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전리품 수집
계열사 사장들이 달려들어 조준선을 멈춰 세우고 한참 만에 흥분을 가라앉힌 사장은 백제건설 본사로 이동했다.
다 같이 모인 자리에 끙끙대는 배정구가 실려 왔다.
깁스 푼 다리가 또 부러졌지만, 지금은 병원에 갈 처지가 아니다.
“현 상황입니다. 3사 주식을 매수하는 데 3조원을 썼습니다. 정확히는 계열사 주식 1조와 은행대출자금 3000억, 그리고 라잉펀드에서 보유한 대형주와 채권 1조7000억 어치를 내줬습니다.”
“허어.”
“저런...”
“어쩌려고?”
“펀드 기금을 써도 되나? 그거 불법 아니야?”
계열사 사장들이 남일 말하듯 혀를 찼다.
배정구로서도 속 터지는 일이었다.
건설주를 사기 위해 내걸 담보가 아예 없는데 조준선이 무조건 50% 넘기라니 불법행위까지 해야 했다.
차분해진 조준선이 넌지시 물었다.
“그래서 계열사를 지킬 수 있나?”
“전부는 불가능합니다. 저희가 내줄 수 있는 건 건설과 3사 지분뿐인데, 기관에선 10분의 1가격을 부르고 있습니다.”
어제 산 백제건설 주식이 오늘은 10% 가격으로 평가받는다.
채인수의 선언이 나오자마자 수직 절하되었다.
금융이 원래 이러하지만, 너무 잔인한 폭락이다.
“그래서 어디까지 지킬 수 있겠어.”
“생명과 다섯 개 계열사는 가져올 방도가 없습니다. 생명을 뺏기는 순간 나머지 회사들은 과반이 됩니다. 다만 그 다음, 백제통신은 어렵지만 가능성 있습니다. 백제 통신을 가져오면 그 뒤쪽 네 개 사는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 우선 병원 가서 치료부터 받아. 사장들은 뭘 해야 할지 알지? 일단 자료부터 폐기해. 불법으로 엮일 만한 것 모두.”
조준선이 인자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다 배정구를 봤다.
“뭐해? 안 나가고? 치료부터 받아야지. 아. 걷기 힘든가. 거기. 배실장 좀 병원에 모셔다줘.”
때린 게 미안해서일까?
조준선을 모신지 30년 되었지만, 이렇게 인자한 목소리는 처음이다.
하지만 굳이 지금 내보내는 이유는 뭘까?
부정부패의 증거를 지우려면 자신이 꼭 필요하다.
대부분 내손을 거쳤으니 내가 지워야 확실히 지울 수 있는데.
경호원의 들것에 들려 실려 나가던 배정구는 코웃음을 쳤다.
이건 꼬리 자르기다.
20년간 비서실에 있었는데 모를 수가 없다.
병원에 실려 간 배정구는 다리뼈를 맞추고 깁스를 하는 와중에도 신중히 고민했다.
그리고 깁스가 끝나자 나가려는 의사를 잡아두었다.
“잠시만 기다려요. 수술이 안 끝난 척 잠시 대기해 주세요. 대가로 천 드리겠습니다. 간호사들도.”
배정구의 간절한 부탁, 혹은 천만 원 덕분인지 수술실에서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몸에서 떼지 않고 있던 전화기를 꺼내든 배정구는 번호만 알고 있던 이에게 전화를 했다.
-예. 채인수입니다.
“배정구입니다. 협상합시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형재의 경호팀이 백제 병원에 들어갔고, 배정구 본인의 보호요청이라는 말을 하며 모셔왔다.
배정구를 데려온 순간 전쟁이 더 쾌적해졌다.
구질구질해질 수도 있었던 잔병 처리와 전리품 수색작전이 아주 손쉬워지겠다.
[라잉자산운용 환매불가사태]
백제 생명의 자회사 라잉자산운용은 3조원에 달하는 운용자금을 이번 백제 경영권 싸움에 투입했고, 이를 담보로 받은 1조원의 자금 또한 지분확보에 넣었다. 엄연한 불법 투자이며 이로 인한 지분가치 손실은 최소 2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3만9000여명의 일반 투자자가 손실을 입었고, 백제 생명에 가입한 90만명의 피보험자 또한 향후 보장받기 힘들게 되었다.
-헐. 미친
ㄴ 울 엄마 백제 생명 연금보험에 가입했는데 못 받음?
ㄴ 나라에서 일정량만 보장할 걸
ㄴ 시바 미래새끼들
ㄴㄴ 이걸 미래가 시켰냐? 백제가 미친 짓했지
<배정구 전 백제건설비서실장 : 살해된 건 김유현이 맞고, 조준선 사장이 주도했다. 수사관은 10억을 받고 작업해줬다. 한편 진짜 조승학은 성형수술을 했으며 성형 후 예상되는 얼굴은 이러하다>
- 몽타주 ㅋㅋㅋㅋ 데드 오어 얼라이브
ㄴ 진짜 암살이었네?
ㄴㄴ 저 얼굴 잡으면 1000억 받는겨?
ㄴㄴㄴ 레알 황금고블린이네. 저놈 잡아라~
수요일 오후에 배정구를 데려온 후 주말까지 매일 폭로가 이어졌다.
정황증거만 있던 전과 달리 구체적인 증거가 들어있는 폭로다.
백제그룹은 명명백백한 증거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했고, 수많은 보험 피해자와 펀드 피해자가 엮였기에 공권력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백제그룹 전 계열사 압수수색]
-빠르다
ㄴ 지혜아빠 잡는데 1시간, 백제그룹 수사하는데 7주.
ㄴ ㅋㅋㅋ세금아깝닼ㅋㅋ
매일 기사가 쏟아지고, 예하의 미래 그룹 방송에선 새로운 소식이 봇물 터지듯 튀어나왔다.
“그간 저희 미래그룹에 악의적인 기사를 써 왔던 37명의 기자 명단입니다. 기자님들이 백제그룹으로부터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1000만원씩 받아 기사를 악의적 루머를 퍼트렸다는 증거입니다.”
배정구가 관리하던 언론의 뇌물수수가 폭로되었고.
“수많은 거짓 기사로 인해 수많은 주주분들이 피해를 봤던 것 같습니다. 미래그룹은 오직 사실만을 말했는데 이 분들이 거짓된 기사로 혼동을 드려 수많은 주주분들이 눈물로 손절을 하신 것 같습니다. 피해자분들이 모여서 단체소송을 진행하신다면 저희는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 변호사 비용을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짓 기사 때문에 주가가 출렁였으니 주가조작 맞지.
우린 변호사 비용을 내서 손해 입은 주주의 분노를 언론으로 떠넘긴다.
합의는 없다.
“다음 소식입니다. 백제 건설의 비서실 소속 비서님이 살려달라는 메세지를 보내왔습니다. 저희는 즉각 사람을 보내 구출해 모셔왔고, 그분이 챙긴 녹음파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현명하게도 폰로이어를 깔고 아이콘을 지우셨군요. 이렇게 하면 현재 녹음 상태인 걸 상대가 알 수 없습니다. 네? 광고 그만하라고요? 히잉. 회사에서 시키는 데 어떡해요? 히이잉. 네. 녹음 파일 틀게요.”
-니가 주도한 거로 해라. 전부 니가 설계해 실행했고 죄송하니 자살하는 걸로. 유서는 여기 적힌대로 적어라. 가족은 평생 보살펴주마.
조준선의 목소리.
녹음한 이는 비서실 부실장.
배정구에 이은 이인자다.
위협을 느끼던 부실장은 미리 연락받아 대기 중이던 미래보안의 경호팀을 불렀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섭네요. 세상은 진짜 무서워요. 폰로이어의 녹음파일은 검찰에 넘겼고, 조준선 씨에게 살인교사혐의가 추가되었습니다.”
거함이 침몰하면서 어지러이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매일 드러나는 범죄사실에 백제는 아무 힘도 쓰지 못했고, 혼란을 덮으려는 정부가 반 강압적으로 백제의 모든 계열사 주총을 앞당겨 열어 버렸다.
3조원 남짓 투입해서, 블록딜 수익을 생각하면 0원으로 13조 가치의 백제 계열사를 먹었다.
그리고.
“정부의 제안이 왔습니다. 저희가 백제 생명과 라잉 펀드의 손해금을 해소하고 대신 조준선 일가의 재산을 가져가는 제안이 왔습니다.”
공무원도 빨리 덮고 싶어 한다.
국가권력이라 해서 딱히 재벌의 편이 아니다.
공무원 개개인의 과외수익이 있지 않는 한 무조건 자기에게 피해 없는 선택을 한다.
모든 사람의 속성처럼 국가 또한 소란이 커지지 않길 바란다.
수많은 일반인 피해자가 엮인 펀드자금과 생명보험 문제는 더더욱 빨리 처리하고 싶어 한다.
결국 백제 생명 기금과 라잉펀드의 손해자금을 메꿔 주는 대가로 조준선 일가의 모든 지분을 받았다.
총액 2조원으로 19조 가치의 백제그룹 지분을 절반 먹었다.
한편 조준선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기가 갖고 있던 정치계 약점을 빌미로 구속수사를 피했지만, 결국엔 잡혀갈 것이다.
이러면 냉동실의 아버지도 들키고 모든 게 다 들킨다.
그리하여 그는...
“나갔다고요? 예! 저도 갈게요.”
조준선이 계열사 사장의 대형 세단 트렁크에 실려 빠져나갔다는 제보가 왔다.
가정부를 매수하지 않았으면 놓칠 뻔했다.
예하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있다가 채인수의 연락을 받고 벌떡 일어났다.
“예하야 여행이나 갈까?”
“여행! 여행 조아요!”
“가자.”
“어디로 가아?”
“몰라. 조준선이 가고 싶은 곳? 아마도 목포 아님 부산이겠지.”
“아아. 그거였구나. 칫.”
실망한 예하와 함께 경호팀의 차에 탔다.
탈출한 조준선의 차는 조준선의 저택 주위에 뿌려둔 우리 흥신소 아저씨들이 추격중이고 실시간으로 위치를 전해주고 있다.
세 시간여 달려 도착한 곳은 강원도 고성.
미행을 들켜 격렬한 추격전이 벌어졌지만, 추격중인 흥신소 아저씨들이 워낙 많았어야지.
이리저리 도주하다가 미시령 옛 도로에서 앞이 가로막힌 조준선에게 느긋하게 다가갔다.
조준선은 트렁크에서 빠져나와 차 옆에 서 있고, 운전기사와 나이 지긋한 계열사 사장까지 세 명이 전부다.
반면 우리쪽은 차가 수십대에 흥신소 아저씨가 서른이고, 경호팀 쉰명이 둘러싸고 있다.
“고작 1억! 그걸 제대로 보상했으면 내가 이렇게 까지 안했어!”
먼저 도착한 채인수가 조준선의 면전에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예하도 같이 갈래? 저긴 악의가 넘쳐서 무서울 텐데.”
“오빠가 시키는 대로 할래.”
“그럼 여기 있어. 굳이 마주할 필요 없는 악의야.”
예하의 손을 한번 잡아주고 차에서 내렸다.
흥신소 아저씨들과 운전기사 등 제 3자를 전부 물렸다.
그리고 다가갔다.
“어억. 넌.”
“안녕하세요. 협박받던 미끼입니다.”
싱긋.
싱그러운 웃음이지?
“네놈. 네놈이 진짜였어! 네놈이 배후 맞았어! 고작 12억에 이런 짓을!”
“풋.”
참 웃기다.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아저씨는 왜 이렇게 흥분하셨대요. 고작 1조원 잃었잖아요.”
“고작 1조라니 백제는 19조....”
“아저씨 지분가치는 1조도 되지 않잖아요. 그런데 뭐 다 잃은 척 하신대.”
“이놈! 그... 그 회사가 어떤 회산데!”
“남 괴롭혀서 피를 쌓은 회사지. 됐고요.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길게 말하지 맙시다. 배는 어디 있어요?”
“배?”
“배 타려고 온 거 아니었어요? 이 시국에 물회 마시러 여까지 오셨나?”
내 말에 조준선이 침을 꿀떡 삼켰다.
“어차피 잡았는데 내가 배를 치우려고 물었겠어요? 협상하려고 왔지. 얼마 남았어요? 비자금.”
“비... 자금이라니 그게...”
“아.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실까. 이렇게 멍청하니 공짜로 그룹을 넘겨줬지. 쉽게 갑시다. 배타는 거 눈감아주는 대가로 얼마 지불하실래요?”
“그.... 200억.”
“채형. 전 이 사람한테 원한 없는데 형은 많잖아요. 얼마 받으면 풀어주실 건가요?”
“오천억.”
채인수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준선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없어! 지분싸움에 다 들여왔어! 남은 건 1700억 뿐이야.”
다 집어넣고도 남은 게 고작 1700억이라고? 참 많이도 꿍쳐두셨네.
“그게 끝?”
“그래. 진짜 탈탈 턴 게 그거야. 그걸로 도피자금 삼으려 했다고.”
“형 생각은 어때요?”
여전히 굳어있는 채인수가 씹듯이 말했다.
“그게 다라면 어쩔 수 없지. 그 돈 받고 놔준다.”
“그렇다네요. 우리가 챙길 방법은?”
“그건...... 러시아에 도착해서 말해준다.”
러시아로 가려했구나. 그래서 고성이구나.
“하아. 이 사람 참 깝깝하네. 아저씨. 우린 협상하는 게 아니야. 받은 게 마음에 들면 놔준다. 명령하는 거야. 싫으면 같이 경찰서 가자. 경찰서 안에서도, 구치소에서도, 형무소에서도 아저씨가 뭘 하는 지 평생 지켜봐주지. 병보석? 접견? 가능할 것 같아? 네놈 재산이 들킬 때마다 바로바로 신고해서 회수시킬 건데 버틸 수 있겠어?
네가 정식으로 출소해도 흥신소 아저씨가 평생 붙을 거야. 고작 10억이면 아저씨 뒈질 때까지 사람 붙일 수 있어. 그게 싫으면 넌 남은 걸 뱉고 러시아에서 속죄하며 살아. 1700억 말고도 꿍쳐둔 거 더 있을 거 아냐? 아니면 비밀자료로 협박해 돈을 뜯어내든. 그건 알바 아니니까 1700억 넘기는 방법.”
“그...”
조준선이 못내 아쉬워하다가 채인수의 눈치를 보고 내 눈치를 보더니 핸드폰을 열었다.
“이게... 스위스 계좌. 천만 달러 들어 있는데 찾는 방법은......”
해외의 차명 계좌와 차명 부동산이 그득하다.
경호팀장 도윤정이 등 뒤에 붙어 동영상을 촬영했다.
“이게 다야?”
“어.”
도윤정의 동영상을 확인했다.
제대로 찍혔네.
“그럼 다시. 거짓말 하는 지 봅시다.”
동영상을 보며 조준선이 더듬더듬 지껄이는 걸 들어줬다.
두 번째 시도에 세 개의 비밀번호가 틀렸다.
이 와중에도 개자식은 역시 개자식.
“이 열쇠. 이 열쇠가 있어야 해. 그리고 비번은......”
때리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말한다.
“그래요. 자 3차시도 갑시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일치했다.
“1700억은 이걸로 됐다 치고, 핸드폰 압수.”
“어?”
“아저씨가 우리보다 빨리 찾으면 어떡해. 압수해야지. 빨랑 비번 해제해.”
비번이 없어진 핸드폰을 뺏었고.
“다음 조건을 말하죠.”
“다음이라니! 돈 주면 풀어준다고!”
“그건 채형의 원한이고. 난 돈 따위 필요 없어. 자. 내 조건은 간단해. 이것까지 해소하면 풀어주지. 돈도 필요 없고.”
얼굴을 근접하며 물어봤다.
“조승학 어디 숨겼냐? 개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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