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별이 빛나는 밤에5
건축학과를 다녔던 닥똥이다보니 그쪽에 대해 잘 안다.
건축학과를 다니는 학생은 건축기사를 따고 졸업하는 게 목표라고 했었지.
건축기사가 되는 법을 검색해봤다.
자격요건에 정답이 있다.
“야. 너에게 두 가지 길이 있어. 하나는 생활비 포함 1년에 2천만원 씩 4년을 투자해 대학졸업증과 건축기사가 되는 거야. 다른 하나는 건축현장에서 일하면서 1년에 3천만 원 씩 벌면서 3년차에 건축기사 자격증을 따는 거야. 참고로 3천만 원을 벌기 위해선 1년에 200일만 일하면 돼. 뭐가 낫냐?”
“어? 일하면서 딸 수 있어?”
“관련 업종에서 일하면서 기능사 따고 추가로 일하면서 기사자격시험을 보면 되네. 돈을 쏟아 부으면서 대학 졸업해 자격증을 따는 거랑 돈을 벌면서 자격증을 따는 거랑 뭐가 낫겠냐.”
“당연히 돈 벌면서 하는 게 낫지.”
“그치? 대신 20살부터 사람들이 천대하는 노가다를 해야 하지. 동갑내기들은 화려한 대학가서 엄빠 돈으로 술 마시고 여자사귀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동안 아재들 밑에서 욕먹으면서 못 박아야지.”
“그거 좆같겠네.”
“그래서 대학을 선택하는 이도 많겠지. 하지만 봐봐. 대학의 메리트는 고작 그거야. 부모 돈으로 합법적으로 방탕하게 개처럼 놀 수 있다! 이거 말곤 없어.”
“야. 좀 극단적이다. 일하다가 머리가 굳어서 산업기사 못 따면? 노가다하고 피곤해서 공부할 시간이 없으면?”
“노가다는 주 4일만 일하면 되는데? 결국 개인의 의지겠지만, 노가다 하면서 건축기사 따지 못하면 대학 다니면서 건축기사를 따고 나서도 필드에서 적응하지 못해서 금방 짤려. 사회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건 성실함과 노력이 끝이니까.”
“어...... 음...... 모르겠다. 마셔!”
닥똥이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들이켰다.
갑자기 말이 뚝 끊겼다.
찌릉찌릉찌릉찌릉.
연못가 정자다 보니 온갖 풀벌레소리가 가득하다.
대화를 멈추면 그제야 들리는 자연의 소리.
탈중앙화.
울타리의 해체.
속박의 해제.
자유.
“저기... 선배님.”
차정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얼굴을 보니 빨갛게 된 게 술이 꽤나 올라온 것 같다.
“어.”
“그... 미래 대학이란 게... 이해가 안 되는데 일하면서 자격증 따는 건 옛날 세대도 가능했던 거 아닌가요?”
“맞지.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건축기사처럼 일하면서 기사 되는 길은 다 있겠지.”
“그런데도 모두가 대학에 가잖아요. 그럼 대학에 대학 나름의 의의가 있지 않을까요? 말죽거리 아버지가 그랬잖아요. 대학 못 가면 잉여인간이라고. 잉여인간.”
“그러네!”
“핸플 저놈이 우릴 세뇌한다!”
닥치고 술 먹던 가오리닥똥이 소리쳤다.
“에휴. 쯧쯧쯧.”
일단 한잔하고.
“시대가 바뀌면 교육도 바뀌어야 해. 그런데 교육은 항상 한 세대 늦게 바뀌어. 왜냐. 부모 세대는 자기의 삶을 기준으로 자식의 교육을 결정하니까. 사회변화가 느리면 큰 문제없겠지만, 한국은 60년간 300년을 압축해서 성장해서 문제가 생겼어. 예를 들어, 해방 후 여자는 초등학교도 못 갔지. 왜냐.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여자는 집안일만 하는 존재였으니까. 다음세대부터 여자도 초등학교를 겨우 가게 되었지.
산업부흥기엔 거침없이 치고 올라가는 이들이 생겼어. 대졸자가 흔치않던 시대에 몇 안 되는 대졸자는 그나마 똑똑하고 빠르게 회사가 커지던 시기니까 그들 위주로 윗자리가 채워졌지. 이 기억이 모두에게 각인되어서 반드시 대학가야 한다는 인식이 박힌 거야.”
둘러보니까 대충 이해한 거 같다.
아니 잘 모르겠다.
술 좀 올라 온 것 같다.
“말죽거리 잉여인간이 유명한 밈이 된 건 모두가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야. 하지만 사회는 빨리 바껴. 사업가들은 다들 대학가고 싶어 한다는 걸 보고 돈이 된다고 느껴서 대학을 마구 지었지. 결국 수험생 숫자보다 대학 입학 정원이 많아진 세상이 열렸어. 누구나 돈을 내면 대학에 갈 수 있게 된 세상이야.
세상이 바꼈으면 인식과 교육방식도 바껴야 하는데 이건 한 세대 늦게 찾아오지. 지잡대라도 대학 나와야 사람취급 받는다. 고졸자는 평생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 농사, 노가다는 잉여인간이 하는 짓이다, 이렇게 생각이 박힌 부모들은 애를 쥐 잡듯 조지며 대학에 보내.”
아 맞아.
그런 거 같아.
잉여인간.
수근 수근.
“지금 일본 아베의 지지율은 역대 최고야. 일본에서 신급이야. 왜 그럴까?”
“몰라요...”
처음 말을 꺼낸 차정미에게 말했더니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흘린다.
그만하고 싶은가본데 더 할래. 나 취했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 일본의 실업자 수가 역대 최저야. 1.5%도 안 돼. 아베는 실업률을 어떻게 낮췄을까?”
“어... 몰라요......”
그만 괴롭힐까?
“별로 한 게 없어. 출산율 때문에 그렇게 된 것 뿐이야. 최근 일본엔 매년 60만 명 넘는 은퇴자가 생기는데 사회로 배출되는 젊은층은 30만 정도야. 일자리가 비는데 거길 채울 젊은이가 부족한 거지. 지금 일본 노동청의 고민은 방구석에 박혀 애니만 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제발 일 좀 해달라고 간청하는 방법이야.”
“그거 좀 웃기네.”
“일본에선 무조건 취업할 수 있단 거지?”
“와... 부럽다.”
1000대 1 경쟁율에 시달리는 한국의 20대들이 감탄하며 부러워했다.
“이것 또한 한국의 고정된 미래야. 지금 출산율로 말이 많잖아. 딱 10년만 지나면 한강의 기적세대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울 젊은이가 모자라게 돼. 그때부턴 대학 졸업장은 아무 쓸데없는 장식이 되게 되지. 이건 정해진 미래야. 북한에서 전쟁을 걸지 않는 한 무조건 이 미래가 펼쳐져.”
“어... 시발 그럼 우리만 졸라 불쌍한거네.”
가오리가 흥분했다.
“어. 90년대생, 끼인 세대. 인류 역사상 가장 가혹한 취업경쟁을 벌이고 있는 세대.”
“에이. 시발.”
가오리나 닥똥은 내 덕에 취업 비슷한 걸 했고, 한민선과 차정미도 자기 길을 찾았다.
하지만 동기나 다른 친구들이 고생하고 고민하는 걸 눈으로 보고 있다.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조용히 술잔을 들었다.
“태풍이 지나면 평화가 오겠지.”
오빠 시적이지?
“그 태풍이 10년이나 간다고?”
“어... 잔풍까지 15년. 10년 후에도 실업률이 높다가 윗대가 사라지면서 차츰 실업률이 낮아지겠지.”
“어...... 야. 그래서 미래대학이냐?”
아니, 오랜만에 도봉대 애들이랑 술 마시다보니 갑자기 생각했는데?
“어. 추가로 니가 하는 직업프로그램이랑 연계해서.”
“어떻게.”
“당장은 직업 분산밖에 없지. 가뜩이나 일자리가 부족해서 취업경쟁이 미친것 같은데 다들 무쏘의 뿔처럼 대학만 보고 있잖아. 그거라도 줄여주고 대학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알려줘야지. 부모 세대야 자기가 겪고 본 것 때문에 대학에 목매고 있지만, 진짜 특급대 들어가고 그 후에도 번뜩이는 재능을 뽑내는 사람, 즉 공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학 따위 갈 필요 없다는 걸 알려주자고. 지방대, 노력하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는 대학 따위 가느니 훨씬 좋은 길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 대학 졸업하고 폰팔이 하느니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폰팔이 하는 게 100배 낫잖아.”
“어... 그렇지.”
“일단은 준비하자. 기틀부터 잡아보자. 1년 후 쯤 결과가 나올 거야.”
코로나 시국이 펼쳐질 테니.
유동성 넘칠 때 사회를 확 바꾸자고.
사회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갈 때 대학을 다 죽이자.
학위를 구매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대학의 온라인 강의보다 미래 대학 강의가 1000배 낫다는 걸 깨닫게 해 줘야지.
지식의 해방.
과거엔 대학의 권위가 절대적이었을 수도 있다.
도서관에도 없는 고급 지식을 얻으려면 대학에 가는 길이 유일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아프리카 오지의 의사들은 유투브가 스승인 시대가 되었다.
이미 10년 전부터 지식이 해방되고 있다.
나중엔 대학에서 배우느니 유투브로 배우는 시대가 된다.
막을 수 없는 흐름.
대학의 덩치와 비효율적 교육시스템, 바가지 장사 속과 노예제도로는 이길 수 없다.
미래대학은 이걸 앞당긴다.
지식의 울타리를 없앤다.
모든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체계적으로 강의한다.
학문을 연구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학문을 열어준다.
이건 돈이 된다.
교육 수준이 낮은 제3세계 일수록 미래그룹에 호의를 보일 것이다.
유럽의 상아탑과 학위장사하는 대학들은 싫어하겠지만, 열의를 갖고 공부한 10대들에게서 혁신적인 논문이 쏟아질 것이다.
교수와 대학원생만 신기술을 발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식의 보고를 열면 공부에 재능이 있는, 지식에 목마른, 공부 말고 성공할 길 없는 제3세계에서 신기술이 쏟아질 것이다.
울타리를 없앨수록 세계는 풍성하고 편안해진다.
지식을 해방시키고 권위를 무너뜨린다.
풍덩!
“후히힛!”
놀라서 돌아보니 닥똥과 가오리가 연못에 뛰어들었다.
8월 초 무더위의 정점.
해가 졌는데도 30도가 넘는 더위가 이어진다.
정자 테이블 주위에 냉풍기를 가져다 놨지만, 숯통을 옆에 붙이는 바람에 덥고 꿉꿉하다.
“모두 들어와!”
“영주야! 사랑한다아! 들어와 엄청 시원해!”
연못 깊이가 허리 정도니 죽지는 않겠지.
닥똥놈이 모르는 사람 앞에서 저러는 거 오랜만인데.
저놈도 엄청 취했구나.
“다들 들어와! 어? 자치다! 잡았다아아!”
“어? 정말?”
“우와. 고기 예쁘네요.”
양식되고 있던 자치가 먹이 주는 사람인가 해서 몰려왔다가 바보들에게 잡혔다.
여자들은 그걸 보겠다고 연못가로 가고.
“구워먹자아!”
“그거 한 마리에 이천만원임.”
“놔줬음.”
가오리놈이 찬물에 들어가더니 술이 좀 깼나보다.
“니들도 들어와! 빨리!”
꺅. 꺄아아
풍덩. 콰르릉.
가오리랑 닥똥이 물가로 모여든 여자들의 팔을 잡아당겼다.
노노노는 예전에 몇 번 본 적이 있다 쳐도 차정미는 오늘 처음 본 건데도 막 잡아당겼다.
꺄아아 꺄아 꺅.
연못에서 허우적대다 일어난 여자들이 바보 둘에게 물세례를 퍼붓는다.
난리네 난리야.
“에휴. 젊어서 좋겠다.”
저게 대학생활의 가치겠지.
20대 초반 4년간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그를 위해 부모 돈 1억을 소모하는 것.
40대까지 살아보니 그게 참 하잘 것 없으면서도 부럽다.
생각 없이 술 마시고 미친 듯이 취하고 괜히 후배에게 폼 잡고 주위에선 대학생이라고 우대받고.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방탕한 시간을 보내고, 미친 듯이 섹스하고, 학고 맞고.
부모돈으로 인생 통틀어 가장 신나게 놀면서 대학생이란 간판아래 공부하고 있다고 합법적으로 납득시키기.
어쩌면 이 낭만 가득한 시간을 뺏는 걸 수도 있지만.
“넌 뭐 잘났다고 폼 잡고 있냐?”
닥똥놈이 물을 똑똑 흘리며 다가왔다.
그 뒤로 머리까지 다 젖은 여자 넷과 가오리가 사다코떼처럼 몰려든다.
“어? 어? 잠깐.”
“잠깐 실례.”
도망치려는데 닥똥이 왼팔을 잡았고, 뿌리치기 전에 가오리가 오른팔을 잡았다.
예하가 허리를 안았고 여자들이 낑낑대며 발을 잡았다.
예하.... 너마저.
“던져!”
“야! 야! 멈춰! 하지마! 여기 내 집이야! 잠깐! 썩 꺼져!”
“하나, 둘, 셋!”
이놈들이 날 그네 태우 듯 둥가둥가 흔들다가 셋에 손을 놨다.
“아아아썅~”
팔을 잡고 있던 가오리와 닥똥은 한 타임 늦게 팔을 놨다.
덕분에 발이 위로 뜨고 팔이 아래로.
이 새끼들 노렸어.
얼굴부터 물에 처박혔다.
풍덩.
캬르르르.
어푸어푸하며 연못에서 일어나니 이 새끼들이 웃고 있다.
전부.
예하마저도!
“다 죽었어!”
“어쭈!”
“와봐”
“핸프. 튜브 없어? 욕실에서 가져올까?”
“수영장에 있어요. 갖다 달라고 할게요.”
첨벙첨벙첨벙.
여기에 마리당 2천만원에 수입한 자치를 양식하고 있는데... 수질 관리와 수온 조절에만 수억을 썼는데.
아 모르겠다.
대학생은 생각하지 않고 노는 거야.
오랜만에 대학생으로 빙의하니 참 좋았다.
근심, 걱정, 고민 일절 없는 완벽한 신분, 대학생.
내가 너무 돈만 생각하고 살았나.
내년엔 도봉대 편입해서 놀까.
다음날.
혼났다.
- 작가의말
5일 쉰다고 했는데 넘겼네요... 데헷. 노는 시간은 너무 빨리 가요...
쉬면서 1화부터 쭉 읽어봤는데 와아.... 정말 난잡 그자체, 특히 1~30화까진 나조차 읽기 힘들었다능!
여러분은 어떻게 버텨내신 겁니까?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의 인내력이라면 뭘 해도 성공하실 거라능!
세개의 큰 주제를 버무리다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이제와서 고치는건 불가능하고, 무료 완결 후 나중에 주제 한개씩 빼내서 차분하고 재밌는 소설을 써볼래요 나아아아중에.
대학편이 끝났는데 공감하실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지금 초딩 이하 자녀를 가지신 분이라면 한번 고민해 보세요
일본의 현재 취업률과 20대의 삶을 '조사'하시고 자녀 교육 방향을 설정하시는 건 어떨까요
지금 초딩 이하라면 현재 일본의 취업현황을 그대로 따라갈게 분명한데 그 아가들을 영어학교니 뭐니로 24시간 뺑뺑이 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의 미래를 고민하신다면 지금 일본의 상황을 살펴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어... 그래도 공부에 재능이 있다면 시키는게 낫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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