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불법체류자3
“외국인 노동자분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대요. 어쩔 수 없이 묵인한대요. 외국인 노동자분이 없으면 어촌은 아예 마비가 된대요. 단순하고 힘든 공장일수록 한국인이 없대요. 공장장만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노동자이며 비자가 만료되어도 출국조치하려는 공무원이 아무도 없기에 그냥 눌러앉아서 일한대요.
그렇다면 이분들의 인권은 지켜지나요? 비자가 있을 때도 돈을 많이 받지 못하지만, 불체자가 된 후에는 그 절반도 받지 못한대요. 고향에 송금하려면 한국인 사장의 도움을 받아 송금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수수료를 엄청나게 뗀대요. 불체자분들은 우리 2030처럼 힘들게 노동하면서 정말 눈곱만큼의 돈만 받으며 버틴대요. 이야말로 인권착취가 아닐까요?
모든 것은 순리대로. 불체자 분이 자격을 증명해 노동비자를 받아 국가의 관리를 받으며 일하고, 그게 안 되면 한국을 미워하게 될 노동착취나 인권탄압을 받지 않게 하는 일. 이야말로 진짜 사람의 인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종차별?
인권유린?
불법체류자를 원래 있을 곳으로 보내는 것이야말로 인권을 지키고, 외국인노동자의 한국증오를 없애는 길이다.
미래그룹이 하는 일은 노동착취를 당하는 불법체류자를 돕는 일이다.
“또 하나. 앞서 말했던 상식.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고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간대요. 불체자 분들이 없어지면 당장 농어촌이 힘들겠죠. 그러면 사람을 고용하는 임금이 올라가겠죠. 불체자 분들은 불리한 상황 때문에 적은 돈을 받으며 억지로 일했지만, 한국인 젊은이를 고용하려면 많이 줘야 하겠죠.
시골에서 농사짓는, 혹은 배를 타고 양식하는 일거리의 가격이 오르면 젊은이가 시골로 가게 되요. 지금까지는 외국인 노동자가 착취당하는 만큼 돈을 적게 줬으니 젊은이가 지방에 가지 않았지만 돈을 많이 주면 가게 되요. 그렇게 지방에 젊은 사람이 가게 됩니다.
농어촌은 당장은 힘들더라도 결국 건강하게 될 테고 정부에서 세금을 지방에 써서 좀 더 살기 좋게 만들어줄 겁니다. 힘든 공장일수록 돈을 많이 줘서 사람을 뽑을 테고 젊은이들이 지방으로 흩어지게 되겠죠. 힘든 공사현장도 중국, 베트남인으로 가득하지만, 앞으로는 한국인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고 일하게 되겠죠. 이해되시나요? 저희는 한국을 보다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움직입니다.”
지난 삶에서 노가다를 2년 정도 했다.
당시 재밌었던 건 통역이 둘이나 붙어있었다는 것이다.
현장소장이 조회 때 전할 말을 한국어로 하면, 중국어 통역이 중국어로 말해줬다.
다음엔 베트남어 통역이 베트남 사람을 위해 설명을 해 줬다.
한국 사람은 거의 없었고, 있어도 대부분 50대 이상이었다.
회사에 취업하기 힘든 나이의 사람만 노가다 현장에 올 뿐 젊은이는 현장에 거의 없었다.
덕분에 고작 1년 만에 현장반장이 되었다.
일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돈 벌려고 독기 있게 했지만, 일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한국인에게 반장을 맡겨야 했기에 반장이 된 것이고 1년 만에 일급 17만원이 되었다.
이게 많이 받는 것도 아니었다.
신호봉을 들고 지게차 옆을 따라다니는 신호수는 하루 14만원을 받았고, 먹통을 들고 다니며 철근 심을 선을 그리는 먹아줌마는 16만원을 받았다.
힘든 철근공은 19~25만원을 받았고, 가장 힘든 알폼팀은 25~30만원을 받았다.
빗자루질만 하는 청소용역은 13만원을 받았고, 9시간 근무에서 2시간 추가되면 모든 팀이 0.5배씩 추가급료를 받았다.
노가다 현장에서 가장 못 받는 이는 명문대학교 4년을 졸업하고, 건축산업기사, 건축기사 자격증까지 딴 정직원이다.
세전 월 320만원을 받는 29세 정직원은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해 매일 밤 9시까지 보고서를 작성하는 삶을 살면서 야근비용은 당연히 못 받았다.
만약 빗자루질 하는 아저씨가 같은 시간 일한다면 야근 수당 포함해서 500만원 가까이 수령하게 되지만, 정직원은 그게 안 된다.
붙어있기 위해선 불합리함을 인내하도록 시스템이 짜여져 있다.
닥똥이 걸어갔던 삶이다.
이건 잘못되었다.
빗자루질이 하찮은 건 아니지만, 아무 준비 없이 단순용역으로 온 사람이 매일 9시간씩만 일하면서 기사자격증까지 딴 명문대출신 정직원보다 많이 받는다.
미래가 불투명해서?
정직원의 1/5만 소장급이 된다.
죽어라 노력해야 승진할 수 있고, 억대 연봉이 된다.
빗자루 질 하는 사람이 비슷하게 노력하면 몇 년 안에 자기 팀을 꾸려 사업을 할 수 있다.
5년 만에 세대청소 팀을 만든 사람이 월천을 벌고, 3년 만에 조적팀을 꾸린 사람은 월 천오백을 버는 곳이 현장이다.
한국인 노동자가 너무 없어서 한국인 젊은 축은 오히려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곳.
한국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
과한 교육열이 임금을 역전시켰다.
전국민이 대학교에 가고 전국민이 전문가가 되었다.
전문가의 공급은 넘쳐나는데 수요가 한정되어 있으니 전문가의 임금은 오히려 줄어들고, 휴일 없는 야근지옥에 산다.
반면에 전문가가 아닌 막일은 사람이 없다.
농어촌, 건설현장과 공장은 사람이 필요한데 그 자리를 외노자로 대체하고 있다.
싸게 먹히니까.
최대이익을 위해 눈을 감고 사람을 쓰니 외노자로 가득 차게 되고, 임금 수준이 너무 낮아져 정작 한국인은 사라진다.
서울에서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게 시골에서 가족친구 버리고 눈꼽만한 월급에 힘겹게 일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고쳐야 한다.
다음 버블이 터지기 전에.
“난향님 고맙습니다. 네. 맞아요. 브라이언님 오랜만이에요. 예. 후아. 충분히 쉬었으니까... 대본을 또 읽을게요.”
커피를 한모금 마신 예하가 대본을 훑었다.
“한국은 굉장히 좋은 나라예요. 세계에서 배달시스템이 가장 잘 되어 있어, 전화주문이 편하죠.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잘 터지는 나라래요. 세계에서 교통망이 가장 잘 정비된 나라래요. 대도시가 교통지옥이라지만, 수도권에만 2000만명 넘게 몰려 살아서 그런 거고, 이것조차 다른 나라 천만 명 대도시보다 나은 편이래요. 한국의 치안도 세계에서 가장 좋대요.”
-ㅋㅋㅋ은근슬쩍 헛소리 섞네
-짭새한테 돈 받았나
-충격, 제시 견찰한테 스폰받는 걸로 드러나
-헬조선의 자발적 노예화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역시나 댓글창이 불이 났다.
“히잉. 이게.. 진짜래요. 불과 5년 전 영국에서 일제단속을 했는데 미성년자 납치성매매가 수백 건이었대요. 세상에 미성년자 납치성매매라니. 한국에서도 사건사고가 많지만, 영국보단 낫잖아요. 저런 일이 한국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해봐요.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정말 끔찍한 일이 끝없이 일어난대요. 한국이 최고는 아니지만, 세계 다른 나라랑 비교하면 가장 좋은 축에 속한대요. 힝. 대본에 적혀 있어요.”
예하가 우는척하며 무마하려고 하지만, 댓글창의 불길을 꺼지지 않는다.
실제로 한국의 치안은 좋은 편이고 경찰의 청렴도도 꽤 높은 편인데.
물론 그렇다고 경찰에 몸을 맡길 생각은 없다.
세계와 비교해 좋은 축일 뿐 여전히 믿을 수 없다.
“아무튼 이렇게 좋은 이유는 세금 덕이래요. 세금으로 전기를 만들고 세계 최고의 가로등 시스템을 갖췄고, 세금으로 최고의 도로 포장률을 기록해냈고, cctv 밀집도도 가장 많아 세금으로 최고의 치안을, 세금으로 최고의 의료보험제도를 유지하고 있대요. 우리는 세금을 내고 그만큼의 혜택을 받고 있대요.
추가로 남자는 2년간의 시간을 세금으로 내죠. 군대. 군대 가잖아요. 이것도 한국에서 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세금이에요. 듣기로는 교도소 밥보다 군대밥이 더 끔찍하대요. 교도소는 계급이 없지만 군대는 계급이 있대요. 구타는 금지여도 폐쇄된 환경 속에서 온갖 가혹행위와 괴롭힘, 가스라이팅을 견뎌야 한대요. 군대는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세금이래요. 시급 200원에 2년 간 강제노역이라는 세금을 지불한 우리는 한국의 주인이고, 한국의 공공시스템을 당당히 누리는 거래요.”
군대 얘기가 나오면...
숙연해진다.
인권단체는 불체자의 인권 말고 군대에서 똥을 먹으며 시급 200원에 강제노역을 당하는 젊은이의 인권을 보호해줬으면 좋겠는데.
“미래 그룹은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한국에서 일하는 걸 반대하지 않아요. 정당하게 허가받고 왔잖아요. 다만 불체자 분들이 몰래 머무르는 건 반대해요. 그분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병원에도 갈 수 없고, 주거지를 구하는데도 브로커에게 거액을 뜯기고, 범죄를 당해도 하소연할 수 없는 위험한 삶을 사는 게 안타까워요. 미래그룹이 하는 건 불체자 분들이 정당히 비자를 받고, 세금을 내면서 일하도록 그분들의 위치를 오픈하는 겁니다. 세금을 내고 일하시고, 한국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선 군대 2년도 다녀오셔서 기존 한국인과 똑같이 세금을 내고 살길 바라는 거예요.”
외국인 노동자에게 물어보자.
2년간 한국 군대를 가야 한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면 갈래?
과연 몇 명이나 군대를 선택할까?
왜 한국의 남자는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죄로 2년간 강제노역을 해야 하지?
인생에서 가장 귀하고 활기 넘치고 즐거운 20대 초반을.
왜 외국인이 귀화할 때 군대2년의 세금을 내지 않고 귀화하지?
한국의 군대를 다녀와야만 한국인이 될 수 있다.
한국 여자와 결혼해 시민권을 얻는 외국 남자도 군대를 다녀와야만 시민권을 줘야 한다.
...... 이건 사심이 들어간 정책이지만 밀어붙일래.
내 돈으로 하는 거잖아.
“미래그룹은 아무런 이득이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그냥 막 퍼주는 겁니다. 그러고도 한계가 있습니다. 강제력이 없죠. 저희는 돈을 써서 불법체류자를 찾아낼 뿐입니다. 정치적으로 당장은 힘드시겠지만 도와주세요. 공권력은 찾아낸 불법체류자를 눈감지 말고 적법하게 대우해 주세요.
그렇게 되면 한국은 건강해져요.
지방엔 일할 사람이 필요하니 지방에서 일하는 임금이 올라요. 경제원칙에 따라 대도시의 의료, 공공, 대중교통, 연애 등의 장점을 포기하고 공장, 건설업계, 농어촌에서 힘든 일을 택하는 메리트가 생길 때까지 임금이 오르게 되요.
그럼 대도시에 밀집된 인구가 지방으로 흩어져서 지방이 발전하게 되요. 지방의 인구가 늘며 병원 등 공공 서비스가 강화되고, 교통망도 더 좋아져요. 대도시의 삶도 쾌적해지고, 교통난도 해소되고, 집값도 안정되요.
또한 과다한 공급경쟁이 줄면서 대도시에서 착취당하는 젊은이가 줄어들어요.
공급과다인 산업디자인 분야의 공급이 줄면서 지금처럼 ‘너 아니어도 많아.’ 식으로 15시간씩 무임금 야근을 시킬 수 없게 되요.
시골의 어르신들은 일하는 임금이 공급수요의 법칙에 맞게 되기까지 기다려주세요. 일시적으론 힘들지라도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거예요. 지방 상권이 살게 되면 한국 전역이 수도권만큼 발전하게 될 거예요.
저희는 얻는 것 하나 없이 나라를 건강하게 만들려 합니다. 도와주세요. 인권단체는 한국의 2030의 인권을 생각해주시고, 불체자가 겪는 불합리한 고통을 생각해주세요. 나라를 정당하게 만들어 주세요.”
준비된 연설문이 끝났다.
예하가 꾸벅 인사를 했다.
“후우. 힘드네요. 되게 무거운 얘기였네요. 후우.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냥... 예쁜 것만 보고 싶은데. 그냥 눈감고 싶은데. 그래도 깊은 뜻이 있겠죠. 모르겠어요. 그냥...... 좀 쉴게요. 지금까지 비제이 제시였습니다.”
방송화면이 바뀌었다.
새끼고양이 화면이네.
새끼고양이는 언제나 옳지.
협약을 맺은 애묘센터의 고양이들이 노는 장면이 화면에 나가도 채팅창엔 불이 붙어 활활 타올랐다.
예하는 비틀거리며 다가와 허리를 꽉 안았다.
“고생했어.”
“후아. 괜히 한다고 했어.”
“잘했어. 아주 멋졌어.”
안고 있는 예하의 몸이 살짝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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