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백제대학병원3
코인은 3년 후 100배 먹을 수 있다.
비트코인을 저점에서 5조원을 투입해 스무 배 상승 후 뒤늦게 10배씩 뛰는 알트로 옮기면 간단하다.
주식은 3년 후까지 20배 수익을 예상하고 있다.
코로나 때 인버스에 넣었다가 바닥에서 주우면 된다.
펀드에 집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펀드 운용자금이 100조가 되면 20배 수익 중 절반을 수수료로 받게 된다.
기대 수익만 1000조.
운용자금이 1000조라면 기대수익 1경. 어휴.
3년 후 내 재산은 최소 1500조를 넘기게 된다.
그래서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쓰며 살았다.
귀찮은 일은 돈으로 해결하고.
그런데 병원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
1500조를 다 퍼부어도 고칠 자신이 없다.
시끌벅적한 본관 접수처를 응시했다.
저마다 다른 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재래시장처럼 몰려있다.
각자 다른 병원균이 섞이고 섞인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지저분한 공간에 저마다 다른 이유로 콜록대며 한 시간씩 기다린다.
이 풍경은.
20년 후에도 똑같다.
20년 후에도 환자는 한 시간씩 기다리고.
20년 후에도 간호사는 뛰어다니고.
20년 후에도 의사는 피곤에 쩐 얼굴을 하고.
20년 후에도
의사협회는
그대로다.
내가 경험한 미래는 그렇다.
병원은 돈으로 뜯어 고칠 수 없다.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예하야.”
“어.”
“내가 돈이 아주 많거든. 이걸 어떻게 쓸까?”
“오빠 하고픈 대로 써.”
예하가 가볍게 기대면서 예쁜 소리를 한다.
“그건 아는데 어떤 방향으로 쓸지 물어보고 싶어. 내가 편하기 위해 쓴다. 아니면 주위사람을 위해 쓴다. 아니면 한국을 위해 쓴다.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데 쓴다. 예하 너라면 어떻게 쓰고 싶어?”
“세상을 바꾼다면... 멋있을 것 같아.”
그런 건가.
“먼저 오빠 편한데 쓰세요. 그리고 남으면 주위사람을 위해 쓰고. 그래도 남으면 한국을 위해 쓰고, 그래도 남으면 세계를 위해. 다들 가까운 사람부터 챙기잖아.”
어쩌면 당연한 질문을 한 것 같다.
“돈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바꾸지 못 할 수도 있어. 얻는 것 없이, 골치 아프고 힘들고 오래 싸워야 할 수도 있고.”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길고 긴 계획이 반드시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잖아.”
... 그래.
그게 맞지.
“세상 좀 고쳐볼까. 돈 좀 깨지겠지만.”
많이 깨질 테고 오래 걸릴 테고 온갖 잡것이 방해하겠지만.
“오빠 하고 싶으면 해. 난 응원할게.”
예쁜 예하의 응원을 받았으니 해 볼까나.
미래그룹 BJ제시는 굉장히 유명하다.
특히 백제그룹 관계자는 어쩔 수 없이 알 수밖에 없다.
백제를 무너뜨린 소식을 전한 게 제시였으니까.
정한영도, 한적찬도 당연히 예하를 알아봤다.
일단 예하의 미모에 놀랐고, 그런 예하에게 남친이 있다는 데 놀랐고, 미래그룹 사장인 채인수보다 발언권이 앞서는 남자에게 놀랐다.
둘은 예하가 기대고 있는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차려자세를 취했다.
“따라와봐요.”
병원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채인수는 내가 무언가 고민한다는 걸 알고 조용히 따르기만 했다.
그런 태도는 의사들에게 더 큰 혼란을 주었다.
‘그 음모론이 사실인가.’
궁금해 하거나 말거나 커피가 나오자 본론을 꺼냈다.
“홍의사님은 괴롭힘 때문에 자살한 거죠?”
“예. 말도 안 되는 업무강도 때문에!”
정한영의 얼굴이 대뜸 붉어지며 분개한 소리를 낸다.
“100일 당직 때문에 괴로워했고?”
“예.”
“그럼 정의사님은 100일 당직 안 섰어요?”
“저도 경험했죠.”
“그게 죽을 만큼 힘든 가요?”
“힘들죠. 남자로 버티기 힘든 걸 여자애한테 똑같이 적용시켰으니. 잠깐씩 쪽잠 자는 것도 숙소 갈 시간이 없어서 남자들 틈에서 자야 했고.”
“네. 네. 그럼 정의사님은 100일 당직 다음 해에 후배들에게 안 시켰나요?”
“네?”
“그것 때문에 홍의사님이 자살로 내몰렸다면서요. 그렇게 나쁜 걸 알았으면서 진작에 왜 안 없앴죠?”
“제가 혼자 없앨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알고도 침묵했네요. 정의사님. 지난해 지지난 해 매년 똑같이 괴롭힘이 있었는데 지켜본 거네요. 그래놓고 홍의사님이 죽자 화내는 거고.”
얼굴이 빨개진 정한영은 할 말이 많은지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잠시 그를 보다가 치프 한적찬을 봤다.
“한 의사님은 밑의 의사들을 관리하는 분이죠?”
“에... 그게... 일단 직위는 그런데 주로 3년차들에게 지시하기만...”
“그럼 홍의사님이 자살로 내몰린 데에 전혀 책임이 없어요? 밑의 저연차 의사들이 괴롭힌 것과 전혀 상관없다는 거예요?”
“아뇨. 그게.. 저...”
“두 분께 묻죠. 인턴과 레지던트 괴롭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요? 냅둬야겠어요? 고쳐야겠어요?”
이렇게 쉽게 말했는데 못 알아 듣겠어?
초딩도 알아듣겠다.
그런데도 대답이 없다.
둘 다 침묵.
바꾸기 싫어서. 혹은 바꿀 수 없어서.
“전 홍의사님 사건이 안타깝고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았으면 해요. 홍의사님 가족에게 사과하고 합의금을 주는 걸로 끝내는 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만들고 싶어요. 시스템 자체를 바꾸겠다고요. 두 분은 다른가요? 홍의사와 개인적 친분으로 화낼 뿐 다른 이들이 똑같이 겪을 괴로움은 남겨둘 겁니까? 아니면 치프의 입장에서 마냥 발뺌하고 싶습니까?”
대답 안하면 계속 물어본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됩니다.”
“예... 있어선 안 될 일이라 봅니다.”
원하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만들어보죠. 돈은 무한정 투입할겁니다.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침묵.
몰라서 닥치는 걸까?
아니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아니면 총대매기 싫다거나.
“일단, 쉬운 것부터 하죠. 두 분께서 의사들의 노동시간을 조사해줄 수 있나요? 인턴이 바닥이죠? 인턴의 근무시간. 레지 1년차의 근무시간, 2,3,4년차 각자의 근무시간, 그 위쪽 년차에 따른 근무시간. 이걸 거짓 없이 조사해 줄 수 있나요?”
“네? 네.”
“물론이죠.”
“1주일 드릴게요. 따로 부탁드리는 거니까 천만 원씩 드릴게요. 절대 거짓 없이 조사해주세요. 그리고 채형.”
“어.”
“따로 흥신소랑 간호사나 여기저기에 같은 조사 넣어주세요. 다른 병원들도. 표본이 많아야 정확한 답이 나오겠죠.”
“그래. 알았어.”
의사들 앞에서 같은 내용을 따로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니들 못 믿는다고 면전에서 말한 거다.
이러면 제대로 하겠지.
1주일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미래그룹 사람들이 떠난 후 두 의사는 덩그러니 남았다.
“선배님.”
한적찬과 정한용은 두 살 차이 선후배다. 백제대학 6년, 인턴 레지 5년을 함께 보냈으니 부모와 붙어 지낸 시간만큼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정한용이 레지일 때부터 한적찬을 관리했으니 실제로는 그가 거의 키운 격이다.
“왜?”
“이거.... 자칫 잘못하면 우리 쫓겨나지 않을까요?”
“맞아. 저 사람들도 알고 있고. 그래서 추가로 조사하겠다는 거잖아. 우리 못 믿어서.”
“그럼... 그냥 무시하면 어떻습니까?”
“...... 정경이네 집에 100억을 진짜로 줄까?”
“그... 주겠죠? 병원장님께 지시해놓고 나 몰라라 할리가......”
“그럼 돕는다.”
“아니 이거 잘못 찍히면 우리 아예 쫓겨나요.”
“그래도 의지는 보이잖아. 나쁜 일도 아니고.”
“그래도......”
“됐어. 난 할 거야. 어차피 대충 다 알잖아. 그냥 인터넷만 쳐봐도 다 나오는 건데.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정경이같은 희생자가 다시 나오면 안 돼.”
“...... 전 과장님께 말할 겁니다.”
“그래. 내가 널 어떻게 막냐.”
후우.
둘은 식어버린 커피잔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한숨 쉬며 흩어졌다.
일주일 후 자료가 왔다.
인턴의 근무시간은 병원마다, 분과마다 다르지만 평균 주7일 18시간씩 근무한다.
레지 1년차는 평균 주7일 근무에 20시간.
레지 2년차는 평균 주6일 근무에 15시간.
이후 연차에 따라 점점 줄어들지만 하루 12시간은 넘긴다.
과장급 교수마저도 주 5일 근무에 일평균 12시간 이상 일한다.
야간 당직 때문에 근무시간이 초과되는 것이다.
백제 병원의 자료도 갈렸다.
정한영의 경우 따로 수집한 자료와 거의 비슷한 통계가 왔고, 한적찬의 경우 모든 의사가 주5일 40시간 표준근무를 하고 있다 적어왔다.
대놓고 반기를 드네. 한적찬 이 새끼.
훗날 훌륭한 정치의사가 될 자질이 보인다.
골프 연습도 시작했냐.
취합한 자료를 보며 채인수가 물었다.
“적이 누군지 알지?”
“의사협회죠.”
한적찬은 의사협회에 붙었다.
그쪽이 우리보다 쎄다는 걸 아는 현명한 줄서기다.
“그래. 이길 수 없는 것도 알 테고.”
“못 바꾸겠죠.”
“흐음. 그냥 신경 안 썼으면 하는데.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채인수는 의사협회와 날을 세우는 걸 꺼려했다.
“돈 남아돌아서 하는 거예요. 취미활동이죠. 사람이 돈만 벌고 안 쓰면 바보 되요.”
“하하. 그래. 마음대로 해봐. 어차피 사람이 필요하면 더 고용하지 뭐.”
“네. 에... 일단 정한영같은 사람을 더 모아야겠죠? 뜻을 같이할 사람이나 단체를 모아주세요.”
“그래.”
큰 틀에서 방향만 잡고 헤어졌다.
그날 저녁, 예하의 방송시간.
“오늘의 늬우스! 백제광업과 백제제련이 패키지로 팔렸답니다. 청성그룹에서 저희 지분을 1조 8천억원에 블록딜 해 가져갔어요. 짝짝짝.”
-헐. 수익률 미쳤다
-아놔 미래펀드에 돈 못 넣었는데
-저게 제대로 번거냐? 멀쩡한 기업 흔들어서 해체해서 판 건데 수사해야지
ㄴ 수사했고요
ㄴㄴ 범죄 저지르던 회사 고쳐서 멀쩡하게 만든 거고요
두개 회사를 넘겼다.
내가 갖고 있는 두 회사의 지분은 22%. 그런데 순환구조의 자사 지분을 소각하니 지분률이 32%로 올랐다.
이를 노리고 자사주 소각을 한 거지.
“미래자산운용의 평가로는 4천억원을 투입해 1조8천억원을 벌었다고 나와요. 부럽다. 미래펀드에 투자하신 분들 돈 많이 벌었네요. 보너스요? 힝. 저한테 보너스 없어요. 대신 방송 수익은 모두 방송홍보팀에게 나눠 준대요! 짝짝짝. 그러니 저희 방송 많이 봐주세요오.
그럼 다음 늬우스. 세계83개국에 퓨처그룹 현지 법인을 세운대요. 미래가 아니라 퓨처. 아일랜드 본사 직속이예요. 거기 일할 분을 뽑는대요. 연봉 기본 4만달러에 외국 근무의 경우 생활비 4만달러가 추가된대요. 채용에 관해선 홈페이지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조해 주세요.”
해외법인의 1년 유지비용 20억.
100개국에 법인을 만들면 매년 2000억 원이 필요하다.
껌값이네.
각국에 지사를 설립해 시장조사를 하고 퓨처자산운용을 광고해 자금을 모으고, 폰로이어를 홍보하고, 각국 언어로 유투브 채널을 번역하고 운영해 광고를 한다.
할 일 많다.
-그런데 해외법인을 왜 한국에서 뽑아?
ㄴ 한국에서 뽑으면 좋지 고용창출
ㄴㄴ 아니 본사가 아일랜드라며 그런데 왜 한국에서 뽑냐고?
ㄴㄴㄴ 그걸 믿냐? 딱바도 놋네 넷슨같은 구조네 본사만 외국, 정작 일하고 돈 버는 건 한국
ㄴㄴㄴㄴ 이건 범죄 아니냐? 탈세잖아
ㄴㄴㄴㄴㄴ 아니니까 대놓고 저러지
-국뽕러들은 욕하겠지만 세금 생각하면 저게 이익이지
-솔까말 해외에 본사 두는 한국 기업 욕할 게 아니라 한국에 본사를 두기 싫게 하는 규제가 문제 아니냐
ㄴ 규제를 풀어야지
-세금 더 걷을 생각밖에 없는데 머
예하의 발언 하나하나에 토론이 터져 나온다.
물론 예쁘다, 퍄퍄퍄 ㅗㅜㅑ같은 뻘글이 백배 많지만.
“그리고 다음 뉴스입니다. 백제대학병원에서 발생한 자살사건에 대한 보고예요. 조사결과 인터넷에서 떠돌던 외과의 100일 당직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00일간 병원밖에 나가지 못하고 수면시간 없이 환자만 돌보게 하는 특유의 태움 문화가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 슬픈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저희 미래 그룹은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재발방지 하겠습니다.”
재발 방지 방법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다.
“인턴의 수를 지금보다 네 배 늘리고, 레지던트의 수를 여섯배 늘려서 모든 수련의가 주5일 40시간 근무를 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과중한 업무에 치어 사망하는 일이 없어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모든 채용공고는 미래그룹 홈페이지에 떠 있습니다.”
돈을 퍼부어 사람을 뽑는다.
인간의 존엄과 워라벨을 지켜질 수 있도록 돈을 퍼부어 드리겠습니다.
예하의 방송과 함께 의사협회에 공문을 보냈고, 인재채용 광고도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의사협회에서 채용 불허 공문이 날아왔다.
정해진 수순.
우린 선전포고했고, 상대가 받아들였다.
전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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