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미래쇼핑2
“안 힘들어요?”
모니터 들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봤다.
“네 명이 5분마다 교대하고 있어서 괜찮습니다. 돈도 많이 받고요.”
덩치 큰 아저씨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그래도... 이거 가혹행위 같은데.
“형 좀 쉬라고요. 아놔. 죽을 뻔한 인간이.”
“내가 중환자실에서 뭘 느꼈는지 알아?”
“뭔데요?”
“사람이 너무 심심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와... 시간 진짜 안가더라. 핸드폰도 못 보게 하고, 진짜 죽을 뻔했어. 말 받아주는 간호사 누나들 아니었으면 진짜 죽었을 거야.”
“아픈 건 좀 괜찮은가 보네요.”
“뭐... 웃으면 아프고 몸 일으키면 아프고... 그 정도야. 심심하고 시간 안가는 게 더 괴로워.”
씁.
내장이 갈기갈기 찢어졌던 인간이 웃으며 하는 말이 참.
아직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미안한데 잠시 둘만 있을게요.”
고용인들을 내보내고 김상철과 둘만 남았다.
그리고 길고긴 사건의 전말을 차분히 말했다.
“형이 나 대신 칼 맞은 거라고요.”
“음. 확실히 미친놈 같았지.”
“그놈은 확실히 죽일 거고요.”
법원에 손쓰고 있는 내용까지 숨김없이 전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이 싸람이.
형 복수 해준다고 지금.
진짜 코드 빼면 아무 관심도 없는 인간.
“앞으로 형이 하고픈 거 뭐든 지원해줄게요. 돈을 매개로 고용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형이 하고 싶은 거 얼마든지 하게 해 줄게요. 일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형이 하고픈 일 있으면 해요. 뭐든.”
가오리처럼, 닥똥처럼, 무한지원 해준다.
날 대신해 칼 맞은데 대한 보상이다.
“딱히 원하는 건 없는데. 그냥 코딩만 하고 싶은데 그건 지금이랑 같잖아.”
그래, 코더가 원래 개썅마이웨이지.
뭘 주려고 해도 원하는 게 없으니 주지를 못하겠다.
“지금까진 회사에서 요구하는 걸 했다면 이제부턴 그냥 형이 하고픈 대로 막 하라고요.”
“... 뭔 차인지 모르겠네. 지금까지 억지로 한 거 없는데.”
네. 그러십시오.
“그리고 무수골에 저택이 있거든요. 한 채 쓰세요.”
여기는 내 정체를 아는 사람만 들였는데 이제 김상철도 들인다.
“거기 본사에서 가깝냐?”
“에... 길이 막혀서 보통 한 시간 걸리더라고요.”
“그럼 안 갈래. 귀찮아. 회사 바로 옆에 집 하나 사줘.”
“... 네.”
주고 싶다고! 미안해서 뭐라도 주고 싶다는데 왜 받지를 않니.
“아. 하나 원하는 게 있다.”
“네. 뭔데요?”
“군자 병원 중환자실에 오혜숙이란 간호사가 있거든. 나 심심할 때 대화해주던 사람인데 여기 전속 간호사로... 이건 좀 그런가.”
사랑인가?
사랑이군.
“아뇨. 원하는 거 다 해준 대도요. 당장 지시 내릴게요.”
사람 고용하는 게 가장 쉽다. 돈만 많이 주면 되니까.
“됐으면 가 봐. 내가 생각한게 있어서 그것 좀 짤게.”
이거 참 내가 괴롭히는 거 같잖아.
“네. 몸조리 잘해요. 또 올게요.”
“바쁜데 귀찮게 올 필요 없어.”
자기가 귀찮다는 거군. 거 참.
문이 열리고 아저씨들이 들어와 아까처럼 세팅을 했다.
모니터엔 프로그래밍 화면이 켜지고 한쪽의 메신저엔 김상철을 찾는 메세지가 줄을 잇는다.
자기 나름대로 가장 보람찬 하루를 보내는 거겠지.
“괜히 합병증 걸리면 난리 칠거에요.”
“가봐.”
“네.”
씨알도 안 먹히네.
그룹의 최고 핵심 인재를 저렇게 둬도 되려나.
아 모르겠다. 저 썅마이웨이를 어떻게 다뤄.
냅두자.
VIP 병실을 나와 한참 기다렸다.
옆 병실이 열리며 예하가 나왔다.
“어어. 엄마. 또 올게. 응. 아주 좋아. 몸 조리 잘해.”
환하게 웃음 지으며 문을 닫은 예하가 돌아서자 눈물을 똑똑 흘린다.
“오빠, 오래 기다렸어?”
“아니. 어머니는?”
“그대로... 아니 살짝 안 좋아졌대. 흑. 자연치유력 말고 기댈게 없대.”
막을 수 없는 흐름.
손 쓸 수 없는 환자가 있다.
돈을 많이 쓴다고 무조건 치료할 수 있다면 누구도 죽지 않겠지.
알지만, 그 대상이 아는 사람이란 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다.
조용히 예하를 안아줬다.
감히 어떤 위로의 말도 섣불리 내뱉을 수 없었다.
일산에서 본사로 가는 대신 여의도의 자산운용사로 갔다.
점심이 살짝 지난 시간.
100명을 넘긴 펀드매니저들이 요란하게 전화를 하며 거래를 하고 있다.
왜 여기는 올 때마다 이렇게 시끄러운지.
전화를 하지 않으면 거래를 할 수 없는지.
성수동으로 들어오라 해도 권순진은 금융은 반드시 여의도에 있어야 한다며 막았다.
금융에는 금융만의 법칙이 있다.
가드의 안내를 받아 사장실로 들어갔다.
권순진도 요란하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눈인사를 받고 소파에 예하와 나란히 앉았다.
“여 왔어?”
전화를 끝낸 권순진이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안색이 전보다 밝아지고, 살도 좀 올랐다.
대신 이마가 좀 더 후퇴했다.
아이티는 좀비가 되고, 금융은 이마가 후퇴하는 건가.
“어때요?”
“공매도 10% 수익. 워낙 대형주들이라 느리게 빠지지만, 대신 꾸준히 빠질 거야.”
미래쇼핑.
단순히 발표로 끝내는 게 아니다.
미래쇼핑을 발표하기 전에 관련 기업에 공매도를 쳤다.
이건 불법이 아니다.
주가 조작도 아니고.
그리고 우리의 뒤를 따라 공매도 수량이 미친 듯이 늘어나고 있고, 공매도 대차주식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얼마나 빠질 거 같아요?”
“유통사 대부분 20% 이상 빠지겠지. 흐름을 타면 40%까지 가능하겠지만 복원될 거야.”
펀드매니저들은 단순히 버튼만 누르는 사람이 아니다.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고 변수를 계산해 가격을 예측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적당히 빼요.”
“그래야지. 이게 한국만 빠지는 게 아니야. 세계 유통회사들 대부분이 빠지고 있어. 미국 시장 열리면 아마존과 이베이 등도 빠질 거 같아.”
“와. 발표당일인데 벌써 그래요?”
“그만큼 미래그룹이 성장했다는 거지. 전화로 항의하고 난리치고 장난 아니다.”
아침에 발표한 미래쇼핑의 파괴력이 지구반대편 미국까지 영향을 준다.
밤 시간임에도 미국홈페이지의 방문자가 급증하고 있다.
심지어 발표 10분 만에 판매자 등록 전화와 메일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미국뿐이 아니다.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각국의 지사가 사람을 더 많이 뽑아야겠다.
“낙폭은 카드사가 가장 커. 하한가 근처까지 갔어.”
주식은 최대한 현명하다.
주식으로 먹고사는 수많은 사람은 발표 하나하나에 관련기업이 영향을 받는 정도를 계산하는데 익숙하다.
얼핏 보기엔 온라인 쇼핑몰 회사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 같지만, 그들 또한 수수료를 낮추거나 블록체인 결제시스템을 구축하면 부활할 수 있다.
방향만 잘 잡는다면 몇 달 만 고생하면 된다.
기존 고객이 있기에 미래쇼핑을 찍어 누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카드사는 다르다.
온라인 쇼핑의 고정수익 자체가 사라지고, 이걸 막을 길이 없다.
게다가 미래쇼핑에서 중국의 알라바바처럼 나온다면......
“핀테크는 멀었어?”
“서너 달 걸릴 거 같아요.”
서너달 후에 핸드폰 앱 결제시스템이 완성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카드사는 망한다.
“서너달이라... 공매도 최대한 가져갈까?”
90% 이상 폭락할 텐데.
“너무 욕심내지 말고 팔아요. 정부에서 헛소리하면서 주가 띄우겠죠.”
“그래. 익절 한 번 하고 다시 들어가지. 옵션은 어떡할까?”
“버티면 어떨 거 같아요?”
“지금보다 다섯 배 열배 오를 수도 있는데...... 만기일이 모레라 애매해.”
“쉽게 먹게 놔두진 않겠죠. 뉴스를 이용하든 정부를 이용하든 어떻게든 피해를 막겠죠.”
옵션은 옵션을 발행한 증권사와의 싸움이다.
발행한 증권사가 피해를 막기 위해 만기 전까지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려 발버둥친다.
옵션으로 500배, 1000배 벌었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한번쯤 들어봤다.
하지만 이런 일은 정말 일어나기 힘들다.
옵션 대박은 시간과 사건과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다.
옵션는 현재 가치에 시간 가치가 더해진다.
예를 들어 옵션 만기 1분전, 현재 주식을 30% 낮은 가격에 살 권리는 1원이다.
1분 사이에 30% 하락할 확률이 거의 없으니 1원에 권리를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옵션 만기 2거래일 전이라면 30% 낮게 살 권리의 가격은 100원을 넘는다.
2거래일 사이에 30% 하락할 확률이 반영된 가격이다.
우리는 2일 후 지정 가격에 팔 권리를 최대한 샀다.
현재 가격이 1000원이고 900원에 팔 권리 가격이 100원이라면 800원 이하로 내려가야 수익이 난다.
주가가 500원이 된다면 100원 투자해 400원을 버니 세 배 이득이지만, 이틀사이에 주식이 800원 이하가 되지 않는다면 투자한 100원은 100% 손실이다.
물론 큰 수익이지만, 100배 1000배 같은 기적은 창출할 수 없었다.
옵션만기 직전이라면 권리가격이 1원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수백 배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차라리 내일 모레 발표했다면......”
“그럼 옵션 발행사 다 망했겠죠. 적당히 먹었으면 미리 정리하라고 해요.”
“그래. 이쯤 먹으면 됐지.”
권순진이 대포폰을 들었다.
카드사에 대한 개별옵션은 한국시장에 거의 없고, 있어도 매우 소량이다.
깔끔하게 한국 옵션은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해외펀드 열다섯 곳과 비밀거래를 했다.
폭락시킬 테니 해당섹터에 옵션에 넣어둬라.
신뢰를 주기위해 서로 담보까지 잡아줬다.
말 그대로 세력의 한탕이다.
전 세계 카드사와 쇼핑회사를 상대로 한 무차별 옵션공격이다.
여기 들어간 돈이 2조원.
아직 신뢰가 부족해 담보를 잡아줬음에도 이정도 자금밖에 끌어당기지 못했다.
“수익은 세 배 넘겠죠?”
“최소한. 7:3으로 나누기로 했으니 대충 4조는 벌겠다.”
4조.
미래쇼핑의 파급력이 이 정도다.
후훗.
자랑스런 마음에 옆을 봤다.
예하한테 칭송받고 싶다.
“어?”
예하가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왜에? 할 말 있어?”
예하가 이어폰을 빼며 방긋 웃었다.
“아니. ...... 집에나 가자.”
대실망.
너 귀한 말씀 나누는데 누가 노래나 듣고 있으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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