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저점잡기2
예하의 방송은 거기까지였다.
다른 수많은 의혹을 남겨둔 채 방송을 껐다.
미래그룹의 시원찮은 대응은 주가로 나타났다.
월, 화 이틀연속 하한가.
거래도 거의 없다.
다음날도 수많은 언론에서 미래그룹에 대학 악의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창립 2달된 외국 계 근본 없는 회사]
[건실한 대기업을 해체해 팔아먹으려는 악의적 헤지펀드]
사실이네.
반박할 수도 없네.
댓글은 온통 미래에 대한 욕설 혹은 우려로 가득 찼고, 펀드에 개설된 고객대응팀엔 하루 종일 전화가 왔다.
괜찮은지. 돈 빼도 될 지.
화요일 저녁이 되자 예하는 딴소리를 했다.
“저희 미래그룹은 노동의 가치를 중히 여깁니다. 저희가 인수하게 될 경우 모든 노동자는 주5일 40시간 노동이 보장될 것이며, 추가근무를 희망할 경우 연봉 대비 시급 1.5배를 보장합니다.”
법이 명시한 어쩌면 당연한 말.
하지만 절대 지켜지지 않는 말.
구형재가 예전 회사에 소송을 건 주 내용도 이것이다.
추가노동을 강요했으니 추가임금을 달라.
훌륭한 민간 변호사 민형수가 주로 하는 소송도 이쪽이다.
사고로 피해를 보고 보상을 못 받은 이의 숫자는 적다.
대부분은 주 100시간 이상 노동하고 추가임금을 전혀 받지 못한 이들에 대한 소송이 주를 이룬다.
연봉 3000만원 계약. 회사에서는 야근을 강요하지 않음. 다만 내일까지 이만큼의 일을 전부 해치워야 함. 못 해낸다면 해고.
결국, 스스로 자의에 의해 연봉 3000만원을 받고 추가수당 없이 밤새 일하는 구조가 된다.
사회 시스템이 이렇게 만들어져 있다.
그걸 바꾸겠다고 했다.
예하의 발표에 훈훈한 글이 줄을 이었다.
- 물빛여운 : 너무 좋은 말이에요.
- 난의향기 : 저도 회사에서 주당 80시간 일하는데 추가수당 없어요
- 카인지 : 게임 그래픽 하청회사입니다 주말 없이 하루 종일 캐릭터 색칠하는데 월급 190입니다. 추가수당 없어요
- diarta : 야근 수당이 뭐죠?
- Kkjj : 진작 바껴야 하는건데 미래그룹이라도 앞장서니 다행이네요.
응원의 글과 자기 하소연, 바뀌었으면 하는 글이 줄을 잇는다.
참 아름다운 채팅창이다.
그리고 진짜 민의는 다음날 아침 백제 주가로 나타났다.
월, 화, 수 3일 연속 하한가.
“설마...... 말도 안 돼.”
“후훗. 애송이. 아직 세상을 모르는군.”
예하와 내기를 했다.
예하는 주가 상승, 나는 주가 하락에 배팅했다.
결과는 나의 승.
“이... 이건 사기야. 주가조작이다. 오빠지? 오빠가 다 던졌지?”
“너.. 나를 뭐로 보는 거야? 그보다 소원을 어떻게 쓸 까나. 하루 동안 옷 입기 금지?”
“히익.”
“아니지 그건 일상이니까 음......”
“너무해. 그런데 진짜 오빠 아니야?”
“아니지. 그냥 본심이지. 주식에 드러난 본 마음.”
“저분들 중에 똑같이 일하는 분도 많을 거 아냐? 개미들.”
“어. 대부분 그렇겠지. 우리처럼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 이도 많을 테고.”
“그런데 주가가 왜 저래?”
“백제그룹 주식을 가진 사람은 사회 정의, 성장가능성, 훌륭함, 뭐 그런 거 안 봐. 쥐고 있는 주가가 오르기만을 바라지. 노동자 임금을 제대로 주려면 그 돈은 어디서 나오겠어? 회사 이익이 줄어들겠지. 그럼 주가가 떨어지는 게 당연한 거야. 노동자 임금을 많이 준다는 말은 주식가격에 있어 엄청난 악재야. 그래서 하한가에 닿은 거야.”
아주 단순한 이치다.
옳고 그름은 상관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늘어날지 줄어들지만 본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줄은 투표당일 출구조사 때도 몰랐다.
트럼프를 찍은 이들조차 부끄러워서 찍었다는 말을 못 했으니.
오로지 미국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모든 걸 무시하겠다던 트럼프는 부끄럼쟁이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출구조사에서도 패배할 걸로 예상되었다.
사람들은 인터뷰 혹은 SNS에선 옳은 것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익명투표에선 순수하게 나의 이익을 따른다.
마약으로 돈을 벌던 전쟁으로 돈을 벌던 내게 이익을 준다면 주가는 오른다.
이게 사람의 진심이며 주식의 본질이다.
그래서 노동자의 처우개선은 악재다.
전화를 들었다.
“형. 티 안 나게 매입 시작해 주세요. 내일도 모레도 악재가 이어질 거예요.”
현재 백제그룹 시총은 18조까지 떨어졌다.
더 떨어질 것이다.
슬슬 줍자.
백제에서도 쓸어 담고 있겠지.
개미 털고.
진검승부 해보자.
백제 그룹 본사 앞.
불매운동의 열기는 가라앉아 사라졌고, 일부 여성단체만 방문해 한차례 구호를 외치고 돌아간다.
한 달이나 이슈를 이어가기엔 생업이라는 게 있다.
게다가 요즘은 서로 흠집 내기가 이어지며 백제 말고 미래그룹이 들어와도 똑같을 거란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혜아빠는 오늘도 피켓을 들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지혜아빠 옆엔 지혜엄마가 있다.
두 분이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자리에 며칠 전부터 한분이 추가됐다.
-내 아들 김유현을 찾습니다-
김유현의 엄마다.
청와대 진정을 넣었고, 수사를 시작했지만, 김유현의 엄마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
김유현이 어떻게 됐고, 누가 그랬는지는 원숭이도 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을 기다린다.
그녀는, 힘이 없는 그녀는, 이렇게 백제 그룹 앞에서 침묵시위라도 해야 했다.
“잠깐 불러주세요.”
차에 탄 채 셋을 지켜보다가 보조석에 앉은 경호원에게 말했다.
오늘은 택시가 아닌 대형 밴을 타고 왔다.
중년 세분은 내가 보자는 말에 망설임 없이 차에 탔다.
“고생하셨습니다.”
“자넬 위해 하는 게 아니야.”
“네. 알아요.”
지혜부모님, 김유현 어머니.
뭘 해도 가슴에 얹힌 돌을 없앨 수 없겠지.
“제가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셋 다 말없이 보고만 있다.
“전 조승학을 반드시 죽일 겁니다.”
예하를 건드렸다.
죽었다 너.
“전에는 불가능 하다고, 군에서 소식이 끊겨 어디 숨은 거 찾을 수 없을 거라고 했잖는가.”
“네. 맞아요. 하지만 돈은 뭐든지 가능하게 해 줘요. 어떻게든 죽일게요. 산채로 데려와서 고문해서 고백하고 뉘우치게 만든 후 잔인하게 죽일 거예요.”
김유현의 어머니가 말없이 내 손을 꽉 잡았다.
지혜아빠는 눈물을 흘렸다.
“고맙네. 부탁하네. 제발. 부디.”
“그래서요...... 제가 이러는 게 고마우시다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그래. 뭘. 뭘 해줄까?”
“비행기표예요. 필리핀에 가셔서 섬 하나 사주세요.”
?
셋의 얼굴에 물음표가 띄워졌다.
“근사한 리조트와 해변이 있는 섬. 거주자 없이 리조트만 있는 섬을 통째로 사주세요. 별장으로 쓰려고요.”
너무 뜬금없나.
“섬을 사서 거기 관리인이 되어 주세요. 저와 저희 회사직원이 쉴 수 있게.”
무슨 말인지 이해했겠지?
셋이 얼굴을 마주봤다.
매일같이 침묵시위를 하며 서로의 한을 보듬던 이들이다.
“우리에게 다음을 말하는 건가.”
“네. 맞아요. 다음. 백제는 무조건 끝났어요. 싫으셔도 일단 필리핀에 가 주세요. 가장 중요한 장검을 드릴게요. 조승학의 심장을 찌를 검이에요.”
아저씨에게 진짜 부탁할 것을 말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알겠네. 바로 필리핀으로 가겠네.”
“세분 같이 가야 해요. 지금 한국에 있을 필요 없어요.”
“고마워. 고맙네.”
세분은 거듭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렸다.
그들에게 본사 경영지원팀 직원이 붙었다.
섬을 사는 건 경영지원팀과 리츠 직원이 다 한다.
셋에겐 다음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복수를 끝내고 시들시들 죽는 걸 바라지 않는다.
15조에서 18조를 왔다 갔다 하는 백제그룹 시총.
금요일 공시가 떴다.
대주주 조준선의 지분이 2%늘었다.
지배주주 일가의 지분은 17%.
한편 미래그룹의 지분도 떴다.
24%.
함께 늘었다.
3거래일 후에 임시주총이 열리고 회장이 결정된다.
주말동안 백제그룹의 음해공작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윤ㅇㅇ 게이트]
만 22세 윤ㅇㅇ씨가 사실은 미래그룹의 숨은 주인이다.
그의 부모와 일가친척 전원은 유럽의 호화유람선 여행을 즐기며 파티를 벌이고 있고, 만22세 김ㅇㅇ씨는 지출 천억을 바라보는 미래 애니메이션 사장이 되었는데 김모씨는 윤ㅇㅇ씨의 친구라는 점 외엔 특이사항이 없다.
또한 전역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미래펀딩 로보츠의 구단주가 된 이ㅇㅇ씨 또한 윤ㅇㅇ씨의 친구라는 점 외엔 평범한 젊은이다.
일개 직원의 성추행 사건을 공식방송에서 중히 다룬 점만 봐도 윤ㅇㅇ씨는 명함에 적힌 것보다 미래그룹의 중한 자리에 있으리라 생각되며, 아일랜드 투자기업 퓨쳐 홀딩스의 한국침공을 윤ㅇㅇ가 지휘하는 거로 볼 수 있다.
찌라시처럼 떠돌던 소문이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백제그룹은 미래그룹을 갓 생성된 아마추어 그룹으로 매도하고, 탈세와 범죄를 즐기는 집단으로 매도하며, 주가상승으로 시세차익을 얻은 후 그룹을 산산조각낸 후 떠날 것으로 광고했다.
그 중심에 내가 있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이 새끼들.”
“우와. 어떻게 오빤 줄 알았대?”
“천재네.”
추리력이 대단하군.
인터넷엔 내 군대 동기가 함께 찍은 사진, 대학 때 사진, 중, 고등학교 때 사진이 떠돌고 있다.
주인공이 돈을 못 숨김.
“오빠오빠. 이 사진 멋있다.”
“잘생겼지?”
“어. 어. 살 좀 빼고 운동 좀 하면 열배 잘생겨지겠는데.”
어. 운동.
필요하지.
천 번 정도 결심한 거 같은데 항상 마지막 한걸음을 디딜 의지가 부족해.
하지만 이제 한걸음 의지를 얻었다.
예하와 사랑하려면 힘이 부족해.
많이 하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하자. 운동.”
“어? 정말?”
“그래. 최고의 강사님 고용해서 아파트 헬스장에서 할까?”
최고급 아파트답게 지하에 고오급 피트니스 클럽이 있다.
집에서 내려가 운동하고 올라오는 정도는 해낼 수 있겠지.
백제 따위 전혀 긴장되지 않는다.
승리는 기정사실이고 얼마나 남겨먹을지가 관건이다.
“그럼 강사는 내가 알아볼게.”
“어.”
예하가 피트니스 강사를 검색할 때 인터넷 음모론을 종합해서 봤다.
백제에선 나를 미래의 주인으로 포장하고 있다.
채인수는 얼굴마담이고 22살 애송이가 실제 주인이라 떠들고 있다.
그래서 얻는 이익은?
멋모르는 아마추어 집단이라는 건가.
고작 그 정도 효과를 노리고 기자를 굴리나?
바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바보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지.
다만 앞으로 귀찮아 지겠다.
거리에서도 막 알아보고 돈 달라고 하면 꺼지라고 해야지.
일단 기자들에 대한 고소부터 진행하고.
인터넷 창을 닫고 코인 창을 봤다.
모니터 8개 중 7개가 코인사이트를 열고 있다.
여기가 내 본진이다.
가장 쉽고 편하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내 마음의 고향.
내 기억에 비트코인은 700~800만 원 선에 강력한 지지선을 갖고 있다.
800만원 아래로 내려오면 엄청 싸다고 느껴 사람들이 매수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지선에 닿으면 반등하기를 대여섯 번 반복했다.
과거 이 현상을 지켜보다가 인생을 건 비트맥스 10배 풀매수를 했다가 쫄딱 망했지만...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코인 가격이 810만원까지 내려왔다.
1400만원에서 800만원까지 40%나 하락한 것이다.
매수벽은 650에서 800만원 사이에 미리 쳐놨다.
가격이 내려와 매수벽을 녹이면 재차 매수벽을 만들고, 대량 물량을 잡아먹고.
그렇게 물량 높여서 50% 상승하면 팔아야지.
5조를 다 먹으면 2조를 버네. 휘유.
“예하야. 다 된거 같다. 준비하자.”
“오우 케이.”
예하가 몸을 풀며 왔다.
목표가격 근처까지 왔다.
다시 둘만의 레이스를 시작한다.
“800 아래로 사면 되지?”
“어.”
“잘해보자구 친구.”
예하가 힙합퍼처럼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농담을 한다.
“... 어.”
예하와 좀 더 격의 없고 편해지고 좋아진 것 같다.
810, 808, 804.
조신하게 찔끔찔끔 내려오던 비트코인이 갑자기 요동친다.
격렬하게.
위로.
“어?”
“오빠. 상승하는데?”
“어? 저기요. 아직 안탔는데. 아직 안탔다고요! 사장님. 버스 태워주세요~”
850 900 950,
진반등이네.
“여기 사람 있어요. 여기. 저도 태우고 가요.”
20년 전 기억이 완전하지 않지만.
이거 너무하잖아.
코앞에서.
“원숭이도 나무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네.”
“위로해줘.”
“우그우그. 오빠. 인간적이야. 드디어 인간이 되었구나. 난 오빠가 신 인줄 알았는데 다행이야.”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네.”
최초로 투자에 실패했다.
버스가 나 안 태우고 그냥 출발했어.
- 작가의말
오늘 아침에... 알트코인이 많이 떨어진거 같아서... 5%만 먹자 하고 슬쩍 발을 넣어봤는데
으어어어어어 하고 급류에 휩쓸렸지뭐얌. 데헷!
격류에 수영하는거 아니래요 엣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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