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양식이 미래다
“제가 월급 받으며 관리하는 입장에서 이런 말 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물고기란 놈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죽는 경우가 있어요.”
“예. 죄송합니다.”
“수질 관리도 엄청 신경 쓰고 있고, 수온도 신경 쓰고 있는데, 물속에서 맥주를 마시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죄송해요. 술 때문에.”
“허어. 술 때문에라는 변명이 가장 나쁘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예.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예하가 두 손을 번쩍 들면서 새끼고양이처럼 울먹거렸다.
예하가 저런 표정을 지으면 남자는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하아. 네. 그만하죠. 다음엔 조심해주세요.”
“예.”
“네. 절대 안 그럴게요. 끼잉.”
연못 관리인이자 대학 박사 출신 겸 해수부 산하 민물양식 연구소 연구원 출신인 38세 류안구에게 한껏 혼났다.
류안구는 개인방송을 켜고 연못물에 온도계며 이런 저런 시료를 뽑아 알 수 없는 체크를 수십 번 했고, 알 수 없는 물질을 수차례 투여했다.
시료 하나를 뽑을 때마다 그게 뭐고 어디에 필요한 지 하나씩 설명했다.
술이 덜 깬 예하와 정자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뭔가 멋있다.”
“그러게.”
“양식이란 것도 엄청나게 보람 있을 것 같아. 저 봐. 아빠 따르는 거 같잖아.”
물속의 자치들이 류안구를 따라다닌다.
연어와 송어 중간모습의 자치들이 류안구가 연못 이곳저곳을 다닐 때마다 뭉쳐서 졸졸 따라다니는 게 제법 귀엽다.
“예하 니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예쁜 양식업자가 되겠네.”
“에헤헷. 예뻐? 예뻐예뻐?”
“어. 넌 예쁘니까 뭘 해도 성공할 거야. 거머리양식을 하든, 개똥참외농사를 하든, 석탄을 캐든 개인방송만 켜면 일반 회사원보단 훨씬 돈을 벌겠지.”
재능.
예쁜 것도 재능이다.
부럽다.
“헤헤헤헤.”
예하의 손을 잡고 연못을 보다가 할일이 끝났는지 허리를 펴는 류안구를 손짓으로 불렀다.
류안구가 개인방송을 멈추고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한차례 혼낸 후엔 원래 말투로 돌아왔다.
“관리인님. 연구원으로 있었다면 양식 관련된 전문가도 많이 알겠네요.”
“예. 그렇죠. 관련학과도 얼마 없고, 연구소도 몇 없으니 다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요. 음...... 해양 양식장 천개 만드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할 사람은 만 명 정도.”
“에...... 제가 민물 쪽이긴 하지만 시장이 무너질 겁니다. 지금 광어 우럭 양식도 남는 게 얼마 없는데 천개가 추가된다면.”
“남는 게 없다는 말은 구라고요. 완도에선 전복양식장 일용직도 벤츠 탄다면서요. 뭐 어쨌든 국내 업자랑 싸울 생각 없습니다. 전량 해외 수출. 한국 시장 건드리지 않고 전부 해외에 팔 거예요. 기존의 해외 수출 라인이 어려워지면 내가 수익보장 해 줄 거예요. 이런 조건이면 양식장 천개를 만들 수 있을 까요?”
“사람들 모아 조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공간이라면 얼마든지 있죠. 알다시피 한국은 해안선이 복잡해서......”
“양식장을 최대한 만든다면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을까요?”
“그... 만 개도 가능할 겁니다. 일단 한국의 개뻘은 자정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충분히 가능하죠.”
“양식을... 그러니까 생선을 아무리 많이 키워도 손해 보지 않는다면 얼마나 가능할까요?”
“시장만 있다면야 10만개도 가능하죠. 음. 해초양식과 적절히 분배해 적조현상을 막고 기생충은... 음...... 양식장이 몰린다면 전염병 등 추가 비용이 들겠지만, 만드는 것만 생각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렇군요. 미래수산이라고 이름붙일까. 미래수산. 입에 딱 붙네. 이런 회사를 만들 겁니다. 여기 필요한 전문가들 좀 모아줄 수 있나요? 광어양식 전문가, 해초양식 전문가, 조개양식 전문가 등등등. 경영이나 유통 쪽은 본사에 말하면 되니까 양식 전문가들만 필요하겠네요.”
“네. 연락 돌려보겠습니다. 그런데 한 번에 그렇게 많이 만들면 수산물 시장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류안구는 나이가 훨씬 어린 사장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회사 내 나의 입지는 미래를 읽는 신급으로 포장되었으니 류안구의 질문은 감히 신을 의심하는 모양새였다.
“중국이 해산물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잡아요. 아시죠?”
“맞습니다. 정말 문제입니다. 공식 인정한 어선 말고도 등록되지 않는 중국어선이 10만 척이 넘는다고 합니다. 남태평양, 남대서양 등지에 통신시설도 없는 쪽배 수만 척이 떠다니죠. 마구잡이로 잡아 모선에 옮겨 중국으로 싹 다 실어가죠.”
자기 전문분야는 확실히 아는 사람. 전문가라 부른다.
다만 자기 분야가 아니면 모자란 사람. 전문가다.
“중국이 그렇게나 잡아가니까 세계적으로 어획량이 줄고 있죠?”
“예. 새끼들은 놔줘야 하는데 손톱만한 고기마저 싹 다 잡아서 냉동해 양식먹이로 팔아먹죠. 참다랑어 새끼 같은 미래의 보물마저 싹 잡아 죽이죠. 참다랑어 새끼를 냉동먹이로 만들다니. 나 참.”
“아무튼 중국을 통제할 순 없어요. 결국 공해어선의 어획량은 줄겠죠.”
“문제예요. 문제.”
“그런데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해산물을 소비해요. 알죠?”
“예. 잘 알죠.”
“게다가 중국의 수산물 소비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어요. 이러면 가격이 오르겠죠?”
“그러겠죠.”
“소비량이 늘고 찾는 이가 늘어나는데 원양어선의 어획량은 줄어요. 가격은 퀸텀점프 하겠죠. 이러면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 양식.”
“예. 양식을 아무리 많이 해도 시장은 충분해요. 얼마든지 팔 수 있어요. 게다가 중국의 양아치 짓 때문에 지금 원양어획 쿼터제가 논의 중이에요. 적어도 5년은 걸리겠지만 결국엔 원양어선이 마구잡이로 잡지 못하게 될 거에요. 그럴수록 수산물 가격은 오르겠죠. 즉, 양식장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적자날 일은 없어요.”
“오호라, 그렇군요.”
오호라라는 감탄사를 입으로 내뱉는 사람 처음 본다.
류안구 이 아저씨도 같이 술 마시면 재밌을 것 같네.
“때마침 한국은 복잡한 해안선과 수많은 섬이 있네요.”
“많은 양식장을 만들기 적합한 지형이죠. 게다가 밀물 썰물의 높이차가 크다는 건 물이 계속 섞인다는 뜻이니 양식장 산소 부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추가로 한국엔 세계 5대 개뻘이 있죠.”
류안구의 말에 따르면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라면 갯벌은 바다의 콩팥이라 한다.
모든 오염물질을 정화해주는 소중한 보물.
한국의 갯벌은 한 뼘 논 따위와 바꿔선 안 될 세계자연유산이다.
“이해했습니다. 양식장을 얼마든지 지어도 된다면 할 일이 많겠네요. 전문가를 모으겠습니다. 모든 종류의 양식 전문가를 모으고, 각자 자연에 끼칠 영향을 고려해서 어패류, 해초류, 어류 양식을 섞어야겠네요. 추가로 사료용 멸치와 새우 양식도 겸행해야겠네요. 그리고 각종 어구 회사들을 알아보고 설치를 위해서...”
류안구가 신이 나니 말이 빨라졌다.
그런 류안구에게 밝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수산물 관련 학과를 나오고 관련 연구소에서 일했으니 주변 인물들도 다 그쪽 계통일테고, 그들에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알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좋아하는 거겠지.
류안구와 악수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예하가 갸웃했다.
“오빠, 오빠오빠. 그런데...”
“어.”
“중국에 수출하는 거지?”
“다는 아니고 거의 다.”
“그런데 중국이 미래그룹 걸 받아줄까? 중국은 우리 싫어하잖아.”
아.
뼈 맞았다. 아파.
악수를 하고 있던 나와 류안구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중국 공산당이라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차라리 중국인민을 굶기는 걸 선택할 것이다.
“......일단 전문가들의 의향을 알아보세요. ...... 전 사전준비를 해야겠네요.”
이럴 때 필요한 건.
도와줘요 채인수몽~
따르릉.
미래대학 설립은 가오리가 맡던 미래 직업 가이드 팀이 맡았다.
직업마다 필요한 자격증이나 사전지식등을 조사하던 팀이니 학문의 계통과 필요한 지식 등에 대해 분류해 둔 게 있다.
모든 학문을 동영상으로 찍어 강의를 인터넷에 올린다.
미래 그룹에서 계약금을 줘서 찍되 강좌를 통한 수익을 나눠 갖는다.
각국 지사마다 초급 언어에 대한 강좌를 준비하고 기타 영상을 자국어로 번역해 모든 나라가 볼 수 있게 만든다.
필수적으로 분류된 강좌만 만여 개고,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일부 지식인은 지식 나누기를 거부했지만, 세상에 혼자 독점하는 지식은 없다.
누군가 거부하면 다른 이에게 부탁하면 된다.
세상엔 똑똑한 사람이 많기에 미래 대학의 수익성을 삽시간에 파악하고 매달리는 걸 쳐내야 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한 강좌를 한명만 찍는 게 아니다.
여러명의 석학이 같은 강좌를 찍는다.
누가 제대로, 잘 가르치는 지는 수익으로 판명 나겠지.
이는 직업 가이드와도 연결된다.
직업에 흥미를 갖게 된 이는 거기에 필요한 사전지식 항목에서 수십, 수백 개 강좌와 링크된다.
보험 설계사처럼 전문적인 직업은 필요 강좌가 천 개를 넘기도 한다.
산수부터 시작해 기초 통계나 확률 등 자잘한 수학 강좌가 많지만, 어쨌든 많이 공부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
반면 공사장 신호수처럼 한국어 기초를 비롯해 수십개 강좌만 들어도 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
준비 없이 할 수 있는 신호수가 9시간에 13만원.
수백 개 강좌를 이해해야 할 수 있는 게임그래픽 직원이 14시간에 9만원.
세상이 어그러졌다는 걸 자연스레 깨달았으면 좋겠다.
미래 대학은 가오리에게 맡겼고, 본사 기획팀에서 사람을 빵빵하게 붙였으니 잘 될 것이다.
큰 방향만 잡고나면 바위를 끄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른 바위는 채인수에게 맡겼다.
“야. 이......”
“최소한 손해는 안 봐요.”
“야. 이건 미묘해. 매우 매우.”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합시다.”
“하아. 그래. 하자. 이미지는 좋아지겠지...... 기부라고 생각하자. 어차피 나도 시키고 조율만 하면 되니까.”
독립법인 미래 수산을 설립했고, 전담팀이 꾸려졌다.
여기에 수산업 전문가들이 붙고, 현장에서 양식업을 오래한 분들을 고문으로 모셨다.
외국과 수산물 교역하는 이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아예 수산물 전문 무역회사 하나를 인수했다.
자그마한 어류 사료 업체를 구매하고, 어구제작과 판매하는 회사도 인수하고, 여러 양식장을 건설한 업체를 인수했다.
직원 수 10명 안팎의 작은 회사들이니 수천 개 양식장을 맡을 능력이 안 되어 아예 통째로 인수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고 백제건설과 건축사무소에서 팀 하나를 꾸려와 설계도와 건설 방법까지 준비했고 이제 최후의 난관이 남았다.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해양교통안전공단.
해양환경공단.
...... 그외 20여개 관련 공사.
와...... 한국에 공무원 참 많다.
이렇게 많은 부서와 공단이 서로 다른 일과 겹치는 일을 하고 있다.
모두 미래 수산과 관련되어 있기에 계획을 밝히고, 관계 당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 회의를 요청했다.
“반갑습니다. 윤동욱이라 합니다.”
내가 요청했고, 정부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기에 직접 나섰다.
정부에선 수십 개 부서의 책임자들이 왔고, 관련 없는 부서 수십 개도 왔다.
그냥 구경하러 온 낙하산. 사진 찍으러 온 정치인. 청탁하러 온 섬주인. 삥 뜯으려는 양아치.
웅성웅성. 와글와글.
부탁하는 입장에서 상대를 가릴 수 없었기에 냅뒀더니 빈대 수백 마리가 들러붙었다.
- 작가의말
미래에 수산물 가격은 매년 꾸준히 매우 높게 오른대요
관련주식 전망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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