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솔선수범
-저희 미래그룹도 아시안 항공을 인수하려고 했으며 현재 한국항공이 인수하는 조건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불렀습니다. 헌데 당시 정부에서는 우리를 배제하고 현대개발에 매각하려고 하더니, 지금은 모든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한국항공에 넘겨주려고 하는군요. 이건 말이 되지 않는군요.
채인수의 강도 높은 비난.
하지만 지난해 인수가 무산된 건 내 의도가 어느 정도 들어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기에 미래그룹은 빚 탕감 등 조건을 세게 불렀다.
싸게 살 수 있는데 굳이 비싸게 살 이유가 없으니까.
우리가 돈 많은 걸 아는 당시의 정부는 뒷돈도 챙겨주지 않고 빚만 깎으려 하는 게 괘씸하다며 막았고.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국적포기사건을 계기로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전 국민이 비리를 찾아 동네한바퀴를 도는 수사문화가 펼쳐졌다.
공무원들은 아무 생각 없이 지시받은 일을 도장 찍고 처리했겠지만 세상이 바뀌었으면 눈치껏 멈췄어야지.
왜 내세상이 온 후에 미친 짓을 한 거니?
-수상한 일에는 수상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는 자세히 알고 싶군요. 윤동욱 회장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돈 한 푼 내지 않고 압도적 독점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비화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더군요. 본래 미래그룹은 기업의 비리엔 손을 대지 않았으나 이번엔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겠더군요. 정의로운 사람을 기다립니다.
얼마 주겠다는 말은 못한다.
하지만 말나오지 않도록 챙겨줄게.
찾아줘.
내부고발자를 기다린다.
경영권 분쟁중인 회사이며 회사 내에 파벌이 갈라져 있다.
과연 얼마나 숨길 수 있을까.
이 일의 비화로 전직 금융위원장이자 현직 한국항공 사외이사가 산업은행장에게 훈수를 뒀다 정도만 알고 있지만, 제대로 파보면 줄줄이 엮여 나올 일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대략적인 전개를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흥신소 아저씨들을 미리 붙여 놨었다.
지금 채인수가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비리를 찾아달라고 하지만, 이미 증거를 갖고 있다.
시민이 찾은 척 흘리면 된다.
“오빠, 오빠.”
“어.”
“이렇게 하면 무산 돼?”
“그렇지.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건 불가능해. 차라리 아시안 항공을 부도처리하는 게 순리적으로 옳지.”
“그럼... 결국 아시안 항공은 오빠가 사겠네.”
“그렇지. 독점기업의 탄생은 무산되게 되고 우리는 아시안 항공을 예상했던 것보다 반값에 살 수 있어. 100% 이렇게 돼.”
“그런데 그러면 한국항공 주식은 어떡할 거야? 폭락할 거 아냐?”
예하가 주가에 훈수를 뒀다!
“오올!”
“엣헴! 서당개 삼년이라굽쇼! 으쓱으쓱.”
으쓱을 입으로 말하냐.
“팔아야지.”
“30%를 던지면 폭락할 거 아냐?”
“아니지. 현재 회장은 마지막 수였던 국민의 세금을 놓치게 되었어. 그렇다고 쉽게 물러날 수 있겠어? 사람 욕심이란 게 그런 게 안 되지. 게다가 3자연합쪽엔 아직 여유자금이 남아돌아.”
“끝까지 싸우게 하려고?”
“어. 그것도 공개적으로. 비율 맞춰가며.”
후후훗.
한국항공 큰 아들이나 땅콩누나나 도찐개찐이다.
도덕적으로 누가 더 못났는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그렇다고 내 돈 써서 벌 줄 생각은 없다.
서로 박 터지게 싸우게 만들 뿐.
당일 한국한공 회장과 지지자들에게 제안서를 보냈다.
5% 상향된 가격에 블록딜 하자는 제안.
시장에 나온 매물은 거의 없다.
있어도 순식간에 채간다.
사생결단.
회장 측과 3자연합은 모든 걸 걸고 싸우고 있다.
게다가 미래그룹의 규탄이 나오자 주식시장은 아시안항공 인수가 무산될 것을 강하게 직감했다.
임시 대통령 대리까지 나와서 강력하게 규탄하고 철저히 검토하라고 소리칠 정도.
이렇게 되자 한국한공 주가는 폭등했다.
거의 모든 지분을 회장측과 3자연합측과 내가 나눠 갖고 있기에 얼마 안 되는 개인의 물량을 나오자마자 휩쓸어 주가를 쭉쭉 올렸다.
회장측에만 블록딜을 하고 공시되니 각 팀은 실시간으로 보유 지분을 계산했다.
다음날 회장측의 지분율이 3자연합을 넘어서자, 땅콩측을 넘어서자 땅콩언니가 우는 소리를 했다.
방송으로 떠든 게 아니라 무수골까지 찾아와 정문에서 우는 소리를 했다.
어쩌겠어요.
팔아드려야지.
5% 상향된 가격에 있는 돈만큼 팔아주고.
다음엔 회장측.
다음엔 3자측.
이쯤 되면 바보라도 우리 의도를 알 것이다.
비싸게 털고 빠지기.
그렇다고 사지 않으면?
이미 팬티까지 벗어 베팅했는데 마지막 한 걸음을 남기고 기권한다?
주주총회까지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포기?
둘 사이의 지분을 맞춰주면 3~4%씩 팔아줬다.
개미들도 시장분위기를 읽고 함께 가격을 올려줬다.
회장측과 3자연합측은 살고 있던 집까지 팔아가며 주식을 샀다.
나중엔 회장측이 갖고 있는 게 모자라자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다.
주식을 사서 회장 측을 지원하기로 하는 세력.
무슨 대가를 약속 받았으려나?
스튜어디스들이 자발적으로 생일잔치 해주려나.
2월 중순, 구정이 지났을 때 쯤 한국항공 주식 전부를 정리했고, 산업은행의 아시안 항공 매각도 무산되었다.
비리가 들통 난 한국항공 사외이사들과 몇몇 정치인들이 구치소로 끌려가는 가운데 미래항공이 아시안 항공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되었다.
당연히 한국항공의 아시안항공 인수와 비슷한 조건에 논의 중이다.
매각한 한국항공 지분 30%.
수익률은 3.3배. 4조원을 벌었다.
바닥에서 주웠으니 경영권 분쟁에 의한 추가 수익은 2조 정도.
꽤 괜찮은 놀이였다.
한국항공에서 거둔 수익만으로 아시안 항공의 주인이 되었다.
한국항공 회장측과 전무팀의 돈으로 아시안 항공을 사서 나에게 준 격.
고마워라.
“오빠. 그런데 이러면 원한사지 않을까?”
“원한?”
“둘 사이에서 비싸게 팔았잖아.”
“정확히는 둘이 아니잖아. 남매의 돈으로 부족해서 이런저런 사모펀드와 기업들을 끌어들였잖아.”
“차이가 있어?”
“난 비싸게 팔았지만, 협상의 결과였어. 한편 이런 저런 약속을 받고 우호지분을 산 사람들. 그들이 끝까지 손을 잡을까?”
현재 지분은 회장측과 땅콩측이 똑같이 44%다.
일부러 맞춰줬다.
승리하려면 상대 측 우호지분을 빼와야 한다.
어떤 비밀협상들이 오가고 있으려나.
“어... 서로 배신할거란 말이야?”
“응. 만약에 내가 지분을 팔지 않고, 둘과 협상해 어느 쪽의 손을 잡아준다면 패배한 쪽은 나에게 원한을 갖겠지. 그런데 난 손을 털었잖아. 서로 상대측의 배신을 유도할 테니 원한이 서로에게 쏠릴 수밖에.”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회장이 되어야 하는 거야? 오빠의 주식 이득만큼 저 사람들에게는 손해잖아. 한국항공에 무슨 신기술 같은 거 있어?”
“그냥... 멍청한 거지.”
항공사 회장이 되면, 거드름피우고, 뽐내고, 국적항공기로 밀수하고, 아름다운 스튜어디스들의 자발적인 생일축하행사를 받을 수 있다.
끝.
연봉 수십억 받아봤자, 주가 차익을 계산하면 손해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통제되는 것이 아니다.
뭣 하러 회장하려고 하는 건지 참.
“오빠는 허세나 뭐 그런 거 없어서 참 좋아.”
예하가 안기면서 애교 부렸다.
“니 앞에선 허세 부리잖아.”
“에이. 실제 능력도 감추면서.”
“후후후. 사실 주인공이 능력을 감춤.”
“헤... 맞다. 이 뉴스 봤어?”
예하가 내 허리를 당겨 자기 무릎에 날 앉혔다.
여자가 뒤에서 백허그 하는 자세.
날개뼈 끝 쪽에 뭉클한 감동이 닿았다.
“안 무거워?”
“엉. 여자는 약할 거라는 편견은 넣어둬. 힝 나는 안 보이네.”
예하는 뒤에서 손을 뻗어 내 눈앞에 테블릿을 보여줬다.
[타임즈 선정 2020 올해의 인물 윤동욱(25)]
지난해 올해의 인물 2위에 올랐던 윤동욱이 드디어 2020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윤회장만큼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이가 없었으니 뽑히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었고, 사실 2019년에 탈락한 일이 오히려 논란거리였다.
와습 중심의 신용평가 기관은 아시안 기업에 일률적으로 한 단계 낮은 신용평가를 하며 각종 분야의 시상에도 아시안이 보이지 않는 감점을 받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하지만, 한중일 3국이 있는 동북아시아는 국가경제규모 세계 2위, 3위, 8위 국가가 몰려 있는 세계 최고의 경제 중심지이고, 전 세계 인구의 65%가 아시아인이다.
아시안 패싱에 억울해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와습을 패싱해도 된다. 와습은 아시안 없이 살 수 없지만, 아시안은 와습 없이 살 수 있다.
그들은 보이는 것보다 약하다.
-어? 뭔소리냐?
-우리가 유럽차별하재
-ㅋㅋㅋㅋㅋ기레기의 글은 팩트만 봐야한다
-맞는말 아니냐?
-아니 우리 형 올해의 인물 기사에 왜 똥을 뿌리는데?
-아시안패싱을 이겨내고 올해의 인물이된 우리형 자랑스럽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우리형이 올해의 인물 될 듯
-동욱 그는 신인가 그는 동욱 신인가 신은 동욱인가
-동욱 그는 신인가 그는 동욱 신인가 신은 동욱인가
-동욱 그는 신인가 그는 동욱 신인가 신은 동욱인가
-ㅋㅋㅋ우리형 축하만 해 줍시다
-내가 왜 니 형인데?
마지막 댓글은 내가 썼다.
테블릿 불편한 자판으로 낑낑대며 익명 댓글을 올리니 예하가 어깨너머로 보려다가 옆구리로 보려다가 결국 날 밀어 옆에 앉았다.
예하의자, 탱탱하고 좋았는데.
“오빠가 올해의 인물이래. 코로나 위기를 헤쳐 나가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대.”
“아직 못 이겼잖아.”
“그래도! 오빠 덕에 백신이 나왔잖아. 거기 기부금만 40조원이고.”
“어... 그래.”
나 아니었어도 나왔을 테지만 대량생산은 조금 늦었겠지.
원료 확보를 미리 해둔 덕에 예전보단 더 많이 순조롭게 생산해 전세계에 뿌리고 있다.
원가 그대로 팔고 있으니 이득도 손해도 없다.
나 때문에 다른 백신회사들도 가격을 함부로 올리지 못하고.
똑똑똑.
“채변 오빠 왔다.”
예하가 강아지처럼 달려가 문을 열어줬다.
“여~”
“요~”
채인수와 대충 인사하고 소파에 마주 앉았다.
예하는 옆에 붙어서 눈을 반짝이고 있다.
“자.”
채인수는 상장 비슷한 것을 예하에게 줬다.
올해의 인물 선정 트로피, 세계보건기구에서 전달한 감사패, 아프리카인권과의료인프라구축을위한사회연대에서 보내온 감사패 등등등 수없이 많은 상을 사진만 찍어서 줬다.
“채변 오빠. 이게 오늘 도착한 거야?”
“요게 또.”
채인수가 예하의 머리를 딱콩했다.
“오늘만 이만큼. 매일 그만큼 오고 있어.”
온갖 듣도 보도 못한 단체에서 상을 주겠다고 오라고 한다.
그런 거 다 참여하면 상만 받다가 인생 끝나겠다.
적당히 성공했다면 그런 데 나가 상을 받고 축하를 받고 멋진 연설을 하고 화려한 만찬에서 멋진 식사를 하며 뽐내고 호감으로 눈을 반짝이는 미녀와 환상적인 하룻밤을 보내겠지만, 시발 너무 성공해버렸지 뭐얌.
너무 성공해서 나갈 수가 없다.
상패는 각국 지사에서 받아 한국으로 보내고 있다.
성수동 빌딩 1층엔 온갖 트로피와 감사패가 주루룩 전시되어 있다.
“이건 됐고. 미래 바이오가 대박친 거 같다.”
“네? 백신이요?”
“그건 수익 없이 하기로 했잖아. 그거 말고 신약.”
“오올. 뭔데요?”
미래 바이오는 백제바이오와 미국의 올바이오 등 수십 개 바이오 회사를 인수해 만들었다.
신약 개발 전문 회사로 전부 내 기억에 어렴풋이 있는 회사들을 인수했는데 각자 개발하는 신약이 다르다.
올바이오는 엔돌핀합성약을 만들어 3상이 진행 중이고, mRNA 연구소 여러 개를 모아 코로나백신을 만들어 원가에 판매중이다.
그 외엔 아직 돈만 빨아먹는 하마들이었는데 드디어 성과가 나왔나보다.
“탈모약. mRNA 기반의 탈모 예방제. 건강보조약이지만, 주사를 놔야 해서 의약품으로 들어갈 거 같아. 바로 임상실험 들어갈 거야. 참가자 모집하고...”
“형 나요!”
자원했다.
“응?”
“오빠?”
둘의 황당한 표정.
“솔선수범해야죠.”
“아니... 그래도.”
“야. 이런말 하면 안 되지만, 네가 자칫 부작용으로 죽으면 인류에 손해야.”
그래.
임상실험 잘못하면 큰일 나지.
나처럼 대단한 분이 그런 거 하면 안 되지.
하지만.
“예하야. 우리 집안엔 슬픈 전설이 있어.”
예하에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줬다.
“아......”
예하의 깊은 탄식.
예하야, 이건 비밀인데 44살까지 살아본 나는 이 약이 지금 당장! 꼭 필요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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