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 벼락부자가 막 퍼줌6
예하에게 무대를 넘기고 내려오자 도윤정이 빠르게 다가왔다.
“사장님.”
“쉿.”
말을 막았다.
“잠깐만 생각을 정리할게요.”
“에... 예.”
도윤정이 눈치를 보다가 카를로스와 은쿠베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둘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예하의 어쿠스틱 기타연주를 들었다.
-서녘 하늘은 붉게 물들고
동녘 하늘은 벌써 밤이야
아침에 태어난 태양이 강에 잠기고
어제 태어난 언니도 강에 떨어져
내일 해를 볼 수 있을까
내게 태양이 허락될까
친구들은 안락한 잎에 자리를 잡았고
마지막 밤
안식의 밤
친구들은 조용히 안식을 준비해
황금빛으로 너울대는 강을 보며
친구들은 저항 없이 평화를 기다려
하지만 난 싫어
태양이 보고 싶어
따스한 태양을 다시 만나고 싶어
날아 갈 거야
동녁으로
날아 갈 거야
어둠으로
날아 갈 거야
추위속으로
모두가 저항없이 받아들이지만
나는
날아 갈 거야
예하의 노래가 세상을 멈췄다.
명곡이다.
음악은 잘 몰라도 듣는 순간 좋은 노래라는 걸 알 수 있다.
편안하고, 포근하고,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
눈을 살짝 내리며 기타를 치는 예하의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간주구간이 끝나고 2절.
-하지만 난 싫어
태양이 보고 싶어
따스한 태양을 다시 만나고 싶어
날아 갈 거야
동녁으로
날아 갈 거야
어둠으로
날아 갈 거야
추위속으로
모두가 저항없이 받아들이지만
나는
날아 갈 거야
어둡지만 새가 없는 곳으로
차갑지만 포근한 곳으로
날아가고 날아가고 날아가면 태양이 저기서 떠오르겠지
힘빠지고 지치고 낙오해도 태양은 거기서 떠오르겠지
날아 갈 거야
동녁으로
날아 갈 거야
어둠으로
날아 갈 거야
추위속으로
볼 수 없을 지라도
숨이 끊길 지라도
날아가는 게 소중한 거야
난 평화로운 안식을 원하지 않아
그러니
날아 갈 거야
욕심을 버리지 못했나.
그래도 멜로디가 워낙 좋으니 쉽게 와닿는다.
왜 하루살이가 주인공인지도 알겠고, 태양이 뭔지도 알겠다.
예하의 따스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가사를 진하게 전달했다.
호흡을 갈무리하는 예하를 보면서 도윤정에게 말했다.
“들키지 않고 탈출할 수 있을까요?”
내 말에 도윤정이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불가능합니다.”
그렇겠지.
한국을 탈출할 때처럼 상대가 대비하지 않을 때 이동하는 건 가능해도 지금은 어렵겠지.
카라카스에서 이동하는 모든 차량을 베네수엘라 정부가 수색할 텐데 그것부터가 문제다.
“일단 최대한 버티도록 하죠. 나중에 들키더라도 최대한 늦게.”
“예.”
도윤정이 빠르게 대답하고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예하는 신곡발표가 끝나고 웃으면서 인사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보고 싶었어요.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진짜 너무 보고 싶고, 노래하고 싶었어요.”
활짝 웃으면서 말하는 데 진심이 느껴진다.
내가 아무리 좋아도, 서로가 아무리 좋아해도, 지하실에 갇혀서 반년 가까이 지내는 건 힘들었을 것이다.
“에... 지금 상황은 저도 잘 뭔지 모르겠고요. 베네수엘라... 에헷 글쎄요. 어딜까요? 음원이요? 등록하지 못했어요. 복잡한 서류절차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그냥 영상 다시보기로 들어주세요. 저도 전 재산 기부하라고요? 아뇨! 전 기부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오빠 먹여 살리기로 했거든요. 에헤헷. 이제 제 책임이 막중해요. 어깨가 무겁네요. 아아. 이것이 가장의 무게인가.”
예하가 생글생글 웃으며 드립을 치고 기타를 퉁퉁거렸다.
“노래 부르고 싶어요. 다음 곡 할게요. 낫 고잉 애니웨이. 가사가 완전 반대인 노래네요. This is why I always wonder I'm a pond full of regrets.”
시를 읊조리듯 편하게 부르는 예하의 노래.
위안과 평화를 준다.
아마 노래를 듣는 많은 이들이 같은 감정을 전달받지 않을까.
내가 뿌리는 돈에서 얻을 만족과 예하의 노래에서 얻을 만족.
어디가 더 클까?
노래겠지.
내가 엄청난 돈. 한국 1년 예산의 50배나 되는 돈을 뿌려도 사람 개개인이 체감하는 만족은 얼마 되지 않을 테고, 분배과정에서 더 많은 혜택을 얻는 이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도 느끼고, 거기서 불만을 얻어 ‘더줘더줘.’ ‘좆같은 세상.’ 이렇게 될 수도 있겠지.
미래블록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전 재산을 기부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고 숨어야 하고.
내가 왜 이러나 싶다.
미래블록이 없다면?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경제시스템 가동중지.
3년 연속 주식하락과 길고 긴 침체, 8년 연속 부동산 가격 하락, 수많은 국가의 시스템 붕괴와 세계 경제의 달러예속.
그렇지만 이건 일어나지 않은 일.
나만 알고 있는 미래의 비극을 방지해봤자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폭등하는 주식 성장세를 멈춰 세운 악인이라며 욕하는 이도 많다.
식량가격 폭등과 원자재 가격 폭등은 화폐시스템의 문제로 일어났으며 뒤이어 일어날 스테그플레이션의 시작이지만, 각국의 전문가들은 그조차 미래블록 때문으로 엎어 씌우고 있으며, 그 거짓말을 믿는 이들이 넘쳐난다.
내가 왜 이러나 싶다.
그냥.
포기하면.
편한데.
폭탄이 쏟아져 지하실 방공호를 뚫고, 예하가 죽는다면. 그렇다면.
“오빠. ...... 오빠?”
“어. 응?”
“내가 준비한 건 다 했는데. 나 더할까? 오빠 할 말 있어? 방송 계속 해도 돼? 계속 하고 싶은 뎅.”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는 예하의 표정에서 생기가 넘쳐난다.
역시 방송 체질.
나 때문에 지하실에 갇혀 고생했구나.
“어. 나 멘트 좀 하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카메라 너머엔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어...... 뉴스를 보니까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타격하려고 하네. 왜 베네수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공격하든 말든 상관없어.
코드 전문가들은 알고 있을 거야. 미래블록의 코드는 전부 입력되어 있고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전환 돼. 이건 누구도 해킹할 수 없어. 1초 만에 전 세계 모든 미래블록을 조작할 능력이 되지 않는 한 해킹이 불가능해. 그러니 포기해.
내가 지금까지 마스터 코드를 갖고 있던 이유는 딱 하나야. 각국 화폐를 미래블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부정한 청구가 이뤄지는 걸 막기 위해서야. 그런데 내가 공격받고, 죽는다? 그러면 곧장 마스터코드를 지울게. 그 즉시 은행에서 미래블록을 발행하는 게 불가능해 진다고. 결국 미국이 뭘 하든 미래가 정해져 있는 거야. 그러니 포기하고 받아들여.
코로나를 퇴치 못해서 끝내 함께 가듯 미래블록이라는 공정한 화폐시스템을 받아들이고 공존하는 길을 찾도록 해. 이건 정해진 미래니까. 미래블록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약점, 주인인 내가 마음껏 발행할 수 있다는 약점이 사라진 이상, 미래블록은 완벽해. 그러니 이제 싸움을 포기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해. 미국은 충분히 강하고, 달러를 통해 많이 벌어왔으니 이제 공평해져도 되잖아.”
연설을 끝냈다.
댓글창은 또 다시 지저분해졌다.
역시 예하와 나의 영향력은 방향이 다르다.
“예하야, 방송 하려면 해. 난 끝.”
“어? 어어. 아니. 나도 오늘은 이만. 다음에 다시 할래. 오빠가 이제 좋아질 거라고 했으니까.”
현재 사정이 위험한 걸 아는 예하가 자제했다.
“그래. 여러분 오늘 방송 끝냅니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세요. 열심히 고민해보면 부자 될 수 있는 수많은 길이 보일 거에요. 끝.”
대충 생각나는 대로 멘트를 하고 무대 밖으로 나와서 송출 중지 버튼을 눌렀다.
조명과 메타버스카메라가 꺼졌고, 세상이 조용해졌다.
원래 조용하긴 했는데, 세상과의 연결이 꺼졌다.
“오빠... 괜찮은 거 맞지?”
“어. 도사장님한테 가자.”
호출 버튼을 누르고 방공호 입구로 가니 두꺼운 천장이 열리며 계단이 내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도윤정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중인듯 옷가지와 물건들을 잔뜩 들고 있었다.
“은신 준비 중인가요?”
“예. 베네수엘라 방위군이 부촌 전체를 수색한다고 합니다. 은쿠베의 서버실에 함께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은 카를로스 혼자 하고요. 군인들이 들어와 수색하더라도 카를로스 혼자 사는 모습만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베네수엘라 군에게 들키더라도 생명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도윤정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국에 적대하는 베네수엘라인지라, 내가 잡히더라도 귀빈 대접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대신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재산 일부를 강제로 기부하게 되겠지.
베네수엘라 정부도 이 정도 계산은 할 수 있을 테니 날 확보하려고 철저히 수색할 테고.
“문제는 미군입니다. 융단폭격을 하고 수색하면 숨을 수 없습니다. 베네수엘라를 북한급 적성국으로 취급하니 실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미군은 어떻게 대응하실 건가요?”
“미국은......”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어떻게 일본을 통일한지 아세요?”
“에?”
도윤정은 갑자기 뭔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하의 표정도 비슷했다.
“오다가 일본의 1/3정도 점령했을 때 다케다 라는 적의 공격을 받아 무참히 깨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창 공격해오던 다케다군이 물러났습니다. 왜냐면 수장인 다케다 신겐이 갑자기 죽었거든요. 암살당한 게 아니라 그냥 자연사. 수명 아웃. 비슷한 일이 또 있었어요. 오다의 세력은 우에스기 군의 공격을 받아 거침없이 박살납니다. 이때도 비슷했어요. 거침없이 밀고 오던 우에스기군이 갑자기 물러났습니다. 왜냐. 수장인 우에스기 겐신이 죽었거든요. 암살이나 전투가 아닌 그냥. 그냥 죽어서 부대가 물러났고 후계자는 항복했습니다.”
내 뜬금없는 말에 도윤정이 억지로 의미를 찾아냈다.
“에......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거죠?”
“네. 솔직히 전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썼고, 세상에 최대한 설명했고, 많은 선물을 안겼어요. 이만하면 됐죠. 개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고 생각해요.”
회귀를 했다.
큰돈을 벌었다.
한국 정부의 1년 예산의 50배나 되는 돈을 벌었고.
그 돈 전부를 기부한다.
이 이상 어떡하라고.
“예. 이해합니다. 훌륭하시고요. 모두가 마음 깊이 감복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갑자기 도윤정이 충성맹세를 했다.
“순리대로 흐른다면...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공격할 리 없겠죠. 순리대로 간다면 베네수엘라가 절 억류할 리 없을 테고요.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 정치적 부담을 안아가며 절 공격할 리 없습니다. 미국이 미친 짓을 하면...... 그래서 제가 죽으면...... 그건 순교가 되겠네요. 저는 신이 되겠죠. 죽어버린 신. 커트 코베인처럼.”
“아. 그런 일은 절대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괜찮아요. 포기하니까 마음이 편하네요. 전 재산도 기부하기로 했고, 미래블록도 내려놨으니 어깨가 좀 가벼워졌네요. 은신 잘 하시고, 혹시나 베네수엘라 군부나 미군이 고문하려고 하면 그냥 말해요. 절 쉽게 죽이진 못할 거에요.”
“그런 일 절대 없을 겁니다.”
“아뇨. 괜찮아요. 제가 죽어도 인수형이 알아서 뒷처리 할 거예요. 그러니 절 죽이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최대한 들키지 말아보죠.”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방송은 세계에 충격을 줬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누군가는 날 찾으려 하고, 누군가는 날 욕하고, 누군가는 날 칭찬하고, 누군가는 내가 기부할 혜택을 선점하려 하고, 누군가는 돈 벌 구석을 찾아 고민했다.
미래블록의 최대 악재, ‘주인’이 사라진 순간 미래블록은 완벽한 블록체인 코인이 되었다.
아직 달러나 자국 화폐를 들고 있던 이들이 너도나도 미래블록을 향해 달려들었다.
구들장 밑에 깔아둔 현금을 미래블록으로 바꾸고, 집을 팔아 미래블록으로 바꾸고, 주식을 팔아 현금으로 바꿔 미래블록으로 바꾼다.
이 날 하루 미래블록 발행량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반대로 세계 모든 주식이 폭락했는데 낙폭은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진 그날보다 컸다.
- 작가의말
지각!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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