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폰로이어3
사람은 사람들 속에 숨겨야 한다.
퓨처 그룹의 미국지부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두 군데에 마련했는데, 미국법인의 고용인은 벌써 800명을 넘어섰다.
폰로이어와 퓨처뮤직, 퓨처쇼핑을 관리하는 데만 이만한 인력이 필요하며 퓨처쇼핑의 무시무시한 확장 때문에 이 인력도 부족하다.
미국에 도착해 보호 겸 조사를 받던 핀빙빙은 우리와 만나길 요청했고, 미래그룹과 미국의 합의하에 뉴욕의 퓨쳐그룹 사택에서 보호하기로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몇 달 새 바싹 마른 핀빙빙이 안쓰럽다.
바싹 마르고, 눈에 독기가 서린 핀빙빙.
어째 루비가 똑같다.
예하는 그런 빙빙이 안쓰러운지 옆에 앉아서 손을 꼭 잡고 있다.
핀빙빙이 망명하자마자 중국에선 핀빙빙에 대한 음해가 쏟아졌다.
사회공헌 0점.
2015년 이후로만 200여명의 가난한 아이의 심장병 수술을 돕는 등 수없이 많은 기부를 한 핀빙빙은 전혀 사회공헌을 하지 않은 최악의 연예인으로 광고되고 있다.
당연히 반대기사는 실리지 않는다.
400억이 넘는 탈세로 1430억의 추징금을 부과한다고 했는데, 말이 추징금이지 그녀의 전 재산을 몰수했다.
중국의 연예인은 6% 세금을 내는데, 갑자기 42%의 세율이 부과되었고, 핀빙빙은 과거의 수익을 42% 내지 않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탈세혐의를 받았다.
여기에 반론을 낼 기자는 없고, 반론이 나와 봤자 통제 당한다.
모든 중국인들은 저게 사실인 줄 알고 핀빙빙을 욕하며 살게 될 것이다.
“중국의 암살위험은 평생 따라다닐 거예요. 어떻게 사실 건가요?”
공안에 잡힌 순간 연예인으로써 생명은 끝났다.
“기다려야죠.”
핀빙빙은 의외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중심이 아니에요. 상하이방 숙청에 제가 딸려간 거죠.”
상하이대를 나온 핀빙빙은 자기도 모르게 상하이방에 속하게 되었다.
공산당과 적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국의 특성상 연예계 생활을 하며 돈을 바치고 뒤를 봐주는 공안이 생기는데, 그게 상하이방 계열이었다.
이번에 계파간 권력 다툼으로 상하이방 수천이 갈려나갔는데, 거기 곁다리로 휘말렸다는 거다.
“저 말고도 많더라고요. 오히려 저만 이슈가 되서 금방 풀려난 감이 있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마찬가지다.
위에서 지시하면 일선에선 최선을 다한다.
‘상하이방을 조지면 돼? 조지면 조질수록 평가가 좋아져? 그럼 최선을 다해야지.’
잡아가서 죽이고, 재산을 빼앗고, 기업을 해체해 나눠먹는다.
온갖 승냥이가 달려들어 상하이방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으면 죽이고 토막 내 집어삼켰다.
과거 상하이방 계열도 똑같이 해왔고, 이번에 똑같이 당했다.
중국만 욕할 게 아니다.
간첩을 잡으라는 지시에 간첩을 만들고, 여성인권을 보호하라는 지시에 남자를 강간범으로 만든다.
핀빙빙은 워낙 음모론이 파다하게 퍼져서 자택에 풀어준 거지 여전히 수많은 연예인과 기업인들이 상하이방 계열이란 이유로 잡혀있고, 죽었거나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통역을 통해 느릿하게 대화하며 공산당에 대한 분노를 되씹는 핀빙빙.
“상하이방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 중국에 복귀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날 오지 않아요 누나.
사실을 말해줄 수 없고.
“그때까진 어떻게 사실 건가요? 혹시 재산은 있습니까?”
“적당히 있어요. 다만... 좀 무섭네요.”
다행히 해외계좌는 빼앗기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힘은 중국 내에서만 강력하다.
“언니...... 우리 회사에 입사해요. 그래서 중국 공산당 혼내줘요.”
이제부터 예하의 차례다.
“후우...... 어떻게? 그보다 제가 입사하면 퓨처 그룹에 해가 될 거예요. 중국이 미래그룹을 금지시키면 피해가 막심할 거예요.”
구글과 페이스북 등 대부분의 인터넷 기업들은 중국에서 쫓겨났다.
MS의 윈도우는 중국 거의 모든 컴퓨터에 깔려있지만, 돈 내고 설치한 건 거의 없다.
전부 복돌.
대형 아이티 기업 중 애플만 유일하게 중국에서 쫓겨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중국의 정보통제에 협조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핀빙빙을 보호해 중국에 밉보이면 퓨처그룹 또한 중국에 차단당할 수 있다.
“괜찮아요. 울 오빠는 다 계획이 있어요.”
여자 둘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부담스럽네.
“메신저 최종본이 출시되었어요. 일단 한번 깔아 보세요.”
심혈을 기울인 미래 메신저가 완성되었다.
그룹에선 전 세계 동시 광고를 준비 중이다.
예하의 도움 하에 핀빙빙이 앱을 깔았다.
앱을 설치하자마자 나오는 문구.
- 지갑을 생성하겠습니까? 기존 지갑과 연결하시겠습니까?
폰로이어와 미래 뮤직, 미래 메신저 모두 미래블록 기반으로 움직인다.
미래블록이 만든 세계 위에서 하나의 생태계를 만든다.
“어떻게 연동해?”
“폰로이어 깔았잖아요. 여기 설명 있네.”
중국어로 적힌 설명을 읽은 핀빙빙이 자신의 폰에 숨겨둔 폰로이어를 찾았다.
숨겨둔 폰로이어.
모든 미래 IT 앱은 앱 아이콘을 숨길 수 있다.
숨은 앱을 켜기 위해선 기본화면에 특정 패턴을 그리거나 특정 위치에 지문을 갖다 대 숨김을 풀어야 한다.
자신은 설치하고 싶지만, 남이 보면 껄끄러워하는 녹음 앱의 특성상 숨김 기능은 필수다.
처음 설치했을 때 핀빙빙은 꼭 그래야 하나 싶으면서도 예하의 고집으로 숨김 기능을 켰고, 덕분에 공안에 들키지 않았다.
공안에서 핀빙빙의 핸드폰을 압수해 모든 자료를 복사했는데 만약 폰로이어와 메신저가 깔려있는 걸 들켰다면 핸드폰을 돌려주거나 자택연금 하는 일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핀빙빙은 폰로이어를 켜 지갑주소를 찾았고, 메신저와 연동했다.
메신저를 켜자 Future Home에 들어갔다.
“여긴 언니의 집이예요. 페북이나 인스타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요.”
개인 홈피 기능이 메인에 있다.
다양한 게시판을 만들 수 있고,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올릴 수 있다.
“전화기 아이콘을 누르면 메신저가 되요. 연락처리스트랑 연동은 안 되고요.”
코톡 같은 채팅 앱과 연결되며 코톡이 갖고 있는 모든 기능을 갖고 있다.
집 내부의 배경화면중 문을 누르면 마을처럼 생긴 화면으로 바뀐다.
Future Community다.
마을엔 여러 집이 있고, 집집마다 간판이 붙어있다.
“문밖으로 나가면 다양한 커뮤니티랑 연결 되요. 미래뮤직, 미래쇼핑, 등이 있고, 그 외 검색해서 갈 수 있는 사이트가 무궁무진해요.”
네이버카페나 다음카페의 기능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인터넷카페인 중고나라의 가치가 3000억 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그런 카페와 커뮤니티들이 퓨처커뮤니티로 들어오도록 유도한다.
Future Community는 미래블록 위에 모든 인터넷 기능이 들어갈 수 있게 만든 미래의 유일한 플랫폼이 된다.
발표되고 광고가 시작되면 모든 인터넷 기업이 깜짝 놀라 견제하겠지.
메신저를 한 바퀴 둘러본 핀빙빙이 흥미 없다는 듯이 핸드폰을 내려놨다.
“그런데요. 이게 왜요?”
지금 그녀에게 메신저 따위 중요하지 않겠지.
“언니, 혹시 회원가입 했어요?”
예하가 바싹 붙어서 설명했다.
물론 통역이 필요하다.
“어? 안했는데. 그냥 지갑 만들고 끝이잖아.”
지갑을 생성하고 비밀번호를 설정하면 끝이다.
기존 회원은 지갑주소를 연동하고 비밀번호를 누르면 끝이다.
개인정보는 요구하지 않는다.
“언니가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했잖아요. 언니 핸드폰은 공안에 감시당하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들키지 않았을까요? 한국에서 언니한테 전송하는 데이터는?”
“어... 몰라. 그게 중요하니?”
“에... 나도 잘 모르는데 이건 중앙 서버와 인터넷 어드레스가 없는 블록체인 메신저래요. 그러니까 탈중앙화 머시기고 에 또... 암튼 중국이 차단하는 게 원천 불가능하대요. 즉, 언니가 이 메신저에 진실을 쓰면, 중국에서 검열이나 삭제가 불가능하대요.”
유투브를 막고, 비어버린 시장에서 성장한 틱톡은 세계로 나가 돈을 번다.
페이스북을 막고, 중국을 삼킨 웨이보가 세계로 진출한다.
윈도우 복돌이 천국이지만 MS에선 항의조차 할 수 없는 막장 국가.
하지만 퓨처 메신저는 막을 수 없다.
“아.”
이해했나보다.
“우선 중국에 메신저를 퍼트리고, 그 후에 진실을 여기에 올리면 되요. 기사가 지워지지 않는 공간. 통제당하지 않는 세상. 울타리 없는 세상. 탈중앙화. 언니가 당한 억울함과 진실을 중국에 전해줄 유일한 끈이에요.”
기술은 언제나 발전한다.
화웨이가 정보를 통제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구글과 페이스북 등 사이트의 어드레스를 막는 방식이다.
그런데 미래블록은 어드레스가 없다.
사용자 전원이 서버다.
끝내는 방화벽 일괄 차단이 불가능한 세상이 열리게 된다.
중앙서버가 없으면 중국은 생성되는 지갑주소를 일일이 막아야하는데 이건 수작업으로만 가능하며 개인의 지갑주소를 알아내기도 힘들다.
미래블록을 막기 위해선 모든 해외IP를 막아야 하는데 그러면 중국이 고립되어 멸망한다.
막을 수 없는 흐름.
미래의 중국은 블록체인 기술로 인해 정부 통제를 포기하게 된다.
한참 메신저를 뒤적거리던 핀빙빙은 고민이 많은 얼굴로 날 봤다.
“그래서. 이걸 원해서 날 구출해줬나요?”
조심해서 대답해야 한다.
“솔직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요. 그저 예하가 도와주라고 해서 도와준 것 뿐. 폰로이어 모델로 계약한 인연도 있고요. 하고 싶은 대로 사세요. 모델로 계약해도 공산당과 적대하라는 명령은 하지 않을 거예요. 우린 이런 게 가능하다고 알려줬을 뿐이예요. 솔직히 고생했고 많이 포기했잖아요. 본인 행복을 위해 사세요.”
내 말에 예하와, 통역을 하고 있는 수행비서의 눈에 감동이 깃든다.
“저는......”
핀빙빙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중.
기다리다가 냉장고에 가서 맥주를 꺼내왔다.
예하는 목이 말랐는지 나보다 먼저 뚜껑을 칙 땄다.
맥주를 본 핀빙빙이 캔 하나를 받아 절반 정도를 한 번에 마셨다.
“저는...... 공안이 들이닥쳐 끌려갔어요. 지하실에 갇혔고 다짜고짜 자백제를 주사 받았죠. 자백제가 마약인건 아시죠? 치사량인지 아닌 진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계속 의식이 뜨문뜨문해요. 핸드폰 잠금을 풀어줬고, 바닥에 던져준 음식을 핥아먹었고, 앉은 자리에서 똥을 싸고, 몇 주인지 몇 달인지 옷을 입지 못했고, 똥무데기에서 굴리는데 내 똥이었겠죠... 수없이 강간당했는데 어떻게 당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아마도 마약을 계속 주사했겠죠.”
담담하게 자기가 당한 걸 말하는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알몸으로, 끊임없이 당하고, 화장실도 따로 없고, 자신의 분뇨와 함께 살면, 인간의 존엄성이 붕괴된다.
20년간 17억 중국인의 여왕으로 살아온 여자가 한순간 땅속 끝까지 추락했다.
스읍, 하.
스읍, 하.
빡친다.
하지만 내가 화내면 안 되지.
나보다 더 화날 사람이 앞에 있는데.
정신을 놓거나.
분노로 불타거나.
핀빙빙은 다행히 본인의 ‘격’을 놓지 않았다.
대신 루비처럼 분노만 남은 것 같다.
“여론 때문인지 마약주사가 멈춰졌고, 자택에 연금되었어요. 핸드폰의 모든 기능은 정지되었고, 공안으로부터 앞으로의 대응에 대해 교육받았어요. 모든 건 내 잘못이고 공산당에 충성하고 탈세를 인정하고 기자에게 대답할 모범답안을 받았죠. 살기 위해서. 그렇게 교육받고 중간 중간 공안이 끼워준 칩으로 내 전화기로 전화를 해서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해야 했어요. 그러다 너무 답답해서 메신저를 눌러 예하에게 말을 걸어봤는데 대답이 오더라고요.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되는데. 신기하게도.”
와이파이만 연결된다면 유심칩이 없어도 작동 되니까.
핀빙빙의 폰을 막은 공안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차단한 핸드폰을 줘놓고 방심했겠지.
“폰로이어를 뒤져보니 제가 의식을 잃었을 때의 일들이 녹음되어 있더라고요. 공안들이 낄낄대며 사진 찍고 동영상 찍던 소리, 내 폰의 자료를 조작하며 하는 말들. 내 알몸을 품평하고 가지고 노는 것, 서로 순번 정하는 것, 내가 당하던 소리 등등. 이런 걸 밝히면 도움이 될 까요?”
핀빙빙이 너무 말라서 처량해 보이는 눈으로 물어봤다.
잠시 고민하며 대답을 정리했다.
“우린 강해요. 돈도 많고. 다른 모델들을 앞세워 중국에 광고하고 메신저를 깔도록 퍼트릴 거예요. 핀빙빙이 당한 일을 이용해 광고할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중국 기사는 많이 찾아 봤죠? 조용히 상처를 덮으려면 덮어요. 분노를 터트리려면 터트리고요. 구해줬으니 보호는 해줄게요. 그 대가는 요구하지 않고요.”
또 다시 감동의 눈빛들이 쏴아아.
이번엔 핀빙빙의 눈도 똑같아졌다.
“하죠.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일까요?”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빙빙의 녹음을 터트리면 중국에서 즉각 견제할 테니까 메신저가 어느 정도 퍼진 다음에 터트려야 해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머리 식혀요. 머리 좀 식히고 쉬면서 그때가 되도 터트릴 생각이 있다면 그 때 터트려요.”
“...... 고마워요.”
“일단 쉬세요. 내일 다시 보죠.”
자리를 파하고 일어서는데 핀빙빙이 잡았다.
“저...... 불안해서 그러는데, 오늘 같이 묵으면 안 돼요?”
핀빙빙의 제의에 순간 혹했고, 옆에서 예하가 ‘이것봐 이것봐 또... 내가 못살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 작가의말
기술적 가능성은 모르겠습니다.
블록체인을 막을 수 없어서 거래소를 폐쇄하는거라 들었습니다
혹시나 글이 갑자기 연중된다면 그건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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