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국가3
대통령이 다가와 악수했다.
“먼저 예기치 못한...”
“놉.”
말을 끊었다.
어디 아가리만 나불거리는 사과를 하려고 해.
합의금 없는 사과는 의미가 없다.
1조 달러 가져올 거 아니면 닥쳐.
학자 출신 70대 정치인.
흠 잡힌 일 별로 없고, 부정부패에 연루된 일도 없고, 한 일도 없이 물처럼 조용히 살다보니 대통령까지 오른 특색 없는 게 개성인 거물.
이제 끝나셨네.
손을 놓고 예하를 봤다.
“예하야. 방에 들어가.”
“응? 오빠 옆에서 손잡아 주고 싶은데.”
-ㅗㅜㅑ
-크윽 내 염장
-ㅅㅂ염장질
“들어가. 옷 입어야지.”
내 말에 예하가 자신의 롱패딩을 봤다.
따뜻한 실내인데도 목까지 자크를 올리고 있다.
덥다.
“아. 맞다. 들어가서 옷 입고 나올게.”
예하가 일어섰고 대통령에게 그 자리를 가리켰다.
“씻다운.”
난 미국인이다.
“흐음. 일단 우리끼리 건설적인 대담을......”
대통령이 언짢아하든 말든 무시하고 채팅창을 봤다.
-퍄퍄퍄
-제시님의 패딩속은 HOXY 알몸?
-단하루만 그녀의 패딩이 되고 싶어 오베베~
-퍄퍄퍄
-ㅗㅜㅑ
-바바리맨?
-바바리걸이겠지
-꺄아아아 상상해버렸지뭐얌
이 새끼들이.
“국정원이 간첩이라고 잡으러 와서 급히 피하느라 요가복 차림이야. 신발은 슬리퍼고. 엄한 상상하는 것들 다 고소.”
-ㅋㅋㅋㅋ
-국정원이 쏘아올린 작은 공
-포부스발표, 윤동욱 국적변경 미국에 600조 이익
-한국이미지손상 500조 추산
-하앍 요가복더좋아
-ㅅㅂ미친새끼가 아직도 뻣뻣하게 서 있네
-ㅋㅋㅋㅅㅂ
누군가 대통령에게 귓말 했고, 대통령이 예하의 자리에 냉큼 앉았다.
앉아서 내 쪽을 보길래 송출되는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엔 노인과 손자 같은 모습이 나오고 있다.
“전 세계가 다 지켜보는 방송이니까 화면 보며 말하죠.”
니 놈 얼굴 보기도 싫다.
화면을 보며 요구사항을 말했다.
“내가 불가피하게 한국 국적을 포기하긴 했는데, 한국에 머무르고 싶거든요. 한국에 거주해도 불이익이 없도록 처리할 수 있나요?”
스티븐 유가 되기는 싫다.
빡친 정부가 입국금지하고 한국 내 나의 자산을 동결하면 빡칠 거 같아.
합의를 봐야지.
“에... 그것은... 정부부처와 상의를 해 봐야 할 것 같지만 최대한 가능하도록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물에 물 탄듯 능구렁이같은 처세술로 대통령까지 오른 노인이 자기 개성을 드러낸 대답을 했다.
“성추행... 그거 미친년이 기획한 게 확정된 것처럼 보이는데 이제 패배를 시인하고 관련자 좀 조지시죠?”
성추행 고소 후 두 달.
피해자는 매일 말을 바꾸고, 피해자의 수상한 현금거래에 대한 증언이 계속 터져 나왔다.
어차피 그 여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기획조작한 사람의 말을 들었을 뿐이다.
신상 제대로 털리고 있으니 평생 고개 들고 못 살 거다.
지금 사방에서 공격받아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인데 끝까지 구질구질하게 내가 간악한 성범죄자라고 매도하며 여성단체의 돈을 빨아먹고 있다.
어차피 이길 것 알지만 재판은 1년 이상 걸릴 테고 그때까지 질척거릴 게 짜증난다.
“에... 그것은 사법당국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최대한 순탄한 해결방안을 강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새끼는 핵심 빼고 두루뭉실하게 답하기 원툴인가.
정치인이 다 그런가.
“한국 내 나의 가족과 친척, 친구, 내 그룹과 자산이 정부의 부당한 공격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예에... 그런 일은 없을 거라 확신하오나 다시 한 번 충분히 검토해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모든 관계부처와 협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욕 한 마디하지 않고 사람을 이렇게 짜증나게 말할 수 있지?
이것도 스킬인가.
짜증나니 그냥 솔직하게 쏴 질러야겠다.
“정치인. 참 약해요. 나라의 뜻이 뭉치면, 그래서 군대를 동원해도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무지막지하게 강해지지만, 그렇게 상황을 만들기 힘들죠. 정치인들이 뜻을 모으고 국민 전체를 세뇌시키면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하고 황제 이상의 권력을 갖겠지만, 그게 쉽게 안 되죠. 어떻게든 힘을 모아 휘두르고 싶어 매일 헛짓거리 하는 것 이해하고요. 돈 벌려고 최선을 다하는 거 이해하겠는데 더 이상 간섭 좀 없었으면 하네요.
정계와 재계가 악어새 관계인거 압니다. 정치인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4년짜리 임시계약직으로 큰돈을 벌려면 기업에게 받는 게 제일 편하겠죠. 마냥 뺏기도 힘드니 정치인이 휘두를 수 있는 세금으로 장난치는 거 이해하고요. 세금을 특정기업에 몰아주고, 특혜를 받은 기업이 정치인에게 뒷돈을 주는 구조. 이해합니다. 사람은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니까요. 그래도 하도 앵기니까 짜증이 나네요.
미래그룹을 열고 3년. 세금혜택을 줄 테니 뒷돈을 달라는 요구가 거의 300여 차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전쟁이 싫어서 참았고 전부 거절했는데, 정직하게 법대로 행동한 결과가 간첩죄라니... 웃기네요. 내가 나이 어리고 그룹 지분이 나에게 쏠려 있다는 약점 때문에 어떻게든 목줄을 쥐어보려 한 거 이해하는데 이제 참을 생각 없습니다. 우리에게 특혜를 주겠다며 요구한 뒷돈 모두 공개할 건데 성실한 수사 가능하겠습니까?”
세상에 절대 악은 없고, 절대 선도 없다.
정치인이 돈 내놔 해봤자 녹취공개하면 끝이다.
금품 수수는 서로에게 이익이 될 때 가능하다.
정치인은 세금을 기업에 주고, 기업은 정치인에게 뒷돈을 준다.
정치인이 폭로하면 정치인과 기업이 함께 박살나고, 기업이 폭로하면 정치인과 기업이 함께 박살난다.
그렇기에 서로 끝까지 침묵하고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군사정권 이후 정계와 재계의 힘이 비등해졌기에 서로의 불알을 꼬옥 잡고, ‘내거 터지면 니것도 터지는 거야.’ 하는 게 정치인과 기업의 관계다.
윈윈.
여기서 피해자는 세금을 낸 불특정 모두다.
내가 정치인에 협조했으면 뒷돈을 준 것 이상의 특혜를 받았을 거다.
대신 내 불알을 남의 손에 쥐어주는 결과가 되겠지.
영웅놀이에 심취한 미친놈이 내 불알을 터트리겠다며 자기 몸에 불 지르면 손해가 더 크다.
그래서 전부 거절했고.
실제로 모든 정치권과 연을 끊고 모든 특혜를 거부하는 기업도 꽤 있다.
“에...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곤 상상할 수 없지만, 혹여나 그러한 일이 있었다면 엄중하게 수사해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최대한도로 노력하겠습니다.”
두루뭉실.
이제 개성이려니 생각하련다.
일단 허가는 했네.
저 명단에 자기 이름도 들어가 있는 거 보면 어쩌시려나.
“형법도 마음에 안 드네요. 교화형이라니. 시대가 어느 시댄데 감히 국가에서 국민을 교화한다고 깝쳐요? 범죄자는 벌을 받아야죠. 교화형 형법을 징벌적 형법으로 바꾸시죠.”
미국의 형법은 징벌이 목적이다.
죄 지었으면 죄에 대한 벌을 주는 거다.
한국의 형법은 교화가 목적이다.
죄 지으면 다시는 그런 일 저지르지 않고 착한 사람이 되도록 바꾸는 게 목적이다.
나랏님들이 보기에는 그게 옳게 보이겠지.
하지만 여기엔 돈이 잔뜩 들어간다.
범죄자를 교화하는데 들어가는 돈은 착한 사람들이 낸 세금이다.
착한 사람이 낸 세금을 왜 범죄자를 위해 써?
게다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에... 그건 법안 전체를 검토해야...... 하지만 예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무엇하나 약속하지 않는다.
두루뭉실.
적당히 넘어간다.
“정의 포상금. 이건 내가 한국에 준 선물입니다. 나쁜 사람이 벌 받으면 다른 착한 사람들이 살기 더 좋아지겠죠. 이건 명백히 옳은 일 같은데 국가에서 협조하시렵니까?”
멈칫.
능구렁이가 처음으로 멈췄다.
이건 대통령의 권한을 훨씬 넘어선다.
한참 후 기어가는 목소리가 나왔다.
“예... 최대한 노력해서... 최대한... 나쁜 사람이 벌을 받도록... 특검을 조직해... 엄중한 수사를... 지시하겠습니다.”
“그래요. 해봐요. 전 국민이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감시할 겁니다. 덮고 싶죠? 조사해보니 사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고 끝내고 싶죠? 우린 끝까지 갈 겁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끝내고 싶죠? 싫은데요? 미국인이 이러니 내정간섭 같아요? 우리가 안할 게요. 다만 한국분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죠 뭐.”
“아닙... 니다. 지당합니다.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는 지 지켜보는 건... 올바른 권리고, 민주주의의 정당한 감시기능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환영합니다.”
새끼 포기했구만.
“예... 그리고.”
플랜B는 진작에 준비되었다.
비서가 가져다준 서류를 받았다.
그간 당한 비합리적인 압박과 정당하게 요구할 게 수십개다.
하나 하나 읽어줬고, 70대 노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간다.
이러다 심근경색으로 죽는 거 아냐?
끝이야 아저씨. 수고했어.
널 끌어내리는 건 내가 아닌 국민들이 할 거야.
“마지막으로... 정부는 군림하는 게 아니라 타국 정부와 경쟁하는 겁니다. 타국 정부와 경쟁해 손님을 끌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서비스업이 정부가 할 일입니다. 한국에 존재하는 20여개 자회사 모두 전 세계 정부의 유치신청을 받겠습니다. 한국에서 제안한 내용이 타국 정부보다 낫다면 한국에 남기겠으나 지금처럼 뜯어먹으려고 압박하고 지랄한다면 전부 떠나겠습니다. 입찰 한 번 해 보세요.”
정부는 기업을 유치해 세금을 걷는다.
지금까지는 본사이전 비용이 비싸서 힘들었다.
하지만 5G 메타버스 시대가 열리고,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공간과 거리의 제약이 사라지면 정부 간 유치경쟁이 막을 올리고 법인세 제로 시대가 된다.
그 흐름을 이해하고 미리 준비해라.
법인세 27.5% 받아서 그 돈 어떻게 세탁해먹을까 고민만 하지 말고 법인세를 낮춰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하고 더 많은 세금을 얻을 고민을 해야 한다.
세법과 각종 규제부터 바꿔야 한다.
이건 한국에 예방주사를 놔주는 선물이다.
이미 메타버스 재택근무 체제로 바꾼 미래그룹은 본사 위치에 대해 자유롭다.
“그... 알겠습니다.”
이제 두루뭉술한 대답도 못한다.
죽겠는데 이거.
보내자.
“굿바이.”
난 미국인이다.
화면송출이 끝났고, 제발 단 둘이 대화하자는 대통령을 내보냈다.
내가 때려죽일 필요 없다.
이 자리에 나온 것부터가 항복 선언이다.
정치적 생명은 이미 끝났다.
그렇다고 안 나오고 버텼으면 일반 국민이 청와대로 쳐들어가 끌어냈겠지만.
곧 탄핵당해 민간인으로 전직하고 죄수로 최종전직하겠지.
이미 죽은 인간과 이야기 할 필요 없다.
청바지에 스웨터를 입은 예하가 다가와 손을 잡았다.
“괜찮을까 오빠?”
“응. 괜찮아. 여권에 적힌 국적만 바뀌는 거고 아무것도 바뀔 것 없어. 이제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으셈.”
대통령은 충분히 조졌다.
이 자리에서 총을 쏴서 죽일 순 없잖아.
상황이 여기까지 왔으니 저건 이미 죽어있는 거다.
움직이는 시체.
“예하야 우리집으로 갈까?”
“무수골? 아래층?”
“아래층.”
“그래. 다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예하가 방송을 끝내고 정리하고 있는 스텝들에게 인사했다.
나도 덩달아 인사하고.
현관을 나오니 여기저기 멍든 경호원들이 보였다.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그룹의 이익 때문에 안 맞아도 되는 걸.”
“하하. 알고 한 겁니다. 괜찮습니다. 보너스 기대하겠습니다.”
팀장급 경호원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많이 기대하세요.”
경호원 형누나들과 인사하며 예전에 살던 집으로 갔다.
그리운 곳이네.
샤시를 전부 방탄으로 바꿨을 뿐 가구들은 그대로다.
“쉴까?”
“꺄아.”
예하를 안고 침대로 몸을 던졌다.
예하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 사람들이 하나둘 광화문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돌고 돌아 메타버스... 5g, 6g 시대가 되면 기업의 국적이 무의미한 시대가 되겠죠.
주가 조작 아니고요 메타버스 관련주 산 거 없고요(...라고 할때 살껄)
키리취님 , 사나노바님 후원감사드립니다 (‘’ (.. (‘’ (.. 굽신굽신 꾸벅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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