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아주 쉽고 즐거운 양적완화 이해하기
“으그그그극. 다리 저려.”
예하가 몸을 세우며 접고 있던 허벅지를 들었다.
어려운 얘기를 하며 작아져 있던 내 작은 친구가 퐁 하고 빠졌다.
팔을 뻗어 물티슈로 닦아주니 예하가 옆에 착 달라붙으며 길게 누웠다.
몸에 닿은 맨살의 감촉이 좋다.
손을 뻗어 가슴에 닿은 가슴을 만지며 물었다.
“재미없지? 그만할까?”
“아니! 난 지금 꼭 알아야겠어. 이해 못해도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야겠소이다.”
표정은 재미없어 보이는데.
“세계에 문제가 생긴 이유. 되게 옛날로 가야 해. 고전 경제학은 아담 스미스를 신봉했어. 보이지 않는 손, 들어봤어?”
“응! 응! 그 뭐냐... 투명인간이 세계를 지배한다.”
“네 틀리셨고요. 당신은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헤헤헤. 공급과 수요의 법칙.”
“맞아. 시장가격은 자동으로 조절된다. 그러니 렛잇비 하는 게 가장 좋다. 이게 과거의 경제정책이었어. 그런데 이게 깨진 게 경제대공황이야.”
“어... 음... 왜?”
“경제대공황이 발생하고 세계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기를 기다렸어. 1928년 그날은 아무날도 아니었거든. 화산이 터지거나, 세계대전이 터진 것도 아니라 그냥 부풀었던 금융이 터졌을 뿐이니 알아서 제자리로 갈 거라 믿은 거지.
그런데 그 문제가 생각보다 오래가더란 말이야. 분명 공장도 그대로고 사람도 그대로고 농작물 생산도 그대로고 매년 기술이 발전하니 오히려 생산량이 늘어나 금방 제자리를 찾아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멀쩡한 공장이 망하고, 농장은 생산을 중지하고 사람들은 굶어죽거나 자살하더라는 거야. 무려 4년. 4년 동안 주가와 부동산이 꾸준히 하락했어.
그제야 수정자본주의가 나와. 사실 이건 당시 소련을 모델로 한 거야. 자본주의의 금융 문제였기에 공산주의 소련은 오히려 이득을 보고 세력을 무섭게 확장했거든. 케인즈의 모델은 소련을 베꼈어. 경제가 멈췄으니 국가가 국채를 발행해서 모은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 멈춰있는 사람들을 억지로 움직이고 공장을 억지로 돌리자. 이러한 강제개입을 통해 멈춰버린 자본주의에 시동을 거는 것. 이게 뉴딜 정책이고, 수정자본주의야.”
예하는 소화시키기 힘든지 미간을 모으고 곱씹었다.
똑똑한 애니까 금방 이해하겠지.
예하의 미간 주름을 만지며 기다려주니 입을 연다.
“오케이. 이해했쓰요. 대쓰요.”
“그래. 그때 이후로 국가의 개입이 시작되었는데 이건 꽤 간단해. 경기가 좋으면 주식이 오르고 부동산이 올라. 이땐 투자가 늘어나니 공장이 확장하고 사람들의 임금도 오르고 물가도 올라. 이게 쭉 이어지면 버블이 생겨. 사실 경제대공황의 우려는 5년 전부터 이어졌거든. 1928년에 뻐엉 하고 등장한 게 아니라 그 전부터 ‘위험하다, 버블이다, 저거 터진다,’ 이런 우려가 계속 이어지다가 1928년에 마밇러삐나따빠이 하다가 일제히 도주하면서 터진 거지.”
“마밀러... 뭐?”
“조장하실 분? 하는 드립. 서로 눈치를 보며 미묘한 감정을 교환하는 상태.”
“아크크크. 알아. 그거구나.”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장이 과열되면 국가에선 기준 금리를 올려. 금리가 오르면 대출을 한 사람들은 돈을 갚아야 하고 그러면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지. 기업의 투자도 줄고 공장의 확장도 줄고 물가도 내려가. 이게 지속되면 경기침체가 오게 돼. 경기가 침체되면 다시 정부가 나서. 복잡한 걸 하는 건 아니고 기준 금리를 낮춰. 금리가 낮아지면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게 이득이니까 빌리는 돈이 많아지고 투자도 많아지면서 경기 호황으로 가. 세계 경제는 이걸 반복해왔어.”
예하가 또 미간을 찌푸렸다.
“어... 경기가 침체되면 금리를 올리고, 경기가 활성화되면 금리를 낮춘다?”
“정확해. 정확히 반대야.”
“헤헤헤. 이해했으요.”
“간단한 예를 들어줄게. 미국과 일본의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장난질을 못 치게 되었어. 엔화 스테이블을 못하게 된 거야. 이렇게 되면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박살나게 돼. 욕먹을 게 두려웠던 일본 정부는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내렸어. 이러면 어떻게 될까?”
“에... 경기 호황?”
“맞아. 그런데 문제는 일본이 너무 심하게 내렸다는 거지. 일본 국민들이 저렴한 금리에 놀라 너도나도 대출을 받아서 너도나도 투자를 했어. 일본 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의 금융이 동참했어. 이자가 거의 없는 엔화로 돈을 빌려서 거래를 하는 거지. 덕분에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다시 오지 않을 역사적 고점을 만들었어. 그런데 경기가 너무 활황이면 정부는 어떻게 한다고?”
옆으로 누워있던 예하가 손만 번쩍 들며 웃었다.
“저요! 금리를 올립니다!”
“정답입니다. 이러면 어떻게 될까?”
“어... 침체?”
“그렇지. 그런데 너무 심하게 올랐으니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도 너무 멀어. 일본이 기준금리를 올리자 어마어마한 폭락이 일어났어. 주가가 붕괴되고 부동산이 박살났어.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야. 주식이 올랐다가 떨어지고 부동산이 올랐다가 떨어졌을 뿐 일본의 공장들은 전혀 상관없잖아. 계속 생산해서 계속 돈을 벌면 되지. 그런데 버블이 낀 사이에 일본의 제품 가격은 너무 올라서 수출이 되지 않았고, 그 사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성장했고, 특히 한국 대만이 일본의 시장을 삼켰지.”
“아! 이거 꿈에서 들은 거 같아. 데자뷰라고 하나?”
“전에 말했던 적 있어. 그보다 꿈에서 듣는 건 불가능하다던데.”
“에헤헤.”
“어쨌든 이게 잃어버린 30년의 가장 간단한 전말이야. 자, 어쨌든 수정자본주의의 기본속성을 이해했지?”
“넵. 완벽 이해. 오케이.”
“그렇게 2000년대가 왔어. IT버블이 붕괴되고, 911테러가 일어나. 미국은 기준 금리를 낮춰서 경제가 침체되지 않도록 도왔어. 덕분에 큰 충격 없이 경기가 살아났는데 특히 부동산에 자금이 몰렸지. 부동산이 계속 오르자 미국은 금리를 올렸어. 금리를 올리면 어떻게 되죠?”
“호황이 꺾여.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겠네.”
“그치? 그런데 안 내려가더라는 거야.”
“에? 왜?”
“신기하지? 미국은 금리를 계속 올렸는데 부동산은 오히려 가파르게 올랐어. 당시 미국 경제계의 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어라? 이상하네? 왜 오르지? 이러면 안 되는데?’ 갸웃갸웃, 이랬어.”
“헤헤헤. 귀엽당. 거짓말이지?”
“진짜거든요. 말했잖아. 전문가는 좀 더 나은 사람일 뿐 세계 모든 걸 아는 게 아니야. 이때 이걸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라고 해. 정확히는 부동산이 아니라 채권이지만 어쨌든. 부동산에 대한 경고는 꾸준히 있었지만, 금리를 건드리는 걸로 잡지 못했어. 2004년부터 계속 간섭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한없이 오르던 부동산은 2008년에 폭발산화했어. 이게 서프사태-리만브러더스야. 한국에선 미국발 외환위기? 뭐 이렇게 부르는 거 같더라.”
“어.... 나 초딩때네.”
“그럼 잘 모르겠네. 아무튼 봐봐. 버블이 폭발해서 주가가 곤두박질 쳐. 부동산은 아주 개박살이 났고.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함께 박살났어. 이러면 어떻게 하지?”
“알아! 금리를 낮춘다.”
“정답입니다. 미국은 즉시 금리를 제로금리까지 낮췄어. 그런데 하락이 안 잡혀. 계속 떨어져. 무려 2년 동안 떨어졌어. 이러면 어쩌지? 이미 금리는 제로까지 낮췄는데. 더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
“에.... 그... 알 거 같아. 그... 국채? 그... 대공황때처럼?”
“맞아. 미국이 대량의 국채를 발행해 사람들에게 돈을 모아서 그걸 투자해서 기업을 살리고 공장을 돌려서 경제를 살리고자 했어.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국채를 사지 않더라는 거지. 서브프라임과 리만브라더스로 이어지는 붕괴가 너무 킹왕짱 셌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짝 쫄은 거야. 국채를 팔아 돈을 마련해 살려보려고 했는데 국채가 팔리지 않아.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음. 몰라. 답 없구만. 포기하고 짜장면이나 먹읍시다.”
“그건 무슨 드립이냐. 포기하면 경기침체가 대공황 이상으로 길어질 수가 있어. 이때 노인 그린스펀이 짤리고 버넹키라는 사기꾼이 등장해. 들고 나온 아이디어는 ‘사람들이 국채를 사지 않으면 국가은행이 사자.’ 였어.”
“어? 양적완화?”
“맞아.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 10년도 되지 않았어.”
“아, 그렇구나. 그런데?”
“국가가 돈을 찍어서 뿌린다. 덕분에 경제가 살아났어. 그런데 이게 문제가 없을까?”
“문제가... 있어야 할까요?”
“옛날옛날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을 만들어서 뿌렸어. 당백전을 줄 테니 경복궁을 만들어라, 당백전을 줄 테니 재료를 가져와라, 이랬어. 그 결과는? 가뜩이나 미약하던 조선후기의 화폐경제가 무너졌어. 짐바브웨는? 북한은? 돈을 마음대로 찍어내는 순간 돈은 신뢰라는 것을 잃게 돼. 그 순간부터 화폐는 가치가 사라지지.”
“어? 미국도 그렇다는 거야?”
“달러는 연결된 경제 규모가 너무 크기에 아직은 멀쩡해 보이지. 그런데 이게 정상적인 걸로 보여? 얼마 전에 미국이 반도체 중흥책을 발표했어. 500조원의 돈을 찍어서 반도체 시설을 만들어 동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점유율을 미국 본토로 가져오겠다.
그런데 봐봐. 상섬전자가 300조를 투자해 반도체 생산시설을 확충하기로 했어. 상섬전자가 한 해 60조 정도 버니까 5년간 번 돈 전부를 설비에 꼬라박아서 생산시설을 만들겠다는 거야. 그런데 미국은 번 돈이 아니라 은행에서 돈을 찍어서 500조 어치 생산시설을 만들겠대. 이거 사기잖아.”
“어? 어. 그러네. 사기네.”
“서브프라임 해결책으로 미국이 돈을 찍어대니 중국도 눈치를 보다가 돈을 찍어냈어. 이유도 돈을 찍어냈어. 일본도 돈을 찍어내다가 슬금슬금 그 양을 늘렸어. 코로나 이전까지 미국이 5000조원의 돈을 찍었는데 일본은 6500조원의 돈을 찍었어. 이건 아베신조가 진짜 미친거지. 얜 여러모로 무타구치 렌야 같은 분이야. 잘 모셔야 해.”
“왜 그랬대?”
“정치인은 10년 후 100년 후를 생각하지 않아. 다음 선거에서 재선되는 것만 봐. 금리를 올리면 집값, 주식이 하락해. 사람들이 싫어해서 지지율이 떨어져. 그나마 미국은 달러가 신뢰를 잃을까봐 조금씩 테이퍼링을 했는데 일본은 그게 없었어. 그냥 무한정 계속 찍어냈어. 아베는 일본의 미래를 무너뜨려 자신의 현재 지지율을 산 거야. 덕분에 아베는 역대 3선 총리 최고 지지율을 얻었고 대신 현재 일본이 외통수에 걸렸지.”
“와... 진짜 한국의 애국자네.”
“그치. 게다가 코로나 이후엔 전 세계가 미친 듯이 돈을 찍고 있어. 이것만이 해결책이다, 하면서 돈을 찍지. 그런데 이건 자본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거야. 경기가 활성화되면 어떻게 한다?”
“금리를 올린다.”
“그런데 오히려 양적완화로 미친 듯이 돈을 찍고 있으니 어떻게 될까?”
“버블...”
“어. 주가 하락은 슬프지만 주가와 부동산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야. 그런데 10년 전 시작된 양적완화는 제자리로 찾아갈 기회를 막았어. 기업의 실적이 좋다? 주가가 올라. 기업의 실적이 안 좋다? 정부가 돈을 쏟아 부어 줄 테니까 주가가 올라. GOOD IS GOOD, BAD IS GOOD 이라고 해. 이걸 10년간 반복했어. 그리고 코로나 시대가 되었어. 봐봐. 한국은 그나마 공장이 멈추지 않았지만, 중국은 황사가 사라질 정도로 박살났지? 세계 곳곳에서 공장이 멈췄고, 원자재 캐내는 것도 멈췄어. 누가 봐도 코로나 이전보다 안 좋지?”
“어. 그건 모두가 알겠네.”
“코로나 이전보다 안 좋다면 기업의 적정 가격은 코로나 이전 가격보다 살짝 아래여야 해. 그런데 지금 가격이 어떻지?”
“어... 비싸? 잘 몰라. 헤헤헤.”
“너무 비싸. 기업의 본래 가치보다 주가가 비싼 걸 버블이라고 해.”
“그러네. 버블이 꼈네. 그럼 이게 터진다는 거야?”
“어. 다만 정확한 날짜는 몰라. 경제대공황의 경고는 5년 전부터 꾸준히 있었고, 미국 부동산 붕괴, 서브프라임 사태의 위험도 2004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어. 다만 언제 터질지 몰랐지. 이번 버블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는 아무도 몰라.”
“오빠도 몰라? 언제 터질지?”
“나?”
대충 알지.
하지만 미래그룹 때문에 바뀌었을 거야. 그러므로.
“알 필요 없어. 내가 터트렸잖아. 버블이 커지면 추락할 때 대미지가 커. 차라리 지금 터트리는 게 나아. 그나마 덜 아프겠지. 고름을 짜는 건 아프지만, 각종 합병증으로 커지기 전에 터트리는 게 나아. 10년 전 양적완화가 시작된 이후 10년간 키워온 버블을 터트리는 거야.”
“힝. 결국 오빠가 악역을 자처하는 구나. 그래서 뉴스에서 오빠를 막 욕하는 거고. 못된 사람들.”
“됐어. 선행은 몰래 하는 거야. 그래야 나중에 알려졌을 때 효과가 좋지.”
“아하. 거기까지 생각하셨구나.”
“그래.”
“으짜. 그럼 짜장면 먹을까?”
예하가 일어나 기지개 피며 속옷을 입었다.
“응?”
“너무 뇌를 썼더니 당 떨어졌어. 짜장면을 먹어야겠어.”
“아까 드립이 아니었구나.”
“응킁크. 그냥 갑자기 먹고 싶었어.”
예하가 아까 포기라고 했던 게 머리 아프니 그만 하자는 거였군.
“먹자. 내가 할까?”
“싫엉. 내가 내조할거야.”
“넵. 당케.”
“웰컴.”
큰일을 벌여놨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느긋하게 신혼생활을 즐기면 된다.
침대보나 빨까.
- 작가의말
전 아베신조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분의 일본종신총리를 기원합니다 아니면 명예한국인 민증 줍시다 국민청원가즈아~
며칠간 1일연재 했으니까 3일후에 다음 편 올릴게요 파트가 커서 잔뜩 써놓고 수정 배치 해야 할거 같아요
글이 지루하시다면 ㅈㅅ... 잘못된 정보 지적해주시면 열심히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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