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새집
“우왕! 오빠당! 햄플빠!”
“동욱아!”
“오빠!”
“혀엉~”
네 살 민서가 도도도 달려왔다.
번쩍 안아주고 뒤따라 나오는 외가 쪽 초딩삼총사도 안아주고 어른들께 인사드렸다.
“민서야 잘 놀았어? 뭐했어?”
“어? 배 탔어! 막 먹었어!”
“그래? 뭐가 제일 재밌었어?”
“어? 구름! 뱅기가 슈잉~ 했는데 우왕 구름이 밑에 있엉!”
비행기 타는 게 제일 좋았구나.
네 살짜리에게 많은 걸 바라면 안 되지.
유럽 보내지 말고 비행기 뺑뺑이나 시킬 걸.
민서를 안고 다함께 양평으로 왔다.
다들 하시던 일을 대신 맡아하신 분들께 수고했다가 인사드리고, 깨끗이 청소된 집에 들어왔다.
“어느 정도 아실 테지만요. 제가 뉴스보다 더 벌었어요.”
개인자산 15조원.
웅성웅성.
한국 최고의 부자.
와글와글.
전부 공개했다.
“티내지는 않고 있지만, 알음알음 퍼지고 있어요. 제 재산이 어느 정돈 지 알려지면 몸값 때문에 여러분이 납치될 수도 있어요. 어쩔 수 없이 경호원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해요. 상시 경호 두 명씩 붙이고, 차와 기사를 붙일 건데 이러면 어른들께서도 예전처럼 살 수 없어요. 저 때문에 죄송해요.”
의도치 않게 기존의 삶을 살 수 없으니까 큰 피해를 입힌 게 맞다.
“아니. 그게 어떻게 니 잘못이니.”
“맞아. 우린 괜찮다. 이렇게 해 준 것만도 고맙지.”
“죄송해요. 어떻게든 보답할게요. 그리고 하고 싶은 거 생각해 보셨나요? 제가 감히 일을 시킬 순 없고, 꿈꾸는 일이 있다면 하세요. 뭐든 지원할게요.”
부모님과 친척들 통장에 매일 1000만원씩 꽂히고 있다.
코인을 보내면 출금신청해서 찾는 방식으로 세금을 1도 안 낸다.
이 돈으로 하고 싶은 삶을 살되 더 큰 걸 원하면 뭐든 들어줄 생각이다.
“아니야. 충분해. 너무 충분해서 미안하다.”
“그래. 돈 걱정 없이 사는 게 얼마나 꿈같은 일인데.”
이분들이 나중에 돈 욕심 때문에 바뀔 진 몰라도 아직은 바뀌지 않았다.
내가 겪은 미래를 생각하면 아마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뭔가 해주고 싶은데 막무가내로 막 시킬 수도 없고.
언제든 원하는 걸 말하면 들어줘야지.
“그러면... 혹시. 큰아버지.”
“어. 말해. 동욱아.”
“백제대학교와 백제대학병원을 제가 소유하려 하거든요. 그런데 재단을 소유하면 기업 운영에 제약이 걸려요. 미래그룹이 명목상 외국계라서... 그래서 재단이사장 할 사람이 필요해요. 혹시......”
원래 대기업에서 파생된 재단은 자식이나 친척에게 준다.
그게 규칙이겠지.
“내가 어떻게 그런 자리에 오르니.”
“그냥 감투만 쓰는 거예요. 연봉도 1억밖에 안 되고 명함만 갖고 있으면 되요. 일은 직원들이 다하고요. 오히려 뭔 갈 하려고 욕심내면 문제 되요. 그룹이 원하는 방향하고 맞지 않을 수 있어서. 도와주세요.”
연봉 1억이 큰돈이었지만, 이제는 별거 아니다.
다들 통장에 세금 없이 꽂히는 돈이 있으니 오히려 돈에 초탈하셨다.
“아. 그렇구나. 그럼 도와줘야지. 앉아만 있으면 되지?”
“고마워요. 내일 법무팀에서 사람이 올 거예요.”
“그래.”
다들 긴 여행의 피로와 시차적응 문제로 곧장 헤어졌다.
오랜만에 집에서 자고 오랜만에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먹었다.
“돈을 벌어도 입맛은 그대로네. 맛있어요. 엄마.”
“에휴. 우리 기특한 아들. 어쩜 이렇게 잘 자랐을까?”
“후훗.”
아침을 먹고 부모님과 집을 나왔다.
택시로 위장한 도팀장님의 차를 탔고, 뒤로 경호팀 차량 네 대가 붙었다.
유럽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다음 여행지 얘기를 하는 사이 차는 외곽순환도로를 지나 막히는 도봉로를 헤치고 나니 안방학동이 보인다.
저 멀리 내가 1년간 살았던 원룸이 보이고 그 앞에 1년간 삼각김밥을 제공한 편의점이 있다.
여기서 예하를 만났지.
그리 유용하지 않았지만, 조승학의 사진을 찍었고.
그 뒤로 높다란 공사장 펜스가 쳐져있다.
“이쪽은 알죠? 채인수 사장님. 그리고 이쪽은 미래 리츠의 정문우 사장님.”
반갑습니다. 아이고 잘 부탁드립니다. 어이쿠 제가 더.
인사가 끝나고 정문우가 펜스 쪽문을 열었다.
펜스 안쪽엔 야트마한 언덕을 따라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아빠가 만든 공원.”
“어. 알지.”
아빠의 1년을 바친 공원.
백제에서 중도금이 안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자비로 자재를 들여가며 끝내 완공한 공원.
과거엔 끝까지 돈을 받지 못해 집이 망하게 된 원인.
곳곳에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고, 벤치와 가로등, 운동기구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언덕에 오르니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계곡이 있고, 그 너머에 숲과 같은 정원과 그 사이사이 숨어있는 아름다운 저택이 보인다.
멋있다.
아빠는 감회에 젖은 듯 말없이 공원을 바라봤다.
1년도 더 전에 완공하고, 이후 돈 받으려 노력하다가 아들 덕에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돈을 떼먹은 백제그룹은 망해서 해체되고 있고.
“이것 때문에 내가 백제랑 싸운 거야. 감히 울 아빠 돈을 떼먹고 근심걱정하게 만들었으니 혼나야지.”
“장하다. 착하다 우리아들. 효자야.”
“그래. 효자야. 아유 잘생긴 우리 아들.”
부모님께 어화둥둥 받으며 지도를 펼쳤다.
“아빠는 다 알테고, 엄마, 저 계곡이 무수골이예요.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계곡. 도롱뇽과 산개구리도 사는 엄청 깨끗한 물. 계곡하고 이 자리는 시민을 위한 공원이야. 그리고 그 뒤쪽에 저택 열 몇 채가 있어.”
“어. 그런데?”
“선물. 친척 분들하고 나눠가지세요.”
“어?”
“엄청 좋은 집이니까 사는데 불편한 건 없을 거예요. 아빠는 공원 조성하면서 봤으니 잘 아실 테고.”
“그렇긴 한데.”
두 분이 망설인다.
너무 부담스럽나?
“그냥 사세요. 경호문제도 있어서 모여 사시면 좋겠는데.”
“음 아들아.”
내내 기특해하던 아빠가 인상을 굳혔다.
“네. 말씀하세요.”
“네가 가족 친척들에게 잘하려는 마음은 기특한데 이럴 필요 없다.”
“부담스러워 하는 거 알아요. 그래도 나름의 사죄라고 봐주세요. 저 때문에 불편해진 것도 사실이잖아요.”
“알지. 그래도... 아니다. 다른 얘기 하마. 산다는 게 돈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아빠 엄마는 평생 수능리에서 살았고, 국민학교 친구들, 중고등학교 친구들, 평생지기들 전부 수능리에 있다. 가볍게 술 마시고, 경조사를 챙길 친구들 전부 거기 살지. 겨울이면 모여서 고스돕 칠 친구들 다 거기 있는데 여기로 오라고? 집이야 훨씬 좋다만 좋은 집에서 산다고 전보다 행복할까?”
아.
“네 마음은 알겠는데, 우리는 수능리에서 살고 싶구나.”
“생각이 짧았네요.”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지만.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다들 같은 생각일 테고. 네 엄마도 같을 거다.”
땅을 비싸게 팔고 훨씬 좋은 집에 사는 건 당연히 좋지.
재개발을 하는 이들은 끝끝내 집을 팔지 않는 노인을 가리켜 돈을 더 달라는 알박기라고 욕한다.
하지만 집과 동네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다.
막걸리 마시며 떠들 친구가 있고, 전봇대 하나에 담벼락 하나에 추억이 있다.
노인분들이 쉽게 집을 팔지 않는 이유는 집 주변 모든 곳에 인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리를 잡고 산 세월만큼 집과 마을은 그 사람 인생의 일부가 된다.
내가 돈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과 생활관까지 바꿀 수 없다.
아빠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아빠의 팔짱을 끼며 미소 지었다.
“마음만 받으마. 이 집은 네가 쓰고.”
“네. 그럴게요.”
인근 부대찌개 집으로 가서 밥을 먹고 헤어졌다.
부모님은 여독도 덜 풀렸고, 짐도 덜 풀어서 집으로 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출발 전에 말할걸.
서프라이즈 해드린답시고 괜히 비밀로 모셔와서 피곤하게 해 드렸네.
원래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 집은 어떡할까요?”
한 차에 타고 공원으로 돌아오면서 물었다.
손대면 뻥 하고 터질 것 같이 살찐 정문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5월인데 벌써 저러면 여름엔......
멀리해야겠다.
“리츠 소유가 아닌 동생 땅이야. 마음대로 해도 돼.”
“마음대로 해도 문제없어요?”
“법적으로는 그렇지. 다만 정치권에서 꼬투리 잡을 여지는 있지.”
대화하는 사이에 무수골에 돌아왔다.
북한산에서 시작된 계곡이 동쪽으로 흐른다.
국립공원의 보호를 받아 더없이 깨끗한 물은 아직 사람의 손을 타기 전이다.
“저기 공원 시작점 있지? 저기부터가 국립공원이야. 국립공원 경계를 시작으로 2만 5천 평 대지를 이뤄.”
“정말 자리 좋네요.”
서울시내에 있는데 지리산 산골 같은 분위기다.
개발이 안 돼 나무가 울창한 국립공원 곁으로 예쁘고 깔끔하게 꾸며진 생활공원이 나온다.
“계곡을 중심으로 남쪽 만 오천 평은 생활근린공원으로 주민에게 개방돼. 그리고 북쪽 만평은 미래경제연구소를 위한 사유지야.”
“미래경제연구소요?”
“우리가 지은 거 아니야. 백제가 그렇게 이름 붙였어. 이 공사가 재밌는 게, 원래 여기에 사유지가 들어설 수 없는 곳이거든.”
국립공원은 아니지만, 개발제한 구역이다.
그런데 공사를 허가받을 수 있었던 건 정치인을 위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백제그룹은 주로 북당에 로비를 해 이권을 챙겼다.
이 공원은 로비의 결정체.
개발 제한구역을 개발해 국민을 위한 공원으로 만들어 나라에 바치고, 한켠에 자그마한 비영리 연구소를 설립한다.
국가와 세계 경제의 미래를 연구하는 국가를 위한 미래경제연구소.
연구소 건물을 짓고 주위에 연구소 직원을 위한 사택을 지어 제공한다.
공사는 백제건설이 하되 공사비용은 세금으로 지불한다.
여기까지 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좋은 일이다.
“자. 이게 미래연구소 연구원 내정자들 명단이야.”
북당 4선 의원, 북당 경기지부장, 북당 여성고용대책위원장, 북당 정책실장.
모두 북당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딱 보이지? 연구소는 핑계고, 백제건설에서 집 지어서 주요 정치인들에게 집 한 채씩 주는 사업이었어. 서울시내에 드넓은 정원을 가진 150평짜리 호화주택을 받으니 얼마나 좋아. 개인 명의로 만들지는 못해도 사는 건 문제없지. 연구원을 위한 사택이니까.”
예전에는 배추 트럭에 현금을 가득 싣고 당사 건물에 배달했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그때를 그리워 하겠지만, 요즘은 정치인에게 그렇게 대놓고 주기 힘들다.
이런 식으로 회사나 사회단체 명의의 건물 비밀번호만 알려주면 들킬 염려가 없고, 들켜도 책잡힐 일이 없다.
건물 안에 여자나 현금을 넣어두는 건 기본 센스.
“당연히 세금으로 건설했지만 그걸 예쁘게 포장해 잡음 없이 건네주는 게 백제그룹의 역할이었지. 문제는 갑작스러운 대통령 교체였어.”
지난해 북당의 대통령이 남당의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임기 중간에 탄핵당해 바뀐 최초의 케이스로 덕분에 사업이 붕 떴다.
백제그룹에서 저택을 지어 북당 고위인사들에게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북당에서 승인했다.
공사비용의 절반을 이미 세금으로 지불했다.
문제는 탄핵.
갑자기 북당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남당 세상이 되었다.
지금도 간당간당한데 나머지 자금을 세금으로 집행하면 남당에서 분명히 꼬투리를 잡는다.
덕분에 완공된 지 1년이나 되었지만, 아직 공사펜스를 철거하지 못하고 있다.
눈치를 보며 나눠 갖길 꺼린 것이다.
그러다 백제가 망했고.
채인수가 말했다.
“북당에서 우리 가지라더라. 집행한 세금을 채워 넣으래.”
북당에선 별장을 먹느니 버리기로 했다.
“팔아버릴 수 없어요? 부모님 안 쓰시면 굳이 필요 없는데.”
“미래연구소란 핑계가 아니면 애초에 건설 할 수 없는 땅이었어. 개발제한 구역인데 팔 방법이 없지.”
“버리느니 우리가 쓰는 게 낫겠네요. 혹시 남당에서 지랄하지 않을까요?”
“북당에서 막아주겠지. 어차피 죄 지은 건 백제의 조준선이고, 북당이니까. 우린 버려진 세금 채워 넣는 백기사고.”
“좋네요.”
드넓은 정원을 가진 북한산 자락의 복층 저택.
생각지 못한 전리품을 얻었다.
“저에 대해 아는 사장들 하나씩 나눠 갖죠. 미래연구소 소속으로 이름 올리는 거죠?”
“그렇지. 분기마다 보고서 한 장씩 제출하면 돼. 연구비는 거절하자고.”
“그래요. 정형이 구형이랑 관리계획 잡아주세요.”
“그래.”
다 같이 모여 살면 경호팀 부담이 줄겠지.
주택관리팀과 경호팀 등 준비할 게 많다.
- 작가의말
정치에 대해선 완전 가상을 넘어 아예 지도를 바꿨습니다
삼남지방을 먹은 남당과 그 위쪽 북당이 싸워요. 이러면 정치충 형님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수 있겠지!(후덜덜덜)
어느 특정당을 위한 정치적 의도가 눈곱만큼도 없는 소설입니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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