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불법체류자4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옥수동 집에 오랜만에 들어왔다.
전면창 너머 한강과 강남이 보인다.
거실 쇼파에 꼭 붙어 앉아 창밖을 한참 바라봤다.
“괜찮을까?”
“아니. 불이 더 붙겠지. 최소 몇 달은 혼란스러울 거야. 하지만.”
“옳은 거지? 오빠가 하는 건 옳은 거지?”
“어. 지금이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야.”
나라에서 다양한 이유로 불법체류자를 잡지 않는다.
그들을 잡게 만든다.
이건 탄압하는 게 아니다.
법에 따라 옳게 집행하는 것이다.
“하지 않으면...... 큰일 나.”
불체자 문제는 훗날 양적완화 버블붕괴와 맞물려 한국을 50년 후퇴시키게 된다.
그 전에 고쳐야 한다.
“어. 믿어. 오빠를 믿으니까 직접 발표한 거야.”
예하가 더 깊게 안겨오며 말했다.
예하는 짐을 나눠지고 싶어 한다.
내가 하는 일, 힘들고 욕먹는 일을 함께 하고 싶어 한다.
도움이 되고 싶고, 자신의 의미를 갖고 싶어서.
“착해. 예하. 착해.”
응원할 따름이다.
“무서워......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사고는... 나겠지만. 할 일을 할 뿐이야.”
“힝.”
머릿속이 복잡한지 예하가 창 밖 한강을 한참 보다가 고개만 돌렸다.
그러곤 한참 눈을 마주쳤다.
“왜?”
“오빠는...... 너무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해. 욕먹는 걸 감당하면서까지......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되는 데. 그냥 여행만 다니며 즐겁게 살아도 될 텐데. 오빠는 너무...... 너무 성인이야.”
......
그 성인이 어른이란 뜻이 아니라 공자 맹자같은 성인이냐?
너 대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냐.
“미래를 보는 현자에... 모든 걸 감당하는 성인에... 불법체류자분들이 착취를 당하는 구해주려고 이런 일까지 벌이고...... 오빠. 좀 이기적으로 살면 안 돼? 나 오빠 쫓아가기 버거워.”
“......”
똑똑한 줄 알았는데... 예하야...
얘를 어쩌면 좋니.
좋은 착각이므로 냅두자.
“고생했어.”
뒤에서 안은 채 귀 뒤를 핥았다.
“흐익.”
게임을 시작한다.
[인종차별 기업, 미래]
미래그룹은 한국의 기초노동을 떠받치는 고마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선전포고를...
-우와, 요즘 시대에 진짜 미쳤네
-나치같은 새끼들이네. 국가는 수사안하고 뭐하냐?
-미래그룹 나빠요
그래 신문사가 원래 이렇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저기 속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치공장의 손익계산서]
정말 솔직하게 회계장부를 공개한 기업이 화제다. 80명의 조선족 노동자를 고용한 이 기업은 전원 한국인으로 교체할 경우 적자를 볼 수 밖에 없다. 미래그룹의 인종차별로 부도나게 될 기업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할 수 있......
-솔까 한국인은 그런 지저분한 일 하지 않지
ㄴ 쿵쾅이는 원래 일 안하고 놀기만 해
ㄴ 소추새끼나 가서 뒤져라 일하다 뒤져라이기
김치공장의 손익계산서는 조선족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임금착취를 한다는 거잖아.
돈을 더 주고 정당하게 부려먹어야지 노동착취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공개하는 거야?
뭐가 잘못인지 정말 모르나?
댓글들을 보면 뭐가 문젠지 모르는 게 확실하다.
[각국 사회단체, 미래그룹 보이콧 선언]
중국인 노동자 9000명이 시청 앞 광장에 모여 미래그룹에 대한 규탄시위를 벌였다. 한편 베트남인 단체, 터키인 단체, 태국인 단체 등 한국 내 모든 인구다양성 시민단체 280여개는 공동성명을......
-미래개새끼들
ㄴ형 고소당해 조심해
ㄴㄴ 고소하라해 개새끼들
-솔까 고생하고 사는 사람들 그냥 좀 살게 해 주지
고생하는 사람들 계속 고생하고 살게 하라고?
진짜 인권이 뭔지 모르는 건가.
불매운동이 시작되었지만, 딱히 불매당할 상품을 파는 게 없다.
소비자 상품을 생산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분노한 포크레인의 돌진]
성수동 미래그룹 본사에 포크레인 한대가 돌진해 정문을 뚫고 들어가 내부 기둥을 파괴하다가 붙잡혔다. 피의자는 이번에 미래그룹의 신고로 인해 강제 출국될 위기에 쳐한 가난한 조선족동포 노동자였다. 한편 미래그룹은 건물 붕괴 가능성으로 인해 안전점검을 위해 본사를 한 달 이상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ㅋㅋㅋ 꼴좋닼ㅋㅋㅋ
-정! 의! 구! 현!
-한 달에 한명씩 돌진하면 미래그룹 망하냐?
-야 니들, 솔까 미래그룹이 잘하는 거 아니냐?
ㄴ 잡았다 알바놈
포크레인의 돌진은 위험했다.
포크레인이 삽 달린 손을 이리저리 휘두르니 말릴 수도 없다.
경호팀이 목숨 걸고 올라타 제압하기까지 10분이나 걸렸다.
건물이 봉쇄되는 등 추산 피해가 수십억인데 그 돈을 받을 곳조차 없다.
[농어민 단체, 중소기업 연합회, 하나로 뭉쳤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단합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뭉치고 있다. 미래그룹의 활동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회 전체가 하나 되어 미래그룹을 규탄하고 있다. 한편 의사협회도 함께 연대하기로 하면서 이 사태는 단순히 외인탄압이 아닌...
수많은 외국인단체가 일어서자 그간 쌓인 적들이 다 같이 이때다 하며 뭉쳤다.
세상에 정의는 없다.
절대선인도 없고, 절대악인도 없다.
농어촌엔 적극적으로 노동착취를 하는 악인이 있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 늙어서 일 못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보는 따뜻한 이웃이 된다.
식당, 공장의 외국인 착취는 생활물건을 저렴하게 만들어주니 모든 사람들에게 이득이 된다.
그러하기에 모두가 눈을 감는다.
정치인은 지방표심을 얻기 위해 불체자의 착취를 눈감는다.
눈을 슬쩍 감으면 시골의 수익이 나아지고, 생활물가가 안정되며, 식당의 한 끼가 저렴해진다.
한국에서 착취당하는 불체자는 그럼에도 그게 고국에서 일해서 버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감내하는 것이다.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모든 사람의 사고는 최대한 현명하다.
내가 건드린 것은 거의 전 분야의 바탕에 깔린 시스템이다.
발언권 약한 젊은층의 착취 속에 모두가 조금씩 이득을 얻는 시스템.
눈을 슬쩍 감는 게 이득인 걸 알기에 모두가 미래그룹의 옳은 일을 매도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 체류하는 불법체류자가 많아지고, 외국인 단체가 점차 조직화되고 힘을 얻으며, 나중에 등록되지 않은 2세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힘을 얻게 된 후.
지방자치권을 얻게 되는 것이다.
누구의 악행도 아니고, 누군가의 설계도 아니다.
모두가 최대이익을 추구한 결과가 전체의 최선이 아닐 뿐이다.
사람이 최대한 현명하다는 증거는 하나 더 있다.
몇 주 간 미래펀드에 들어온 자금이 3조원을 넘겼다.
미래그룹을 매도해 현재의 이익을 유지하는 게 유리하니 인터넷에서 매도하지만, 미래그룹에 대해 알아보면서 펀드의 엄청난 수익률을 알게 되어 돈을 맡기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게 최대한 중요하니, 미래그룹을 욕하되 미래그룹에 돈을 맡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래서 고치기 어렵다.
세상엔 절대 악인도, 절대 선인도 없으며, 모든 사람은 처량한 피해자임과 동시에 악랄한 가해자다.
일이병때 괴롭힘 당하며 선임을 저주하던 이가 상병장때 후임을 괴롭힌다.
인턴레지때 인고의 시간을 겪은 이가 전문의 땐 전공의를 괴롭힌다.
게임그래픽 회사에서 인생이 갈리던 사원이 스스로 회사를 차리면 부하직원을 똑같이 갈아 넣는다.
차라리 조승학같은 절대악이 모든 걸 쥐고 있으면 죽이고 빼앗으면 그만일 텐데, 사회엔 선인임과 동시에 악인인 사람들이 서로 괴롭히거나 괴롭힘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다.
“안녕하세요. 모닥불이에요. 충주의 솔밭캠핑장에 놀러왔어요. 요즘 너무 좋은 게 본사에서 방송을 못하니 막 돌아다녀도 되요.”
모닥불이 신나서 방송했다.
-ㅋㅋㅋ 회사가 망하든 말든 난 놀러 다니고 싶다
-언니 힘내요
-울 언니 그런 쓰레기 기업에 있지마요
-우리가 위약금 모아서 언니 계약해지 해주자
-그런데 옳은 일 하는 거잖아
ㄴ넌 신문도 안 보냐? 미래가 왜 나쁜지 몰라?
ㄴ나치니즘 죽어라
“바베큐해서 처묵처묵 하기 전에 뉴스부터 전달할게요. 숙제예요. 이것만 하고 술 마시고 놀 거얌. 얍. 미래그룹에서 인권보호를 위해 천억을 투자하기로 했어요. 외국인 노동자, 혹은 불체자를 위한 자금이에요. 인권침해 혹은 노동급여를 제대로 못 받으신 분은 미래그룹에 신고해주세요. 못 받은 금액에 대한 소송비용을 미래그룹에서 내 드립니다. 법적으로 체류비자가 연장안되면 고국으로 돌아가야겠죠. 저희는 법을 준수해요. 하지만, 이사비용을 내 드립니다. 여러분의 인권을 위해,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위해 우리에게 와 주세요. 못 받은 돈을 받고, 고국에서 사람답게 사세요. 저희는 일관적으로 사람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움직여요.”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2030을 위한 일.
연예인 연습생을 위해, 방송사 작가나 카메라맨을 위해, 인턴레지를 위해, 모든 대졸취업자를 위해, 불체자를 위해.
우리는 착취당하는 이를 위해 돈을 퍼준다.
-믿어요
-언론을 믿지마요. 미래는 옳아요
-제시 오늘 같이 안왔어?
-제시 예뻐! 언제나와?
-미래그룹 힘내라! 전재산 꼴박했다!
ㄴ너어는 진짜 존나 속물이네
ㄴㄴ 매력있어?
ㄴㄴㄴ 어 존나. 오늘밤 만날까?
ㄴㄴㄴㄴ 여자임?
ㄴㄴㄴㄴㄴ 남자임
ㄴㄴㄴㄴㄴㄴ 개꾸르네
최소한 미래홍보 방송에서만큼은 우릴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예하의 슬픔을 좀 위로해준다.
“왜 내가 말하는데 다들 제시만 찾죠? 흥. 제시님이 노래 부릅니다. 두번째 곡 발표예요. 여명.”
“태양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대요. 나의 지금도 가장 어두워요. 하지만 전 하늘을 봐요. 검은 하늘이 검푸르게 파랗게 하얗게 바뀌는 게 보이죠. 여명의 시간이에요.”
부드러운 발라드 곡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예하가 의자에 앉아 읊조리듯 노래한다.
언제나 느끼듯이......
예하는 예쁘다.
- 작가의말
이번챕터는 시작부터 여기까지 힘들었어요
절대 금기, 일반 대중을 건드리는 얘기라 쓰면서도 엄청 무서웠는데...
이걸 써도 되나 이래도 되나 싶었죠.
사실 처음 쓸때부터 이런게 들어가니 글을 최대한 가볍고 멍청한 주인공으로 설정하려 했는데...
매일 선작수 줄어드는걸보며 잘못된 길로 간다는 게 느껴지고...
불안해서 챕터를 빨리 끝내려고 글을 줄이고 줄이다보니 또 연설문의 연계처럼 되서 소설이 아닌게 되버렷
어요 ㅜㅜ
어... 죄송해요 읽으면서 불편한 이야기를 넣었고, 심지어 그게 진실도 아닌 저 혼자의 망상이라...
다음 챕터는 훨씬 재밌고 유쾌한 챕터가 될 거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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