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테이퍼링
2021년 4월.
비트코인이 8000만원에 도달했다.
달러로는 64000달러.
한편 알트코인들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연초부터 꿈틀대며 두배씩 오른 코인들이 3월부터 폭등을 시작했다.
2배, 3배씩 오른다.
호재가 있나? 싶어 찾아보면 없다.
호재도 없이 오른다.
그냥 막 오른다.
-제발 : 슨튼 가즈아~
-리플나스닥상장 : 데파이를 주목하라. ETF 안전투자를 해라
-코린인데요 : 퀸텀은 왜 안가요?
-비캐561층 : 순환매수타이밍입니다. 아직 안 오른 비캐가 오를 시간입니다
ㄴ너새끼 아직 안 내렸냐?
ㄴ 이제 네임드로 인정해줄게
와 추억 돋네.
저 아저씨 아직도 저러고 있었어?
차라리 내렸다 타지, 꼴등마를 잡고 있네.
코인 게시판을 보면 고향에 온 기분이다.
이제는 여기서 버는 돈보다 탈모약 하나가 더 큰 돈을 벌지만, 그래도 마음의 고향이며 내 시작점이다.
알롱머스크 : 도지로 테슬라 결제할 수 있게 한다
쟤는 저래도 되나 싶다.
나 때문에 테슬라 주가가 5분의 1토막 났는데 아직도 도지도지 거리고 있어.
제작자가 장난으로 만들었다고 선언했고, 손을 뗐기에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도지코인.
그런데 가격이 오른다.
연초대비 200배 이상 올랐다.
미친 거 아냐?
이렇게 가격이 미친년처럼 널뛰기를 하니 화폐로 사용할 수 없지.
어쨌든 도지로만 2조를 벌었으니 불만은 없다.
다섯 배 오르면 팔고, 반값에 다시 사고 거기서 또 다섯 배 오르고.
수많은 컴퓨터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이 알아서 사고팔기를 반복한다.
한 번 씩 봐주기만 하면 끝이다.
3년 전에 예하와 밤새 고생하면서 사고팔던 추억이 몽글몽글 떠오른다.
“오빠? 뭐해? 안 자?”
“추억에 잠겨 있어. 아니. 프로그램 만지고 있어. 조금씩 정리해야지.”
연초 70조였던 비트코인을 알트코인으로 바꿔 8배 수익을 냈다.
이제 20~30%씩 오른 가격에 팔고 미래블록으로 바꾸면 끝.
계획대로 팔면 700조 벌 것 같다.
모든 거래소에 미래블록이 들어갔고, 각 거래소의 테더코인이 아닌 미래블록이 법정화폐처럼 되었다.
덕분인지 거래가 좀 더 수월하다.
돈이 너무 많네.
이 돈을 어디에 쓸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오래 걸려? 나 졸린뎅.”
“그래, 자자.”
예하의 손을 잡고 컴퓨터 방을 나왔다.
자는 사이에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중국, 암호화폐 채굴 금지. 암호화폐 거래 금지]
-미친 새끼들아!
-내돈내놔!
-짱개새끼는 다 죽어야 해!
이게 이때였구나.
이제 폭락이 시작되겠네.
[미국 재무부, 암호화폐 규제방안 발표]
-헐 끝났다
-돔황차~
-코인시즌2 종료를 알립니다 2년 후 바닥에서 만나요
어?
이건... 지금이 아니었는데.
중국의 지랄로 하락하고 한참 후에 미국의 규제가 시작되는데.
내 기억이 잘못 되었거나.
미래가 바뀌었다.
바뀐 이유는?
미래블록 때문이겠지.
하......
알트코인의 절반밖에 정리하지 못했는데.
조금만 기다리지.
미래블록.
조용히, 얌전하게 뒤에 숨겨 놨는데 이제 그 파워를 눈치챘나보다.
미래블록은 유통량 세계 4위 화폐로 올라섰다.
미래쇼핑에서 미래블록으로 거래하고, 미래핀테크로 오프라인 결제를 한다.
미래자동차, 미래스마트폰 등도 미래블록으로만 결제하고, 국가 간 송금도 비자나 마스터가 아닌 미래블록을 이용한다.
미래그룹 직원들은 미래블록을 월급으로 받고, 몇몇 국가는 세금도 미래블록으로 내기 시작했다.
환전?
각국 화폐를 미래블록으로 바꿔 미래블록 세상으로 들어오고 나면 이 안에서 모든 게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미래블록을 벌어 각국 화폐로 바꿔 생활했지만 미래그룹이 커감에 따라 굳이 환전할 필요가 없어졌다.
미래블록을 벌고, 미래블록으로 쌀을 사고, 미래블록으로 교통비를 내고 미래블록으로 집을 사고, 미래블록으로 취미활동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미래블록 세상에서 사는 건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다양한 이점만 가득하다.
즉, 자국화폐를 없애고 미래블록을 소비하며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에 가장 큰 위협을 받는 건 달러.
절대 무적의 기준화폐 권력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슬슬 규제를 시작하는 구나.
암호화폐에 전반적인 압박을 하고 점진적으로 미래블록의 사용처를 줄여나가겠지.
미래블록을 통해 모든 주식거래를 하고, 원유거래까지 해내면 끝인데.
미국의 똑똑이들이 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제길.
“오빠? 괜찮아?”
“어? 응.”
“폭락해서 그래? 그래도 많이 벌었잖아.”
예하는 온통 파란색 -일색인 거래소 화면을 보며 말했다.
“어. 많이 벌었지. 괜찮아. 팔면 돼.”
조금씩 정리하면 다 팔 수 있겠지.
지금 팔아도 5배 이상 수익이다.
문제될 건 없다.
“흐음. 고민이 많은 거 같은데.”
예하가 내 볼을 잡고 유심히 관찰하며 말했다.
귀신이야.
“고민이 있긴 한데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럼?”
“기다릴 뿐. 준비하고 기다리면 기회가 와. 그때까진... 잊고 살지 뭐.”
“역시 똑똑해. 오빠는... 정말 현자야.”
“어. 나 현자야.”
파도를 타고 넘을 준비를 열심히 했다.
미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지만, 당장 암살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제 지진과 태풍, 쓰나미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걱정해서 되는 게 없으면 걱정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린다.
정문우를 불렀다.
“오랜만이예요.”
“어. 내가 하는 일이 중요치 않으니 뭐.”
“에이. 대신 가장 성실히 돈을 벌어주잖아요. 가장 좋죠.”
“후후후. 그래.”
정문우는 못 본 사이에 더욱 성장했다. 옆으로.
이제 150kg 넘을 것 같다.
“리츠는 어때요?”
보고받았지만 괜히 물어봤다.
“자본금 65조. 현재 보유한 부동산 가치는 6100조. 은행 부채는 4300조야.”
부동산은 멀티플이 미쳤다.
이런 숫자는 불가능할 것 같지만 갭투자를 하는 외나무 다리 투자자들에게 흔히 보이는 숫자다.
누가봐도 위험을 직감할 수 있는 회계장부.
하지만 이런 미친 장부가 실존하는 세계가 부동산이다.
10억짜리 아파트를 산다.
7억원의 주택담보 대출을 한다.
월세나 전세로 돈을 번다.
주택담보 대출 7억원으로 또 아파트를 사고 또 주택담보 대출을 한다.
이런 식으로 부채비율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금을 받지 못하면 아파트를 뺏으면 되니 규정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집을 사고 1년 쯤 지나면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부동산가치를 재평가 받아 대출금을 늘릴 수 있다.
10억에 산 아파트의 가치가 20억이 되면 자본금 10억으로 14억의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개인 갭투자자라면 과정이 복잡해서 힘들겠지만, 기업단위로 움직이는 미래리츠는 이를 철저히 이용해 대출을 최대한 늘려 부동산을 휩쓸었다.
2018년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부동산은 평균적으로 2배 상승했다.
오른 가치에 맞춰 대출을 늘리고 부동산을 계속 추가해 100배의 멀티플을 만들었다.
은행이자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더 크니 그게 전부 수익이 된다.
“형 혼자 2000조 벌었네요.”
“에이. 아니지. 3년 동안 은행이자 낸 거 생각하면 1500조.”
“그래도 많이 벌었잖아요.”
“팔아야 버는 거지. 부동산은 정리가 힘들어.”
“네. 그래서 불렀어요. 형. 제값 받고 정리하려면 얼마나 걸려요?”
“부동산? 음... 전부 정리하려면 최소 1년. 부동산은 주인 찾는 게 가장 힘든 일이지. 내가 먼저 팔려고 하면 싸게 내놓을 수밖에 없으니 진득하게 간보면서 상대가 달려들게 만들어야 해.”
“그래요. 그럼 지금부터 정리해주세요. 주식시장도 하락중이잖아요.”
“지금? 아직 이른 거 같은데. 혹시 일본 버블 기억나? 주식 고점은 89년 말이었는데 부동산 고점은 91년이었어. 일본 말고도 대부분의 버블붕괴가 그래. 주가가 폭락하면 일시적으로 부동산에 자금이 몰려와서 마지막 촛불을 불태우거든. 그러니까 부동산 정리는 주가 폭락 이후가 좋아.”
“네... 대충은 알아요. 암호화폐가 가장 먼저 무너지고, 뒤이어 주식이 하락하고, 그 후에 부동산이 떨어지겠죠. 오를 때는 반대 순서고. 그래도 이번엔 좀 달라요.”
“달라?”
“네. 제가 사고 좀 쳐보려고요.”
“어... 그런 거면 알겠다. 전부 정리해?”
“일단 대출만 없애보죠. 대출 전부 갚으면 얼마나 남죠?”
“1900조 정도. 그런데 미래그룹 공장이나 각국 지사에서 쓰는 부동산이 1000조 정도 돼. 이건 팔면 안 돼지.”
“그러네요. 대출만 없애고, 나머지는... 미국 부동산 위주로 남겨주세요.”
“어... 미국 증시는 계속 상승하니까?”
“네.”
“알았어. 1년 잡고 정리할게.”
“아뇨. 반 년.”
“반년이라. 한번에 4000조를 시장에 꺼내면... 쯥. 내가 잘 해 봐야지. 알았다.”
“옙. 수고요.”
“어. 수고.”
시원한 곳에 앉아서 대화했을 뿐인데 땀을 뻘뻘 흘리는 정문우를 보냈다.
그보다 엄청 많이 벌었잖아.
65조로 1500조를 벌었네.
물론 이건 내가 부동산이 계속 오를 걸 알았기에 가능한 수치다.
중간에 한번만 삐끗했어도 모든 걸 뺏길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투자다.
그런데 부동산은 9년 연속 올랐잖아.
갭투자로 벼락부자 된 사람을 보고 뒤늦게 뛰어드는 부나방같은 사람은 없었으면 하는데...
비상식적으로 오른 가격은 반드시 내려간다.
자살하는 사람 많지 않으면 좋겠는데.
“오빠~~ 나 왔어.”
예하다.
루비와 팔짱끼고 오고 있다.
둘이 같이 신곡 준비하니까 함께 오는 날도 많아지고 있다.
루비는 쑥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 안녕.”
“뭐해? 오늘 뭐 할 거야? 우리 이틀 휴간데.”
“영흥도 갈까?”
“영주언니네? 가자 가자.”
예전보다 좀 더 자유롭게 놀러 다닌다.
계속 좋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유명관광지를 가고, 인적 드문 곳을 전세 내 돌아다닌다.
그룹은 매일 확장하고 있고, 탈모약을 중심으로 미친듯이 성장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7월이 되었고 일본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충... 격적이네.”
놀라운 개회식이다.
저렇게 지루하고 재미없고 길 수가 있을까?
이미 여러모로 우려가 나왔던 올림픽인데 시작부터 크게 삐끗했다.
지난해 메타버스 올림픽 덕분인지 선수들의 참가가 내 기억보다도 훨씬 저조하다.
코로나 위험을 뚫고 굳이 가고 싶지 않은 땅.
무더위.
똥물.
그리고 전산화되지 않은 구시대 행정.
일본의 민낯이 공개되었다.
세계의 실망.
그리고.
[일본 연내 대규모 테이퍼링 예고]
드디어 일본이 테이퍼링을 입에 꺼냈다.
금지된 단어 테이퍼링.
양적완화란 국가가 돈을 찍어 뿌리는 것이다.
그런데 뿌리기만 해선 경제가 고장난다.
뿌린 것은 언젠가 회수해야 한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으로 시끄러운 틈을 타 언젠가 해야 했던 선언을 슬쩍 했다.
그러나 그 결과.
[일본 증시 대충격. 니케이 지수 11% 폭락. 전세계 평균 3% 하락]
일본의 주가 폭락은 전세계 증시에도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일본, 테이퍼링 취소. 1000억 달러 규모 양적완화 시행]
엄마 쟤들 이상해.
무슨 짓을 해도 집권당이 바뀌지 않으니 능력이 아주 바닥을 긴다.
며칠간 추이를 지켜봤다.
11% 하락한 니케이 지수는 양적완화소식에 조금씩 안정세를 찾아 5% 오른 가격에서 횡보했다.
세계 증시는 제 가격을 찾았고, 미국 지수는 오히려 올라 역대 최고치를 또 경신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예하에게 말했다.
“예하야. 우리 헤어질래?”
“응? 어? 어? 어어어? 왜? 싫어! 안 돼! 왜 그래? 무섭잖아! 내가 뭐 잘못했어?”
예하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더니 눈물이 방울방울 쏟아졌다.
그래.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이유는 알려줘야지.
“음. 일본이 테이퍼링을 해서?”
“......”
예하의 눈물이 멈췄다.
대신 주먹을 들었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