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화폐 시스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만 알게 되도 기가차서 말이 안 나올 거야. 미군은 오바마 대통령 때 이미 철군이 결정되었어. 2013년에 평화협상을 시작했고 2014년에 전쟁 종료를 선언했고, 2016년까지 모두 철군하기로 합의했지. 그런데 2015년 돌연 철군이 보류되었어.”
“어... 왜?”
“전쟁은 공화당 부시가 일으켰거든. 그런데 민주당 오바마가 패전의 멍에를 쓰는 게 기분 나빴던 거야. 그래서 철군이 보류되어 전쟁과 테러가 지속되었지. 체면 때문에 전쟁이 길어졌고, 정당의 이익으로 질질 끄는 사이에 죄 없는 미군이 테러에 숨진 거야.”
“에... 설마.”
“미국에선 공식적으로 다양한 변명을 내놨는데 이게 가장 유력해. 솔직히 이것 외엔 이유가 없거든. 그 다음 대통령 트럼프도 똑같아. 주한미군 군비 분배나 크루드족 배신 등 국방비 감축을 지속한 트럼프조차 아프간 철군은 4년이나 질질 끌었잖아.
그러다가 대통령 선거에 패한 후에야 철군을 시작해 다음 대통령 바이든이 무얼 해볼 수도 없게 만든 상태로 대통령 자리를 넘겼지. 결국 패전의 멍에는 바이든이 뒤집어썼고, 민간인이 된 트럼프는 아프간전 패배는 바이든 탓이라고 트윗질을 했지. 이게 미국의 정치 수준이야.”
“거짓말...”
“전문가는 조금 뛰어난 사람일 뿐 신이 아니야. 계속 말했잖아.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사는 게 합쳐져 세상이 흘러간다고.”
“어... 어... 그래도 미국이 그렇다는 건...”
“만약 한국에서 이랬어봐. 정말 쓸데없는 이유로 6년이나 전쟁을 질질 끌어 장병들이 무의미하게 죽는다면 대통령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탄핵되겠지.”
“그래. 그만큼 한국의 수준이 높은 거고 반대로 세계의 정치 수준이 낮은 거야.”
“그러니까 오빠 말은 세계의 정치수준이 낮아서 돕고 싶어도 힘들다는 거야?”
“그래. 미국정도면 훌륭한 축이야. 베네수엘라 수준의 막장 국가가 100개 이상이야. 돈을 기부해봤자 독재자가 다 처먹는 쓰레기 정치가 가득해. 도울래야 도울 수 없는 나라들이 너무 많아.”
“후우... 그랬구나. 힘드네.”
많이 안타까운지 예하가 우울해 보였다.
이럴 땐 아예 다 쏟아부어주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보다 예하야. 베네수엘라를 보면 느껴지는 거 없어?”
“슬프다는 거?”
“아니. 자국화폐가 고장 난 베네수엘라. 보면서 느껴지는 거 없어?”
“어.... 어? 설마?”
“그래.”
역시 똑똑해.
난 20년을 살고, 모든 고통을 겪은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오빠가 말한 양적완화 버블. 그게 터지면 이렇게 된다고?”
“이 정도는 아니지만...... 양적완화 버블이 터지면 자국화폐가 휴지조각이 된 나라들이 줄을 서게 될 거야. 그 나라들은 자국화폐를 아무도 쓰지 않고, 달러나, 금 같은 것으로만 거래하게 돼.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굶주리게 되고, 멀쩡한 기업들이 줄도산을 맞게 돼.”
“헐......”
“실업자가 넘쳐나고 경기가 침체되는 데 살기 위해 필요한 물건 가격은 한없이 올라가게 돼. 이걸 스테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그게 양적완화 버블의 결말이야.”
“한국도 이렇게 돼?”
“아니 한국은 강해.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야. 그래도 충격은 크지. 일본은 한국보다 심하게 주저앉을 테고...... 더 큰 문제는.”
“기준금리를 올릴 수 없다... 시장 조절이 불가능하다.”
“정확해. 브레이크를 스스로 없애 버렸으니 누구도 손 쓸 수 없이 무너질 거야. 오랫동안. 굉장히 오랫동안.”
“아...”
예하가 말을 잊었다.
도윤정에게 영어로 전해들은 은쿠베와 카를로스는 알 수 없는 내용인지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다.
“그래서 내가 버블을 터트린 거잖아. 갭투자에 갭투자를 쌓아 버블이 커지기 전에.”
“아 맞다. 아아. 이제야 오빠가 이해되네. 난 괜히 유난 떤다고 생각했는데.”
“요놈이.”
예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조물거렸다.
양적완화에 대한 대화가 예하에게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도윤정과 남자들이 올라갈 때도 멍하니 있더니 다음날부턴 스스로 기사를 찾아가며 공부를 했다.
“오빠 이건 무슨 뜻이야?”
[세계를 정복하려는 미래블록의 야심]
“쓰레기 기사. 기자는 사실을 전하는 직업이 아니야. 사실을 얻은 후 자기 자신에게 최대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가공해서 내보내.”
“그럼 이거는?”
[기준 화폐 달러의 위기. 도전자 미래블록과의 체급차이는?]
“멍청한 기사. 기자 본인도 이해 못하는 소리야.”
“그럼 이거는?”
[북한 제제를 뚫는 미래블록. 어쩌면 국정원이 옳았다.]
“돈 달라고 떽떽 대는 소리.”
“그럼 이거는? 이거는?”
공부가 쉽지 않지.
“기사 중엔 중립적으로 사실만 적은 건 거의 없어. 기자도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혹은 이해를 못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자기 이익을 위해 악의적 편집까지 하지.”
“그럼 기사를 읽으면 안 돼?”
“오히려 더 많이 봐야지. 많이 읽고, 교차해서 사실만 뽑아야 해. 여러 기사에서 흔치 않는 사실만 모아서 전체를 봐야 해. 기사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만은 절대 피해야 해.”
신문 읽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다니.
“오빠 그러면 블로그는?”
“신문도 언론이고, 블로그도 언론이야. 둘의 신뢰성은... 똑같아. 그러니 블로그에서도 사실만 뽑아내야지.”
“어떻게?”
“계속 보면서 거짓말을 머릿속에서 소거해야지.”
“...... 어려워. 세상에 쉬운 게 없구나. 신문 읽는 것조차 긴장해서 봐야 하다니.”
“그렇게 훈련하다보면 보이기 시작해. 자, 이런 거.”
[고조되는 스테그플레이션 위기설]
경기가 침체되면 기업, 주가, 부동산이 위축되고 실업률이 증가하며 돈이 돌지 않아 물가도 떨어진다. 그런데 경기침체와 함께 물가가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스테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미국은 역사상 단 한 번의 스테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1970년대 원유파동 때다. 유가가 너무 올라 미국 기업이 위축되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침체를 경험했는데, 석유관련 제품의 가격이 일제히 오르며 물가가 올라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기존침체와는 패턴이 다르며 경기침체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피해를 안겨준 스테그플레이션.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기준화폐가 달러이며 모든 원유가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석유 수입국이었던 미국은 유가상승으로 돈을 잃었지만, 유가 상승분을 달러로 거래하면서 해외로 막대한 이익을 넘겨줬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기준금리를 무려 20%까지 올려버렸다. 기준 금리가 이렇다면 시중은행에서 빌릴 땐 대출이자가 30%에 육박하게 된다. 아예 돈 빌릴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며, 공장 돌리지 말고 잠시 쉬자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미국이 세계 경제를 멈춰 세우자 오펙은 달러와의 힘싸움에서 밀려 석유를 팔 수 없게 되자 가격을 내려 세계경제가 정상화 되었다.
50년 전에는 그랬다. 지금 비슷한 위기가 다시 펼쳐지고 있다. 달러와 미래블록의 전쟁. 차이점도 있다. 당시 미국은 금리를 20%까지 올랐지만, 현재 그런 일을 할 경우 망할 나라가 최소 200개 국 가량 보인다.
과연 미국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런 게 훌륭한 기사야. 팩트만 넣었고, 미래 예측도 중립적이야. 달러 편에서 마냥 미래블록을 욕하거나 내 편에서 마냥 미국을 욕하지도 않았어.”
“힝. 수백 개 기사 중 하나만 건진 거네?”
“수백 개 기사에서도 사실을 조금씩 뽑아서 모아야지. 그래야 흐름이 보이지.”
“힝. 힘들어.”
예하는 힘들다고 하면서도 열심히 기사를 검색했다.
최근 기사부터 과거로 훑으며 거의 모든 기사를 읽었고 때때로 내게 질문했다.
양적완화 버블의 결말을 듣고 나서 뭔가 굳게 다짐한 모양이다.
그렇게 한참 기사를 공부하더니 지하실 한켠에 마련한 예하의 음악실에 처박혔다.
“악상이 떠올랐어. 세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노래를 해야겠소이다.”
어쩌면 가장 옳은 결론 아닐까 싶다.
혼자 모든 걸 할 수는 없으니까.
예하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통해 세상을 돕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얘가 작곡도 하던가?
“배웠거등요?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이 감각을 오선지에 옮겨 담으면 돼.”
다크서클 진 눈으로 예하가 말했다.
방해하지 않으마.
덕분에 매우 심심해졌다.
아침에 뉴스 한 시간 보고 저녁에 뉴스 한 시간 보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신혼 분위기는 딱 일주일 갔고, 그 후엔 서울에서보다 더 얼굴보기 힘들어졌다.
음... 원래 신혼이 그런 건가.
게임이나 하자.
메타버스 접속기를 머리에 쓰고 익명 아이디로 써드어스에 들어갔다.
미래게임즈에서 출시한 게임 Another Earth.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Second Earth는 공연, 전시, 관광, 미팅이 중심이다.
무적모드를 쓰면 외부의 간섭도 피할 수 있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다.
Third Earth는 기존 게임적 요소에 충실하다.
기본적으로 마인크래프트와 23년 전 액션 게임인 마운트앤블레이드를 섞은 느낌이다.
땅을 사거나 전쟁으로 빼앗아 내 땅을 만들고, 거기에 집이나 공원 놀이동산 공장 등을 만들며 논다.
자연스럽게 길드나 클랜이 발생해 마을이나 도시를 만들게 되며 이들의 설계도를 보면 아예 국가 전체를 네버랜드로 만들고 있다.
그러다 싸움이 일어나거나 전쟁이 일어나면 싸운다.
여기엔 최근 게임의 성공한 요소를 몽땅 집어넣었다.
즉, 개똥같은 현질 시스템도 넣었다는 뜻이다.
엄청난 돈을 벌지만, 회사가 가져오는 건 매출의 1%.
나머지는 퀘스트나 보스 몬스터 잡으면 나오는 보상으로 재차 뿌리고 있으며 덕분에 게임으로 먹고사는 다크게이머가 수만 명 양산되었다.
아바타는 회사가 제공하는 기본 모습으로 꾸몄고, 아이디도 날 연상하기 어려운 ‘벼락부자’라고 지었다.
내가 스스로 ‘나는 윤동욱이다아아아.’ 라고 외치지 않는 한 미국이 날 찾을 순 없다.
게임을 둘러보며 소소한 퀘스트를 하는데 딱히 재미있지가 않다.
스타팅 포인트 베네수엘라가 워낙 시골이어서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하지 않는 탓이다.
어쩌면 50대에 가까워진 정신연령 탓도 있을 수 있고.
관광하듯 게임속 베네수엘라를 돌아다니다가 퀘스트 게시판을 만났다.
<정저우 위령비 수호전. 성과에 따른 미래블록 보상>
재밌는 퀘스트가 떠 있네.
이건 회사에서 내준 퀘스트가 아니다.
개인 혹은 단체가 게임내에서 퀘스트를 발행한 것이다.
신문 기사를 통해 전후사정을 대략적으로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반갑다.
퀘스트를 승낙하자, 몸이 이동되어 중국 정저우로 날아갔다.
“와아아! 막아!”
“4군! 서문 지원하라!”
“남문 뚫렸다.”
라는 느낌의 외국어가 난무한다.
귀에 들리는 건 영어와 중국어들이다.
정저우를 점거한 홍콩민주화세력.
이를 몰아내려는 중국공산당세력.
둘의 격전이 벌어진다.
“대단하네.”
전장의 생동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저 멀리 마법과 와이번이 하늘을 날고 창칼화살이 난무하며 탱크도 보인다.
저거 밸런스 어떻게 맞췄으려나.
퍽!
“어?”
메타버스 하이바를 통해 보이는 시야가 붉어졌다.
You DIED.
“어?”
“오빠, 밥 뭐 먹을래?”
음악에 심취했으면서도 내 밥은 꼬박 챙기는 예하.
“미안 예하야. 난 꼭 할 일이 있어.”
다시 접속했다.
퍽!
You DIED.
“어?”
뭐야 이 밸런스좆망겜은.
“아놔 젠장. 이 빨갱이 새끼들이 감히.”
“안 먹을 거야?”
“어. 지금 못 먹어.”
난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해.
누군가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질렀단다.
10분간 대기를 거쳐 재접속 하자마자 정저우 안으로 달려갔다.
퀘스트 참여자 표시가 머리 위에 떠 있어서 공격 받지는 않았다.
<띠링. 4군단에 속해 있습니다. 군단 영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군단 후방, 정저우 시 쪽에 붙어서니 적의 공격이 닿지는 않는다.
“감히 날 두 번이나 죽이다니. 네 놈들의 심장을 씹어먹어주마.”
하이바를 쓰고 있어서 예하가 아직 곁에 있는 줄 몰랐다. 저녁 먹을 때 듣고 참 부끄러웠지.
“상점창!”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돈지랄 할 때다.
- 작가의말
사실 게임판타지 소설입니다. 지금까지 프롤로그였던...(끼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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