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엔돌핀
“안녕하십니까?”
미래병원 지하주차장에 정한영 의사가 나와 있었다.
“이러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아닙니다. 누군가는 안내해야지요. 예전과 달리 업무도 널널하니 괜찮습니다.”
예하와 함께 내렸고, 뒤이어 경호차량 10여대가 줄줄이 주차했다.
경호팀 한 팀이 먼저 올라간 후 경호원에 둘러싸여 VIP실로 이동했다.
비밀경호는 포기한지 오래고 어디를 가도 경호원 50명 이상이 따른다.
예전 같으면 유난떤다 했겠지만, 이젠 이것도 부족하다 느낀다.
나 잡으면 3000조 벌어요.
나 잡아다가 고문해서 돈 뱉어내게 만들면 3000조.
졸라 황금고블린 아닌가.
이 정도 돈이면 중국이 전군을 동원해 전쟁을 걸 만한 액수다.
예하와 단 둘이 VIP실에 들어갔다.
“엄마 나 왔어.”
“아이고 사장님. 어서오세요.”
예하의 엄마는 따뜻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일어나지 마세요.”
“엄마는 딸은 쳐다도 안 보고.”
환자가 일어나려고 하는 게 안쓰러워서 손을 잡고 눌러줬다.
뼈와 가죽만 있는 환자.
40대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말랐다.
대화하는 내내 예하의 엄마는 자상하게 웃고 있었고, 딸을 잘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게 안타깝다.
“예하는 대단해요. 제가 예하에게 더 큰 힘을 받아요. 그러니 그러지 마세요.”
“아니 그래도. 이렇게 멋진......”
“그러지 마세요. 제가 너무 불편해서.”
“아 그러네요. 미안해요.”
저한테 사과도 하지 말라고요.
제가 예하와 헤어져도 예하 혼자 멋지게 화려하게 살 수 있으니 그러지 마세요.
따스하고 씁쓸한 면회를 하다보니 어머니가 잠이 들었다.
예하의 손을 잡고 조용히 나왔다.
“괜찮아 보이네.”
“그러게. 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표정이 좋았어.”
예하는 매주 방문하지만, 난 한 달만에 얼굴을 봤다.
살은 전보다 더 빠진 것 같지만, 예하가 괜찮다고 하니 뭐.
VIP 복도에는 의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장 최태수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예.”
악수하고.
“이쪽은 내과 관련 세계적 권위자인 닐 왓튼입니다. VIP의 주치의죠.”
“반갑습니다.”
“나이스투미튜.”
어색한 악수를 하고.
재단 일을 말하려는데 닐 왓튼이 어색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네. 환자에 대해. 단 둘이 말해도 될까요?”
왓튼이 예하를 슬쩍 보며 말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예하에게 물어봤다.
“너희 어머니에 대해 말할 것 같은데 피할래? 아니면 들을래?”
이건 개인의 의지다.
내가 마음대로 해선 안 된다.
가까울수록 존중해줘야 한다.
예하가 눈을 빛냈다.
“들을래. 나도 알아야지.”
“이렇다네요.”
닐 왓튼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상태가 매우 안 좋습니다. 내장 전체에 염증이 퍼졌고,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나왔습니다.”
하아.
“진통제가 듣지 않습니다. 아마 지금 환자는 배속에 천개의 바늘이 헤엄치는 느낌일 겁니다. 통증 때문에 잠도 잘 수 없습니다.”
“아니 방금까지 웃으며......”
아.
젠장.
혼자 남게 될 딸이 걱정된 건가?
그래서 그렇게 웃으며 부탁한 건가?
그 몸으로 일어나려고까지.
“하아. 치료 방법은 없습니까?”
“내과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모험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몸속의 내장 절반이 사라졌다.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잘라내지 않았으면 진작 돌아가셨겠지.
“외과는요?”
최태수가 대답했다.
“천만분의 1의 확률로 유전자가 일치하는 이를 찾아내 환자와 내장 전체를 바꾸는 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마저도 체력문제로 성공확률은 천만분의 1 입니다.”
“그럼 제가.”
예하가 나섰다.
“기증자는 반드시 죽습니다. 식물인간, 혹은 뇌사자를 찾아야 합니다.”
“아.”
내가 죽어서 엄마를 살릴게요. 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예하는 바보가 아니다.
기증을 받아도 천만분의 1.
비틀대는 예하의 어깨를 안아줬다.
“방법이 없습니까?”
세계 최고의 내과의와 외과의가 함께 고개를 저었다.
내가 투자하는 금액과 이상을 알고 있을 테니 최대한 노력했겠지.
그런데도 안 된다면.
“시간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억지로 심장을 뛰게 하는 건 가능합니다. 다만 환자가 받을 고통이 상상 이상입니다. 통증으로 쇼크사할 가능성도 큽니다.”
후우.
진통제가 들지 않는 환자.
연명은 가능하되 그 시간이 내내 고통이다.
복도 벤치에 앉아 생각했다.
“예하야. 어떡할래?”
“응?”
눈물범벅인 예하가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아니다. 그냥 울어.”
잠깐 생각하다가 전화했다.
“인수형. 예. 올바이오에 있는 엔돌핀 자료 좀 보내주세요. 네.”
노트북을 받아서 바로 자료를 띄웠다.
의사 둘이 엔돌핀의 작용과 효능 데이터를 살폈다.
“이거라면 통증은 없앨 수 있나요?”
“시험해봐야 알 것 같군요. 다만 데이터대로라면 지금까지 나온 진통제 중 가장 강한 효과가 있겠군요.”
“그거 마약 같은 거예요. 중독성 있어요.”
“기존 진통제도 대부분 중독성 있습니다. 아예 마약성분이 들어간 오피오이드는 중독 사망 50만명에 현재도 중독 오남용자가 200만명 넘죠. 차라리 이건 마약 성분이 없으니 중독성은 덜할 거 같습니다. 와. 이건 진통 마취분야의 획기적인 혁신이네요.”
닐 왓튼이 수치를 볼 수록 거듭 감탄했다.
“일단 써보죠.”
채인수에게 전화하려다가 미래 메신저로 개인채팅을 했다.
-형 미국에서 엔돌핀 좀 최대한 빠르게 보내주세요
-야, 너 마약하면 안 돼
-예하 어머니 진통제로 쓰려고요
-어. 그래.
당일 밤 도착했고, 즉각 투여했다.
다음날 예하와 함께 다시 방문했다.
밤 샌 듯한 닐 왓튼과 내과의사 여럿이 맞이했다.
“상태는 어때요?”
“환자 본인도 놀란 모양입니다. 통증이 없어서 고맙다고 합니다. 다만 목 아래로 느낌이 둔하다고 하는데 이건 엔돌핀이 통증 요소를 차단해서 그런 겁니다.”
“아직은 괜찮은 거네요.”
“예. 다만 병세가 악화될 확률이 높습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예. 이해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예하의 손을 잡고 병실에 들어갔다.
“엄마 나 또 왔어.”
예하가 웃으며 인사했고.
“아이고 예쁜 내 딸.”
엄마도 웃으며 인사했다.
“사장님도 또 오셨네요. 바쁘실 텐데.”
엄마가 송구스러워 했다.
참 슬프다.
좀 더 당당해도 괜찮은데.
병원은 이 공기가 싫어.
“어머니.”
“네. 사장님.”
“뭐... 하고픈 거 없으신가요?”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
잠시 생각에 잠긴 예하 어머니가 말했다.
“바다가 보고 싶네요. 그 때도 바다 가던 길이었는데.”
아흐흑.
참고 있던 예하가 옆에서 울었고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에서 3호기가 출동했다.
대형 버스를 개조한 캠핑카.
캠핑카 내부를 비우고 인공투석기와 각종 의료장비가 들어갔다.
24시간 투석을 해야 하는 예하 어머니가 온갖 장비를 달고 탑승했다.
고정된 침대에 누운 채로 버스에 안착.
그 곁에 예하와 나란히 앉았다.
의료진이 함께 탄 버스는 느리게 움직였다.
환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조치.
“우리 딸. 커튼 좀 걷어줄래?”
“응. 알았어.”
“좋구나. 정말 오래간만의 외출이야.”
“그래. 엄마랑 외출하는 거 100년만 인거 같아.”
“그러네. 백년만이네.”
모녀가 마주보고 웃는다.
5년 전.
멧돼지가 튀어나오고 바퀴 밑에 끼면서 차가 전복.
그날 이후 내장의 절반을 잘라내야 했고, 내내 병원에만 있었다.
그럼에도 치료하지 못했다.
현재 의료기술로는 불가능한 치료.
씁쓸하다.
고작 멧돼지 한 마리.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사고.
그 여파는 너무 잔인하다.
변산 채석강에 도착했다.
국립공원과 협의 해 버스를 최대한 해변에 댔다.
버스 옆면이 날개처럼 올라가고 침대가 기울어져 고개를 들지 않고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가을 하늘과 어우러진 푸른 바다. 한켠엔 주상절리가 켜켜이 쌓인 야트마한 절벽.
“바다구나.”
바다네.
예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재잘재잘 떠들었다.
엄마도, 딸도 내내 슬픈 내색 없이 행복하게 대화했다.
그게 너무 슬프다.
“사장님.”
“그냥 사위라고 부르시라니까요.”
“그래도......”
“아유. 사위. 사위라고 부르지 않으면 대답 안할래요. 말도 놓으시고요.”
“그... 래. 사위. 식사해야지? 내가 차려줘야 하는데.”
“배고프네요. 예하는 뭐 먹을래?”
“밥? 어? 어. 맛집 검색해볼까요? 밥이다 밥.”
예하가 쾌활하게 검색하며 근처 맛집을 불렀다.
“조개구이? 한식한상? 횟집? 여기 모듬회 맛있겠다.”
“얘야. 회는 비싸잖아. 관광지 횟집은 특히.”
“헤헤. 엄마는 내가 얼마 버는지 모르지? 한 달에 2억 벌어. 나 성공한 딸이야. 왜 이러셩.”
“아. 우리딸 장하네.”
횟집에 가지는 않았다.
예하의 어머니가 내리려면 투석기와 그 외 의료 장비 다섯개를 함께 내려야 한다.
식당에 들어가는 데만 한 시간 걸린다.
음식을 배달시켜 어머니의 침대 옆에 캠핑카 테이블을 펴고 거기서 먹었다.
예하와 나 단 둘이서만.
예하와 단 둘이 먹으며 어머니와 대화하고, 예하와 단 둘이 소주를 마시며 어머니와 웃고.
식사를 마치니 여기까지 따라온 닐 왓튼이 불렀다.
“진통효과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몇 몇 내과 약물이 들지 않습니다.”
고통이란 자신을 살리기 위한 몸의 신호다.
잘못되었으니 조치하라는 몸의 언어다.
그런데 고통이 심하면 그 충격으로 죽을 수도 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한 통증인데 통증으로 인해 죽으면 그야말로 아이러니.
그럴 때 엔돌핀이 분비된다.
통증이 너무 심해 쇼크사가 올 수도 있으니 엔돌핀이 통증을 지우는 것이다.
다리가 잘리거나 내장 전체가 으깨져 통증신호가 너무 많을 경우 그 감각을 차단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진통제.
대신 다른 약물과의 연계성은 연구가 필요하다.
“각오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오늘. 길면 일주일.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최선을 다하시는 거 알아요.”
여기까지 따라온 것만 봐도 미안하기까지 하다.
왓튼 아저씨의 사과를 막으며 돌아봤다.
예하는 엄마 옆에 붙어 재잘재잘 떠들고 있고, 그 엄마는 딸을 너무 예쁘게 보고 있다.
“오늘은 해변에 불 피워놓고 가고. 다음엔 어디 갈까요?”
“아닐세. 바쁠 텐데 이만 서울로.”
“아니에요. 좀 더 놀죠. 전 너무 성공해서 굳이 일 할 필요 없어요. 지리산 갈까요? 차로 정상 근처까지 갈 수 있다는데. 산 어때요? 산.”
“그래 엄마. 나도 지리산 가보고 싶어.”
“괜찮은데.”
“저희랑 좀 더 놀아요.”
“산.”
“그래. 가보자 지리산.”
캠핑카 앞에 크게 모닥불을 피웠다.
여전히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는 어머니 옆에 나란히 앉아 커피한잔 하면서 불을 봤다.
어머니가 잠들고. 예하는 그제야 슬픈 표정을 지었다.
예하의 어깨를 감싸고 앉아 있다가 잠시 졸았는데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수행비서가 옷을 받고 있다.
예하도 깨어났다.
“뭐야?”
예하가 귓말을 했다.
“턱시도. 웨딩드레스.”
“어?”
“너희 엄마 앞에서 결혼하자. 너희 엄마를 위해. 지리산에서.”
“...... 어.”
예하는 긴 말 하지 않았다. 그냥 머리를 어깨에 기대어 왔다.
침대 옆에서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든 하루밤.
새벽쯤에 의료진이 부산하게 떠들어서 깼다.
놀란 예하와 함께 보니 닐 왓튼이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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