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비욘드 어쓰2
“지금까지 인류의 활동영역은 지표면이었습니다. 그 위엔 대기권이 있죠. 지구를 감싼 공기층. 미래메신저는 대기권을 감싼 표면을 인류에게 드립니다. 인류의 활동영역이 두배 이상 넓어진 것입니다.”
대본 누가 쓴 거야?
시 쓰고 앉았네.
예하가 아침부터 신이 났다.
오빠오빠 하며 날 깨우고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우고, 화장실로 데려가 씻겼다.
하는 짓이 귀여워서 애기처럼 가만히 보살핌을 받았다.
“자. 목을 매끄럽게 풀어줄거야.”
예하가 보라빛 나는 걸쭉한 음료를 건넨다.
“뭐냐 이거.”
“날계란 흰자와 목에 좋은 식물들 갈아 넣은 녹즙.”
“... 조리실에서 만들었냐?”
“아닝. 내가!”
예하가 활짝 웃었다.
정성이 갸륵해 마시는데, 졸라 맛없다.
더럽게 쓰고 날계란이 느끼하고. 젠장.
“치카치카하자.”
예하가 내 칫솔에 치약을 묻혀 입에 갖다 댔다.
지이이이이잉.
그리고 준비한 양복을 꺼냈다.
“야야. 어차피 매니지팀에서 준비할 거 아냐.”
“히잉. 오빠의 데뷔를 위해 샀는데. 힝.”
에휴.
입고 나니 앞에 달라붙어 옷매무시를 정리하곤 넥타이를 목에 두른다.
“스탑! 다른 건 다 참아도 넥타이는 못 참겠다.”
“왜에. 슈트의 완성은 넥타이야.”
“너 넥타이 매듭법이 뭔지 알아? 자살하는 사람이 목매달 때 하는 매듭법이야. 넥타이를 잡아 쭉 당기면 사람이 목이 졸리고 저항할 수도 없어. 이런 살인도구를 스스로 목에 매라고? 절대 싫어.”
“하지만 다 하잖아.”
“다들 패션이 뭔지 몰라서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는 거잖아. 전에도 말했지만 양복은 병신이래두. 안 해! 특히 넥타이는 절대 싫어! 날 목매달게 하는 기분이야. 싫어!”
왜 이런 교수형 형벌 도구를 목에 매야 하는 건데!
양복입은 세상 사람들 다 등신이야!
넥타이가 뭐가 예뻐!
예하와 한참 투닥거린 끝에 넥타이를 치우는데 성공했다.
대신 예하가 와이셔츠 단추를 세 개 풀었다.
“어쩔 수 없이 야성미를 강조하는 쪽으로 가야겠군. 음. 멋져. 잘생겼어. 탄탄한 가슴근육도 나오고.”
트레이너의 전담 코치를 받으며 운동한 지 반년이 넘었다.
이제 몸태가 꽤 난다.
울퉁불퉁은 아니어도 슬림하고 건강한 몸매가 됐다.
신나서 날 꾸미는 예하를 보다가 손을 잡고 본관으로 갔다.
머리를 만지고 화장을 하는 와중에 코디가 와서 자기가 준비한 옷을 보고 내 옷을 보고 예하의 표정을 본 후 준비한 옷을 치웠다.
단추는 하나만 푸는 걸로 바뀌었다.
다행.
스타일링을 끝내고 나오자 24인용 대형밴에 탔다.
수행비서와 스케줄비서, 예하의 비서가 타고 스타일링 팀이 탔다.
“두 시간 생방 후 사장단과 중식을 갖습니다. 이후 구글 ceo와 화상회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면담 요청이 80개 있는데 이 중......”
꼭 소화해야 할 스케줄을 듣고, 추가로 요청사항을 들었다.
“전부 거절이요.”
귀찮게 내가 만날 필요 없지.
채인수형이 알아서 할 거야.
“알겠습니다.”
시장, 구청장, 국회의원놈들은 왜 자꾸 오라는 거야.
단기계약직 주제에 감히.
성수동 본사에 도착하고는 곧장 스튜디오로 갔다.
시험조명이 켜지고, 에어컨이 풀 가동돼 온도를 맞추고 있다.
17도. 약간 쌀쌀한 정도.
“이 자리는 꽤 춥네.”
“이래야 조명 아래 있어도 땀이 나지 않지.”
방송선배 예하가 으쓱했다.
여자는 세심하니까 예하는 스튜디오에서 스타일링을 받았다.
완벽하게 세팅된 예하는 언제 봐도 예쁘다.
준비를 마치고 스튜디오에 앉았다.
10여대의 거대한 카메라가 날 쏘아보고 있고, 세 개의 커다란 조명이 나를 감싼다.
정면의 거대한 카메라가 눈높이보다 10도 위에 있고, 그 아래 거대한 모니터가 세 개 있다.
하나는 작가의 지시가 뜨고 하나는 실시간 댓글이 뜬다.
다른 하나엔 송출되는 화면이 뜬다.
지금은 예하와 내가 나란히 앉은 모습이 보이고 있다.
“야야. 너랑 나란히 앉으면 내가 오징어 되잖아.”
“에헷. 오빠가 훠얼씬 멋있으니까 걱정마.”
화면 안에는 저세상 미모의 예하가 이기적인 매력을 뽐내고 있고, 그 옆에 거대한 꼴뚜기가 있다.
“싫어. 진행자 바꿔. 모닥불이보고 하라고 해.”
“어라라. 나랑 있으면 잘 생겨 보일 줄 알고?”
모닥불이 있었네.
저기서 구경하던 모닥불이 달려와 한소리했다.
“예하야. 잠깐 자리 좀.”
예하의 자리에 모닥불이 앉았고, 즉각 송출 모니터를 봤다.
나 머리가 왜 이렇게 크지?
갸름한 얼굴상인 줄 알았는데 저 동그란 얼굴은 누구지?
모닥불 얜 왜 예쁘지? 모닥불이 주제에
내가 300만 유투버를 무시했구나.
맨날 예하랑 나란히 앉아있으니 억척스런 중년 여성 같아 보였는데 내가 옆에 있으니 얼굴 주먹만 한 연예인상이구나.
모닥불 옆에 앉은 난 얼굴 큰 모아이석상같다.
“...... 예하랑 할래.”
차라리 예하가 낫지.
예하 옆에선 만인이 평등한 꼴뚜기가 되니까.
“헤헤헷. 조우아. 나도 오빠의 데뷔를 최대한 도울거야.”
“아니다. 혼자 할래.”
사람의 마음은 갈대.
“에에?”
“혼자가 좋아. 평생 박제되어 떠돌고 싶지 않아.”
“힘든데. 오빠. 여기 앉아서 생방송 시작되면 머릿속이 하얘져.”
“차라리 그게 나아. 니가 너무 예뻐서 그래.”
“에? 에에에. 알았어.”
즉각 작가들이 달려들어 대본을 수정하고 난리가 났다.
난리통 속에 방송 시간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미래그룹 홍보실의 제시예요. 반가워요. 하이요.”
화면엔 예하 혼자 잡혔다.
“오늘은 미래 그룹의 비전에 대한 발표가 있습니다. 무려 미래 그룹 본사의 사장님이 직접 발표하실 거예요. 시작하죠. 사장님 나와주세요.”
그룹의 비전.
이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의 비전은 전 세계의 연결이다.
이 비전을 위해 페이스북은 무선드론 1위업체를 샀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인터넷이 없는 지역에 무선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장대한 계획을 세웠다.
계획대로라면 제 3세계 인터넷망을 보급하고 대가로 페이스북 사용율을 올린다.
이후 한국 시총 2위 코톡처럼 다양한 사업확대를 통해 세계 시총 1위에 오른다.
미래 그룹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계획대로 했겠지.
우리도 진작 했어야 했는데 이제사 한다.
예하가 화면에서 나오고 잠시 뒤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윤동욱입니다.”
-세계 부자1위?
-엄마 나 세계최고 부자한테 인사받았어
-1위 구라아니냐?
-잘생겼다 한국의자랑
-평범한데?
-못생김. 바로직전 제시 생각하면 유인원이하
-아아 이것이 제시의 잔상효과인가
-저 새끼가 나의 제시를 감히 막 만지고 막
ㄴ 너님고소될듯 ㅊㅋㅊㅋ
어. 저놈 고소.
멍하니 댓글창을 보고 있는데 옆의 모니터에 커다란 글짜가 반짝거린다.
-대본읽으
아차 나 방송중이었지.
멍하니 댓글보고 있었네.
스읍, 하.
스읍, 하.
“오늘은 미래 그룹이 나아갈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님 재산이 얼만데?
-동욱이 형 나 함필규야. 반가워
-제시 어케 꼬심?
-님 영어 할줄 암?
ㄴ 수능 성적 나보다도 구리던데
댓글은 무시하자.
이정도 댓글에도 발끈하는데 제시나 핀빙빙은 어떻게 견뎠는지 몰라.
새삼 대단하다.
“지금까지 인류의 활동영역은 지표면이었습니다. 그 위엔 대기권이 있죠. 지구를 감싼 공기층. 미래메신저는 대기권을 감싼 새로운 영역을 인류에게 드립니다. 인류의 활동영역이 두 배 이상 넓어진 것입니다.”
-아재요 취했으요?
-동우기 야캐요
-경찰아저씨 여기에요여기
이런 반응 나올 줄 알았다.
“어제 날짜로 미래블록 계정수가 30억을 돌파했습니다. 중복가입자가 있으리라 보지만 그래도 20억 명 이상이 미래메신저를 사용하는 걸로 추산합니다. 20억 명의 활동. 이는 우주의 위성통신과 복잡한 지구 지표면 사이 대기권에서 이뤄집니다. 지구주위의 대기권 전체가 미래메신저의 영역이며 이 새로운 영역을 모든 인류에게 바칩니다.”
-뭐라는겨? 누가 요약 좀
-설명해야 하는 드립은 실패한 드립
-아 모르겠고 제시 보자
-돈 많은 형 들어가고 제시 내놔!
이 새끼들이.
내가 이놈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나. 자괴감 든다.
“대기권을 인류의 영역으로 확장했고, 모든 인류에게 드리겠습니다. 이를 위한 선언. 미래 메신저는 매출대비 1%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1% 이상의 이익이 발생할 경우 전액 자선 사업에 씁니다.”
이런 선언을 하는 이유.
네 달 전 아마존에서 블록체인 쇼핑몰이 나왔다.
미래쇼핑을 부랴부랴 따라 만든 것이지만, 그 자체로도 무섭다.
사람들은 익숙하게 결제하던 아마존에서 미래쇼핑을 베낀 쇼핑몰이 나오자 이탈을 멈췄다.
현재는 미래쇼핑 가입자가 아마존에 가입해 저울질을 하는 상황.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아마존쇼핑은 확장성이 크지 않다.
진짜 무서운 건 메신저다.
한 달 전 페이스북에서 블록체인 메신저가 나왔다.
카피작이지만 소송을 걸진 못한다.
페이스북의 전문가들이 바보도 아니고 진작 확인하고 우회해 베꼈다.
그리고 애플과 구글, MS에서도 블록체인 메신저 출시를 앞두고 있다.
서로 별 차이 없는 메신저가 쏟아져 나오면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지고 기초가 약한 미래메신저는 힘든 경쟁을 펼치게 될 것이다.
20억 유저를 모아 한발 앞서 있지만, 지금처럼 독점적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미리 숨통을 끊는다.
“추가로 미래메신저의 이익금은 전액 유보금으로 보유하며 그룹사의 적자를 커버하는데만 사용합니다. 즉, 미래그룹은 미래메신저를 통해 단 한 푼의 이익도 거두지 않습니다. 영원히. 이 선언은 문서화하여 법인규정에 올렸고, 이를 위한 회계감사를 매년 미국정부로부터 받기로 합의 했습니다.”
-뭐시요? 사쿠라여?
-구라지?
-먼데먼데 몬소린데?
-그래서 어쩌라는겨
역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댓글을 쓱 보는데 그 옆의 모니터에 글자가 뜬다.
“이번 선언의 의미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자료화면 띄워주세요.”
부탁하니 3초만에 화면에 자료가 떴다.
방송팀 일 잘한다.
“제 옆에 있는 건 홍콩에 있는 MAGA ETF입니다. 제가 발표하고 나서 3%가 빠졌죠. 더 빠질 분위기네요.”
-마가가먼데?
-이티? 에프? 이티가 대학갔냐?
ㄴ 형 쫌
ㄴ 아ㅅㅂ 피식했다 존심상해
-마가가머냐고?
미안하다. 너흴 과대평가했구나.
“마가는 미국의 대기업 머릿글자를 모은 신조어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애플을 합쳐 마가입니다. 그리고 제 발표가 나온 직후 3% 하락했다는 것은 제 발표가 그정도로 파급력이 있다는 뜻이죠.”
입에 처넣어줬다.
이래도 이해 못하겠어?
- ㄷㄷㄷ진짜세계경제를좌지우지하네
- 긍께 왜? 수익을 안 뺀다는게 저런 효과가 있어?
ㄴ 나도 몰라 헤헤헤
- 아놔 모르겠고 제시보고싶다. 녹화영상보러가야지
그냥 댓글을 보지 말자.
글로벌 기업들이 메신저 시장에 뛰어들면 필연적으로 적자서비스를 한다.
우리가 잠식한 시장을 잡아먹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나 현금살포를 통해 자기들의 메신저를 깔도록 유도할 것이다.
그런데 그 목표는 나중에 더 큰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돈 벌려고 돈을 뿌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다르다.
영구히 수익창출을 하지 않겠다 선언했다.
심지어 우린 덩치도 작다.
마가처럼 기업존속을 위해 투입되는 고정비가 거의 없다.
자체 서버도 없기에 사용자가 줄어든다고 해서 손해볼 비용도 없다.
즉, 우리는 시장점유율에 상관없이 1% 수익을 유지하는데 하등 문제가 없고, 마가 측에서는 돈 벌 생각 없는 상대와 제살깎아먹기 치킨레이스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망할 때까지.
내 발표는 그런 뜻이고, 눈에 불을 켜고 미래그룹 비전발표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즉각 반응했다.
그게 주가로 반영되었다.
“저희와 싸우지 마세요. 저희는 평화를 원해요. 피스 앤 평화. 우리 같이 대기권을 감싼 미래 메신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요.”
대본 누구냐.
드립좀 적당히 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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