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미래 글로벌 수산
게임스탑 사태가 끝난 후 한가한 2월이 되었다.
게임스탑보다 100배 중요한 일이 수백가지 진행되고 있지만, 내가 직접 손을 댈 필요는 없다.
방향만 잡으면 된다.
집에 콕 박혀 시차 적응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오늘 가냐?”
나란히 서 있는 닥똥을 툭 쳤다.
“어.”
무수골 저택 중 닥똥의 집 앞에 이삿짐 차가 서 있다.
어린 신부 길영주는 배달 업체 직원 사이에 껴서 이것저것 잔소리를 하고 있다.
닥똥은 전직을 했다.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영흥도에 펜션을 샀다.
이제 닥똥은 펜션 사장이다.
“아쉽지 않냐?”
“나? 솔직히 맞지 않는 옷이었어.”
“그랬지.”
낯가리는 건 천성이고, 경험을 통해 나아진다 해도 받는 스트레스는 그대로다.
스포츠 그룹의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래저래 사람들 앞에 설 일이 많았으니 어렵지 않은 일 자체가 스트레스였을 거다.
닥똥을 사장으로 앉히며 편한 일도 하고 낯가리는 것도 고치라는 내 깊은 뜻이 이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닥똥은 갑자기 ‘나 천 억 모았으니 은퇴할게.’ 라며 쿨하게 사표를 던졌다.
“제수씨는? 돈 욕심은 있지 않겠어?”
“영주가 먼저 말한 거야. 그보다 제수씨 아니고 형수님. 아무튼. 영주도 조용한데서 도란도란 살고 싶어 했어. 천억이나 모았으니 더 욕심 내지 말재. 펜션이지만, 딱히 손님 많이 받을 생각 없고, 하루 한 팀씩만 받기로 했다. 장인 어른, 울 아부지 다 낚시 좋아하니까 찬성하셨고, 정년 퇴임 하시면 30분 거리에 집 사드리기로 했어. 낚시 다니면서 친구들 초대해서 놀고. 그렇게 편하게 살련다.”
“그래.”
멋있네.
아쉬운 건 나지.
씁.
닥똥이 맡은 일은 없다.
구단주 일이야 닥똥 외에 아무나 해도 되는 일이다.
회사의 직원들이 각자 알아서 처리하니 그저 얼굴마담이 필요한 일일 뿐이다.
내가 아쉬울 뿐.
“집들이 날짜 잡아.”
“어. 다음주에 가지 뭐.”
“그래. 나 간다. 빠잇!”
“그랴.”
닥똥이 자기차로 갔고 영주씨와 투닥거리며 차를 몰았다.
두 대의 이삿짐트럭이 뒤를 따라가고 닥똥의 경호팀이 따라간다.
갑자기 외로워지네.
영주와 쎄쎄쎄 하며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온 예하가 조용히 손을 잡아 줬다.
가오리놈은 어제 안 들어왔다.
돈을 많이 번 쏠로 가오리는 클럽의 황태자로 살고 있다.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며 매일 밤을 즐기는 삶.
바람둥이의 삶이지만 범죄는 저지르지 않는다더라.
타고난 말빨과 엄청난 명함으로 전부 꼬시고 다닌다는데 자기는 이렇게 사는 게 가장 좋은 거 같다며 일부러 누군가를 사귀지 않고 있다.
제길.
회귀하고 내가 생각하던 삶이 저거였는데 너무 많이 벌었어.
괜히 묶었잖아.
인간의 삶은 신기하고 오묘한 것이다.
과거의 가오리는 치기공을 졸업하고 가장 성실한 사축이 되어 갈렸다.
닥똥은 건설사에 입사해 하청업체의 접대술자리에 빠짐없이 나가는 술귀신이 되었다.
그랬는데, 이젠 둘의 삶이 완전 다르다.
어쩌면 돈에 여유가 있는 지금 나타나는 모습이 진짜 성품이 아닐까.
과거의 삶은 점수맞춰 졸업하고 어쩌다 붙은 회사를 다니며 만들어진 삶이고.
모르겠다.
삶이라는 것은.
그리고 루비는......
“루비언니 오늘도 안 온 대. 할 일이 많대.”
예하가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오빠가 말해서 집에 오라고 해. 언니 또 일만 해서 큰일 나면 어떡해.”
“이번엔... 조금 다른 것 같아.”
3p는 실패다.
예하와 루비 둘의 적극적인 육탄 공세로 이루어진 삼인동맹.
나야 뭐 나쁠 거 없으니 받아들였으나.
비정상적인 건 결국 문제를 낳는다.
셋이 함께 섹스도 해보고, 섹스 없이 함께 안고 자기도 했으나.
루비가 결국 떨어져 나갔다.
이유는 많겠지.
벗어놓고 보니 예하와 너무 차이나는 외모가 문제일 수도 있고.
예하의 동정심과 희생으로 허락한 관계가 상처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질까봐 두려울 수도 있고.
나에게 폐 끼친다는 눈빛도 보이고.
예하와 루비를 대할 때 미묘하게 다른 내 감정이 문제일 수도 있고.
루비는 아직 길을 못 찾은 사춘기다.
사실 20대, 30대를 지나도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청춘은 많다.
루비도 그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아직 삶의 철학이 완성되지 않아 본인이 어떻게 살고 싶은 지 찾지 못한 청춘.
루비는 일 핑계로 성수동 근처 자기 집에서 자는 날이 잦아지고 있다.
“그냥... 두자. 원할 때 오라고 하자.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니야.”
조승학이 괴롭힌 건 범죄자를 벌 주고 피해자를 보호하면 될 일이었다.
다만 피해자의 정신까지 치료하는 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예하는 조용히 손을 잡았다.
2월 쌀쌀한 날씨에 걷다보니 연못이다.
연못 바로 옆에 만들어진 그네벤치에 앉아 삐걱삐걱 몸을 흔들었다.
“어? 사료 있다.”
“그래?”
양식중인 자치용 사료를 들자, 물속에서 탐색중이던 자치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퍼석댔다.
두 차례 알을 받아 수백마리로 늘어난 자치 떼.
큰놈은 허벅지보다 커졌다.
이제 방생을 허가받기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중이다.
사료를 뿌리니 연어처럼 생긴 거구들이 물 위로 점프해가며 치열하게 받아먹는다.
“귀여워.”
“그러네. 귀엽다. 오빠. 나도. 내가 할래.”
“아이고오 안 됩니다! 아이고! 정량 다 줬습니다!”
연못 관리인 아저씨가 저 멀리서 귀신같이 달려왔다.
CCTV로 감시하나.
“죄송합니다.”
“피딩하시려면 말씀을 하시지. 아이고. 이게.. 죄송하지만 함부로 주면 안 되요.”
“네.”
또 혼났다.
예하 놈은 자기는 안준 척 딴데 보고 있다.
배신자.
류안구가 잠시 잔소리를 하다가 말을 돌렸다.
“미래수산이 EU에서 탄소배출권을 인정받았습니다.”
류안구가 손에 든 서류를 흔들었다.
미래수산.
고기만 기르는 게 아니라 적정량의 세 배 가량의 해초를 함께 길렀다.
한국의 수산물 수출 1위인 김을 포함해 미역 다시마 등 상품 작물과 빠르게 잘자라는 사료용 해초 등을 잔뜩 길렀다.
해초 양식의 영향력을 10여 개 연구기관에 의뢰했고, 드디어 탄소감소, 산소생성의 효과를 입증받았다.
“좋은 소식이네요.”
“예. 유럽의 감세와 탄소배출권 판매를 생각하면 미래수산은 흑자입니다. 흑자.”
탄소절감.
유럽에서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에 거액의 탄소세를 물린다.
주로 중국 기업들이 추가관세에 몸살을 앓는다.
미래그룹도 작년부터 각종 생산기업을 인수하면서 탄소세를 내야 할 위기에 처했으나 미래수산의 해초사업이 탄소절감 효과를 인정받았다.
숲 만들기.
육지에 숲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거액의 돈과 수년의 시간과 거대한 땅이 필요하다.
바다에 숲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3개월이면 1회전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닷물에 녹은 탄소이온을 빨아들이고 산소를 배출하는 등 육지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바다 속에는 인류가 역사기간 내내 배출한 모든 탄소량의 2000배에 달하는 탄소이온이 녹아있다.
지구온난화와 탄소의 관계는 20년 후에도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온도가 오르면 바다속 이산화탄소가 빠져나와 공기로 올라간다.
바다속 이산화탄소가 공기로 올라가면 온도가 오른다.
둘 중 어느 게 먼저인지는 모른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다.
다만 20년 후까지 입증된 한 가지는 온실가스는 바다에 녹여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미래의 온실가스 대책의 기본진행사항.
미래를 알기에 미리 진행했다.
“미래수산을 미래글로벌수산으로 키웁시다. 전 세계 바다에 양식장을 만들고, 양식장의 열배 규모의 해초를 키웁니다. 추가로 매년 10조원의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비용을 투입합니다. 해초살리기 사업으로 일정크기로 키운 해초를 그 지역 바다에 뿌려 바다를 살리는 비용입니다. 이렇게 지출되는 비용은 탄소세 증가와 맞물려 본전치기는 되겠죠.”
탄소세는 점점 확대되고 점점 비싸진다.
미리 준비하면 절세효과를 얻는다.
좋은 일해서 칭찬받는 데 드는 돈은 탄소세 덕분에 제로가 된다.
이보다 좋은 사업은 없지.
거기다 조선업 1등, 피딩용 위그선 팔아먹을 걸 생각하면 이익이 생긴다.
류안구의 입이 떡 벌어졌다.
먹이 주는 거 막는 겸 좋은 소식 전하러 왔다가 압도적인 스케일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그래봤자 저인망 어선 한척이 쓸고 가면 사막화 됩니다.”
바다는 육지보다 훨씬 많은 산소를 배출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바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육지에서 암만 지랄을 해도 이산화탄소가 증가한다.
바다의 바닥을 끌고 다니며 모든 치어를 잡아들이고 해저의 수초밭을 사막으로 만드는 저인망어선이 지구온난화의 1등 공신이다.
전 세계엔 460만 척의 어선이 활동하고 있고, 이 중 삼분의 일이 중국 어선이며 전체의 절반은 등록되지 않고 규제받지 않는 불법 어선이다.
인류는 아직 바다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게 문제니까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각국 정부와 협력해야죠. 정부가 지정하는 보호구역에 해초숲을 만들면 어장도 살아나니 정부가 싫어할 리 없죠. 불법어선을 막는데도 적극 협조하게 될 겁니다. 그물질 금지 구역을 얻어내고 각국 연구기관과 조성한 해초종류 선정하고 숲을 조성하고 그물이 찢어지도록 거대한 철제 농장도 넣고, 수천억짜리 수중 데이터 센터까지 넣으면 못 들어오겠죠. 미친 척 들어왔다간 수천억의 손해배상을 하게 만들어 버리죠.”
“예. 하. 멋진 일이네요. 미래수산에 본사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류안구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시한다.
일 하는 분들은 월급 이상으로 열심히 일한다.
미래 글로벌 수산.
유럽의 탄소세 면제를 얻어냈으니 이제 마음껏 확장해도 된다.
참치의 숫자는 50년 전보다 97%나 감소했고, 원양어업은 본전치기도 힘들어지는 상황.
해양양식은 아무리 크게 확장해도 앞으로 무조건 성장할 사업이다.
예하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왔다.
2월이라 아직 많이 춥다.
뉴스에는 탄핵당해 쫓겨나고 각종 비리가 수사중인 전임대통령을 대신할 후보들이 열성적인 연설을 하고 있다.
윤동욱국적포기사건 이후 40일.
한국은 아직 불타오르고 있다.
수없는 비리가 폭로되고 너무 많은 비리가 폭로되어 경찰, 검찰이 마비될 지경이다.
시민들이 열심히 조사하고 스스로 수사해 증거를 잘 포장해 검찰 입에 떠먹여주는 상황.
예전 같으면 수사권 없이 얻은 증거이므로 채택불가! 라고 지껄이며 불기소처분 했겠지만, 지금 그런 짓을 하면 검사도 함께 잡혀간다.
꾸준히 비리가 폭로되고 죄인이 불타죽는다.
-저런 걸 내가 낸 세금으로 보관해야해?
-20년 간 저딴 걸 보관할 생각하면 세금 내기 싫어진다
-쓰레기 처리비용 내라고 해. 비리로 가족 친척 다 부자 됐더만, 가족친척이 돈 없으면 탄광으로 보내버려!
-군대보다 살기 좋은 감옥. 공장노동자보다 편하고 안락한 감옥의 삶.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든다 ㅅㅂㅅㅂ
여론은 꾸준히 내 편이다.
이런 와중에도 새로운 대통령은 뽑아야 하니 탄핵 100일 뒤로 잡힌 대통령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후보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래그룹의 미래증권을 적극 돕겠습니다.”
“공정! 그것이 내가 해내야 할 가치입니다. 미래거래소를 정식 등록하여 한국의 세번째 증권시장으로 만들겠습니다.”
“국경을 초월한 미래거래소를 만들어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주식을 미래거래소에서 살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후보라면 차별성이 있어야 할 텐데 미래 그룹을 말할 땐 다들 똑같이 날 돕겠다고 한다.
차별성을 위해 반대되는 말을 한다?
그 순간 대선후보 탈락이다.
어느 후보가 오르던 미래그룹을 압박할 일은 없다.
오히려 너무 과하게 용비어천가를 불러제끼니 민망해서 뉴스를 못 보겠다.
- 작가의말
지구온나나나 탄소배출권 등에 관해선 중립입니다.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어요.... 수산업의 미래에 대한 말만 하고 끝낼래요 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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