지 않으면 파업을 하고 모든 계열사로 확대하겠대.”
“음... 법적 문제는 없어요?”
“코디네이터가 제대로 설계 들어갔다. 노동계 두 정당이 붙었고, 두개의 노총이 붙었어. 노동계 사회단체 열일곱 곳이 붙었고, 법무법인과 노무사는 당연히 붙었지.”
“싸우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이겨. 이기긴 이기는 데 3년 이상 걸려. 정치권에서 숟가락 얹으면 시간은 더 걸릴 테고 지저분해질 테고. 싸우는 와중에 다른 계열사로 퍼지면 모든 계열사가 흔들리겠지. 이미지손실이 엄청날 거야. 아마... 조 단위의 손해가 날 거야.”
“정규직 전환이 훨씬 싸네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쓸 곳이 없죠?”
“그렇지. 애초에 뎀마 그림체 모사실력으로 뽑았는데 시켜먹기 힘들지. 정직원으로 만들면 회사 청소나 시켜야지.”
“음...”
들어보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오리 니가 통제할 사이즈가 아니었네. 노총이나 사회단체가 뒤에서 설계하고 부추겼을 거야.”
채인수가 도와줬다.
“우릴 싫어하는 단체들이 정교하게 설계하고 될 것 같으니까 공격해온 거지. 정치권에선 한 숟가락 얹은 거고.”
“이런 거니까 미안해 하지마라.”
“그래. 시발 내가 오늘 쏜다.”
“닥쳐 병신아. 바뻐. 불부터 꺼야지.”
“끵...”
“아. 인수형.”
“어?”
“딴 얘긴데요, 위안부 할머니들 도와줄 재단 만들어주세요. 할머니 한 분당 도우미 한명 고용할 거고요. 할머니들에게 매달 천만 원을 줄 거예요. 대신 현금으로 주지 않고, 원하는 걸 사주는 형식으로.”
“...... 왜? 그냥 거금을 주고 집을 사주든가 하지.”
“한 번에 다 주면 사기꾼이 뜯어가겠죠. 거금을 드리면 사기꾼들이 끝없이 달라붙어 괴롭힐 텐데, 그러면 안하느니 못하겠죠. 이렇게 나눠드려야 할머니들이 필요한 걸 얻을 거예요.”
사회단체에 성금을 내 봤자, 정가 299만원 짜리 안마의자를 80만원에 사서 드린다.
차액 219만원은 사회단체가 슈킹한다.
할머니들에겐 이미 안마의자가 천만 개 있을 테고.
도우려면 직접 도와야 한다.
매달, 소액씩, 꾸준히, 필요한 것을.
그래야 제대로 도와줄 수 있다.
“동욱아, 이거 여당하고도 연결된 거 알지?”
“정치적 의도 없어요. 싫어하면... 뭐 어쩔 수 없죠. 최소한 남당 모든 사람이 100세 넘은 할머니들이 시위에 나오는 걸 좋게 보진 않겠죠. 북당에서 우릴 이용하면 정치적 중립이라고 적극 해명해요.”
“아예 안 건드리는 게 가장 낫긴 한데.”
“대신 할머니들이 매주 시위에 끌려나와 고생하시겠죠.”
“그래. 알았다. 좋은 일 하는 건데 눈치 보지 않을게.”
“625, 베트남 참전 용사들도 조사해보세요. 월 수익 500 이하인 분들 전원을 월 수익 500으로 맞춰주세요. 독립운동가 후손은 직계 3대까지 조사해주시고요. 어... 한국에 지원하는 만큼 베트남에도 지원하고요. 아 글로벌이라 참 복잡하네.”
“돈이 조 단위로 나가겠네.”
“얼마 안하네요. 이렇게 막 퍼주는데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면......”
“박살내야지.”
다음날, 계약 만료를 앞둔 1500명의 작화가의 시위가 예정대로 열렸다.
다른 자회사에서 일부가 합류해 숫자는 더 늘었다.
미래 애니메이션 사옥에서 열릴 줄 알았는데 두 시간 전에 시위 장소를 본사 앞으로 옮겼고, 경찰당국은 즉각 허락했다.
덕분에 채인수의 집무실에서 시위광경을 내려 볼 수 있었다.
열을 맞춘 시위 참가자 1900명이 고용안전 보장. 정직원 전환 등 정해진 구호를 질서정연하게 외쳤다.
수배된 기자들이 미리 준비한 기사를 쏟아냈고, 모든 방송사가 달려와 미래 그룹을 성토했다.
“저희 남부노동당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미래그룹이 회사를 실제로 구성하는 진정한 주역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 투쟁하겠습니다.”
“사회당은 누군가의 남편이며 아버지인 근로자의 평생 고용을 쟁취해 사회 안정을 이뤄내겠습니다.”
“한국대 총학생회와 전국 대학생 연합회는 한국의 노동자를 착취해 번 돈을 외국으로 실어 나르는 미래그룹의 실태에 대한 시국선언을 한다.”
시국선언이라.
대학교 학생회는 아직도 노동당 분파노릇하나.
여기저기서 온갖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실시간 속보로 뉴스가 작성되어 올라온다.
기사만 보면 미래그룹은 세상 모든 죄악을 다 저지르는 악의 집단이다.
“곧장 고소 들어갈 거야. 현미경 분석해서 걸 수 있는 거 전부 걸고 피해배상 요구할 거다. 신경 쓰지마.”
인터뷰하고 있는 인간들을 보며 채인수가 말했다.
교수, 평론가, 주필, 시사연구가.
저런 것도 직업이 될 수 있구나.
누군가는 공장에서 시급 8000원에 20대를 갈아 넣는데, 저들은 자신도 거짓말이란 걸 아는 헛소리를 하고 거금을 번다.
아닌가.
누군가는 개소리를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개소리를 해 주는 사람에게 거액을 줄 의향이 있겠지.
수요를 깨달은 저들은 스스로 거짓말을 진실처럼 떠들 연습과 훈련을 거쳐서 저런 직업을 획득했겠네.
프로.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되어준다.
그걸로 돈을 번다.
개인방송세계에 가득한 남당의 나팔수와 북당의 나팔수.
자기당을 거짓말로 찬양하고 상대당을 깎아내리는 걸로 돈을 버는 직업인.
저것들도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최선의 직업을 택한 거겠지.
그 최선이라는 게 거짓말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지만, 뭐 어때. 자기 마인드 컨트롤만 잘하면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겠지.
거짓말쟁이들 옆에 노총 임원들이 있다.
봉고차에 투쟁, 생존 따위의 강렬한 단어를 붉은 글씨로 강렬하게 적어놓고, 커다란 스피커를 봉고차 위에 달아놓은 사람들.
동원한 봉고차가 100여대.
본사 주위에 나열한 봉고차가 일제히 민중가요를 튼다.
저 고귀한 음악이 저렇게 더럽혀져도 되는 걸까.
전태일 시대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이들과 저들은 같은 자들일까?
이미 현장에서 일하는 걸 떠나 투쟁!생존! 하는 게 직업이 된 저들은 노동자일까?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한 현명한 사업가가 아니고?
어깨동무하고 민중가요를 부르는 저들이 역겹다.
빡친다.
스읍, 하.
스읍, 하.
저 고귀한 노래를 저렇게 천박하게 더럽히는 꼴이 구역질 난다.
“사장님. 준비되었습니다.”
기획실과 비서실의 팀장들이 왔다.
기획실 브레인들이 머리를 모아 상대의 요구를 분석하고 다양한 대응책을 준비해왔다.
가장 피해가 적을 대응 절차.
금전 손해를 보되 이미지를 올리는 대응.
이미지에 손해를 보되 금전적으로 이득을 보는 대응.
서로서로 양보해 서로 웃으며 헤어질 시나리오.
채인수가 기획실 팀장들에게 설명을 들으며 무엇을 택할지 고민했다.
다가가서 서류를 뺏었다.
“동욱아?”
“제가 발표할게요.”
“안돼. 넌 상징이자 글로벌 회장이야. 이미지 손상돼. 네가 대응할 필요 없어. 한국 노동시장과의 마찰이니 지사장이 뒤집어써야지.”
“그룹 전체의 방향이기도 해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게요.”
세계최고의 부자거든.
이 정돈 마음대로 질러도 되잖아.
- 작가의말
이제 지겨우시겠지만 정치적 의도 없고 동당 서당 둘다 싫습니다
시스템 소설이고 그토록 피해온 정치파트가 섞일 수밖에 없으니 많은 욕이 날아올 것 같지만 잠시만 진정하시고 위안부 할머니가 시위현장에 나올수밖에 없는 경제구조와 시스템을 이해해주시길 바라옵니다
특정 당에 불리한 내용이 맞지만 읽다보면 동당 서당 모두까는 글이오니 진정해주시고 그래도 욕하신다면 겸허히 욕먹겠습니다
무플보다 악플이 조하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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