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진실의 문2
탑을 구경하려면 공적치를 올려야 한다.
캐낸 돌은 잔뜩 있으니 옮기기만 하면 된다.
돌을 캐던 자리로 돌아가니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돌이 전부 사라졌다.
어떤 도둑놈들인지.
“아놔 현실 반영 진짜.”
주위 벽돌공들이 시선을 피하며 지나간다.
깡. 깡. 깡.
돌을 캐서 옮긴다.
깡. 깡. 깡.
돌을 캐서 옮긴다.
퀘스트 진행 시간이 끝났다.
8시간 동안 돌만 캐서 날랐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더 빨리 캐고, 더 빨리 옮기고, 최적의 동선도 찾아냈다.
저 바위까지 직선으로 걷고, 나무를 끼고 돌면 최소한의 동선으로 옮기...... 이걸 왜 외우는 데.
공적치는 돈으로 살 수 없나?
제길.
그래도 잡생각은 들지 않아서 좋다.
단순반복작업이 가진 몇 안 되는 장점.
“오빠, 운동할 시간이야.”
“예하야, 나 지금 운동중이야. 게임 속에서.”
안락한 무중력 쇼파에 70도 기울어져 누운 채 두 손의 컨트롤러로 버튼만 누르고 있지만, 화면 안에선 치열하게 벽돌공의 일을 하고 있단다.
하루 일당 30만원인 현실 벽돌공을 게임 속에서 하고 있단다.
“힝... 계속 쉬면 몸 망가지는데.”
“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우지 못하면 마음이 망가질 것 같아.”
“...... 우리 오빠가 이상해졌어요.”
“너도 어서 가서 세상을 구할 악상을 오선지로 옮겨.”
“푸흡. 네.”
둘만 있다 보니 허세놀이에 심취하게 되었다.
돌을 캐서 옮기고, 돌을 캐서 옮기고.
저 멀리 전장에서 간간히 쏟아지는 함성이 피를 끓게 하지만, 저긴 허용구역이 아니다.
퀘스트를 받을 때 임무에 따른 이동제한을 철저하게 걸어놨기 때문에 갈 수가 없다.
피가 끓는다.
<띠링. 정저우 위령비 수호전 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당신의 공적치입니다.
화강석 수집 및 운반 : 3744 개
시간 대비 가장 많은 화강석을 채취했습니다.
당신의 공적치는 37+100 입니다.
1 미래블록을 보상으로 얻었습니다.
일 잘했다고 성과급도 주네.
티끌만한 돈이지만, 뿌듯하다.
드디어 공적치가 +가 되었다.
<정저우 위령비 수호전. 성과에 따른 미래블록 보상>
곧장 반복퀘스트를 다시 받았다.
몸이 이동하자 건설중인 정저우 위령비가 코 앞에 나타났다.
“응?”
임무를 확인하자 작은 설계도가 들어있다.
자재창고에서 적혀있는 자재를 챙겨서 탑 217층까지 올라가 그곳의 방 하나를 건설하는 임무.
“아놔... 나는 싸우고 싶다고.”
핀빙빙 누나 일루 와봐.
나한테 왜 이러는 지 얘기 좀 들어봐야겠어.
홍콩민주화운동이 현실에서 막힌 후 사람들이 서드 어스 안에서 투쟁을 시작했다.
공산당에선 처음엔 무시했다.
고작 게임인데 반응하는 게 우습기도 했을 테고, 당시엔 미래그룹 자체를 부정하고 금지시키던 중국이기에 그들이 접속해 싸울 수도 없었다.
그렇게 방치된 사이, 핀빙빙의 사람들은 중국 땅을 점령하고 곳곳에 기념물을 세웠다.
싼샤댐 붕괴 당시 마을 사람 전원 죽었지만, 공산당이 고의로 집계에서 뺀 곳을 찾아 위령비를 세웠고, 공산당이 빼앗은 공장터, 강간한 자리 등등 제보를 모아 의혹이 있는 장소마다 위령비를 세웠다.
공산당의 죄악을 세상에 박제하는 것이다.
익명 커뮤니티에 떠도는 소문이 게임속이지만, 현실같은 세상으로 나온 곳이다.
피해자가 하도 많으니 한 다리만 건너면 자신이 알던 누군가가 피해를 입었다.
갑자기 소식 없이 사라졌으니 어디 먼 곳 가서 사나보다 하며 애써 눈 감던 이가 드디어 눈을 뜬다.
자신도 아무 죄 없이 저렇게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민주화운동 참여자가 늘어났다.
중국이 미래블록을 허가한 이후 이중적 정책을 펼쳐왔다.
이용해도 좋다.
단, 공산당에 대한 비하는 금지한다.
익명 사용이 기본이기에 중국 내 반동분자의 신원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잡아낼 순 있다.
게임 속 대화를 통해 신원을 밝혀내고 현실에서 잡아낸다.
현상금을 걸어 몰래 민주화운동을 하는 이를 내부신고로 잡아낸다.
군대를 조직해 게임 내 민주화세력의 활동을 분쇄한다.
중국은 엄청난 돈을 게임에 쏟아 부어 뽑기를 하고 병사를 양성해 실제 참모부가 병력을 지휘해 전쟁을 했다.
싼샤댐 붕괴 후 1년 동안이나.
이런 현상은 중국에서만 발생하지 않았다.
미얀마에서도 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가 게임속에서 격렬한 전쟁으로 펼쳐졌고, 태국, 인니, 남미 전역에서 비슷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아이티의 게이머들이 모여 프랑스 파리를 기습 점령하고 역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으며, 인도는 현재 영국으로 진격중이다.
덕분에 게임 매출이 미쳤다.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효과가 좋다.
탈중앙화.
부패한 정권에 대한 안전한 저항을 돕기 위해 아바타의 개인정보와 모든 결제정보는 철저하게 보호한다.
게임 내에서 명백한 사기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나조차 검색할 수 없으며 블록체인의 특성상 해킹도 불가능하다.
서드 어스가 커질수록 점령당하고 진실이 퍼져나가는 효과가 좋고, 이를 막으려는 기존 세력의 반격도 크다.
내가 지른 돈 따위 먼지처럼 보일 정도로 전신 SSS급으로 도배한 전사가 즐비하다.
‘음, 역시 풀 SSS급 장비에 9강화를 해야 지존 같으려나.’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현실반영 게임은 탑 217층까지 걸어가게 만들고 있다.
SS급 장비 가지고 내가 도대체 뭐하는 거야?
제길.
계단을 오르는 탑 내부에도 벽화와 양각 조각이 즐비하다.
외부에 새긴 글귀와 똑같이 내부에도 새겨 탑을 걷는 이들이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최신 뉴스까지 적혀 있다.
-2021년 10월 1일~ 산시성 폭우
지금이 11월 1일 이니까 한 달 전 발생한 사건이다.
-사라진 가옥 1만 9000여 채. 이재민 40만 명.
지난해는 장강 일대에 홍수가 나더니, 올해 여름엔 황하가, 가을엔 산서성이 지독한 홍수피해를 입었다.
중국에 마가 낀 것 같다.
-당국 발표 사망자 10여명. 하지만 우리가 집계한 실종자 7800명. 진실은?
아직 조사 중인 사건이기에 이런 글귀가 남아있다.
‘이런 일이 있었네.’
내 일이 우선이기에... 먹고 살기 바쁘기에... 얼굴도 모를 남의 일이기에... 그렇게 잊혀져갈 사건.
-실종자 제보를 받습니다. 사망자 제보를 받습니다. 국가의 보상을 유도하겠습니다.
늘 그랬듯 덮고 쉬쉬하며 넘어가려던 중국공산당.
게임이 만든 가상의 공간에 진실의 문이 열렸다.
마지막 글귀를 읽고 나니 옥상이다.
여기까지 건설되어 있다.
탁 트인 공중에 서니 정주시가 전부 보인다.
피라미드 건설하듯 돌과 진흙, 자재들을 채굴하는 노동자들.
도시 주변을 방어하는 병력들.
요새를 건설하는 일꾼들.
도시를 함락시켜 탑을 무너뜨리려는 빨갱이들.
수많은 사람이 피 흘리며 장엄한 전투를 하고 있다.
죽은 이들은 부활하자마자 재차 달려들어 싸운다.
공산당에서 국가의 돈으로 불러온 병력이 끊임없이 밀고 온다.
“어이~%&^$@#$%.”
돌아보니 기술자 아바타에 말풍선이 떠 있다.
-일 어서 놀아 그만.
언젠가 통번역 AI가 완벽해지면 좀 더 재밌어지겠지.
설계도를 꺼내니 내가 갈 곳이 표시된다.
까마득하니 높은 벽면에 매달리니 현실 괄약근이 간질간질하다.
없던 고소공포증이 생길 정도.
안전줄 하나에 매달려 벽돌을 하나씩 설치한다.
게임답게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것 마냥 아찔하다.
게임이라는 것은 몰입하고 나면 현실보다 훨씬 신나고 짜릿하다.
그토록 몰입하기에 고작 게임을 하면서 상대 부모를 찾고 부모 안부를 묻는 거지.
가방에 가져온 자재를 하나씩 꺼내 벽돌을 쌓으니 조각사 직업을 가진 이들이 옆에 매달려 글귀를 새긴다.
-춘제 대공세 베이징을...
다음 공세를 여기에 광고하는 구나.
게임이다 보니 미리 알려야 퀘스트 발행도 쉬울 테고.
“어? 어? $#%”
“ㅃ!#$%!!!”
갑자기 옥상이 부산해졌다.
밧줄을 당겨 옥상 평평한 곳으로 갔다.
사람들이 다들 북쪽을 보고 있다.
북쪽에서 적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다.
방어선이 뚫렸다.
“##$%!”
“#$%!”
영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가 소리친다.
자동 번역되는 말풍선엔 방어 라는 게 주를 이룬다.
사람들이 뛰어 내려가기에 따라 내려갔다.
<띠링. 긴급 퀘스트. 정저우 위령비를 사수하라. 가 도착했습니다. 받아들일습니까?>
민주화세력이 급하게 발행한 퀘스트.
어찌나 급했던지 오타까지 함께 날아왔다.
적을 죽이면 두 배의 공적치를 주겠다고 한다.
“후후훗. 숨겨뒀던 힘을 개방할 시간이군.”
“#!$%$”
뒤에서 어떤 새끼가 밀었다.
돌아보니 말풍선에 ‘빨리 가.’라고 적혀 있다.
감히!
1층에 도착하니 탑 근처까지 적이 몰려와 있다.
돌을 캐던 일꾼들도 무기를 들고 싸우고 있다.
아군은 파란색.
적은 빨간색.
직관적이고 좋네.
“후후후. 다 죽여버리겠다.”
무기를 들었다.
무기 뽑기 중 운 좋게 뜬 SSS급 무기.
종류는 활이다.
난 궁병이다.
쇽.
적을 노리고 쏘니 적의 발 앞에 떨어진다.
겨냥한 곳을 향해 날다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포물선을 그린다.
“이것도 현실 반영인가. 쓸데없이 디테일해.”
다시 시위를 겨냥해 높이 들어 쐈다.
겨냥한 놈보다 키만큼 높이 날아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공적치 11을 얻습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공적치 8을 얻습니다.
“노린대로군.”
겨낭하지 않고 대충 높게 올려서 난사했다.
공적치가 마구 올라갔다.
두 발에 한발 꼴로 적이 누웠다.
가끔 아군을 맞추면 1/10 대미지만 주고 공적치가 깎여나갔다.
“궁수 스킬을 안 산 게 아쉽네.”
스킬 뽑기도 할 걸 그랬나.
“와아아!”
“킬댐올!”
“짜요!”
함성소리가 가까워진다.
전투 군단이 뚫린 상황에서 후방의 비전투 요원의 전투력은 한계가 있다.
죽었던 이가 10분의 대기시간이 끝나자마자 달려들지만, 그건 적도 마찬가지.
점점 밀려나고 줄어들면서 위령탑 입구까지 밀렸다.
칼이나 창 같은 무기가 나왔으면 무쌍 찍었을 텐데.
“와아아#$%#”
“죽#$%#!$여”
어느새 주변에 나만 남았다.
칼과 창이 난무한다.
틱틱틱.
몸을 찌른 무기들이 1 대미지씩 준다.
방어력이 높으니 큰 피해를 입진 않는다.
“후후훗.”
얻어맞으면서 코앞에서 활을 당겨 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공적치 8을 얻습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공적치 7을 얻습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공적치 13을 얻습니다.
가까이서 관통한 화살 한 방이 두세 명씩 잡는다.
개이득.
게임이다 보니 피할 생각도 없다.
죽을 때까지 쏘고 쏘고 쏠 뿐.
컨트롤러가 익숙해지자 화살 쏘는 속도가 빨라졌다.
점점 많은 적을 죽이고.
틱.
“응?”
코앞에서 쏜 화살이 갑옷에 맞고 튕겨나갔다.
촤악!
적의 칼질 한 방에 체력 절반이 깎여나갔다.
슝. 틱.
재차 쏜 화살이 튕겨나가고.
전신갑옷을 입은 적이 다시 칼질을.
“이런 씨발! 현질좃망겜!”
유언을 남겼다.
슈우웅.
몸이 뒤로 날았다.
같은 편이 날 잡아서 뒤로 던진 것.
어느 새 부활한 고급 병력이 당도했다.
챙챙챙챙.
나만큼 고급 갑옷을 입은, 나보다 좋은 갑옷과 무기를 든 이들이 적과 팽팽하게 싸웠다.
묘하게 굴욕적이다.
“제길. 내가 시간이 없지 돈이 없나.”
+9강 가야겠어.
SSS급 99개 뽑아서 강화하다보면 9강 하나쯤은 나오겠지.
어차피 그 돈 다시 나한테 들어오잖아. 개이득이네.
지름신이 강림했다.
“우오오오.”
전선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싸우던 이들이 뒤를 힐끗힐끗 본다.
활 시위를 걸며 뒤를 봤다.
정체를 숨기기 위한 기본 아바타가 즐비한 전장에 실사 아바타가 있다.
묘하게 성스럽고, 본래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여인. 핀빙빙이다.
“여러분. 눈을 뜨세요. 진실을 보세요. 중국을 해치는 건 중국공산당입니다.”
핀빙빙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화르륵. 틱. 틱.
그녀를 향해 마법과 화살이 날아들었다.
주변에 있던 호위병력이 방패마법을 켜서 막았다.
“공산당이 나쁘다는 걸 아시잖아요. 제발 무기를 내려요. 우린 중국인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일어섰어요. 함께 해요.”
핀빙빙이 눈물을 흘리며 거듭 말했다.
눈물.
메타버스 카메라 4대 이상을 설치해 실시간으로 사소한 제스처까지 전송하는 부가서비스.
핀빙빙은 이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진실을 보지 않아.’
화르륵. 틱. 픽. 쿵. 쿵.
마법과 화살. 투창에 방패마법이 깨졌다.
전열의 전사들도 숫자에 밀려 하나 둘 쓰러졌다.
“여러분. 제발. 눈을 떠요.”
내가 죽기 직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호소하던 핀빙빙이 죽었다.
“오빠?”
“어... 그냥 좀 꿀꿀하네.”
완성 직전이었던 정저우 위령비가 무너졌다.
- 작가의말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랑해요
보름 전 시작된 산서성 홍수는 사망자를 알 수 없네요. 통제인 건지 집계 전이라 그런건지... 석탄값만 오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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