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젊으니까 아프다2
“응? 피해가 젊은 층에 부과된다니? 이해 안 돼.”
“에... 또 설명해도 될까? 예하 너 과부화 걸릴 거 같은데.”
“나 과부 만들지 마앙.”
“......”
“미안. 농담이었어. 정색하기는. 치. 못 됐어.”
“어. 미안.”
“내가 더 미안.”
예하가 푸흡 웃었다.
그거면 됐다.
“10년 전 양적완화가 시작되었어. 돈을 찍어서 뿌렸지.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어. 봐봐. 이번에 미국이 반도체 설비에 500조원을 투자한다고 했어. 찍어낸 달라로 말이야. 미국은 달러를 찍는 약간의 노력으로 500조원 가치의 설비를 얻게 돼. 그런데 실제로 이 가치는 어디선가 나와야 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금술은 아직 불가능 하니까. 그럼 등가교환할 가치는 어디서 올까?”
“누군데 그래?”
“국가 전체에 달러 1000이 있고, 밀가루가 1000이 있어. 달러 1로 밀가루 1을 살 수 있어. 그런데 정부가 1000의 달러를 찍으면 어떻게 될까?”
“음... 가격이 두 배 오르겠네. 밀가루 1을 달러 2로 사야겠네.”
“맞아. 정확히는 물가가 두 배가 되는 게 아니라 화폐의 가치가 절반으로 하락하는 거야. 이번에 미국은 500조 설비를 사는 달러를 찍었어. 이러면 모두가 가진 달러가치가 조금씩 하락해. 손오공이 원기옥 모으듯 지구인 모두가 조금씩 자기 돈을 내서 500조의 설비를 미국에게 준 격이 되는 거야.”
“손오공? 원기옥? 그거 뭐야? 무서워.”
“몰라? 에휴. 넘을 수 없는 세대차이구만.”
놀렸다.
“으휴 틀딱냄새.”
졌다. 제길.
좌절하고 있는데 예하가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그러면 똑같이 내는 게 아니라 돈 많은 사람이 더 손해 보는 거잖아.”
“천잰데?”
“으후후후후후. 내가 바보로 보여도 이 정도라구.”
아냐 너 똑똑해. 회귀한 나보다 더 똑똑해. 대부분의 사람이 나보다 똑똑하겠지만.
“그런데 양적완화로 찍어낸 돈은 주로 증시로 들어가. 지금 미국은 매달 120조원의 돈을 회사채 사는데 쓰고 있어. 미국의 위험한 회사를 살리는데 돈을 쓰는 거지. 일본도, 유럽도 마찬가지고. 각국의 양적완화는 대부분 주식으로 들어가고 국가가 찍어낸 돈만큼 주식 가격이 올라. 이게 지난 10년간의 세계 흐름이야. 정확히는 회사의 가치가 오르는 게 아니라, 돈을 찍어내는 만큼 돈의 가치가 하락해 상대적으로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유니크들의 가치가 오른 거지.”
“어. 그런데?”
“이것만 본다면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손해를 보고 주식이나 부동산에 전재산을 두고 있던 사람은 이득을 봤어. 돈 없는 젊은이는 아무것도 아니지. 이해돼?”
“어케이.”
“양적완화로 인해 각국의 부채비율이 올라갔어. 이 상태에서 금리를 올리면 어떻게 된다고?”
“망해! 금리 올리면 큰일나!”
예하가 신나게 말했다.
이해되는 말이 나오니 기분 좋은 듯 했다.
“맞아. 그래서 각국은 금리를 절대 올릴 수 없어. 수정자본주의의 기본인 시장조절기능이 마비된 거야. 현재 일본은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마이너스 금리고, 유로도 이제는 마이너스 금리에 들어왔어.”
“오케이. 그런데 젊은층과 연결되지 않거든요?”
“기다려보세요. 거 사람 참 성급하시네.”
“넹. 치.”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예하가 캡슐커피를 추가로 탔다.
“마이너스 금리. 돈을 빌려서 무슨 짓을 하든 이자보다 수익이 커. 예하 너라면 어떡할래?”
“돈을 빌려서 뭐라도 해야죠.”
“정답. 그래서 다들 돈을 빌려서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에 투자를 했어. 이게 지난 10년간 양적완화 시대에 전 세계 자금의 흐름이야. 세계 각국의 가계부채가 증가했고, 과감하게 빚을 늘린 사람들이 부자가 되었지.”
“어.”
“돈을 빌려서 투자를 해. 투자이익으로 추가 대출을 해서 투자를 또 해. 이런식으로 대출을 한없이 늘릴 수 있어. 정문우 사장한테 맡긴 미래부동산은 최대 92배의 갭투자를 했고 엄청난 돈을 벌었어. 양적완화의 시대엔 빚을 늘리고 많이 투자할수록 많이 벌게 되어 있어.
이런 갭투자를 막기 위해선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몇 몇 국가는 이미 부채가 임계점을 넘어서 도저히 금리를 올릴 수 없어. 양적완화가 시작된 순간 돈을 빌려 투자하고 그 돈으로 추가 투자하는 갭투자를 막는 게 불가능해져. 이건 서프 사태 이상의 버블을 필연적으로 불러오는데 국가에선 제지할 방도를 잃어버렸어.”
“넵.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적은 사람. 누가 유리할까?”
“돈이 많은 사람이 많이 빌릴 수 있겠죠.”
“그래. 그럼 노년층과 젊은층 중 누가 유리할까?”
“... 노년층.”
“젊은 층은 돈이 없어. 부모 돈이 늘면 좋지만 부모님도 가난하다면 답이 없지. 아주 간단한 통계가 있어. 개인의 수익은 근로소득과 금융수익을 합치거든. 경상수지에 무역수지와 금융수지를 합치는 것처럼 말이야. 근로소득은 개처럼 갈려서 받는 월급이고 금융수익은 은행이자나 주식 배당, 건물 월세 같은 거야. 젊은 층의 수익은 대부분 근로소득이고, 기반을 잡은 어른들의 수익은 대부분 금융수익이지. 그런데 지난 10년간 둘의 관계가 어땠을까?”
“어... 금융 쪽이 컸겠네.”
“맞아. 현재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의 고점을 회복했어. 아베노믹스 이후로 주가와 부동산이 엄청나게 많이 올랐지. 그런데 지난 10년간 근로소득은 오히려 줄었어. 모든 수익이 금융에 쏠렸다는 뜻이지. 나라의 부동산과 주가는 계속 오르는데 개처럼 갈린 노동자의 월급은 줄어들었다고.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두 비슷해. 지난 10년간 근로임금은 비슷한데 금융수익은 꾸준히 늘어났어. 세상의 상품엔 한계가 있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 비슷하니 임금이 마음껏 오를 순 없지. 하지만 금융쪽만 무한증식해 버린 거야.”
“어... 그것도 양적완화의 폐해야?”
“어. 일단 가장 큰 문제라면 정치인이지. 세금을 모아서 자기 뒷주머니에 챙기려고 하면 국민의 저항이 심해. 그런데 돈을 찍어서 이상한 사업을 벌여서 자기 뒷주머니에 꽂는 건 국민의 저항이 약해. 내 돈이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막 쓰게 되지. 막 쓴 돈은 결국 빚이 되어 사람들의 목을 조이고 있고.
둘째는 찍어낸 돈이 금융에 쏠린다는 거야. 부의 분배가 모두에게 가는 게 아니라 부자에게 몰린다는 뜻이지. 양적완화를 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져.
셋째. 양적완화는 반드시 갭투자, 대출투자를 불러오고 이는 빚으로 빚을 쌓는 엄청난 버블을 불러와. 게다가 버블을 꺼트릴 방법이 없어.
넷째. 빚을 갚든 버블이 폭발하든 그 여파는 모두가 함께 짊어져. 그간 쌓아둔 것이 적은 가난한 계층일수록 더욱 큰 영향을 받지. 즉, 가난한 사람들은 양적완화의 이득을 얻지 못한 채 문제점만 떠안게 되는 거야. 지금 근로소득이 줄어드는 걸 감내하는 젊은층이 나중에 무너진 사회를 떠안게 되는 거야.”
“어...... 나빴다. 끝?”
“어? 어.”
“음.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운동할까?”
지겨웠구나 너.
“그래.”
예하와 나란히 앉아 요가를 했다.
예하가 곁에서 세세하게 자세를 수정해주며 잔근육까지 부하가 걸리게 도와줬다.
커플요가도 좋고.
세계 최고의 부자든 뭐든 여자와 접촉하는 건 항상 기분이 좋다.
예하가 워낙 훌륭해 다른 여자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좋고.
다음날 지하실 철문이 열렸다.
도윤정과 남자 둘이 내려와 신선한 식재료를 넣어줬고, 쓰레기 봉투와 남은 식재료를 올렸다.
“커피 한 잔 하고 가시죠.”
“그래요.”
도윤정과 남자 둘과 마주 앉았다.
“은쿠베라고 불러 주십시오. 에티오피아 출신입니다.”
도윤정이 통역을 해 줬다.
키 크고 아랍계가 섞인 흑형.
“카를로스입니다. 가이아나 출신이죠.”
스페인 사람에서 약간 검은 피부가 섞인 모습.
“불편하지 않으세요? 은신 생활인데.”
내 질문에 둘이 손사레를 쳤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년간 1억 달러를 받기로 했는데요. 일도 편하고 아무 문제없습니다.”
1년 호위비용 1200억.
은쿠베는 건물 내에서 머무르며 전체적인 보안을 담당하고 카를로스는 식료품을 주문하고 외부에서 물건 받는 걸 담당한다.
둘 다 PMC 용병 출신으로 미래경호 전 사장인 구형재와 함께한 전우였다.
도윤정도 PMC에서 3년 정도 함께 생활한 전우고.
그때의 인연으로 미래경호에 들어왔다가 이번 일을 함께하게 되었다.
“그래도 욕심나지 않겠어요? 앞으로 미국에서 현상금을 걸 겁니다. 받기로 한 돈의 수십배를 걸 수도 있어요. 그래도 흔들리지 않겠어요? 혹시 조금이라도 부족하다 싶으면 언제든 말씀 하세요. 더 드릴게요.”
제대로 숨으면 찾을 수 없다.
미국조차도 마찬가지다.
911테러로 눈이 뒤집혀진 미국이 빈 라덴을 죽이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내가 작정하고 숨었으니 미국이 찾을 길은 없다.
내부 배신자만 없다면 말이다.
이들이 배신하고 신고하면 끝이다.
내 질문에 은쿠베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을 믿지 않는다. 저희 용병들 모두 같은 입장입니다. 대신 돈을 믿고, 복수를 믿습니다. 저와 카를로스가 도사장의 부름을 받은 건 가족이 많아서일 겁니다. 내 가족과 친척이 쉰 명이 넘고, 카를로스가 챙기는 가족도 서른이 넘습니다. 운 좋게도 우리 둘 다 가정적이라 아내와의 사이도 좋고 아이들도 사랑하죠. 그리고 그 모든 이를 도사장 몰래 숨기는 건 불가능 합니다. 도사장이 내 가족을 감시하는 한 내가 배신할 일은 없을 겁니다. 미래경호가 미국을 이길 순 없어도 내 가족을 몰살시킬 정도는 되니까요.”
은쿠베는 무시무시한 말을 웃으면서 했고, 도윤정은 그대로 통역해줬다.
날 배신하면 가족친척이 몰살당한다.
배신하지 않으면 충분한 돈을 받는다.
돈을 믿고, 복수를 믿는다.
새삼 도윤정이 얼마나 세심하게 은신루트를 짰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용병세계에선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외부에서 보기엔 인종이 같고 언어가 완벽한 카를로스만 보일 것이다.
그마저도 외출이 거의 없고, 전화로 식료품만 정기적으로 주문하는 한량일 테고.
세계는 나를 찾을 수 없다.
“도사장님만 믿을게요.”
“믿고 맡겨 주세요.”
“그리고요. 저랑 예하랑 가끔 햇빛을 보러 나가는 건 안 되나요?”
내 질문에 도윤정이 은쿠베에게 통역을 했다.
“건물 밖으로 나가는 건 절대 안 됩니다. 건물 내부도... 되도록 참았으면 합니다. 먼지형 도청장치 아시죠? 5층에 하나 붙어 있던데 일부러 제거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세계에선 이미 철저한 수색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칫 내부스캔을 해서 다섯명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꼬리가 밟힐 수도 있습니다.”
수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도청장치가 작동되는지 조차 확인치 않는다고 한다.
이럴 때 돌아다니면 민폐다.
“예. 지하실에만 조용히 있을게요.”
“심심하시면 가끔 저희와 술이나 한잔 하죠. 제대로 된 가이아나 매운 갈비찜을 준비해보죠.”
카를로스의 느긋한 말에 웃으며 승낙했다.
“그래요. 가끔 지하에서 마시죠. 생활하는데 문제는 없죠?”
“식재료 구하기가 좀 어렵네요. 베네수엘라가 아예 무너져서 말이죠.”
“그 정도로 힘든가요?”
“전 국민이 기아상태입니다. 굶주리다 못해 반려동물인 토끼를 먹고 있으며 빈민가에선 굶어죽은 시체를 누가 먹고 뼈만 남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다 같이 굶주리니 신생아 몸무게가 평균 2kg이 안 되고, 성인 평균 몸무게가 30kg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인세의 지옥.
다 같이 굶어 다 같이 다이어트 하는 국가.
현재 베네수엘라의 상황이다.
- 작가의말
양적완화 이야기... 아직 멀음..... 어쩌지......
미국이 테이퍼링을 시작해서 주가가 떨어지는거 같은데, 일본은 어떻게 할지 궁금하네요. 일본은 테이퍼링이 불가능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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