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새로운 질서
카라카스를 출발한 미래의사회의 전세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건 화요일 오전 11시.
토요일에 미래블록 발행을 중단하고 3일만에 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공항은 조용했다.
연예인 한 명 입국할 때보다 평화로운 일상이다.
기자 한 명 없다.
물론 이건 표면적인 일.
“윤회장님!”
VIP통로로 미래경호 직원 서른 명이 대기하고 있다가 둘러싸고 이동하는 데 저 멀리서 칼리 페르난도가 소리쳤다.
자세히 보니 주한미국 대사도 있다.
그 주위엔 아마도 CIA 직원인 듯한 이들이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
그들 입장에선 내가 미국에 큰 해악을 끼친 인물이겠지.
미국의 권력.
나 하나 잡으려고 한국에 전쟁 직전의 상황을 일으킨 권력.
전쟁 직전의 위기상황을 만들고도 한국을 제집처럼 누비던 권력.
미국은 권력의 근간을 잃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가 눈앞에 있음에도 강제연행이 불가능하다.
국가적으로 손해를 입혔고, 개인적으로는 출세에 걸림돌이 된 인물.
나에 대한 공작을 명받았지만 실패했으고 그 타격은 미국을 휘청이게 만들테니 앞으로 저들의 출세는 물 건너갔을 것이다.
분노의 강도는 후자 쪽이 더 크겠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최선을 위해 살아가니까.
한국 정부에서 파견한 이들이 그들을 가로막는 사이 차량에 탑승해 무수골 집으로 갔다.
“얘야.”
“오오. 다친 데 없고? 피곤하지 않니? 괜찮니?”
아빠와 엄마가 달려와 예하를 반겼다.
예하가 조신히 절하려는 데 엄마가 어깨를 잡고 막았다.
“에유. 그러지 마. 조심해야지. 들어가자. 들어가야지.”
엄마가 예하의 어깨를 감싸고 집으로 안내했다.
아빠도 뒤를 따르고.
나는요? 저기요?
“고생했다.”
채인수가 씩 웃으며 날 반기고.
“축하해.”
“베네수엘라에 그렇게 미녀가 많다며?”
닥똥가오리가 반기는데.
딱히 좋지는 않다.
부모님이 예하를 안고 둥가둥가하던 그날 저녁 손님이 방문했다.
한국의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그리고 몇 몇 보좌관.
권력의 무게는 한 나라의 대통령보다 나 개인이 더 커졌다.
대통령이 찾아오는 게 당연하다.
남당출신 전임대통령이 탄핵되어 쫓겨난 후 내게 적극 협조해온 북당 대통령은 이번 사태 내내 나를 적극 지지했고, 미국이 내 가족과 미래그룹 사장들을 요구해올 때 전쟁까지 각오하며 국민을 지켰다.
그렇다면 상을 줘야지.
채인수와 미래그룹 주요인물들까지 포함해 회담을 했다.
의견을 조율하고 향후 일정을 잡았다.
채인수와 기획실에서 준비한 대본을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수정해 그날 바로 발표했다.
카메라 앞에 선 것은 내가 아닌 대통령 본인이다.
이게 포상이다.
“기축통화는 이제 달러가 아닌 미래블록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선언이 TV생방송과 미래방송, 각종 인터넷 방송으로 송출되었다.
“현재 미국인들은 물건 가격이 세 배 폭등해 혼란스러울 것이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당직자들은 미래그룹 때문이라며 성토하고 있습니다.”
달러 발행이 중지된 순간 미국의 물가가 세 배 뛰었다.
타국이 경험하고 있던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미국 또한 경험하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인과 정부는 모두 미래블록 탓을 하고 있으며 나를 지지해 전쟁을 막아준 미국 시민들마저 하나 둘 돌아서고 있다.
모든 미국인들이 미래블록을 증오하게 되는 순간 미군이 움직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살아남을 수 없다.
빨리 수습해야 한다.
내가 누른 우주파괴버튼을...
“하지만 미래블록을 기준으로 한 물가는 그대로입니다. 계란 한 알은 여전히 2미래블록이고, 배추 한 포기는 여전히 44미래블록입니다. 여러분. 물가는 그대로입니다. 물가가 오른 게 아니라 달러의 가치가 제자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미래블록의 발행을 중지한 순간 4달러였던 빅맥이 갑자기 11달러로 뛰었다.
화폐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은 미래블록 때문에 물가가 올랐다고 생각하며 분노한다.
하지만 진실은 빅맥의 가격이 세 배로 오른 게 아니다.
달러가 가치를 잃은 것이다.
화폐를 사용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이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면 영원히 착취당하며 살아가게 된다.
“미국은 달러를 임의발행했습니다. 국가에서 발행해 국가에서 뿌렸습니다. 현재도 9000조원에 달하는 화폐를 새로 발행해 5년간 집행할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9000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한국을 통째로 구매할만한 화폐가 새로 발행되어 미국 정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가치가 어디에서 올까요? 여러분입니다. 국가가 발행하는 만큼 여러분의 재산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국가가 필사적으로 숨기고 가렸기에 여러분은 자신의 재산을 잃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실 겁니다. 물가가 세 배 올랐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이게 달러의 실제 가치입니다. 물가가 오른 게 아니라 여러분의 재산 중 3분의 2를 정부가 동의없이 징수해간 것입니다.”
물가가 오른 게 아니다.
정부가 비밀 세금을 징수한 것이다.
미국이 발행한 화폐의 가치는 전세계 모든 달러보유국에게 세금처럼 걷어 들였지만, 미국인들에게 걷는 게 가장 많았다.
지금껏 몰랐지만 미래블록이라는 새로운 기축통화가 진실을 파헤쳐줬다.
“이제 기축통화는 달러가 아닌 미래블록입니다. 미래블록은 국가가 임의발행할 수 없고, 앞으로 누구도 임의발행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동의 없이 세금을 걷을 수 없고, 당신의 재산가치를 그대로 유지시켜줍니다. 전세계 모든 화폐보다 거대한 미래블록은 환율변동이 거의 없는 안전한 자산입니다. 미래블록 생태계로 들어오십시오.”
시간은 밤 10시. 유럽은 점심시간이고 미국은 새벽시간이다.
국가마다 시간이 전부 다르지만 지구 전체가 깨어있었다.
모두가 눈을 뜨고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 시대의 선포.
뜬금없이 한국의 대통령이 나와서 발표하긴 했지만 이건 시대의 전환점이다.
중대한 발표를 무수골 집에서 술 마시면서 지켜봤다.
“저러면 해결 되냐?”
“내가 미국이라면 항모 끌고 올 것 같은데?”
닥똥가오리는 옆에서 헛소리를 하고, 술 못 마시는 예하는 군침만 꿀꺽 삼키며 아침햇살을 마시고 있다. 왜 저걸 마시는 거지?
닥똥의 와이프는 예하의 손을 꼭 잡고 애기에 대한 수다를 떨며 둘만의 세상에 빠져있다.
“어, 몰라. 한잔 해.”
술이나 마시자.
“그래. 백수야. 펜션사장 너도 한잔해. 여긴 이 사장님이 쏘마.”
가오리가 신나게 잔을 들었다.
백수는 나고, 펜션 사장은 닥똥이다.
“니가 쏘기는. 식비는 회사 관리비에서 나가는데.”
“어? 그러고보니 이거 모럴해저드 아니냐? 회계감사 해야겠어.”
“시끄러 새끼야. 내가 뿌린 돈이 얼만데.”
“하긴. 전 재산 기부하기로 했으니까 그 전에 최대한 비싼 거 먹을까? 먹는 데 전 재산 다 써버리는 거야.”
가오리는 언제나 헛소리만 한다.
내 전재산으로 먹을 걸 사면 전 지구인이 굶주릴걸.
“그보다 너도 백수 될 텐데 어디 감히 나보고 백수라고 하는 거야?”
“응? 나 짤림? 미래에니메이션 사장자리 내놔야 해? 그건 내 제의로 만든 거잖아.”
미래에니메이션.
뎀마를 비롯해 40여 개 에니메이션이 제작되었고, 현재도 13개의 에니메이션이 만들어 지고 있다.
돈을 수조원 퍼부어서 만들었지만, 컨텐츠시장 폭등과 맞물려 다섯배에 가까운 이익을 창출했고, K콘텐츠 세계정복의 선봉장이 되었다.
“나야 안 짜르지. 하지만 1년 후에 지분 전부 내놓고 나면 이사회가 새로 열릴걸. 너야 지분없는 계약직 사장이니 주인이 누가 되냐에 따라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짤리겠지.”
“헐. 대박. 나도 백수라니. 모아둔 돈도 없는데.”
가오리가 좌절하는 모습에 술맛이 올라온다.
“저축 좀 하지 그랬어. 짠.”
“클럽의 황태자? 풋. 끝났어. 이제 너도 300만 청년실업자다.”
닥똥과 잔을 부딪치고 한잔.
가오리는 혼자 한잔 마시고는 중얼거렸다.
“이제 어떻게 살지... 닥똥펜션은 돈 못 벌고... 핸플놈은 백수고... 여기서 돈 벌 사람은 세계적 가수 제시님뿐이구나! 제시님아! 매니저 필요없어요?”
“풉.”
마침 음료를 마시던 예하가 뿜었다.
막걸리 같네.
“아뇨. 아뇨. 전 괜찮은데... 어떻게 오빠 친구를 매니저로.”
“아... 취업 어떻게 하냐. 이제 나도 이력서 수천 통 돌려야 하나.”
새끼 엄살은.
이력서 들고 어딜 가도 환영 받을 텐데.
“시끄럽고. 방송 좀 보자.”
대머리 대통령이 꾸벅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빈 자리를 채인수가 채웠다.
한국의 대통령과 미래그룹 사장은 동급이다.
“갑작스런 미래블록 발행 중지로 많은 혼란이 있을 줄 압니다.”
갑작스런 발행 중지.
저게 문제다.
내가 눌렀지.
예하가 말을 안 해줬거든.
예하탓이 반이다.
진짜다.
“아시다시피 미래블록은 블록체인이며 함부로 발행할 수 없습니다. 은행에 돈을 넣고, 요청해야 환율에 맞춰 신규발행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미래블록은 문제가 없지만, 은행의 은행원이 장난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보된 날짜가 지나면 임의발행이 불가능해진다.
반대로 말하면 임의소각도 불가능해진다.
미래블록은 영원히 가치가 유지될 것이며 잔뜩 발행해 가지고 있으면 그 자체가 황금이 된다.
“세계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발행요청이 들어옵니다. 저희는 각국은행의 요청을 받으면 그들이 담보로 제시한 자료를 분석한 후 발행해줍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수많은 은행에서 있지도 않은 현금이 있는 것처럼 꾸며 미래블록 발행을 요청했고, 이미 담보로 잡은 현금을 새로 들어온 것처럼 꾸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정부에서 새로 돈을 찍어 미래블록과 바꿔 달라 요청했습니다.
새로 돈을 찍어 미래블록을 발행하다니. 지금껏 전 세계 정부가 해 오던 사기지 않습니까? 이를 허용하면 현재 미래블록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피해를 봅니다. 그렇다고 모든 은행의 금고에 숨어있는 현금을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부득이하게 발행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하와 각방을 쓴 스트레스 때문에 실수로 눌렀지만.
저것도 맞는 말이다.
미래블록이 화폐질서가 될 것을 깨달은 정부들이 마지막 불꽃처럼 돈을 발행해 미래블록으로 바꿔 달라 난리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각국 화폐가 더 폭락했다.
은행창구의 직원들도 없는 돈을 있는 척 꾸며가며 미래블록으로 달라고 했다.
부실 청구에 대한 자료는 많다.
발행팀 직원이 하는 일이 그것이니.
내 아이 때문이 아니라 각국에서 미래블록으로 돈 벌이를 하려한 것이 문제다.
암튼 그렇다.
이렇게 결론짓고 넘어가자.
진실은 예하도 모른다.
나와 채인수 형만의 비밀.
비밀은 소중히 지켜질 때 아름다운 법.
“야. 뭐해? 마셔.”
가오리놈이 생각 없이 툭툭 찌른다.
지금 세계의 비밀을 고뇌하고 있거늘.
방송에서 채인수가 적당히 변명한 후 빠르게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다들 혼란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세계 환율과 채권이 요동치는 것이 그 증거겠지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혼란스러워 하지 말길 바랍니다. 각국 화폐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달러 기준의 화폐시스템이 미래블록 기준으로 바뀔 뿐입니다. 이는 각국의 화폐에 더 큰 안정성을 부여합니다.
달러가 추가발행을 하거나, 테이퍼링을 하거나,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화폐시장이 요동쳤고, 당신의 소중한 자산이 줄거나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미래블록덕에 안전하고 잔잔하게 바뀝니다. 외적 요인에 의해 당신이 재산을 잃을 일이 없어진다는 뜻이죠. 미래블록은 달러의 세 배를 확보했고, 임의로 조작이 불가능한 무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화폐는 화폐의 본래 가치, 물물교환을 편리하게 해주는 교환수단으로만 기능하게 됩니다.”
튜닝의 끝은 순정.
돈장난을 치고 온갖 파생상품을 만들어 소중한 근로소득을 무가치하게 만들던 시대는 끝났다.
돈은 물물교환의 수단이며 노동가치의 척도가 된다.
- 작가의말
매화 했던말을 또하는 것 같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아주 조금씩 개념을 확장... 수학책같은 거죠... 그래서... 재밌나요? 지루할거 같은데... ㅈㅅ...이게 한계네요. 장르소설이 지루하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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