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 引繼鐵線
4억 개의 시드.
세컨드 어스 창동 아레나에 들어간 사람들이 서로의 동작 데이터를 교환해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뿌리고 있었다.
데이터분석 전문가들은 눈이 벌개진 채 데이터 이동 추이를 관찰하고 있었다.
4억 개의 시드를 눈으로 관찰?
불가능한 미션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로만 한정한다면 가능하다.
국가체계가 무너진 나라다보니 그곳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시드는 수천 개 뿐이고, 각자 분배해서 지켜본다면 가능하다.
-... 길이 보일 거에요. 끝.
방송 안에서 윤회장이 멘트를 하고, 방송이 꺼졌다.
메타버스 창동 아레나에서 윤회장이 로그아웃을 했다.
세계에 뿌려지던 윤회장의 이미지 데이터가 사라졌다.
동시에 베네수엘라 지역에서 발생하던 시드데이터 천분의 1로 줄어들었다.
“잡았다!”
“확실해? 위에 올릴 수 있어?”
칼리 페르난도가 달려왔다.
“예. 이게 방송중의 카라카스 데이터 양이고, 이게 종료 직후의 데이터입니다. 윤회장의 이미지 데이터가 사라짐과 동시에 카라카스 지역에서 송출하는 데이터가 확 줄었죠.”
당연히 눈으로만 작업한 건 아니다.
국가별 지역별 데이터 발생량과 교환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래. 카라카스에 있다는 게 확실하다는 거지?”
“예. 거의 100%입니다. 베네수엘라의 통신 서버를 분석하면 위치를 100m 이내로 줄일 수 있습니다.”
칼리 페르난도는 데이터 발생량을 보다가 모니터를 봤다.
-예. 사전 약속이 없던 일입니다. 저도 자다가 부랴부랴 나왔지요. 그래도 윤회장님의 의도는 전달되었으니 행해야겠죠. 즉시 윤회장의 재산을 처분함과 동시에 기부 방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화면 안에선 채인수 사장이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현재의 시드 데이터는 99%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지역에서 발생하는 시드 데이터 양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로그아웃한 윤회장이 베네수엘라에서 접속했다는 증거.
칼리 페르난도는 전화를 눌렀다.
백악관 직통 번호.
“예. 맞습니다. 카라카스에 있습니다. 통신회사 서버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칼리는 전화를 끊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국.
한국은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미국에게 꽤나 부담스러운 상대다.
항공모함이 출동했지만 한국을 압박할 용도로 끌고 왔을 뿐 실제 공격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베네수엘라라면?
“차라리 잘 됐네.”
윤회장이 한국에 숨어있었다면 죽지는 않았을 텐데.
“다들 들어. 토끼가 굴에서 튀어나왔다. 윤회장의 친척과 친구에 대한 도청과 미행, 감시를 강화한다. 접촉이 있을 거야. 한국에 대한 적대 단계는 낮추고 되도록 자극하지 마.”
“예!”
크게 한 건 올린 요원들의 대답이 우렁차다.
[관타나모에서 출격하는 전투기들]
쿠바에서 떠오른 전투기들이 베네수엘라 영해를 훑었으며 콜롬비아에서 떠오른 미군 헬기들이 베네수엘라 국경을 정찰하면서 베네수엘라 지역에 대한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마약 카르텔 소탕을 위한 정찰이라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윤회장을 보호하고 있는 (듯한) 베네수엘라 정부에 대한 압박으로 볼 수 있다.
미국 태평양 함대가 마젤란 해협으로 향하는 등 미군 전병력이 베네수엘라를 향해 재배치 되고 있으며 동시에 베네수엘라 정부를 향해 통신 데이터 공유와 카라카스 수색 허가를 요청했다.
반미를 기치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던 베네수엘라 입장에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그리고 그들이 거부 할수록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점점 커진다.
과연 윤회장은 정말 베네수엘라에 있는 것인가.
관건은 윤회장의 위치다.
전쟁을 막기 위해선 윤회장이 직접 나와서 자신의 거취는 정하는 길밖에 없다.
한편 베네수엘라 정부는 자신들은 윤회장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고 발표해 비웃음을 사고 있다.
아놔. 이게 왜 내 잘못이야?
미국이 깡패 짓 하는 거지.
왜 피해자한테 사과하라고 하는 건데?
“오... 빠. 무서워.”
“어... 괜찮아.”
긴장감이 올라간다.
쿵쿵쿵.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예하와 함께 은쿠베의 보안실에 들어와 있다.
-확실해? 여기 없는 거 확실해?
-몇 번이나 수색하지 않았습니까? 저 혼자 삽니다.
-혼자 사는 놈이 식량을 왜 이렇게 많이 샀어? 여기서 숨기는 거 아니야?
-에이... 그냥 가끔 파티한 거죠. 왜 이러실까. 대장님 잠깐만......
위층엔 군인들이 들어와 카를로스를 압박하며 수색하고 있다.
마지막 카를로스의 말은 아마도...
“돈 받으러 온 거예요. 찌를 때마다 돈을 쥐어주니 돈 벌려고 계속 오는 거죠.”
위층의 대화를 통역해주던 도윤정이 자기 생각을 보탰다.
내 손엔 노트북이 들려있고, 코드가 입력된 상태.
미군이든 베네수엘라 군이든 어디에 잡힌다면 그 즉시 마스터코드를 입력할 생각이다.
엔터를 누르고 나면 나조차 미래블록을 내 의지로 발행할 수 없게 된다.
잡혀서 고문당하며 미래블록을 발행하게 되면 모든 게 어그러진다.
미래블록 생태계의 완성이 내가 끝내야 할 내 마지막 의무이며 회귀까지 한 개인이 해낼 수 있는 가장 큰 업적이다.
“갔군요.”
감시 카메라 없이 도청 장치만 달아 위층의 상황을 보던 은쿠베가 선언하듯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도윤정이 내 말을 통역해주자 은쿠베가 순박하게 웃었다.
“고생은 카를로스가 다 했죠. 저야 음량조절말고는 한 게 없죠.”
도청 마이크를 설치하고 숨기는 등 보안 장비 설치는 예전에 끝냈다.
베네수엘라 군인들이 철저히 수색하는데도 전혀 들키지 않는 걸 보면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평소에 잘하셨으니 위기에도 여유가 있는 거겠죠. 카를로스에게도 수고했다 전해주세요.”
“옛 썰.”
은쿠베는 유쾌하게 대답하고는 카를로스와 통신했다.
그 모습을 보며 노트북에서 손을 뗐다.
또 한 차례 위기가 지나갔다.
나흘간 다섯 번째 수색.
베네수엘라 입장에서도 황당할 것이다.
본인들은 입국을 허가한 적이 없는데 내가 카라카스에 숨어있다며 미국의 압박을 받으니 어리둥절할 테고 나한테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잡히면 안 된다.
미국이든. 베네수엘라든.
“오빠.”
“응.”
“괜찮...겠지? 카라카스를 불바다로 만들 거라던데.”
“나 하나 잡자고 천 만명을 죽이는 건 불가능해. 미군이 할 수 있다는 것과 미국 정치인이 학살을 지시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
“어. 그래야 하는데......”
“그냥 미련이 남았나보지. 절대 못해. 절대.”
이건 예하에게 하는 말이지만, 나에게 하는 위로이기도 하다.
미국이 제발 정신 차리길 바랄 뿐.
“보름 후 타격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 궁을 기습 점령하고 카라카스를 장악하되 저항이 만만찮으면 초토화 작전으로 넘어갑니다.”
군부에선 군사적 역량을 토대로 작전을 짠다.
승리는 당연한 것.
문제는 정치적 부담.
장군의 보고를 듣던 미국 대통령은 고개를 돌렸다.
“코드를 되살릴 수 없다는 게 확실합니까?”
“예. 알다시피 블록체인이라는 게 해킹이 불가능합니다. 윤회장이 코드를 지우는 순간 윤회장조차 손델 수 없습니다.”
암호화폐 전문가의 말에 바이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겠지. 그러니 비트코인이 8만 달러를 돌파한 것이지.
오픈소스로 코드가 공개되어 있는 비트코인을 해커가 해킹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발행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겠지.
“결국 우리가 윤회장을 잡아도 그가 마스터코드를 지우면 끝이네요.”
“그 순간 은행의 발행권한이 사라집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미래블록의 양이 그 시점에서 멈추게 됩니다. 윤회장조차 발행할 수 없습니다. 영원히.”
“그 영향력을 아주 약간 줄이려고 전쟁을 벌인다라.”
바이든이 깊은 신음을 내뱉었다.
개인이 세상을 뒤집고 있다.
전 세계 금융시스템이 한사람의 손에 뒤집어지고 있다.
달러가 기축화폐의 지위를 잃고 있으며, 이미 미래블록의 힘이 달러보다 강해졌다.
양적완화.
트럼프가 4년간 뿌린 돈보다 많은 돈을 바이든은 1년 만에 뿌렸다.
앞으로 더 뿌릴 생각이다.
달러를 발행할수록 이득.
정치 초보인 트럼프는 엄청난 걸 깨달은 것처럼 말하지만, 금융 최고 전문가들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달러를 찍을수록 세계의 부가 미국으로 집중되며 세계에 뿌린 달러를 회수하는 순간 더 큰 이득을 얻는다.
세계가 가난해지는 만큼 미국이 부유해지고, 이를 통해 달러 유토피아를 이룩한다.
미국인 누구도 일하지 않는 완벽한 복지국가.
달러를 찍어 국민에게 나눠줘서 미국인들이 생활하고, 한 번 씩 달러를 회수해 세계에서 성장한 기업들을 미국 손으로 가져온다.
지구인의 노동력 위에 놀고 먹는 귀족 미국.
소련이 무너지고 플라자합의로 독일 일본을 무너뜨린 이후 세계 1강의 지위를 얻은 미국은 30년간 그렇게 성장했다.
미국의 힘은 강한 군사력이 아닌, IT 기업이 아닌, 달러에서 나온다.
미국이 가진 최고의 무기 달러.
그 달러가 공격받고 있다.
“정치적으로 지더라도. 학살자로 역사에 이름이 남더라도. 용인할 수 없습니다.”
공격하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미래그룹과 윤회장에게 응징해야 한다.
자신이 학살자로 영원히 욕을 먹더라도 미국의 힘을 반토막낸 적은 어떻게든 응징해서 세계에 경고해야 한다.
모든 항공모함이 예정대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치는 순간 우리는 대만을 합병할 것이다.]
중국에서 공식발표를 했다.
200만 병력이 재편성을 하고 절강성에 모여들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타격이 명분이 없는 만큼 자신들의 대만공격이 용인될 거라 믿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치는 순간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로 진격할 것이다.]
러시아군이 서부 국경지대에서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그간 미래그룹의 행보와 상관없이 동유럽을 노리던 러시아는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내 핑계를 대며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
“아주 신났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합병하려 예전부터 노력했고 크림반도 점령, 동우크라이나 자치게릴라정부 설립등의 공작을 해왔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낀 자그마한 러시아 영토를 육로로 잇기 위해 폴란드 동쪽을 노려왔고.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압박하려고 미군의 이동을 아주 대대적으로 광고했고, 전 세계 모든 미항공모함이 베네수엘라 앞바다로 모여들고 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에 명분이 부족한 만큼 세계 여러 나라가 겸사겸사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
달러 패권의 이양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런 식으로 전쟁과 연결될 줄은 몰랐다.
러시아와 중국을 제치고라도 아프리카 독재자들도 미쳐 날뛰려 한다.
다들 내 지지선언을 하며 미제의 압잡이인 약소부족을 약탈하려 한다.
이건 예상밖이다.
그리고.
[프랑스. 미국에 강력한 경고.]
프랑스가 날 지지하고 일어섰다.
[프랑스. 미군 군사작정 중지를 EU에 정식 안건 상정.]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프랑스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도발을 금지하기 위해 EU차원의 압박을 정식으로 제의했다. 미군이 베네수엘라를 공격할 경우 EU에선 미국 제재를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외쳤다.
프랑스가 내편을 들었다.
이에 대한 유럽의 반응은.
독일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프랑스.
신성로마제국은 30년 전쟁 막바지에 프랑스의 배신으로 망해버렸고, 300여개의 영지국가로 갈라져 200년 넘게 내전을 벌인 독일.
독일의 분노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독일을 재통일한 프로이센의 황제대관식을 파리에서 열었다.
영국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프랑스.
이거야 너무 유명하고.
스페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스페인이 함락 당하자 스페인의 해외식민지는 일제히 독립을 선언했고, 스페인은 그날 이후 유럽의 이류 국가로 전락했다.
유럽의 왕따답게 프랑스의 말을 모든 EU국가가 거절했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다.
최근 미국의 호주 핵잠수함 지원으로 그전에 계약되어 있던 프랑스 잠수함의 호주수출이 막힌 프랑스가 미국에 대한 반감을 이렇게 푼다.
그리고.
[한국. 베네수엘라에 평화유지군 파견 검토.]
그나마 모국에서 절대적 지지를 해주는 게 고맙다.
[영국. 미국 무한정 지지]
[호주, 뉴질랜드. 미군과 동행]
미국의 진정한 동맹국인 앵글로-색슨-화이트-프로테스탄트가 어깨동무를 했고.
[일본. 대만방어를 위해 자위대 출동 검토]
일본이 거기 끼워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세계는 지금 3차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한편 1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처럼 뜬금없이 세계전쟁의 중심이 된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은.
“아직도 못 찾았어?”
역정을 냈다.
“예... 그... 죄송합니다.”
“미국이 통신 데이터를 요청한 이유가 뭐야? 그걸 알면 그놈의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거잖아. 그놈들이 할 수 있는 걸 우리는 왜 못해?”
“그... 전문가가...”
다 도망쳤거든요. 정유시설 전문가조차 다 도망쳐서 세계 매장량 1위 국가에서 석유를 뽑아내지 못하는 실정인데 통신 데이터로 윤회장의 위치를 특정할 만한 전문가가 남아있겠습니까? 우리에겐 총들고 약탈만 하는 군인밖에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지 못한 보좌관은 그저 땀만 뻘뻘 흘렸다.
“그보다... 한국에서 200명의 한국군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카라카스 치안유지에 도움을 주고 싶답니다.”
“고작 200명? 그걸로 뭐하라고?”
“고작 200명이지만 미국이 카라카스를 공격하는데 망설이게 되겠죠. 자칫하면 한국에도 선전포고 하는 꼴이 될 테니.”
딱 고기방패 용도.
한국에서 군인의 인권은 딱 이 정도다.
마두로 대통령이 멋들어진 수염을 쓸어내렸다.
“좋네. 받아들여. 대신 중화기는 반입금지.”
“예. 그리고 한국군 외에도 입국 허가 신청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응?”
북한 급 전면봉쇄를 당해 모든 항공편이 끊어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 작가의말
소제목이 스포일러라 읽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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