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의술
“막아!”
푹푹!
푹푹푹!
챙그랑.
잠깐 사이에 피가 비산하고, 경호원이 제압할 때 김상철의 옆구리가 길게 찢어졌다.
짓눌린 범인을 볼 시간이 없다.
누구랄 것도 없이 김상철에게 달려갔다.
울컥.
울컥.
단순히 찌른 게 아니라 옆구리를 길게 찢어놨다.
수도꼭지를 튼 것 마냥 피가 쏟아진다.
“엠뷸. 아니 차 가져와.”
최태수가 소리치며 상의를 벗어 옆구리에 쑤셔 넣었다.
거칠고 무식한 처치.
그럼에도 김상철에게 반응이 없다.
눈을 부릅뜬 채 바들거릴 뿐이다.
“가장 가까운 병원. 어디야?”
“군자대학병원!”
정한영이 대답했다.
“거기 전화해 준비시켜. 들어! 환자 혈액형 뭐야!”
최태수가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피투성이의 김상철을 들고 도로쪽으로 갔다.
잠시 기다리니 채인수가 타고 다니던 대형 밴이 등장했다.
끼이이익.
잽싸게 올라 타고 밴에 있는 침대에 눕혔다.
너무 바쁜 채인수가 이동 중 쉬기 위해 침대를 설치한 게 다행이다.
“출발해! 얘 혈액형부터 알아내!”
“예!”
부아아앙.
기백 넘치는 지시에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오빠 내가 전화할게.”
예하도 탔네.
나와 예하, 최태수와 정한영, 병원장까지 다섯이 탔다.
“출혈부터 잡아야해. 허리 아래를 들어. 다리 올리고 허리도.”
흔들리는 차에서 김상철의 하체를 들어올렸다.
심장보다 높게 만들어 출혈을 줄이려는 거겠지.
최태수는 옷을 김상철의 배에 억지로 쑤셔 넣어 강하게 누르며 어떻게든 출혈을 줄이려 했다.
“에이비래요!”
예하가 소리쳤다.
인사과에 저런 게 적혀있었을까.
“정선생. 전화해서 준비시켜.”
“예.”
정한영이 피투성이 손으로 군자병원에 전화해 응급실에서 미리 준비할 것을 소리쳤다.
“젠장. 출혈이. 손 좀 보태! 벌어진 곳 막아!”
환자를 보는 최태수는 박력이 넘쳤다.
하체를 들고 있는 날 제외한 모두가 손을 뻗어 벌어진 상처에 손을 댔다.
“꽉 눌러. 통증은 생각하지 마. 꽉. 피 안 나오게.”
김상철이 비명도 못 지르고 바들거리는 게 불안하다.
“정선생. 제세동기도 준비시켜!”
“녜.”
끼이이익!
차가 거칠게 멈췄고 상처를 누르던 손이 떨어져나갔다.
“들어!”
밴 밖으로 나가니 응급실 침대와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다들 달려들어 이동식 침대에 환자를 올렸다.
“수혈줄 연결하고 제세동기부터!”
최태수와 의사들이 김상철에 붙어 침대를 밀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운전하던 경호원과 예하가 뒤따라갔지만, 수술실에서 막혔다.
“후우우우.”
“저는 주차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네.”
채인수의 경호원이 공손히 말했다.
그가 떠나니 응급실 옆에 있는 수술실에 예하와 둘만 남았다.
모든 게 꿈이었던 것처럼 고요해졌다.
예하가 다가와 손을 잡는데 피에 젖은 그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무서웠지?”
예하를 안아줬다.
전신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안타깝다.
“상철오빠 괜찮을까?”
“몰라.”
모른다.
모르겠다.
그냥.
무기력하다.
사람이 다친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환자를 보니 의사의 힘을 실감한다.
인간은 참 단순하다.
“내가...... 감히 내가 마음대로 바꾼다고 나대도 되는 걸까.”
“...... 모르겠어.”
예하와 나란히 앉아 반쯤 안은 채 가만히 있었다.
타다다다.
후다다다.
간호사가 수혈팩을 안고 뛰어오고 수술실 문이 열릴 때마다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얼마 후 채인수와 임원들이 왔고 회사에 있던 코딩팀과 유성주 사장도 왔다.
“동욱아.”
“...... 네.”
“범인은 경찰에 넘겼는데...... 조승학 같아.”
으득.
“그 개새끼. 왜 상철이 형을. 아.”
나로 착각했구나.
더벅머리, 청바지, 흰티, 체크무늬남방.
원룸에서 1년간 살 때 내가 그 스타일이었으니까.
시발.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분노와 자책으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오... 빠.”
예하가 손을 잡아줬지만, 죄책감과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날 찌르려던 거였어. 나로 착각하고 상철이 형을 찌른거야.”
“오빠.”
“나 때문에.”
“오빠. 나쁜 건 찌른 사람이야. 나쁜 건 악의를 가진 가해자야. 오빠가 한말이야.”
고개를 드니 울고 있는 예하가 보였다.
스읍, 하.
스읍, 하.
“그래. 살인자가 나쁘지. 하지만 상철이 형은.”
“오빠.”
예하가 안아줬다.
피칠갑된 끈적끈적한 몸이 단단히 연결됐다.
“오빠 잘못이 아니야. 오빠가 잘못한 거 없어. 나쁜 건 가해자야.”
“하. 그래. 그래. 알았어.”
스읍, 하.
스읍, 하.
흥분을 가라앉히는데 한참 걸렸다.
예하의 품에서 나와 옆에 있는 채인수에게 귓속말을 했다.
“형. 그놈이 조승학이라고요?”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경호팀 말로는 말이 어눌하고 미친것 같긴 한데 널 저주하더라. 윤등윽 죽은다, 예하 강간하고 죽인다 이런 뜻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더래. 그럴만한 놈이 그놈 말고 없지 않아? 수사 과정에서 확인해보면 확실하겠지. 유전자 감식을 하면.”
“...... 그놈이... 조승학이라면...... 사형인가요?”
“지금까지 알려진 죄만 해도 무기징역은 거의 확실하지. 형 집행 없는 사형까지 가능해. 물론 변호사를 쓸 돈이 없다는 가정하에.”
“형. 그놈 풀어줘요.”
“응?”
“풀어줘요. 풀려나게 만들어줘요. 갈아버릴 테니까.”
채인수가 흠칫 놀라 윤동욱을 돌아봤다.
“동욱아. 이건 풀어주고 뭐고 할 스케일이 아니야. 본사근처에 숨어있던 파파라치 덕분에 벌써 기사도 떴어.”
“정신이상이든 뭐든 구멍이 있겠죠. 우리가 말 안하면 그놈이 조승학인 거 모를 거 아니에요? 그놈만 입 다물면 경찰에선 조승학인지 모르겠죠. 조승학이라고 꼭 집어서 유전자 대조를 하지 않는 한 괜찮을 텐데. 수감 대신 정신병원에 갇히게 만들면 빼내기도 쉽겠죠. 한고 회장이 탈옥한 것처럼 빼냅시다. 그래서. 죽입시다.”
돈은 넘쳐난다.
하고 싶은 거 할 거야.
죽일 거다.
죽인다. 조승학.
“시나리오는 가능할 것 같지만...... 음. 알겠다. 그래. 그 새끼한테 변호사부터 붙여야겠네. 경찰에서 헛소리 하면 안 되니까. 그래. 음 누구를......”
채인수는 머릿속이 복잡한지 횡설수설 하다가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어딘가로 전화하려다가 날 본다.
“동욱아.”
“네.”
“내 경험이 많진 않지만, 순리대로 가는 게 가장 좋아. 대개 무리한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겨. 내가 변호한 케이스들을 봐도 작은 문제를 덮으려다가 큰불이 난 게 대부분이야. 어차피 무기징역 받을 놈이고, 평생 잊고 사는 게 최선일 텐데.”
채인수가 마지막으로 설득했지만, 입을 꾹 닫고 대답하지 않았다.
죽어 마땅한 놈 죽이는 건 오히려 순리를 따르는 거잖아.
채인수는 더 이상 설득하려 하지 않고 전화해 변호사부터 구했다.
두 시간 후 수술실 문이 열렸다.
의사 서넛이 들어가고 안에 있던 의사들이 나왔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최태수가 선두에서 나왔다.
“어떻게 됐어요?”
“사장님은?”
“형 괜찮아요?”
최태수가 진중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큰 고비는 넘겼습니다. 물론 안심할 단계는 아닙니다.”
하아, 다행이다, 살았어. 하느님부처님믓시엘.
최태수의 담담한 목소리엔 생명 하나의 무게가 얹혀있다.
그러고보니 여기는 남의 병원인데 함께 수술했네.
응급환자 앞에선 소속이 무의미한가.
의사는...... 존경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우리 아들 산 거죠? 이제 괜찮은 거죠?”
뒤늦게 달려온 김상철의 부모님이 최태수의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고 절을 한다.
“아직 수술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큰 위기는 없을 걸로 생각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김상철의 부모님과 최태수를 보고 있는데 채인수가 쿡 찌른다.
“가서 씻고 와. 너도 예하도. 기자들 깔려 있으니 최대한 구설수 만들지 말아야지.”
어?
내려다보니 여전히 피투성이다.
김상철의 진한 피가 굳어있다.
병원 직원에게 물어 병원마다 반드시 있는 샤워실을 빌렸고, 씻고 나와 경호원이 가져온 정장을 입었다.
불편하지만 이 자리에서까지 트레이닝복을 고수할 수 없었다.
수술실 앞에 가니 채형만 있다.
그 옆에 앉으니 잠시 후 젖은 머리의 예하가 옆에 바싹 앉는다.
초조하게 수술실을 지켜볼수록 조승학에 대한 원한이 커져만 간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오빠. 정장을 입었네. 불편해서 싫다며. 억지로 츄리닝 사오게 시키지 않고 왜.”
이 타이밍에 이런 소리를?
예하의 얼굴을 보니 걱정이 한가득 담겨있다.
의도가 선해서 대답해준다.
“나는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서 정장을 안 입었지. 형식이 만들어내는 권위에 기댈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여기는...... 다르니까.”
내 말에 예하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형식이 만들어내는 권위...... 그게 뭐야?”
“목사님이 그런 복장을 입고 그런 말투를 씀으로써 신도의 신뢰를 얻는 것처럼. 기대되는 형식을 취해서 기대되는 권위를 얻는 거야. 비싼 옷과 비싼 시계를 보여줌으로써 함부로 대하지 못할 권위를 얻는 것처럼. 난 강해서 그런 형식이 필요 없으니 무시했지만...... 여긴...... 최대한 예의를 차려야 하는 곳이니까.”
“잘 보인다고? 누구한테?”
“글쎄.”
김상철의 어머니가 하염없이 울고 계시고, 김상철의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수술실만 망부석처럼 보고 있다.
빡.
“생각을 해 봐라. 얼마나 좋아졌냐. 전과 비교해봐. 그런데 왜 이래.”
“죄송합니다.”
구형재에게 종아리뼈를 맞은 경호원이 미동도 하지 않고 사죄했다.
“요인이 핸드폰이 놓고 왔는데 왜 네가 가져오겠다고 했는데. 말없이 따라야지. 넌 경호원이야. 일이 편해서 해이해졌냐? 네 직업이 뭔지 몰라?”
“죄송합니다.”
“도팀장. 거기서 네가 최선임이었지?”
“예.”
도윤정 팀장이 기합 찬 대답을 했다.
“그놈 다가오는 거 봤어? 못 봤어?”
“봤습니다.”
“그런데 왜 무시했어?”
“보름째 건물 주위에서 노숙하던 거지였습니다. 이미 경호팀이 무해하다고 확인했던 자라......”
“그래서 다가오는 거 무시했다고? 그게 경호원이 할 일이야?”
“죄송합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그런데 벌써 몇 번째 실수냐. 총 쏴보고 로켓 쏴보고 pmc 자격증 따니까 세상이 우습냐? 한국에서 하는 요인경호는 놀러오는 시간이야? 일이 너무 편하고 하루종일 대기만 하니까 공짜 돈 버는 기분이었어?”
“죄송합니다.”
“잘하자. 최소한 실망은 시키지 말자.”
“넵.”
“앞으로. 저격 막을 레벨로 경호해. 건물옥상 창문 다 확인하고 어디선가 저격총 쏘는 거 몸으로 막을 태세로 경호하라고.”
“알겠습니다.”
“후우. 같이 가자.”
한껏 잔소리한 구형재는 경호팀을 끌고 수술실 앞으로 왔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90도 인사, 아니 사죄.
“후우.”
그런 구형재를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스읍, 하.
스읍, 하.
100m를 1초에 달릴 사람은 없다.
제자리 점프로 공중에 3초 머무를 수 사람도 없다.
사람은 한계가 있고, 앞선 상황에서 딱히 태업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화가 난다.
스읍, 하.
스읍, 하.
“수술실 앞에서 정숙하세요. 앞으로 잘하시고요.”
화내서 바뀐다면 화를 낸다.
화내서 바뀔 게 없다면 화내지 않는다.
경호원을 열 배 늘리고, 지금처럼 비밀경호가 아닌 대놓고 무전기를 쓰며 꽁꽁 둘러싸고 생활하지 않는 한 틈은 언제나 생긴다.
어찌보면 목숨을 맡긴 사람들이다.
이들이 돈에 매수되어 갑자기 납치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누구도 경호원으로 쓸 수가 없고.
구형재에게 신뢰를 주고 컨트롤하게 해야지.
내리갈굼은 직급 시스템의 기본이며 모든 괴롭힘의 시작이지만 이것까지 뜯어고칠 수 없다.
결연한 표정으로 물러서는 구형재를 물끄러미 봤다.
경호팀 전원 한딱까리 하겠지.
타다다닥.
간호사가 수차례 들락거리며 수혈팩과 수술도구를 가져오고, 의사들이 교대로 들락거리며 수술을 이어갔다.
날 대신해 다친 김상철에게 미안해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아침해가 복도까지 밝힐 즈음 드디어 수술이 끝났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럼... 괜찮은 건가요?”
“감염이나 돌발 상황을 봐야 하지만, 현재로썬 무사할 겁니다.”
어떤 말을 전해 들었는지 몰라도 나이 지긋한 집도의가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말을 듣는 사이 김상철이 나왔다.
침대에 온갖 기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산소마스크를 쓴 채 실려 나온 김상철은 그대로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중환자실 입구에서 막힌 우리는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이다. 오빠. 다행이야.”
예하가 손을 잡아줬다.
“그래.”
정말 다행이야.
어제 저녁 의사 전체를 욕하던 나와 오늘 안도하고 고마워하는 나 사이에 뭔가 큰 갭이 있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