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Next step2
인터폰으로 전화해 본관에 안주를 추가시키고 퍼먹고 놀다가 다들 취했다.
“야야야. 니가 원하는 건 20대가 제대로 일한 돈을 받았으면 하는 거지?”
취한 가오리가 물었다.
“어. 솔직히 너무 불쌍하잖아. 우리세대.”
“그렇긴 하지. 그래서 말인데 직업홍보채널 만들면 어떨까?”
“어?”
“모든 직업을 소개하는 거야. 예를 들면 너희 아버지 같은 도저기사의 삶과 급료, 뭐 이런 거.”
“흠.”
“불도저 기사는 월천 벌잖아. 대신 진동과 소음과 열기에 시달리고, 롤러코스터처럼 위로 쭉 오르거나 아래로 쭉 내려가는 것도 힘들고, 위험하고.”
“위험은 덜 하지. 도저는 사고가 거의 없으니까. 힘든 것 맞지만.”
“어. 그리고 지방을 돌아다녀야 해서 가족과 함께 살기 힘들고, 주말 부부가 되야 하고.”
“가장 큰 단점이지. 주말부부도 아니야. 지방의 골프장 공사 나가시면 주말에도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했어. 비 오는 날도 도저는 일을 하더라.”
“아. 그렇구나. 그래서 월 천인거지?”
“응. 세상은 합리적이니까. 이런 단점들을 다 합쳐서 월 천을 받는 거지.”
“그래. 그런데 20대 중에 월 천을 번 다면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을까?”
“많겠지.”
“문제는 몰라서 도저 기사를 하지 않는 거겠지?”
“대부분 그렇겠지. 게다가 모든 수험생이 대학가는 세상이잖아. 대학 나와서 도저기사 하기는 싫은 거겠지. 덕분에 월 천 받는 도저기사는 사람이 없어서 기계가 멈추고, 피터지게 공부해서 대학 등록금 수천만 원 내고 자격증을 딴 20대는 시급 5000원 짜리 중소기업에서 매일 야근당하며 살지.”
“어어. 그게 문제잖아. 많이 버는 직업이 분명 존재하는데 20대는 어째서인지 대학에 몰리고 산업디자인에 몰려서 최저시급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 도저기사들은 60대 70대밖에 없다며.”
“어. 아빠가 아직 막내라더라. 젊은 층이 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그걸 분산하는 거야. 모든 직업을 시원하게 열어주는 채널을 만드는 거야. 도저기사의 장단점과 준비기간, 교육비용, 이런걸 알려주는 거야. 지게차 기사의 장단점과 현실, 은행원의 장단점과 현실. 이런걸 알려주는 채널. 좋지 않을까?”
“음. 없는 것보단 낫겠네.”
“하자. 어차피 돈은 썩어 넘친다메. 아. 위대한 가오리. 이건 정부에서 해야 할 일 같은데.”
가오리가 자화자찬했다.
“정부는 못 하지. 넌 생각이 없구나.”
“정부가 못하다니? 세금 받아서 이런데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정부가 도저기사 전망이 좋다고 알려줘서 사람이 몰리면? 사람이 많아지면 임금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정부를 욕하겠지? 그럼 공무원 자리가 위태롭겠지? 정부에선 나설 수 없어. 바보.”
“멍청이.”
“똥개.”
“해삼.”
“말미잘.”
길영주, 예하도 이 분위기에 적응했군. 좋아.
“저러니까 여친이 없지.”
닥똥, 너어.
“이 시꺄 그거랑 여친이랑 상관없잖아. 개라슥아.”
“시끄러 죄인.”
말을 끊자.
“정부는 나설 수 없으니 우리가 하면 좋겠지. 할까?”
“어. 하자. 모든 직업을 분석하고 필요한 것, 평균 임금, 평균적인 삶 같은 거 알리는 거야. 미장공이 일급 20만원 받는데 건축현장 직원이 두 배 일하고 일급 9만원 받는 게 말이 돼?”
“말도 안 되지. 전부 4년제 대학 나오고 자격증에 열 올리니까 오히려 돈을 못 받는 건 문제지. 니가 할래?”
“어? 내가?”
“비영리회사 차리고 진행해야지. 어차피 직원 뽑고 방향만 제시하면 알아서 잘 할 거야.”
“어. 할게. 할래. 재밌겠다. 모든 직업. 우후후후.”
가오리가 진짜 가오리처럼 웃었다.
삐죽 나온 입술에 딱밤 날리고 싶네.
챙.
병을 부딪치고 맥주를 마시는데 예하가 ‘울 오빠 또 좋은 일 한다’ 하며 으쓱했다.
“이러면 우리 세대도 좋아지겠지?”
“아주 약간.”
“에? 이게 문제라며? 임금 역전 현상. 전문가가 넘쳐나서 오히려 취업 안 되고, 자격증을 줄줄이 딴 전문가의 임금이 아무 준비 없이 빗자루질만 하는 사람보다 못 받는 형상. 이게 제일 문제라며.”
“문제지. 그런데 근본적 문제는 아니야. 근본은 서프 이후 기초산업을 중국에 뺏기면서 일자리를 중국에 뺏기는 현실이야. 전체 일자리가 줄어든 게 근본적 문제인거지. 일자리가 부족해진 세대가 서로 경쟁에 목매면서 노예 생활을 버티는 건 막을 수 없는 흐름이고.”
“어.... 음... 에... 시발 모르겠다.”
“지금 20대는 불편한 협곡에 갇힌 세대야. 다음 세대엔 자연스럽게 풀려.”
“에? 왜?”
“인구절벽. 다음세대가 되면 한국을 지탱할 인구가 없어지잖아. 필수적인 일자리는 그대로고. 그 때가 되면 제발 공무원 해 주세요 하며 간청하는 시대가 와. 즉, 지금 세대만 불쌍한 거지.”
“하. 시발. 불쌍한 90년대 생.”
“불쾌한 협곡. 딱 90년대 생을 위한 말이지. 2000년대 초반하고 80년대 후반도 슬쩍 포함.”
“아. 어떻게 우리가 딱 거기 걸렸냐.”
“후후후. 내가 너희는 구원해주겠노라.”
내 농담에 농담 같은 환호가 나왔다.
“오오오. 핸플!”
“핸플! 핸플!”
“핸.. 동욱빠.”
예하는 핸플이란 별명을 부끄러워했다.
저쪽에서 길영주가 닥똥에게 핸플이 무슨 뜻이냐고 묻고, 닥똥놈은 그걸 또 설명하려고 한다.
“야. 하지마.”
“핸플이 뭐냐면 오줌 쌀 때.”
“하지 말라고 물똥아.”
“야이씨.”
또 한바탕 헛소리가 이어지고.
“그럼 20대를 위해 뭘 하는 게 가장 좋은데?”
“시골.”
“어?”
“시골에 청년이 없잖아. 7,80대 할머니, 할아버지만 계시잖아. 농사지을 힘없는 분들이니 실제로 일하는 건 불체자가 다하고. 그 자리에 청년이 가면 모든 게 풀려.”
“아. 불체자 쫓아내는 그거? 지금도 시위하고 있는 그거?”
“어. 지방에 청년 100만 명만 보내면 한국의 문제 절반이 사라져. 부동산 폭등도 없을 거고 지방경제도 안정되고 닭장에서 노예 생활하던 삶의 질도 좋아지고.”
“그래서 니가 온갖 욕을 처먹으면서 그 지랄을 했네.”
“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
“그런데 강제로 보낼 수 없잖아. 회사 세울 거냐?”
“이게 문제인 게 지방에 사람이 없지만, 경제는 어떻게든 돌아가. 지역에 자리 잡은 장년층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땅을 계약서 없이 위탁받아 경작하고 있거든. 그런데 이분들은 잘 벌어. 할머니 할아버지에겐 먹고 살만큼 땅값을 챙겨주고, 불체자 부리면서 넓은 땅을 경작하고 있어. 이들은 지금 농촌사회가 바뀌는 걸 바랄까?”
“어... 안 바라겠지.”
“게다가 기업이 갈 수도 없어. 알다시피 농지법은 무조건 개인경작을 해야 해.”
“어...... 음...... 모르겠다.”
“내가 돈 팍팍 퍼부어서 청년이 농촌에서 살아도 도시에 사는 것보다 좋게 만들 순 있는데, 그것조차 불가능해. 농촌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서 말도 못 꺼내고 있지.”
“너도 못하는 게 있구나.”
“어. 정치권이랑 손잡고 해야 하는데 그쪽은 손대기 싫어서 시작하지 않고 있어.”
“어쩌려고.”
“당장 안 될 땐 기다리는 게 좋아. 준비하고 기다리면 기회가 와.”
예하의 눈이 빛났다.
“오빠. 또 멋있는 거 알아? 너무 멋있어.”
“맞네. 역시 달라.”
길영주씨도 합세했다.
닥똥, 가오리 놈이 질투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기다리는 게 뭐 잘났다고.”
“그니까. 저거 허세야 허세.”
“후후훗.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게 가장 어려운 거란다. 2018년 주가를 보면 1월에 돈을 다 빼고 12월까지 투자하지 않는 게 가장 좋았지. 그런데 1년간 돈을 빼놓고 투자하지 않고 기다리는 게 쉬울까? 기다린다는 건 가장 어려운 거야. 나 같은 현자만 할 수 있지. 여친도 없는 놈들.”
“이 새끼야!”
“난 있는데?”
“넌 결혼할 사람이 있는 거지.”
“이 새끼야!”
언제나 그랬듯 술자리는 개판이다.
작은 소리를 틀어 놓은 티비에선 미래와 애플의 분쟁이 나오고 있다.
티비의 논조가 웃기다.
바로 직전엔 의사협회의 미래그룹 규탄 방송이 나오면서 미래그룹을 욕했는데, 지금은 애플의 갑질을 욕하면서 미래그룹의 안타까운 희생을 강조하고 있다.
쟤들도 참 먹고살기 힘들다.
슬슬 취기가 올라 자리를 파하려는데 다음 뉴스가 나왔다.
-홍콩의 민주화은동이 연일 확산되고 있습니다. 범죄자송환문제로 촉발된 중국과 홍콩의 갈등이 고조되고, 중국이 일국양제폐지를 들고 나오면서 시민들이 노란 우산을 쓰고 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영국은 성명서를...
시작되었구나.
기다리면 때가 온다.
핀빙빙에게 전화를......
“오빠?”
“아니다. 자자. 술 좀 깨야겠어. 낼 보자.”
“영국가야 해. 보름 후에나 볼 수 있을 듯.”
“꺼지셈.”
“어.”
오랜만에 많이 마셨네.
예하를 안고 잤다.
핀빙빙과 연락해 준비된 시나리오를 설명했고, 그녀를 감시, 보호하는 미국과도 연락했다.
삼각합의가 이뤄지고 핀빙빙이 공식활동을 재개했다.
“안녕하세요. 미래 라이브 방송으로 이렇게 인사드리네요. 네 전 잘 지냈어요.”
온갖 음모론이 난무하던 핀빙빙이 개인방송을 켰다.
“전 중국 공산당의 결정을 100% 지지하며 홍콩에서 공산당의 지도를 따라 주기를......”
매우 놀랍게도 핀빙빙은 공산당 지지선언을 했다.
정치적 발언이 거의 없던 핀빙빙은 공산당을 지지함과 동시에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강도 높게 비난했고, 이는 중국을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공산당은 핀빙빙의 망명을 알리지 않았다.
망명이 알려지면 자기들의 무능이 알려지니 덮은 것이다.
그저 비난하고 신문에서 핀빙빙 음모론을 지워나갔다.
그렇게 조용히 생매장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핀빙빙이 공산당을 지지했고, 감금 강간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공산당은 다음날 핀빙빙의 선언에 환영의사를 비췄고, 홍콩의 민주화 세력은 핀빙빙의 라이브 방송에 몰려와 온갖 욕을 퍼부었다.
핀빙빙은 끔뻑하지 않았다.
매일 방송을 켜 공산당을 찬양하고 홍콩 민주화 시위를 비난할 뿐이었다.
4월이 지나 5월이 되어도 똑같았다.
다만 바뀐 점이라면 핀빙빙의 지인뿐이다.
핀빙빙의 부모님에게 공안의 감시가 붙었었는데 감시가 느슨해졌다.
그들에게 고용된 이가 접근했다.
“핀빙빙과 몰래 대화하는 방법입니다. 미래 메신저 비밀메세지를 이용하면 누구도 해킹할 수 없습니다.”
핀빙빙에겐 약혼자가 있었고, 결혼날짜도 잡혔지만, 핀빙빙이 망명하는 순간 파혼을 공식 선언했다.
남자 쪽은 장군집안이고 공산당과 멀어진 핀빙빙과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겠지.
핀빙빙은 개인 엔터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업계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급료를 받고, 기타 보너스도 많았기에 회사를 그만두는 이가 거의 없었다.
핀빙빙이 말하길 떠난 약혼자 따위보다 100배 소중한 이들이라고.
그들 전부에게 사람이 접근해 메세지를 전했다.
그들 모두 홍콩에 모였고, 배를 타고 베트남으로 건너가 미국으로 날아갔다.
핀빙빙의 지인을 구출하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6월이 되었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격해졌다.
핀빙빙이 매일 방송해서인지 원 역사보다 훨씬 격해졌다.
홍콩 경찰은 물대포와 물총으로 최루액을 쐈고, 홍콩 시민은 최루액을 막기 위해 노란 우산을 쓰고 거리를 가득 메웠다.
노란 우산의 물결.
노란 물이 흐른다.
예언가 인정?
“홍콩의 민주화 투사 여러분.”
오늘도 핀빙빙은 방송을 했다.
-죽어라!
-더러운 공산당년
-니년은 평생 연예계에 발도 못 붙인다
과격한 채팅이 줄을 잇는다.
홍콩의 시민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민주화 인사가 핀빙빙을 매도했다.
“힘내십시오. 당신들은 옳습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
핀빙빙이 홍콩 지지를 선언했다.
- 작가의말
설정한 타임 테이블이 또 조금 어긋났구만요... 시간이 앞 뒤로 쬐끔씩 왔다갔다... ㅈㅅ
사건이 한방에 끝나는 게 아니라 수 개월에 걸쳐 진행되다보니 캐릭터가 짧게짧게 나오고 물러나고 해서 난잡할 거 같기도 하고 막 그래서... ㅈㅅㅈㅅ
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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