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사람은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한다4
무수골엔 나와 예하, 닥똥가오리, 처음부터 함께한 사장들이 각자 한 채씩 살고 있다.
사장들은 굳이 출근하지 않고, 본관에 모여 상황 지휘를 했다.
“모든 상품에 새겨. 미래그룹 기부. 절대 무료. 중국어로.”
채인수가 소리친다.
-공산당에서 모든 문구를 지워달라고 합니다.
“부패한 놈들이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거잖아. 절대 지우지 마. 급하니까 받을 수밖에 없어. 그냥 문구 새긴 채로 보내.”
의약품, 침구류,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들.
전 세계 모든 기업에서 몽땅 사서 중국으로 항공수송을 하고 있다.
무료기부를 천명하니 타 국가들도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
아예 숟가락 얹으려고 물건 값의 절반씩 내는 나라도 많다.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겠지.
상하이마저 물에 잠겼고, 전기가 끊겼다.
중국 제1의 금융, 공업지대가 마비되었다.
홍수는 난징 주변 500km 평야지대를 전부 덮었다.
자동차로 탈출?
인근 야산으로 도망가는 건 가능해도 수백 킬로 밖까지 탈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즉, 생존자들은 집 근처 야산이나 고층 빌딩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당장 먹을 게 없고 마실 물이라곤 온갖 독극물이 섞인 흙탕물뿐인 사람들이다.
어선으로 쓰던 쪽배에 100명씩 매달려 탈출하고 있지만, 느리다.
그런 이재민의 숫자가 최소 4억명이다.
최소.
솔직히 어떻게 수습할지 엄두도 나지 않는 상황.
전부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고 당장 추위와 허기를 달랠 식료품이라도 줘야 한다.
중국은 우리가 제공한 배와 위그선을 전부 받아들였다.
배 뒤에 위그선을 묶어 끌고 다니며 사람 태우는 용도로 쓰지만 그렇게라도 쓰니 다행이지.
조종하고 간 미래수산 사람들은 구호물자를 내리고 빈 항공기를 통해 돌아왔다.
이 상황에서 억류라든가, 자가격리 보름을 강제할 정도로 미친놈들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장강 하구는 넘쳐난 강물을 바다로 쏟아내고 있다.
항공사진을 보면 상하이 인근 바다가 노랗게 변할 정도로 쏟아내고 있다.
그래도 느리다.
수몰지역의 물이 빠지기까지 최소 열흘 걸릴 거라고 한다.
그 열흘 동안.
건물이나 야산에 갇힌 이들 중.
1/10도 구하지 못할 거라고 한다.
이건.
내 죄다.
쾅!
나도 모르게 책상을 내리쳤다.
사장들이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돌린다.
각자 최선을 다해 일하고 각자 전화를 붙잡고 소리친다.
“리스트는? 중국 기업 다 망하는 건 아니잖아. 장강하고 상관없는 지역들. 피해 없는 기업들은 이득 볼 거 아냐? 이득 볼 기업들 리스트 뽑아. 전부 분석해. 새로운 독점기업이 탄생할 수도 있어.”
권순진이 누군가와 통화한다.
이 순간에도 금융은 한없이 냉철하게 이득만 계산한다.
싼샤댐 붕괴가 알려지자, 제한폭 없는 나스닥 시장의 중국기업들은 60% 이상 하락했고, 기타 모든 기업이 폭등했다.
상하이, 홍콩 등 중국 금융시장은 사고 이후 비상사태 선언과 함께 문을 닫고 있는데, 다시 문을 여는 순간 90% 이상 폭락이 예고되어 있다.
G2 중국의 몰락을 금융이 가장 빠르게 선언한 것이다.
권순진은 알아서 움직이며 거액을 벌어들이고 있다.
전 세계 모든 구호물품을 최대한 사서 보내는 데 300조를 썼는데 금융은 중국 붕괴로 800조를 벌었다.
중국과 사이가 안 좋고, 미래그룹 중국지사가 쫓겨났기 때문에 중국 금융엔 자금을 넣지 않았는데 덕분에 엄청난 이익을 봤다.
그래서...
더욱...
기분이 더럽다...
“형들도 쉬면서 해요. 쉬엄쉬엄. 나흘째 밤샜잖아요.”
사고 발생 나흘 째.
의욕이 없다.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너부터 좀 들어가 쉬어. 음......”
채인수가 어딘가로 전화했다.
호출을 받은 닥똥가오리가 와서 팔짱을 껴 날 들고 갔다.
연못 앞 정자.
“술이나 먹자.”
“에라이 좆긑은세상.”
가오리가 80대 할아버지 말투로 개그를 치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공식방송을 마친 예하도 합류하고, 닥똥와이프 길영주도 합류했다.
쌀쌀한 10월말. 멍하니 술을 마신다.
옥상이나 야산에 맨몸으로 갇힌 사람들은 목마름에 흙탕물을 마시다가 장이 꼬이고 토하고, 야간의 추위에 얼어 죽겠지.
다들 뭐라 떠들다가도 자꾸 끊긴다.
실종자 추산 9000만 명.
한반도 전체인구만큼이 생사불명.
이중 몇이나 살아 있으려나.
중국이 아무리 싫어도 웃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하아.
연못 저쪽에 연못 관리인 류안구가 앉아 크게 한숨을 쉬고 있다.
미래수산 사장을 맡으라고 했는데 전문경영인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하고 연못관리인으로 남은 남자.
“관리인님. 양식장도 문제 있어요?”
“아뇨. 아닙니다. 사소한 겁니다.”
“사소하기는요. 물고기도 생명인데.”
“그렇긴 하네요.”
류안구가 씁쓸하게 웃었다.
미래수산에서 쓰던 위그선을 전부 구호물자로 보냈고, 배도 절반이상 보냈다.
육지였던 곳에 배가 올라가 사람을 구하고 있다.
덕분에 먹이 주는데 문제가 생겼겠지.
“먹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먹이는 다른 어민들에게 돈을 줘서 피딩하고 있어요.”
응? 먹이문제가 아니었어?
“그럼 왜요?”
“서해바다의 염도가 너무 낮아졌어요. 중국이 쏟아내는 민물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도 계속 쏟아낼 텐데 자칫하면 전부 폐사할 수도 있어요.”
큰 문제네.
가오리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국물이 싱거울 땐 소금을 뿌리면 됩니다. 리빙 뽀인트!”
류안구가 가오리를 쓱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연못을 봤다.
저 반응.
좋다.
최고야.
기분이 살짝 풀렸다.
무안해진 가오리가 잔을 들어 올렸다.
“혼자 마셔.”
“혼자 마시슈.”
“언니 우리 둘만 따로 짠해요.”
좋다. 이 단합력.
“집단 폐사할 확률이 높은가요?”
“서해 남해 쪽 대부분이 폐사할 겁니다. 좁은 그물에 갇혀 이동도 못하고 죽겠죠. 그래도 절반은 건질 테니... 그...... 씁.”
류안구가 연못을 보며 말하는데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허벅지만한 자치들이 펄떡인다.
알을 받아 치어를 길러 전국 수계에 뿌리고 있는 자치.
몇이나 살아남을 진 몰라도 과거처럼 한반도 강에 자생하게 하는 게 목표다.
지금 류안구는 미래수산의 금전적 피해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죽을 생명의 고통을 걱정하고 있다.
“전부 풀어줘요.”
“...... 네?”
“가둬놓으면 죽는다면서요. 미래수산 어류 전부 풀어줘요. 염도 높은 곳으로 흩어져서 살아남겠죠. 몇 달 후 먹이로 유인해 다시 잡자고요.”
수억 마리의 고기를 방류한다.
낚시꾼 아저씨들 신나겠네.
닥똥 놈은 영혼의 친구 장인어른과 매일 낚시 다니겠네.
돈 생각 말고 살자.
어차피 너무 많다.
“아. 그러면 대부분 살아남겠군요. 양식에 길들여져서 멀리 가지 않을 테고 다시 잡기도 쉬울 겁니다.”
저 아저씨도 돈 생각은 없구나.
“미래수산에 연락해 제 뜻을 전해주세요.”
“예, 그러겠습니다.”
류안구가 싱글벙글 웃으며 떠나자 10월 단풍이 든 정자가 고요해졌다.
북한산 단풍을 보며 술을 마시거나, 연못위로 펄떡 뛰는 자치를 구경하거나, 핸드폰 검색을 하거나.
“야, 너 내일 검찰출두 한대.”
가오리가 내 일정을 알려줬다.
“어? 나?”
“어. 너. 성추행 가해자로 검찰조사를 한다는데?”
아, 그 사건도 있었지.
싼샤댐 붕괴로 지구가 마비되어 잊고 있었다.
“허민지 사건? 허... 누가 봐도 꽃뱀인데. 거참.”
“여자의 눈물이 증거라잖아.”
미래 커뮤니티 익명판엔 신원보호가 없다.
국가는 피해자만 공개하고 가해자를 철저하게 보호하지만 미래 커뮤니티는 한국의 바깥에 있다.
7년 전 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자의 신원이 세세하게 밝혀지고 있다.
허민지. 24세.
양평출신.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 출신.
대학 안 감.
납세내역 없음.
강남역 인근 월세 150 오피스텔 거주.
아우디 TT쿠페 구매.
그리고.
아마도 성매매 여성.
허민지와 성매매했다는 익명제보가 줄을 잇는다.
13++ NF 라 적힌 몸만 공개된 사진이 올라오고, 현장에서 몰래 찍었던 사진들도 올라오고, 예전에 후기라며 적은 것들이 제보된다.
왼쪽 허벅지 안쪽에 점 두개 있는 걔? 어?너두? 어?동서?
이런 식이다.
정부에서 고소인 허민지의 신변을 지우라며 항의하는데 이건 어쩔 수 없다.
내 정보도 미래커뮤니티 익명위키에 떠 있는데 내 생애랍시고, 14살, 15살 등등이 날짜별로 떠 있다.
중1때 처음 딸딸이 친 걸 친구에게 말했던 것도 익명위키에 떠 있다.
ㅅㅂ 어떤 새끼한테 말했더라.
나조차 내걸 못 지우는데.
나 말고 닥똥가오리, 예하, 내 부모님까지 생애가 전부 적혀있고, 교차검증을 통해 계속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 허민지만 지우라고?
정부에선 미래그룹이 고의로 조작해 거짓 정보를 퍼트리고 있다는 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신고자를 보면 참으로 기가 찬다.
배후가 누군지 참으로 무능하네.
배우가 그렇게 없나?
나를 엮을 거면 좀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짜야 할 텐데 이건 뭐.
중국 사고를 보다가 허민지를 생각하니 참으로 하잘것없다.
이건... 마치... 조승학같다.
“이제 조승학 생각이 나도 화가 나지 않네. 그렇게 싫었는데.”
회귀한 당시엔 조승학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눈에 불을 켜고 돈을 모았는데.
이제는 돈이 돈을 벌고 조승학 따위는 연못위에 떨어진 하루살이보다 가치가 없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오빠......”
예하가 바싹 붙으며 내 허리를 안았다.
“아. 예하야. 널 생각해서라도 복수는 할게.”
“아니야. 사실 나도 오빠가 말하기 전까지 잊고 있었어. 이제는 그딴 거 어찌되든 상관없어.”
가오리가 끼어들었다.
“그렇치! 이제 월드클라스 가수지.”
닥똥이 길영주를 쿡 찌르니 영주씨가 예하에게 전화를 걸었고 가오리는 벨소리를 따라 불렀다.
“유니 워크 위쥬!”
닥똥가오리길영주가 크헬헬헬 하며 술을 마셨다.
아놔이새끼들.
“예하야 벨소리 바꿔.”
“헹. 싫거든. 이 노래 너무 좋아.”
예하가 아예 오리지널 라이브 노래를 불렀다.
아 쫌 그만 때리라고. 충분히 많이 맞았다고.
어찌됐든.
이렇게 함께 있으면 웃게 된다.
잠시 잊을 수 있다.
채인수에게 전화했다.
“형 나 내일 검찰출두해요?”
-아 잊고 있었다. 안 가도 돼. 대리인출두할거야. 변호사가 있는 이유지.
“네, 알겠어요.”
역시나 별거 없네.
술 한 잔 하고 노트북으로 뉴스나 보면서 술을 마셨다.
[역사상 최악의 사고. 최소 5000만명 사망 예상]
-세상이 5000만 명만큼 정화되었답니다
-착한 짱깨는 뒈진 짱깨뿐
-바퀴벌레들 졸라 많이 살아남았네
-미국 뭐하냐? 지금 공격해 다 죽여
세상이 미친 거 같다.
[윤회장 성추행 피해자, 신변노출로 고통스러워]
-이거 윤동욱이 노출시킨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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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해죄로 고소해야 하지 않냐? 윤회장이 시킨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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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지우는데? 윤동욱은 이 죄도 추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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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새끼는 전부 강간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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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추전부다 자살해라이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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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미쳐있다.
[피해자, 10억 합의제안 있었다]
-10억? 그동안 받은 정신적 고통을 고작 10억으로 끝? 전재산 몰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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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ㄴ 어릴때 받은 충격과 고통으로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었던 피해자를 두번 죽이는 거야?
-소추새끼10억으로퉁치려다실퍀ㅋㅋ
ㄴ정신나간년들진짜단체로미쳤네
-미성년자성추행이면 무기징역 아니냐?
ㄴ증거는? 증거없으면 중립기어박자
ㄴㄴ박아? 고소하겠습니다
ㄴㄴ여자의눈물이 증거라구욧
ㄴㄴㄴ이거 남자예요 속지마세요 대응매뉴얼 있어요
세상은 미쳤다.
“오빠... 미안해.”
예하가 또.
“왜 네가 미안한데?”
“아니... 그... 여자들이 이래서.”
“여자들이 이러는 데 왜 네가 사과하냐고.”
예하가 사과하는 게 너무 화난다.
“그... 아니야.”
씁쓸하고.
열 받는다.
“예하야. 방송 켜줘.”
“응? 공식방송? 지금 모닥불 언니랑 민지민지 언니 방송 시간인데.”
“아니, 니 개인방송. 니 방송에서 좀 떠들게.”
돈지랄을 하고 싶어졌다.
- 작가의말
벼락부자가 막퍼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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