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해명 혹은 광고
나 : 이해되냐?
가오리 : 흑막설이 사실이란 거지? 그럼 쏴야겠네
닥똥 : 니가 주인 아니면 누가 구단을 사주겠어 쏴야겠네
나 : 부담되냐?
가오리 : 부담 되니까 나이트 쏴
닥똥 : 쏴
내 친구들이 한결같이 병신이라 좋다.
나 : 부담 안 되는 걸로 알고 수고요
가오리 : 부담된다고요
닥똥 : 쏘라고요
부모님한테도 안부 전화 드렸다.
유럽에서도 한국의 소식을 핸드폰으로 볼 수 있기에 걱정이 많으셨다.
덕분에 꽤 오래 통화해야 했다.
민서의 영어학교는 취소했고.
연락이 끊긴 친구들의 전화와 메세지를 많이 받았지만 무시했다.
동창회는 좀 끌리는군.
“동창회 갈까.”
엄청 끌린다.
보여줄래 완전히 달라진 날.
하지만 인생이 망해보니 진짜 친구는 가오리 닥똥 뿐이었다.
다만 내 잘못으로 떠나보낸 친구도 꽤 있다.
연락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리운 얼굴이 꽤 많았다.
“흠. 대학이나 갈까.”
한가한 주말.
물론 모든 팀이 바쁘게 전쟁 중이지만, 사장은 좀 한가해야지.
예하도 주말방송을 취소하고 곁에 안겨 쉬고 있다.
“오빠, 대학 가려고?”
“어. 너도 같이 다닐래?”
“나 수능 안 봤는데?”
“도봉대는 돈만 주면 갈 수 있어.”
“편법이잖아. 싫어.”
“그래. 대학 가봤자 아무 쓸모없지.”
“쓸모없는데 왜 대학 가려고 해?”
“놀러. 1년 900만 원짜리 술집 출입증. 싸네.”
“...... 대학가지 마세요.”
“그러겠습니다.”
“에헤헷. 착해착해.”
예하가 머리를 안으며 쓰다듬는데 그게 너무 귀엽다.
그래서 또 불끈.
“해도 돼?”
“어... 또?”
요즘 원숭이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예하가 너무 예쁘고 예하가 너무 좋아서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예하가 날 너무 좋아해주니 더더욱 어쩔 수 없다.
“싫으면 안 하고. 난 절대 네가 싫다면 하지 않을 거야.”
“힝. 아니야 해도 돼.”
“그게... 아니라. 날 위해 인내하는 게 아니라 너도 하고 싶을 때만 하겠다고.”
예하가 우씨하며 내코를 잡고 비틀었다.
“하자고요. 하자고. 꼭 내 입으로 말하게 만들어. 진짜. 못 됐어.”
“아야야. 혹시나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할까봐 그러지.”
“그런 건 표정 뉘앙스 무드로 알아야지. 꼭 말을 하게 만들어요 못됐어. 오빠 빨리 와. 나 급해.”
네.
고맙습니다.
예하가 나에게 길들여지고 있다.
나도 예하에게 길들여지고 있다.
그거면 됐다.
두 번째 인생.
꼭 해야 할 일만 하고 남은 시간은 여유롭게 행복을 위해 살아야지.
주말이 한가하고 바쁘게 지나갔다.
아고 허리야. 운동을 해야 해.
2018년 3월 5일 월요일.
임시주총 이틀 전.
지금까지는 언론을 통해 정찰병을 돌리는 척후전이었고 오늘부터 전면전이다.
폭격기의 융단폭격을 시작으로 고지점령까지 한시도 쉴 틈이 없다.
정오의 방송에 중대발표를 예고했기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채인수와 여러 형들이 방송실로 쓰는 46층에 와서 미리 준비중이다.
그런데 뜬금없는 곳에서 선제포격을 날렸다.
[속보.단독. 조승학자살사건 합동수사부 1차 결과. 조승학이 맞다]
-ㅋㅋㅋㅋ 우린 개돼집니다 꿀꾸꿀ㄲㄲ
-대박ㅋㅋㅋ돈이 많으면 뇌와 심장에 총을 쏴 자살할 수 있구나
-여러분 돈 많이 버세요 한국에선 돈만 많으면 안되는 게 없어요
자조적인 비웃음이 인터넷에 가득찬다.
46층에 모여 방송준비를 하던 예하는 글을 읽으며 망연자실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난 이럴 줄 알았는데?”
“오빠? 어떻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건 아니잖아.”
“돈과 사람의 행동원리. 그걸 이해하면 돼. 백제에서도 이 정도는 계산했을 걸. 그러니 과감한 짓을 저질렀지.”
“행동원리?”
“사람은 다 달라.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선 대개 비슷한 행동을 해. 이게 보편적 행동원리야. 예를 들어 직장인이 사고를 대처하는 요령은 모두 같아. 내 밑에서 사고가 났다? 그럼 나한테까지 알려야 해. 다만 내선에서 덮어야 해. 간단하지?”
“...... 네?”
어려운 개념인가.
“학교를 보자. 끔찍한 학교폭력이 일어났어. 모든 담임은 그걸 학년주임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아. 자기 선에서 조용히 끝내고 싶어. 그래서 조용히 불러서 ‘화해해, 악수, 포옹, 이제 싸우지마,’ 이렇게 덮고 넘어가지. 학주 입장에서 보자. 학주는 담임이 처리하는 걸 싫어해. 자기한테 알리라고 해. 다만 교감한테 올라가는 걸 싫어하지. 덮으려는 담임을 혼내고 애들을 불러 나름 자기 선에서 끝내려고 해. 교감도 똑같지. 그런 일 있으면 자기까지 보고가 올라오길 바라지만 교장에게 알려지지 않길 바라지. 교장도 똑같고. 학교 외부로 나가지 않길 바래. 이해해?”
“어. 그래도 이건 살인사건이잖아.”
“아마도 백제그룹은 킬러 딱 한명을 매수했을 거야. 수사관에게 돈을 주고 죽이라 시켰겠지. 총을 세발 쏜 이유는... 사고겠지. 피해자가 저항하니 놀라서 다다다 쐈겠지. 어쨌든 딱 한명만 고용했을 거야. 검시관이 총알 세발이라고 증언한 걸 봐도 검시관까지 매수하지 않았어. 그런데 덮여. 왜냐? 주위 사람 모두 자기 선에서 끝내고 싶으니까. 이게 모든 인간의 행동원리니까.”
“그럴 리가.”
“살인자 수사관은 자살이라 보고 했어. 함께 평생을 생활한 상사는 부하가 살인했다고 말하기 힘들어. 너 살인자니까 뒤져라, 이렇게 선언하기 힘들지. 그래서 이상하지만 그냥 넘어가. 백제에서 조준선 회장이 와서 우리 아들 맞네요. 화장할게요. 이랬어. 거기다 대고 ‘철저하게 수사해서 20년을 함께한 내 동료가 살인자인걸 밝히자,’ 라고 말하기 어렵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왕 일어난 일 덮자. 이렇게 진행됐을 거야.”
“하지만 재수사는 다르잖아. 의혹이 그렇게 많은데.”
“군대 입장. 김유현이 대리군생활을 했다고 인정하면 체면이 상하겠지? 덮자. 이미 죽었잖아. 현 상황에서 조승학이 자살했다고 결론내고 끝내자. 만약 조승학은 도망쳤고, 김유현이 살해당했다면? 관련군인 다 같이 감옥가고 연금 못 받을 수 있잖아. 정의롭진 않지만 덮자. 담당자 각자 최선의 선택을 한 거야. 원래 그게 맞겠지. 버티자. 우린 법대로 했다. 이렇게 뻐팅기며 스스로 백제그룹을 위해 증거를 지워주고 덮느라 노력했을 거야. 자기들 연금을 위해서.”
“우리가 터트린 증거들은? 그렇게나 명확한데?”
곁에서 추가 기사를 끝까지 읽은 채인수가 끼어들었다.
“우리가 내민 증거는 정황증거가 대부분이야. 의혹일 뿐이지. 너무 확실해 보이는 의혹이어도 법은 절대 상황을 추측하지 않아. 명확한 증거만 채택해야 해.”
방학동에 살던 금발태닝조승학. 이건 우리가 터트린 정황 증거일 뿐, 법적 증거가 될 수 없다.
원주 병원에 뛰어든 금발태닝조승학도 배정구 비서실장이 ‘길가다 다친 사람 보고 도와줬다, 응급치료하고 내보냈다더라,’라고 말한 걸로 의혹이 종결되었다.
레이더 기지에서 군생활 중이던 김유현은 조승학으로 알려졌다.
진짜 김유현의 친구들과 엄마는 그가 실종되기 전까지 거기 근무했다는 걸 몰랐다.
우리가 영상을 보여주고 이 사람은 조승학이 아니라 김유현이라 ‘주장’하지만 말 그대로 주장일 뿐이다.
군대에선 김유현이라 추측되는 조승학을 잡아 머리카락 검사로 조승학임을 밝혔다.
머리카락 하나 바꿔치기 했을 뿐인데 법적 증거를 획득한 것이다.
김유현은 행방불명되었지만 이건 군대가 알 바 아니다.
군입대 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조승학이라 자인하며 군 생활 하던 레이더병이 자살했고, 친부 조준선이 와서 확인하고 화장했다.
법적 문제는 끝.
“가족의 동의하에 바로 화장했으니 더 이상의 증거는 없어. 총알세발을 쏴서 자살할 수 있냐 없냐는 법적인 판단요소가 아니야. 법은 상상하면 안 되니까.”
“더러워. 무서워. 너무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치사해. 요...”
화난 예하가 뒤늦게 존칭을 붙였는데 귀엽다.
“법은 차가워야 하고 공정해야 하니까. 상식적으로 당연히 이해할 수 없지. 누가 봐도 범인인데 무죄로 풀어주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그런데 그런 놈들을 무죄로 내보내는 이유가 모두 돈 받았기 때문은 아니야. 검사나, 형사조차 분통터지는 일도 많이 일어나.
하지만 이런 차가운 자세가 그나마 약자를 보호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야. 법이 추측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독재자가 다 죽일 수 있는 세상이 돼고 모든 재벌은 절대 처벌받지 않게 돼. 백제 법무팀은 이런 법의 속성까지 계산해서 자살을 설계했겠지.”
“힝. 그래도. 너무해. 김유현 엄마는 지금... 엄마도 지금 기사를 봤을 텐데.”
그분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가슴이 또 찢어지겠지.
“어떻게 뒤집을 수 없어요?”
“오직 한 가지 방법 뿐. 김유현이 등장하거나, 조승학이 등장하거나. 김유현은 화장당해 완벽히 사라졌으니 조승학을 잡는 수밖에 없어.”
“조승학... 꼭 잡아야겠어요.”
“그래서 오늘 방송이 중요하지. 잘 싸우자고.”
“네.”
예하가 굳게 다짐하며 일정표를 봤다.
군 검찰의 발표 이후 주가가 출렁이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백제의 약점이었던 똥이 사라졌고, 미래그룹도 약점이 많아 보여서 백제를 인수하지 못할 것 같다.
미래그룹의 인수가능성이 멀어질수록 주가가 하락한다.
백제 그룹의 시총은 15조까지 떨어졌다.
권순진에게 전화했다.
“형 저희 방송 시작해요.”
-풀 매수?
“예.”
백제그룹 주식 매입이 시작되었다.
50조에서 15조로 추락한 주식을 쓸어 담는다.
유동성은 충분하다.
천하제일 단타대회가 열려 전국의 모든 단타꾼이 끼어들어 1%떼기를 하고 있다.
위아래로 출렁이는 가격이 단타꾼의 심장에 야성을 불어넣고 있다.
심지어 거의 정리된 공매도 수량도 증가하고 있다.
예하의 멘트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비제이 제시예요. 오늘은 이례적으로 낮에 방송을 시작했어요. 예? 맞아요 채팅 막았어요. 너무 무서운 말이 많아서. 오늘은 10만원 후원만 글을 올릴 수 있으니 후원하지 말고 하실 말씀은 홈페이지에 올려주세요. 예? 예. 주말에 쉬었죠.”
10만원이나 내고 안부 묻는 팬은 뭐니?
나보다 갑부니?
“주말에 쉰 대신에 오늘은 또 아홉시간 방송하래요. 힝. 열심히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에... 제 소식이네요. 저에 관련된 의혹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하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는 15살에 MG엔터 연습생이 되었어요. 그리고 부상으로 데뷔조에서 탈락하면서...”
예하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모두 털어놓기로 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했지만, 예하 스스로가 모두 털어버리고 싶어 했다.
부모님의 안타까운 사고와 엄마의 병원비, 그리고 병원비를 24%이자로 빌리는 대가로 술집에 나간 것까지 차분히 말했다.
“처음 감독님은 순수하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러 간 거였어요. 매너도 좋으셨고 흑심도 없고, 그저 영화가 성공하길 바란 분이셨죠. 그 당시 조승학이 제게 영상을 보여주며 노예계약서를 들이 밀었기에 계약을 거절하고 영화출연도 취소되었지만, 나쁜 기억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영상은 기자님들이 자세히 적어주신 대로 나가서 술을 따랐습니다. 미성년자고 병원비를 빌리는 조건이었다 해도 나쁜 놈들을 욕하는 대신 제가 욕을 먹겠죠. 터치나 성관계는 없었지만 제가 말해도 안 믿으실 테고 제멋대로 상상하고 글을 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증인도 있습니다.
두 번째 영상 속 전영채 검사님, 대답해 주세요. 당시 제가 미성년자라고 바락바락 소리 질러서 호텔로 끌고 가다가 놔주셨잖아요. 네? 전영채 검사님, 백제그룹에서 전영채 검사님 얼굴만 모자이크 해서 퍼트렸지만, 주위사람 다 알고 전영채 검사님도 기억하시잖아요.
세 번째 영상 속 MBS 백운창 피디님도. 우리 아무관계 없었잖아요. 18세였던 제가 만지지 말라고 발로 차서 저한테 싸대기 한대 때린 것 말고 없었잖아요. 그렇잖아요.”
예하는 매우 차분한 아나운서 톤으로 백제가 유출한 영상을 하나씩 켜며 해명했다.
전자안내음성 톤으로 사람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데 듣는 속이 다 통쾌하다.
백제가 실수한 게 있다면 접대 영상의 상대를 예하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일 없다 잡아떼며 고소하겠지만 우린 돈이 많다.
누가 좆 되는 지 끝까지 해보자.
예하를 괴롭혔던 쓰레기들 전부 치우자.
“샤워 영상은 제가 맞아요. 약물로 재워 성폭행하고 협박하는 지옥 같은 조승학의 기획사에서 그토록 조심했는데 저런 영상이 찍혔네요. 제가 맞으니까 마음대로 상상하세요. 왜 제가 욕을 먹는지 모르겠지만, 욕하세요. 전... 전...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만 사랑할래요.”
일주일간 인터넷에서 떠돌던 온갖 욕설과 더러운 루머를 감내하고 삭히던 예하가 막판에 무너졌다.
아무렇지도 않다더니. 바보가.
표정이 깨진 예하는 눈물을 흘리며 멘트를 잇다가 끝내 일어섰다.
“후에에엥. 오빠. 너무 싫어. 내가 왜...”
앵글 밖으로 나온 예하가 달려와 안겼다.
우는 예하를 가만히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편집PD가 급하게 마이크를 껐지만, 소리가 새어나간 후였다.
- 작가의말
보편적 행동원리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럴 것 같다는 제 망상이며 신조어입니다
저 이야기를 하려고 허일병 사건을 가져왔는데 진실은 모릅니다
자살로 판명나는 과정은 순전히 제 추측입니다
글이 워낙 차갑고, 불쾌한 메세지가 많아서 문체를 최대한 가볍게 잡았는데 또 실수인 것 같네요 연독률과 선작 전환을 보면...음...
연중은 없어요 열심히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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