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핀테크
유난히 따뜻한 2019년 겨울.
주가는 바닥을 찌르고 있고, 코인도 바닥을 찌르고 있다.
이제 주식 포지션도 전화로 이야기 할 수 없다.
권순진을 만나서 포지션에 대해 말해야 한다.
1년 사이 많이 후퇴한 권순진의 이마를 보며 말했다.
“숏 포지션 정리하고 상승배팅해주세요. 레버리지 최대.”
“음. 이번에도 최대한 분산?”
“네. 필리핀이나 태국처럼 추락하는 나라는 넣지 마시고, 베트남처럼 오르고 있는 주식 위주로 넣어주세요. 아, 중국은 아예 손대지 말죠.”
“중국? 알았어. 포지션 정리가 쉽도록 전 세계 모든 시장에 최대한 분산해서 상승배팅. 맞지?”
“네. 얼마나 걸릴까요?”
“한 달이면 될 거야.”
기관과 개인은 운용하는 자금의 단위가 다르다.
최대한 소문 안 나게 야금야금 사거나 팔려면 수십일 단위로 거래 할 때가 많다.
“비밀 유지 잘 해주시고요.”
“그래.”
올해는 1년 내내 상승 할 테니 연초에 넣고 나면 손 댈 필요가 없다.
작은 단타 같은 건 할 필요가...
아는 게 있구나.
“에첼비도 보다가 예전에 우리 진입가격까지 내려오면 넣어주세요. 이건 단타.”
“아. 이해했어. 실험은 성공하려나?”
“몰라요. 한번 튀면 빼요.”
“그래. 최대한 분산해서 쉽게 뺄 수 있게......”
“운용자금이 얼마나 있죠?”
“52조까지 늘었어. 레버리지 네 배 치면 200조.”
ETF 두 배나 세 배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고, 그 주식을 담보로 추가대출을 받아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그래도 네 배가 한계인가.
“너무 적네요. 더 빨리 못 끌어오나.”
“200조면 많지. 그 돈 분산하고 운용하려면... 어휴. 우리 전속 프로그래머만 서른명이다.”
200조원으로 수천개 종목을 사고 팔려면 직원이 누르는 걸로는 안 된다.
프로그래머가 지시받은 대로 프로그램을 짜서 초단위로 틱거래를 하는 등 관리해야한다.
“블랙록이 5000조잖아요. 그 쯤 모아야죠.”
“개들은 너무 많아서 뺄 수 없잖아. 그렇게 돈 많이 모으려면 인덱스 펀드를 열어야 해.”
“인덱스...... 목차였던가.”
쓸데없이 두꺼운 대학교 책 첫 페이지 목차가 인덱스라고 적혀 있던 거 같은데.
“시장지수추종펀드야. 그러니까 어떤 종목이 오를지 모르겠다, 펀드매니저도 못 믿겠다, 그냥 시장의 모든 주식을 사서 갖고 싶다. 이러면 망할 일은 없겠지, 이런 마음으로 투자하는 펀드야. 인덱스는 세상 모든 주식을 시총 비율에 따라 구매해. 시장지수가 2% 오르면 내 펀드도 2% 오르고, 시장지수가 10% 내리면 내 펀드도 10% 내려.”
아.
혼자 공부할 때 본 적 있는 것 같다.
“왜 그런 짓을 한 대요? 펀드매니저가 전문가라서 맡기는 건데 펀드매니저를 못 믿으면 왜 펀드에 맡겨요?”
“수수료가 싸거든. 엄청 싸. 펀드에서는 들어오는 자금을 그냥 시총 비율에 맡게 배분할 뿐이니 관리비용도 거의 없지. 나가는 자금도 시총비율에 맡게 프로그램이 매도하고. 펀드는 할 일 없고, 사람들은 그냥 넣어두면 시장지수에 따라 이익을 보는 거지. 어쨌든 시장지수는 꾸준히 우상향하니까.”
“그럴 거면 직접 분산투자를 하면.”
“수수료가 싸다고. 직접 하면 귀찮고, 모든 종목을 관리하기도 힘들지.”
“아하.”
“그리고 워렌버핏부터가 인덱스 신봉자야. 자기가 죽으면 아내가 받을 유산을 월가의 머저리 펀드매니저에게 맡기느니 인덱스에 맡기겠다고 공공연히 떠들었어. 발끈한 펀드매니저들이 싸움을 걸어왔고, 둘이 10년간 수익률로 내기를 하기로 했어. 인덱스 수익률과 헤지펀드 상위 업체의 수익률로 비교하자는 거야. 얼마 전에 결과가 낫는데 누가 이겼을까?”
“문맥상 인덱스가 이겼겠네요.”
“어. 시장지수는 연평균 7퍼 수익을 올렸고, 직접 고민하고 온갖 기교를 부린 헤지펀드는 평균 2,2퍼 수익을 올렸어. 물론 여기엔 투자수수료가 포함되긴 하지만 그래도 차이가 크지.”
“우와. 그건 존나 웃기네요.”
월가의 펀드 매니저들.
수천억 수조원을 굴리는 지구상 최고의 금융엘리트들의 수익률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 건 웃긴 일이다.
아니 당연한 일인가.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으니.
전문가는 그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지만, 엄청 특출난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은 큰 차이가 없다.
금융을 공부하고 투자기법을 공부했어도 사람은 사람이다.
재벌이 특별하지 않고, 대통령이 특별하지 않듯, 월가 펀드매니저도 그 계통 공부를 했을 뿐인 사람이다.
전문가를 믿으면 안 된다.
“좀 오래된 건데, 과거 통계를 봐도 헤지펀드 상위 200개 중 시장 지수를 이긴 펀드는 8개뿐이야. 지금도 비슷할 걸. 우리야 압도적 이익을 올렸지만, 1년뿐이니 불안해서 넣기 싫을 거야. 그래서 인덱스에 자금이 몰리는 거지. 세계 2위 자산운용사 뱅가드는 인덱스에만 투자하고 있고, 1위인 블랙록은 인덱스로 모은 주식을 파생시켜 ETF로 돈을 모으고 있어. 우리도 그래야 해. 운용자금이 1000조씩 늘어나면 전부 사고파는 게 불가능해지니까 어쩔 수 없지.”
“음. 그래도 내릴게 확실히 보이는 데 내리지 않으면 짜증나는데.”
“일단 인덱스를 만들면 미래 메신저를 통해 가입자가 늘어날 거야. 돈을 넣은 사람은 관심을 갖고 볼 수 밖에 없을 테고, 같은 회사의 헤지펀드 수익률에 눈이 돌아가겠지.”
지난해 미래펀드는 477%의 수익을 올렸다.
극초반 백제그룹을 해체하고 얻은 수익을 제하면 68%의 수익을 올렸다.
고작 68%라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시장지수가 꾸준히 하락한 걸 생각하면 엄청난 이익이다.
“일단 데려오고 헤지펀드로 돌린다고요?”
“어. 관심과 사랑이 우선이니까.”
“네. 음...... 대신 인덱스에 하락이 확실할 경우 숏배팅 가능하게 하는 조항을 넣죠.”
“그러면 인덱스가 아닌걸.”
“그래도 잃지 않으면 칭송받겠죠. 사이드 규칙이 발동해서 잃으면 본사에서 메워주는 걸로 하죠. 이건 정말 확실히 보일 때만 발동하는 걸로 하죠.”
“그래. 알았다. 인덱스 계좌도 추가할게.”
“네.”
연 단위로 보자면 올 한해는 내내 상승한다.
넣어두고 잊고 살면 되겠지.
코인도 자동 매수 프로그램이 돌면서 각 거래소에서 꾸준히 매입하고 있고.
모든게 잘 풀리고 있다.
1 년 치 금융설계 끝.
“끄응차!”
권순진을 보내고 예하와 밥을 먹었다.
기업의 소송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페이스북의 소송은 조금 성급했던 면이 있다.
아니 페이스북은 처음부터 소송으로 가닥을 잡고 그룹의 전 역량을 거기에 던졌으니 가장 빠르게 4000여 가지 소송조항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반격에 대비하지 못했다.
미래메신저가 출시되자마자 모든 기업이 미래 메신저를 분석했다.
그 위협을 이해하고, 장점을 찾아 분석하고, 약점을 파고 들었다.
페이스북은 전력을 다해 소송거리를 찾았으며, 그들이 소송을 넣었을 때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양한 법리적 해석과 판례등을 수집하고 있을 때 미래메신저가 반격했다.
함정에 빠진 페이스북.
멍청하게 혼자 돌진한 페이스북은 스냅챗과 마소의 반격에 얻어터지고, 주가가 반토막났다.
스냅챗이 미래메신저 옆에 붙은 순간, 글로벌 기업들의 소송 준비는 중지되었다.
아니 소송준비는 진행 중이겠지만, 좀 더 자세하고 확고한 증거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 사이 미래메신저는 도약을 이어갔다.
“난의향기님 반가워요. 네네. 은하행성님 안녕하세요. 네. 제 남친이요? 일하고 있을 걸요? 잘 모르겠어요. 힝.”
세계 제1의 부자는 여기서 예하 구경하며 놀고 있다.
“네. 드디어! 편리함의 극한! 미래 핀테크가 나왔습니다. 사용법을 알려드릴게요. 메신저 속 은행에 가요. 여기 결제 버튼이 있죠? 이걸 누르면 카메라 화면이 나와요. 여기에 상점 계산대에 뜬 큐알코드를 찍어요. 띠딕. 이러면 내 화면에 가격이 뜨죠? 미래블록 1000개를 지불합니까? 가격을 확인하고 예스를 누르면 따닥. 결제가 되요. 네 신기하죠? 아니라고요?”
-지금까지 결제랑 다를 게 뭐냐?
-카드를 건네주고 찍 긋는 게 훨씬 편한데?
-난 현금 주고 할인받는 게 더 좋은데.
“네. 다양한 말씀이 있네요. 그럼 차이점을 말씀드릴게요. 일단 카드. 카드사가 상인분한테 수수료를 10퍼 가량 떼 가요. 해외 결제의 경우 20% 30% 수수료도 있대요. 그런데 미래는 수수료 1%만 떼요. 10분의 1이예요. 엄청나죠? 굉장하죠?
여러분 본인에겐 가격이 똑같겠죠. 그런데 상인 입장에선 10배 이득이예요. 굉장하죠? 대단하죠? 그래서 상인분들이 이익의 절반을 양보하기로 했어요. 저희와 파티를 맺은 1600개 기업에선 미래블록을 통한 오프라인 결제를 할 경우 5% 할인을 하기로 했어요. 일단 6개월간인데, 그 후에도 타사의 수수료가 그대로라면 할인행사를 연장하기로 했어요. 즉, 하는 것 없이 10% 수수료를 떼던 카드사의 수익이 사라지고 그만큼 판매자와 구매자가 좀 더 이득을 보는 거예요. 좋죠?”
-우와아아아ㅋㅋㅋㅋ
-미쳤다 미래 다해먹겠다는 거네
-카드사 주가 지하실에 있지 않았냐?
-지옥인줄 알았는데 그 아래 9층 지옥이 있더라ㅋㅋㅋㅋㅋㅋ
법안 발전은 언제나 기술 발전보다 느리다.
암호화폐가 사기니 스캠이니 하며 욕을 먹지만, 욕 먹는 와중에 그토록 거대한 버블을 일으킨데는 이유가 있다.
과거의 카드사는 전산문제나 해외결제 등 난관이 많았기에 비싼 수수료를 걷어야 유지되었다.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수수료를 내려야 했는데 은근히 모르는 척 하며 비싼 수수료를 받아 챙겼다.
암호화폐의 가격이 폭등한 이유에는 기술발전에도 여전히 어처구니없이 비싼 금융수수료도 한 몫 했다.
카드사가 양아치 짓을 유지하는 방법은 포인트에 있다.
카드 결제대금 총액의 10%를 받아 그걸로 회사를 운영한다.
이것만 생각하면 이익이 너무 많다.
그래서 카드포인트를 만든다.
도지코인이나, 중국집 탕수육쿠폰같은 가상화폐다.
그들은 결제 대금의 10%를 받지만, 포인트로 카드사 이익의 50~80%를 되돌려 준다고 회계장부를 만든다.
실제로 포인트 중 일부를 자전거나 안마기 등으로 반납한다.
포인트를 지출로 빼면 서류상의 영업이익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이를 통해 거액의 수수료를 유지하고, 휘발되는 포인트를 감춰 탈세한다.
양아치들.
“저희는 더 많은 파티를 원해요. 판매자분들은 미래 블록 결제용 큐알코드를 신청하세요. 5% 할인 이벤트에 동참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5% 할인 기업은 따로 공지되어 각자의 양심적 마케팅 효과를 얻는 거예요. 일단 신청하고 설치하세요. 결제수단이 다양할수록 구매자가 많아지겠죠?”
온라인 속 암호화폐가 오프라인으로 스며든다.
현금을 은행에 맡기고 받은 미래블록으로 결제하는 것이기에 반쯤 선불카드 결제지만, 이것도 큰 진보다.
점진적으로 나아가야한다.
여기까지 발표했을 때 한국의 모든 카드사 주가는 하한가를 맞았고, 해외 시장도 전부 추락했다.
장이 열리지 않은 곳은 술렁대고 있지만, 추락은 불 보듯 뻔하다.
이제 와서 수수료 인하를 외쳐봤자 깨진 이미지는 살리기 힘들겠지.
“다음 소식입니다. 얼마 전 출시한 게임에 대해 엄청난 음해가 떠돌고 있어서 규명해드릴게요. 설명을 위해 미래 게임즈의 유성주 사장님을 모셨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일주일 전에 국내 중형 게임사에서 알피지 게임을 출시했다.
개발기간 4년짜리 기대작의 출시에 사람들이 몰렸고, 구글폰과 애플폰 전부 서버가 다운되었다.
그런데 미래 메신저를 통해 접속한 사람들은 초반 약간의 렉만 있었을 뿐 누구도 튕기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이 사태로 인해, 서버가 다운된 유저들이 환불러쉬를 했고, 온갖 음모론이 떠돌았다.
이건 적극 해명해야 한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중앙서버가 없습니다. 게임사의 서버도 필요 없죠.”
유성주는 미리 준비된 그래프와 표까지 잔뜩 펼치며 설명했다.
“구글이나 애플을 통할 경우 그들의 서버를 돈 주고 빌려야 합니다. 게임사 자체 서버를 만들어도 되죠. 그런데 이게 돈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많이 빌릴 수 없죠. 사용자가 많은 걸 확인하고 돈을 더 내서 서버할당을 늘려야 하죠. 우리는? 다르죠. 참여자가 많을수록 제공받는 서버가 늘어납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이해하시나요?”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른다.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은 처음부터 깨달았다.
미래 메신저의 최대 장점이자, 그들이 사생결단해야 하는 이유.
“미래 메신저는 첫날부터 반응이 느리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현재도 똑같이 느리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보시죠. 가입자 3000만 명일 때 제공받은 개인 서버가 2500만개였습니다. 현재 가입자 14억 명인데 제공받은 개인 서버는 13억 200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개인 서버가 늘어나며 이 모든 서버가 인터넷 트래픽을 분담합니다. 대가로 미래블록을 받고요. 즉, 저희는 지구촌 70억 인구가 모두 접속해도 현재속도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게임의 반응이 느리다고요? 맞아요. 하지만 여기서 더 빨라지지도 않고, 여기서 더 느려지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접속자가 많아도 저희는 현재 속도를 유지합니다. 이게 기술적으로......”
블록체인 데이터 분산처리.
지구상의 모든 트래픽을 빨아들여도 속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장점.
이게 애플과 구글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유성주의 발표 일주일 후, 구글이 소송을 걸었고, 애플은 미래 메신저를 차단했다.
- 작가의말
미래에 대해 예측하는 글로써 하나 말해보자면 미래엔 카드사의 수수료가 줄어들 것입니다~ 와아아아 짝짝짝짝
기술적 가능성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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