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훌륭한 심판님을 위하여
개인 경호팀은 4개조가 돌아간다.
중식시간 1시간 포함해 하루 9시간이 근무시간이다.
각자 겹치는 한 시간은 함께 모여 인수인계하는 시간.
주7일 일할 수 없으니 한개 조를 추가해 교대로 휴일을 보낸다.
일일 8시간 근무를 맞추려면 4개조가 필요한 것이다.
1년차 레지던트의 근무시간은 하루 종일이다.
대충 구겨져 자다가 콜이 오면 달려가 일해야 한다.
이를 일일 8시간 주 5일 근무로 바꾸려면 세 배의 인원을 더 뽑아야 한다.
그런데 레지던트의 정식 명칭은 수련의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동시에 전문의가 되기 위한 공부도 한다.
이 시간까지 보장해 줄 생각이다.
환자 돌보는 시간과 개인학습 시간을 합쳐 일일 8시간 근무로 바꾸려면 지금보다 6배의 인원이 필요하다.
“오빠오빠. 너무 많이 뽑는 거 아니야?”
예하는 의사협회에서 온 공문을 보며 걱정했다.
“반대로 생각해봐. 6배의 인원이 필요한 걸 지금까지 혼자 일한 거지. 일일 8시간 근무의 6배 근무. 환자 처치하고, 끝없이 확인하고 동시에 숙제로 받은 논문을 읽고, 술기 연습하고, 보고서 올리고 배우고 또 환자보고. 이게 삶이냐?”
“그러네. 우와. 백제병원 너무해.”
“백제만 그러면 쉽겠지. 모든 병원이 똑같아. 너희 엄마가 있는 병원도 똑같을 거야. 그래서 고치기 어렵지.”
연못 생태계가 그렇게 꾸며져 있다.
백제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치려면 연못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데 1500조를 쏟아 붓는 다고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포기?”
예하가 출력한 공문에 밑줄을 그으며 물었다.
복잡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 요약하면 간단하다.
-전문의가 교육해야 할 수련의가 너무 많아서 수련의에게 양질의 학습을 제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턴과 레지던트 충원을 금지한다 -
옳은 말씀이다.
“전문의가 부족하시다잖아. 전문의도 충원해야지.”
바로 전문의 세 배수를 뽑는 채용공고를 냈다.
“이걸로 적자 확정이네.”
병원 살림을 아무리 뜯어고쳐도 전문의 임금만으로도 이미 백제병원은 적자운영이 된다.
그래도 감당해야지.
나흘 후 전문의 충원을 반대하는 의사협회의 공문이 내려왔다.
의사 풀의 한계로 모든 의사를 끌어가면 타 병원이 인력난을 맞이하게 된다.
예상대로군.
상대는 예상대로 움직였고, 아직은 명분수집 단계다.
백제를 정리하고 의사협회와 서로 약한 잽을 날리는 사이 4월 말이 되었다.
백제 그룹의 주가는 서서히 하락하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고, 그럴수록 펀드의 수익률이 줄어든다.
그에 따라 펀드 이탈자금이 늘고 있다.
예탁금이 최대 6조 3000억까지 증가했다가 6조까지 떨어졌다.
- 졸라탄 이모브라비침 : 야! 지금이 고점 맞지? 지금 내리는 게 최대 수익이지?
ㄴ ㅇㅇ 그런데 내려서 니가 직접 투자하느니 냅두는 게 나을 듯
ㄴㄴ 거치 3년 이전에 해지하면 수수료 크잖아. 냅두지 그래?
ㄴㄴㄴ 니가 미래만큼 투자 잘하면 내리든가
- 님아선제시요 : 제시 만세! 해지수수료 왤케 비싸냐? 저거 사기 아니냐?
ㄴ 제시 만세! 3년 이후부터 제로잖아. 니가 돈 넣어서 주식 사자마자 뺀다고 하면 짜증나니까 저렇지
ㄴㄴ 제시 만세! 장기 투자할수록 해지수수료 줄잖아. 자신 없으면 냅둬
ㄴㄴㄴ 제시 만세! 솔까 수익 보면 졸라 부러운데 지금 들어가면 손해 같아서 못 들어가겠다
펀드 규모를 1000조까지 늘리고 싶은데 쉽게 늘지 않는다.
백제 그룹 임팩트가 워낙 컸기에 사냥이 끝나자 오히려 가입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예하의 특별 방송을 준비했다.
“안녕하세요 브라이언님. 네 에큘님 반가워요. 네 시작할게요. 오늘의 컨텐츠는 ‘특별공개! 2개월 전 오늘 입니다!’ 미래펀드에 투자하신 분들이 궁금해 하실까봐 2개월 전 오늘의 투자내역을 공개합니다. 이건 펀드 규칙 상 1년 후 공개인데 특별히 2개월 전 내역을 알려드릴게요. 네? 오늘의 투자내역이요? 그건 안 돼요. 포지션이 공개되면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 빠질 수 있어요. 국민연금도 비공개잖아요. 그러니 참아주세요. 자아. 저희의 2개월 전 포트폴리오를 공개합니다.”
짜잔.
“에첼비와 관계사에 4000억이 들어갔네요. 이건 정확히 2개월 전 상황이예요. 이후 얼마가 더 들어갔는지는 몰라요. 그렇다면 현재 가격은? 두구두구둑. 1,5배 올랐네요. 4000억이 1조가 되었.... 에휴. 방송할 맛 안 나네요. 부럽다앙.”
- ㅋㅋㅋ 제시 커엽
- 저 돈 뭐여? 백제 말고도 추가 수익이 있는 겨?
- 미친. 차트 봐라. 4000억을 완전 바닥에서 주웠어
- 저 날 이후로 더 넣었을 거 같은데? 이후로 펀드 자금에 몰린 거 다 넣었으면 흐미
ㄴ 맞네. ㅅㅂ 미쳤다.
“그리고 인버스와 곱버스에도 4000억 들어갔네요. 그리고 60여개 기업에 공매도가 7000억이네요. 이 수익률은... 고작 20%네요. 이후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헐. 하락장에 20% 수익
-미친. 다 맞춘다
-아놔. 두 달 동안 나 마이너스 15퍼였는데. 그냥 미래에 넣을 걸.
줄어들던 펀드 자금이 늘기 시작했다.
보통 펀드는 중년 혹은 노년 분들이 많이 이용한다.
신문물에 약한 분들이 많아서 은행에 가서 계좌를 만들어 달라 하고 추천해달라고 해 은행직원이 자기 성과급을 위해 추천하는 곳에 전 재산을 맡기고 잊고 사신다.
그래서 대개의 자산운용사는 영업활동을 은행원 상대로 한다.
고기를 먹이고 술을 먹이고 상품권을 준다.
그런데 미래펀드는 방송으로 광고하기에 젊은 층이 많다.
직접 투자를 선호하는 20~30대 답게 보기만 하고 투자하지 않거나, 투자했더라도 소액만 넣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
<니가 뭘 해도 미래펀드보다 못한다>
<그냥 수수료 내고 미래펀드에 맡기는 게 낫다>
운 좋게 백제를 사냥한 펀드가 아니다.
시장 흐름을 기깔나게 읽는 펀드다.
반전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주로 20~30대 가난한 젊은이들이 넣은 소액의 투자금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제발 제시 팬이라면 미래펀드에 넣읍시다
-제시 만세! 매일 적금 넣듯 버는 족족 미래 펀드에 넣자.
제시를 향한 팬심만으로 넣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하는 하루를 가득 채운다.
한 시도 쉬지 않는다.
청소하면서도 인기 있는 개인방송을 틀어놓고 분석한다.
노래연습을 하고 춤을 추고, 요가를 하고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면서도 영어공부를 한다.
그러면서도 내 시간까지 챙겨준다.
예하가 한가한 시간은 나랑 있을 때 뿐이다.
“너 대단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오빠의 선택 하나를 못 이기는데. 에첼비 사세요. 그 말 한마디로 1조원 벌었잖아. 히잉. 오빠랑 어울리는 여자가 되려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 걸까.”
에첼비와 그 관련주가 폭등하고 있다. 3배 가격에 내리면 1조원 번다.
“나야... 그......”
미래를 알 뿐이야.
넌 두번 사는 것도 아닌데 나보다 대단하지.
네 노력이 내 치트에 퇴색되는 것 같아 미안하네.
“그래. 존경해라.”
사실을 말해줄 수 없고.
예하가 요가하는 걸 보다가 컴퓨터 방으로 갔다.
보고 있으면 또 하고 싶어지는데 예하가 자기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니까 방해하지 말아야지.
이왕 미래에서 왔으니 최대한 돈을 벌자.
예하한테 존경받을 수 있도록 모든 분야에서 다 벌자.
모든 분야에서 최대한 많이 벌어서 쓰고 싶은 데 막 써야지.
에펨 이란 게임을 깔고 지니 라는 걸 설치했다.
5만원밖에 안하네.
게임을 시작하고 지니에서 유망주 검색을 했다.
게임으로 선수를 검색한다는 게 웃기지만, 이 게임은 전 세계 5000여명의 스카우터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게임에서 높게 평가되는 유망주는 실제로도 잘하는 경우가 꽤 많다.
대략 50% 확률이랄까.
유망주의 이름 중 기억이 강하게 남는 이름은 미래에 대스타가 되겠지.
“칸진리. 비싸서 못 사. 불백형은 아니고. 한광성? 얘는 국적 때문에 인생이 망하지. 가비아디니는 아직 없나? 몇 살인지 모르겠네.”
18세 이하 선수 중 게임에서 측정한 잠재력 순서로 나열하고 영어 이름을 하나씩 읽었다.
읽다가 기억나는 이름이 나오면 체크한다.
“얼링 하알랜드? 음. 스펠링이 눈에 익은데...”
유망주 랭킹 500위 부근에 왠지 기억나는 이름이 있어서 구글에 쳐 봤다.
“워메. 얜 꼭 사야해!”
소년만화에서 양아치 두목 우측 뒤에 서 있는 덩치 크고 이마가 큰 엑스트라처럼 생겼다.
17세라고는 믿기지 않는 얼굴.
“홀란이잖아. 오우쉣. 평가가 왜 이렇게 낮아? 소속팀이 몰데? 그건 어디지? 어쨌든 빅클럽 아니지? 시바 사야겠다. 얘 하나만 잘 팔아도 4000억이잖아.”
축구팀은 내년에나 살 계획이었는데 안 되겠다.
찬란한 다이아몬드가 듣보잡 팀에서 놀고 있다.
유망주 랭킹이 낮은 걸 보면 싸게 살 수 있겠지.
바로 전화했다.
“김하나 팀장님.”
기업조사팀장 김하나씨.
-네. 사장님.
“축구팀 하나만 사줘요. 영국 상위리그 팀 중에서 살 수 있는 팀이 있는지 확인부터 해주세요. 그리고 홀란이란 선수가 있거든요. 스카우터부터 고용해서 우리팀으로 데려와 주세요. 아니. 일단 홀란부터 잡아요. 얼마가 들든.”
-네? 팀이 아직 없는데 어떻게 사요?
“선수부터 일단 사주세요. 돈은 신경 쓰지 마세요.”
팀 사는 것보다 급하다. 빅클럽이 채가기 전에 데려와야지.
그리하여 1주일 후, 팀을 사기도 전에 홀란이란 선수와 계약부터 했다.
팀 없이 선수 구매.
돈이 많으면 불가능한 건 없다.
“오빠.”
“어.”
“시간 됐어.”
“어. 가자.”
5월 첫날. 편안하게 트레이닝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예하는 내 패션을 보다가 한숨 쉬고는 비슷한 트레이닝복에 챙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꼈다.
예하는 이제 맨 얼굴로 못 다니지.
함께 잠실야구장으로 갔다.
오늘은 원주 연고지인 미래펀딩 로보츠가 서울로 원정게임을 왔다.
예약된 VIP룸에 들어가니 닥똥과 직원 한명이 있었다.
“인사해. 이쪽은 길영주. 우리와 동갑이고, 구단 홍보팀 직원이셔.”
“예. 안녕하세요.”
키 작고, 평범한 외모의 여자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 잡았다.
커다란 창 너머에 야구장 관중석이 보이고, 그 너머로 선수들이 보인다.
일반 관중석 뒤쪽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박스 모양의 VIP 좌석.
관람이 목적인만큼 창문 쪽에 긴 바형 테이블이 있고, 그 앞에 한 줄로 나란히 주르륵 앉았다.
닥똥과 붙어 앉고 양쪽에 여자들이 앉았다.
VIP실에서 보는 야구는 별로 재미없었다.
저 멀리서 공을 던지고 공을 치는데 잘 안 보인다.
“예하야. 재밌어?”
“어? 하나도 모르겠어.”
흰공이 슝하고 슉하면 사람들이 와아아 한다.
“나도 몰라. 헤헤헤”
바보남매가 마주보며 웃었다.
“그런데 저기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
예하가 치어리더 앞좌석을 가리켰다.
관중이 몰려있는 곳은 굉장히 생동감이 있었다.
선수가 바뀔 때마다 목이 터져라 노래하고, 치어리더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춤을 춘다.
활기차고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곳.
재밌어 보인다.
“예하 넌 갈 수 없을 걸. 경호원이 둘러싸고 앉아야 할텐데 모두 너만 쳐다볼 거야. 경호팀 없이 가면 너 머리카락 죄다 뽑힌다. 대머리 돼.”
“히잉. 나 안 유명 할래.”
“받아들이셈. 예쁜 게 죄셈.”
“넴.”
예쁘다.
바형 테이블에 음식이 깔렸다.
경호팀이 초밥, 치킨, 떡볶이, 순대, 김밥, 삼겹살 꼬치구이 등등, 야구장에서 파는 모든 음식을 포장해왔다.
길영주씨와 닥똥은 하나씩 먹으면서 이건 어떻고 저건 별로고 하며 열심히 평가했다.
“뭐해?”
“우리 구장하고 다른 점 분석. 이것도 매출이니까.”
“일하는 거네.”
“과분한 자리에 앉았으면 일 해야지.”
과분한 자리.
앉혀준 나는 돈 많아서 괜찮다 했지만 닥똥이 이렇게 생각하는 걸 막을 수 없다.
닥똥과 가오리는 월급을 거부했다.
야구단에 돈 쏟아 붓는 걸로 충분하다고 한다.
나야 맡길 사람이 필요해서 줬지만 닥똥은 이미 너무 많이 받았고, 양심상 돈은 못 받는다고 끝까지 우겼다.
그저 과거 빌려준 돈의 배율로 100억 준 게 전부다.
그것조차 펀드에 넣어 팍팍 늘어나고 있으니 평생 돈 걱정은 없겠지.
둘이 음식을 먹으며 평가하다가 서로의 입에 넣어주고, 입가에 묻은 떡볶이 소스를 손가락으로 닦아주고.
“어라? 둘이... 두 분 혹시?”
“말 안했나? 우리 사귄다. 3주됐다.”
야 이 미친놈아. 그런 건 미리 말해야지.
실수할 뻔 했잖아.
“어마. 축하해요. 정말 잘 어울려요.”
예하가 열정적으로 축하해줬다.
숫기 없는 닥똥과 길영주씨가 부끄러워하면서도 즐거워했다.
“어떻게 사귀게 됐어요?”
예하의 MC본능.
“필리핀 휴가를 같이 갔거든. 거기서 고백했는데 받아주셨어.”
닥똥이 부끄러워하며 타우바트섬에서의 추억을 늘어놓았다.
길영주도 중간중간 끼어들면서 점점 편해졌다.
닥똥 놈 어쩐지 휴가를 1주일 연장하더만.
가오리 놈은 기획발굴팀과 함께 아직도 필리핀에서 놀고 있고.
맥주 마시며 한참 수다를 떨다가 본론을 말했다.
“야. 너 구단 하나 더 맡아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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