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캠핑
백제그룹은 금요일까지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쳤다.
과열에 의한 거래정지 하루를 생각하면 전거래일 상한가에 거래량도 거의 없다.
주가 상승에 의한 지분가치는 7조원으로 늘었다.
두 달 만에 7조원 번 것이다.
물론 고스란히 빼기는 힘들지만.
아침에 점상에 붙는 걸 확인하고 할 일을 하니 예하가 다가온다.
“오빠아~”
“어. 왜?”
“나 야방하면 안 돼?”
......
잠깐 생각 좀 해보고.
분명 그 뜻이 아니겠지만, ‘야’ 라는 글자는 일단 야한 걸 떠올리게 만든다.
“야방이 뭐야?”
“야외방송. 소정언니, 모닥불 언니가 너무너무 캠핑가고 싶대. 내일 토요일이니까 가서 오후 내내 방송 켜놓고 놀자아. 일요일도 아침방송 하고오.”
“어. 조금만 참자. 야외로 나가면 경호팀 다 따라가야 하는데.”
“오빠. 너무 일 만하면 바보가 된대. 다른 팀도 다 같이 가자. 그러면 경호팀도 돌아가면서 쉬지 않을까? 경호팀 언니 오빠들도 집에서 대기만 해서 좀이 쑤신대. 오빠 회사 사람 전부 데려가자.”
“예하야. 사회생활에서 가장 개떡 같은 게 주말에 상사가 같이 놀자는 거야. 사람들이 뒤에서 너 욕할걸?”
“엑? 오빠가 이렇게 좋은 사람인데?”
“그거랑 출근하는 건 다른 문제지. 흠.”
경호팀도 심심한가.
집에만 있으니 뭐.
“그래 사장급만 연락 돌려봐. 되는 사람만 부르자.”
“가오리 오빠도?”
“...... 갠 빼. 내가 창피해.”
“엣헤헤. 알아쪙.”
“캠핑 준비는 모닥불이 하는 거지?”
“어. 강화도에 통째로 빌릴 펜션이 있대. 안전문제는 확실히 자신 있대.”
“그래. 나가서 고기나 구워먹고 오자.”
“에헤헤. 언니한테 전화해야지.”
컴퓨터 방에서 뛰어나가는 예하.
문지방에서 멈춰서 얼굴만 쑥 내민다.
“오빠.”
“어.”
“나 내일이면 준비 될 거 같아.”
후다다닥.
예하가 윗집으로 뛰어갔다.
“......”
드디어 생리 끝났구나.
내일.
우후훗.
스읍, 하.
스읍, 하.
진정해.
방문을 잠그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안녕~ 안녕~ 오늘은 야방이야. 하루종일 켜놓을 거야. 여긴 내가 사랑하는 제시님~ 꺄아아아.”
“꺄아아아. 언니이~”
“그리고 여기는 나 월급 주는 사람.”
“안녕하세요 채인수입니다.”
“됐고요 출바아아알~”
커다란 밴 맨 뒷자리에 셋이 나란히 앉았다.
가운데 낀 채인수가 전혀 부럽지 않다.
일단 오징어로 깔리는데다 양쪽에서 바싹 붙은 여자들이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질의 응답은 가는 차안에서 해치우자고요. 채사장님. 백제 주가 어디까지 가요?”
“몰라요. 아무도 몰라요.”
“그래도 대략.”
“이걸 제가 말하면 주가조작으로 잡혀가요. 더 올라요 라고 하면 사람들이 사게 되니까 주가조작이고 떨어져요, 하면 사람들이 파니까 주가조작이에요. 그래서 말 못해요.”
“칫 재미없어. 제시. 사장님 원래 이러니?”
“어. 채변 오빠가 원래 할 말만 하는 사람이야.”
“채변?”
“채 변호사님.”
“맞다. 변호사시지. 채변사장님. 채변님.”
“채변이라 부르즈 므르.”
이 악물고 모닥불한테 경고하는데.
“아하하. 님들아 저 협박받았어요. 채변님한테 혼났어요. 채변님. 멀미대비 봉투 필요하세요? 채변봉... 흡 그만!”
연 20억 버는 스타유투버에겐 전혀 위협이 못 된다.
저기 끼지 않아서 다행이다.
강화도 펜션으로 차 22대가 도착했다.
12인용 2층 독채가 10채가 있는데 예약된 인원에게 돈을 안겨줘 취소시켜 전부 빌렸다.
강화도 서쪽 바닷가 바로 앞에 있고, 넓은 잔디밭이 있는 펜션이다.
각 사장과 홍보팀, 경호팀 포함해 60명의 대인원이 왔다.
방을 나누고, 곧장 숯불부터 켠다.
“회사 야유회예요. 전 오늘 요리사!”
모닥불은 숯불 앞에 서서 방송을 했다.
요리한 거 가져다주면 먹고, 술 마시고 족구하고.
2월의 끝물이라 야외에서 놀만했다.
“동생사장아, 너 복학한다고?”
“생각중이에요. 전혀 쓰잘데기 없긴 한데 회사가 어느 정도 기틀 잡았으니 할 일도 없고요. 대학생이면 은신하기도 편하고요.”
사장들과 모여 술을 마셨다.
“그래도 백제에서 한번은 찌를 텐데.”
“그래서 고민이에요. 4월에 복학하면 다닐 수 있나.”
“될 걸. 학점이 개판이겠지만, 상관없잖아.”
랍스타 버터구이에 와인.
맛있다.
바다가 코앞에 있는 것도 좋고.
“그렇긴 하죠. 그런데 백제가 왜 이렇게 조용하죠? 포기했나?”
“내 생각엔 말이야......”
“어? 채형 부르는데요?”
채인수 사장은 질문에 대답하러 또 카메라 앞에 섰다.
모닥불이 원래 야외방송 전문이라 그녀의 팀원이 다들 익숙하게 촬영했다.
방송하는 거 보고, 족구 하는 황형 보고, 펜션 주위 멀리 퍼져 순찰 도는 경호원 안쓰럽게 보다가 술을 마셨다.
권순진과 정문우.
“형들은 필요한 거 없어요?”
“나야 뭐 주식 설정 끝마쳤으니 한가하지. 기업조사팀하고 벤처투자팀 확대하려고.”
“좋네요.”
“리츠는 자금이 딸려. 아트스쿨 건물 사려 하니까 가격이 좀 쎄네.”
“얼마나요?”
“대출끼면... 4000억 정도 있으면 좋겠네.”
“받아가요. 황형한테 말해놓을 게요.”
“어. 좋아. 이것도 레버리지 다섯배 키울 수 있을 거야.
4000억의 다섯배면 2조네.
역시 부동산은 크게 놀아.
“오빠. 이거 먹어봐.”
예하가 접시를 들고 오더니 옆에 앉는다.
“방송은?”
“언니가 한 시간 진행한대. 그 다음에 내가 하고.”
“둘이 교대로 하니 좋네.”
“어. 먹어봐.”
파스타인가.
“뭐야? 이거.”
모양이 이상하네.
“닭고기 크림 스파게티. 내가 만들었어.”
이상하다는 말을 내뱉기 전이라 다행이다.
먹어봤다.
“맛있네.”
엄청나냐고 물으면 아니지만, 애당초 맛의 즐거움을 못 느끼니 상관없다.
나란히 앉은 예하 덕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모닥불 언니 예쁘지 않아?”
함정인가?
날 함정에 빠트릴 생각인가?
“예뻐.”
빠져보자.
“언니 너무 즐겁게 사는 거 같아. 캠핑도, 요리도, 캠핑 나와서 요리하는 것도 원래 좋아했대. 좋아하는 거 즐겁게 하면서 사는 삶. 정말 멋있지 않아?”
함정이 아니었구나.
“그러게.”
요리하는 모닥불 쪽으로 고개 돌려봤다.
카메라 세 대와 조명 앞에서 활짝 웃으며 대하를 굽고 있다.
숯불에 대하가 익으면 집게와 가위로 껍질을 휘리릭 벗겨 채인수한테 넘긴다.
채인수는 저기 붙잡혀서 대하 접시를 들고 있다.
......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겠지.
학교 다닐 때 은은하게 애들 엄청 괴롭혔을 거 같아
저항조차 못하게 속박하는 타입.
“친해지면 위험하겠어.”
“어?”
“좋은 사람이지만 무서워.”
“풋. 산책 할래?”
“그래.”
폭 50m쯤 되는 모래사장 양쪽엔 돌밭이 있다.
모래해변이 좁으니까 펜션 하나가 독차지 할 수 있는 거겠지.
어찌됐던 해변을 전세 낸 기분이 나쁘지 않다.
“섬 하나 살까?”
“에엑?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것도 좋다 싶어서.”
코로나.
막지 못한다.
그게 뭔지 알고 막아.
막았다가 전염병의 배후로 몰려 죽을 수도 있고.
그때 그냥 섬에 다 같이 놀러갔다가 눌러앉는 걸로.
좋네.
잠깐 걸으니 모래해변의 끝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유턴입니다.”
네이게이션 목소리랑 똑같다.
예하는 참 재주도 많다.
유턴 휘릭.
쏴아.
“난 참 행운아 같아.”
“예쁜 거?”
“아니아니.”
쏴아. 쏴아.
“오빠가 나 구해준거.”
예하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더 행운이지. 그때 우연히 구하지 못했다면 니가 나 거들떠나 보겠어? 외모차이 너무 심하잖아. 누가 봐도 여자가 아깝다 커플인데.”
“히힛.”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아 자기 앞에 끌어들이며 걷는다. 뭉클하다.
아니라곤 말 안하네.
여우.
해변을 열 번쯤 왕복하고 펜션 앞 잔디밭으로 돌아갔다.
예하는 모닥불에게 가, 함께 진행하다가 홀로 맡았다.
예하가 진행하는 걸 보다가 IT팀에 눈이 갔다.
김상철과 유성주 둘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게임이 돈이 되지.”
“아니야. 형. 메신저가 더 크게 벌걸.”
“게임.”
“메신저.”
나와서도 일 얘긴가.
예하가 구운 숯불 피자 한판을 받아 거기로 갔다.
앞에 두니 가타부타 말없이 피자 한 조각씩 집고는 맥주를 마시며 토론을 이어간다.
이렇게 대놓고 무시당한 게 오랜만이라 당황스럽다.
“둘은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어?”
“회사에든. 아니면 개인적으로든.”
둘이 잠시 내 얼굴을 보더니 랩을 쏟아낸다.
“AI 전문가. 빅데이터 전문가. 딥러닝 전문가, 로직 전문가. 3D랜더링 전문가. 자율주행 전문가. 블록체인게임 전문가. 게임 코딩 전문가. 게임 전문가.”
“투표앱 제작 경험자, 녹음앱 제작 경험자, 메신저앱 제작 경험자, 게임앱 제작 경험자.”
안 물어봤으면 울 뻔했네.
둘이 하는 일이 섞이다보니 요즘엔 팀이 섞이고 있다.
거의 공동책임자로 여러 팀을 오가며 동시에 개발하는 상황.
서로 같은 일을 하는데도 요구하는 인력은 크게 다르다.
성향이나 현재 맡은 파트가 다른 거겠지.
“필요한대로 다 뽑아요. 저기 예하 방송에 말해요. 40만 명 보고 있으니까 금방 채용되겠죠.”
“어? 그래도 돼?”
고개를 끄덕이자 둘이 뛰어가 카메라에 랩을 한다.
예하는 둘의 말을 정리하며 다시 설명하고 있고.
...... 지원자 너무 몰려서 경영지원팀 마비되겠네.
테이블에 혼자 남아 맥주를 마시며 예하가 구운 피자를 먹었다.
“어머 여기 계셨네.”
모닥불PD가 다가온다.
“네. 고생했어요.”
동갑이지만 상호존칭.
“3호실에서 자죠?”
“예.”
“거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이예요. 해가 바다에 잠기는 게 끝까지 보여요. 다른 방은 나무나, 저 멀리 섬 때문에 해가 바다에 떨어지는 게 안 보여요. 그래서 진짜사장님한테 3호 방 준 거예요.”
“오오. 감사.”
“웰컴. 후후후. 6시 반부터 계속 방송할 거니까 3호실 2층에서 제시랑 낙조 보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제시가 말했어요?”
“둘만 묵는 걸로 잡아놨던데 뻔하지 뭐. 얼마든지 좋은 시간 보내고 나서 제시를 저랑 방송 교대 시켜줘요.”
“밤새 방송하시겠네.”
“후후. 그래서 제시가 좋아하면 저도 좋고요.”
모닥불이 느긋하게 웃으며 맥주를 마신다.
좋은 사람이었네.
쨍.
맥주병을 가볍게 부딪치고는 한 모금씩 마셨다.
“늦을수록 제시가 지금 뭐하는 지 말 할 확률이 높아져요. 제시의 이미지냐 혹은 자신의 성욕이냐. 어느 것을 고를 것인가.”
역시 이 여자. 학교 다닐 때 은근히 애들 엄청 괴롭히면서 살았을 거야.
......
아 찜찜해.
하늘이 붉게 물들 무렵, 방송을 교대한 예하와 함께 펜션에 들어왔다.
“오빠. 오빠!”
“어. 보여.”
깔끔한 펜션 2층 방을 둘러보다가 석양을 보고 감탄했다.
서쪽 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바다가 코앞에 보인다.
저 멀리 바다 끝에 닿은 해도 보인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이기에 미세먼지만 없었으면 완벽히 보였을 텐데.
그래도 충분히 아름답다.
석양의 붉은 빛이 통유리 내부로 온전히 들어온다.
통유리 앞엔 이러라는 용도인 듯 안락의자 두개가 놓여있다.
각자 앉아서 맥주 한 모금씩 마시며 의자를 느릿하게 흔들며 가라앉는 석양을 봤다.
대화는 없어도 좋다.
“너무 예쁘당.”
정면을 본 예하가 손만 뻗어 내 어깨를 더듬어 내려가더니 손을 꽉 잡는다.
그렇게 손을 잡은 채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해는 저 멀리 이름 모를 섬 사이 바다에 퐁당 빠졌다.
하늘에 해는 사라졌지만, 서쪽하늘은 아직 잔불이 남아 붉게 타오른다.
태양이 사라졌기에 하늘의 채색이 오히려 선명하게 보인다.
무지개처럼 서쪽의 붉은 빛이 조금씩 파란빛을 추가하며 다가와 머리 위 하늘은 청포빛으로 물드는데 이 캔버스의 색감이 너무 좋다.
동쪽부터 검은 물감을 뿌린 듯 점차 검은색이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태양빛을 지워나간다.
그 뒤로 남는 건 별빛 뿐.
이 시간이 좋다.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예하가 몸을 붙여온다.
나도 몸을 기울였다.
잠시 눈맞춤을 한 후 입맞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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