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가지않은 길
“오빠. 오빠 몇 살이야?”
“어디살어?”
“전화번호 줄래? 나랑 나가서 따로 마실래?”
너무 적극적인데.
“저기...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혹시 게임에서 져서 벌칙수행하는 거야?”
“아닌데? 맘에 들어서 이러는 건데?”
“그쪽은 저 별로에요?”
어. 별로야. 예하 얼굴 보다가 니들 보니까 뭉클한 가슴 빼고 좋은 게 없다.
덕분에 냉철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해보자.
“예하야. 니 폰 미러커버지?”
“어.”
“잠깐 줘봐.”
“흥.”
옆으로 밀려나 뿌~ 하고 있던 예하가 핸드폰을 건네줬다.
왼쪽 여성 가슴 사이에서 아쉽게 팔을 빼네 예하폰으로 내 얼굴을 비춰봤다.
180. 도봉대 연영과.
“나 잘생겼네.”
내 헛소리를 여자들이 받아준다.
“맞아. 오빠 되게 멋져. 한눈에 반했다니까.”
“꺄아. 맞아. 우리2차 갈래? 요 앞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콜?”
여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헉 시발.”
“미쳤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친구 두 놈은 둘이 서로 따라주며 술을 처먹고.
난 잘생긴 얼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1년간 자르지 않아 함경도 감자청년같은 더벅머리. 흰티에 체크무늬 남방.
이런 내게 미녀 둘이 첫 눈에 반했다고?
아.
내 전 재산 3조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페르몬과 여유와 자신감이 이들을 한 눈에 반하게 해 이렇게 달려들고 매달리게 만들... 기는 개뿔.
누굴 바보로 아시나.
예하에게 폰을 건네주고 내 폰으로 전화를 했다.
“도팀장님. 예. 예. 백제에서 사람 보냈어요. 우리 룸 앞으로 모아주세요. 빠져나갈게요.”
굳이 여자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아닐 수도 있으니까.
진짜든 아니든 조심하자.
사냥당하지 않으려면.
내 통화 내용에 예하의 표정이 굳고 나머지는 뭔 소린지 이해하지 못했다.
“예하씨. 거기 있지 말고 이리와요.”
“그래요. 우리끼리 따로 놀죠. 더러운 세상에 낙엽 같은 우리끼리라도 뭉쳐야죠.”
예하에게 작업을 날리는 머저리들.
“야. 야. 그만 마시고 나갈 준비하자.”
“어? 오빠 우리랑 나가게? 그럼 내가 가게 예약해 놓을까?”
옆의 여자도 상황판단을 못한다.
누가 시켰는지도 모르고 하는 짓이겠지.
돈 받고 하는 악의 없는 나쁜 짓.
똑똑.
문이 열리고 도팀장과 경호원들이 들어온다.
“가시죠.”
“예.”
일어났다.
“오빠 어디가?”
“2차 가는 거야?”
“야! 한잔 더 해야지.”
“가게? 우린 예하씨랑 더 놀 거야!”
꽃뱀들과 머지리들이 아주 쌍으로 지랄.
“집에 가자. 여기 위험해.”
예하의 손을 잡고 나서니 복도는 아주 시장바닥이었다.
서른 명의 내 경호원과 나이트 조폭 수십 명이 대치하고 있다.
“백제 건설! 백제 그룹! 조승학과 관련 없으면 물러서시죠!”
큰소리로 외쳤다.
앞을 막고 있던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망설이더니 강물에 빠진 솜사탕처럼 사라졌다.
영화 같은 폭력사태는 없었다.
기회가 날아간 것을 느꼈겠지.
원래 계획은 저 여자들로 날 꼬셔 호텔방 같은 곳으로 유인하려 했을 것이다.
멍청하게 걸려들었다면... 난 100% 죽었다.
기분이 나쁘고 섬뜩하다.
“쓰읍 하. 도팀장님 제 친구들 경호 두 명씩 붙여주세요. 몇 달간만.”
“네.”
“니들 집에 가라. 이분들이 태워주실거야?”
“어? 뭔데?”
“무슨 일이야?”
“그냥. 돈 많아서 짊어져야 할 세금 같은 거.”
미안하지만 설명해줄 기분이 아니다.
어? 어? 하는 친구들을 경호팀이 태워가는 것까지 보고 예하와 함께 도팀장의 택시에 탔다.
팔짱을 끼고 앞을 노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회귀를 하고 1년간 코인 거래를 하면서 계획을 세웠다.
모든 게 딱딱 들어맞았지만 두 번의 실수를 저질렀다.
예하구출.
그로 인해 내 정체가 들켰지만.
후회는 없다.
가만있었으면...... 얘는 망가졌겠지. 끔찍할 정도로.
루비구출.
조심히 내부에서 비리를 캐달라고 했더니 대표를 습격하는 만행을 저지르다니.
그래도 구출하지 않았다면 자살 당했겠지.
나서는 게 옳았다.
덕분에 내 정체와 구사장의 사람들까지 들켰다.
이제 곧 미래 그룹의 존재도 들킬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침묵했으면 사람이 죽었을 테니.
“젠장.”
조금 불편할 뿐이다.
집밖에 돌아다니거나 친구들과 맘 편히 술 먹기 힘들어졌다.
이런 거 모두 백제그룹을 무너뜨리면 속 시원하게 해소된다.
계획을 좀 더 수정해야겠다.
빨리 조질 수 있으려나.
“오빠 친구들 너무 웃긴 거 같아.”
옆을 보니 예하가 오늘 일을 생각하는 듯 미소 짓고 있다.
“재밌었어?”
“어. 너무. 너무 웃겨. 진짜 계속 웃었어.”
예하가 빙그레 웃는데 그 행복이 너무 진하게 전염된다.
“오빠 친구들은... 진짜 친구 같아.”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친구라 꼭꼭 숨겨 놨는데.”
“캬하하하. 그 얘긴 서로 똑같이 하네... ....... 부러워.”
“응? 부럽다고?”
“어. 어... 진짜 친구란 걸까.”
갑자기 예하가 센티해졌다.
미소는 그대로인데 눈동자에 외로움이 차오른다.
그렁거리던 고독이 방울져 떨어진다.
“어? 갑자기 왜?”
“몰라. 모르겠어. 아니 왜 이러지? 이상하네. 나 안 슬퍼. 나도 몰라. 이상하네.”
예하는 자기가 왜 우는지 이해 못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슬픈 거 아니야. 지금 너무 행복해. 오빠랑 같이 있어서 행복해. 진짜. 하. 이상하네. 이상해. 술 마셔서 그런가. 아마 그거겠지. 너무 많이 마셨어. 힝.”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말은 멀쩡하다.
“나. 진짜 괜찮아. 이상하네 진짜. 나 왜 이런데.”
예하는 어찌할 바 모른 채 당황했다.
조용히 어깨를 당겨 안아줬다.
예하는 후두두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려는지 얼굴을 내 품에 묻었고, 뜨거운 눈물이 흰색 면티를 천천히 적셨다.
예하의 호흡이 서서히 가라앉는 게 느껴진다.
가지 않은 길.
연습생을 선택하지 않고, 평범한 중고를 졸업했으면 이런 친구들이 있겠지.
연습생으로 성공해 슈퍼스타가 되었으면 이런 친구를 부러워할까.
예하가 왜 우는 지 어렴풋이 이해되긴 하는데 위로할 방법은 모르겠다.
뭐라고 위로해야 하는 거지?
감히 위로하지 말자.
다음날 친구놈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술이 깬 후 사정을 들은 놈들은 필요 없으니 그러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돈 받으라고 꼬장을 부렸다.
그리고 권순진에게 전화했다.
“기업 인수팀 조직 안 됐죠?”
-아직이지.
“그럼 조사팀은요?”
-김하나 팀장 알지? 전에 백셀바이오 주워온 여자. 그 밑으로 넷 추가했어. 공매 물량 없으니 나머지도 다 거기 붙어 있어.
“잘 됐네요. 야구팀 조사해서 인수할 수 있는 팀 찾아주세요. 아무 팀이나.”
-프로야구?
“네. 법무팀이랑 회계팀에서도 한명씩 보낼게요.”
-우리에게 벌써 필요할까... 싶지만 알겠다.
“최대한 빨리 인수해주세요. 시즌 시작하기 전에.”
-그래.
이후 황영석 회계사에게도 전화하고 채인수에게 전화했다.
-야구팀을 운영하겠단 말이지?
“네. 그리고 별도로 애니메이션 팀 만들 거예요. 우선은 회계팀 한 명, 법무팀 한 명, 경영지원 한 명 뽑아주세요.”
-어. ...... 백제 이후를 생각하는 건가. 일단 알겠다.
백제랑 상관없이 친구 하고 싶다고 해서 해 주는 겁니다.
일종의 취미생활이죠. 핫핫.
굳이 여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곧장 두개의 팀이 꾸려졌고, 친구들의 꿈을 서포트해줬다.
배정구 비서실장은 조준선 사장 앞에 있었다.
“원래는 호텔콜 하면 여자를 넣어 기절시키고 잡아오려고 했습니다만... 나이트여서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물러났다?”
“상대 경호원이 서른이 넘었습니다. 살찐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전국체전 우승자급입니다. 저희 사람 서른으로 부딪칠 수 없었습니다.”
“하. 그놈 뭔데? 대통령 아들이야? 상섬 2세야? 무슨 경호가 서른이나 붙어? 그런 주제에 나이트에서 놀아? 장난해?”
“...... 제 생각엔 미끼 같습니다.”
“미끼?”
“저희가 습격하면 그 증거를 잡아 저희를 되려 압박하려는 미끼. 토끼 같은 놈이죠. 실제로도 별 볼이 없는 놈입니다. 아마도 세력의 돈을 받아 저희를 흔들려는 것 같습니다.”
배정구가 윤동욱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건넸다.
평범한 집안.
중간 성적.
평범한 대학생활.
평범한 군생활.
원룸에 틀어박힌 폐인생활.
극히 좁은 인간관계.
“경호원이 붙을 만한 놈이 아닙니다. 저희와의 접점이라면 아버지가 못 받은 돈 12억이 전부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백제건설에게 받을 돈이 있는데 못 받았다.
고작 12억.
고작 그 돈을 받으려고 이 난리를 친다?
작업 비용이 백배 더 비쌀텐데.
“아무래도 해외 출국 때 세력과 접촉한 것으로 보입니다.”
평범하던 윤동욱이 뜬금없이 출국을 했다.
국내 출입국 조회는 뒷구멍으로 할 수 있지만, 외국이다보니 아일랜드행 비행기를 탄 것 외엔 알아내지 못했다.
“해외에 출국해 세력과 접촉하고, 거래를 했을 것 같습니다. 미끼가 되어주고 대신 용돈을 받고, 12억도 챙겨 받는 그런 거래겠죠.”
배정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추리를 해냈다.
누군가 백제를 공격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다.
공매도 세력은 열 개 이상이 붙어 백제를 때리는 데 그 중 진짜가 뭔지 모른다.
허리케인 펀드라는 놈들이 가장 유력하지만, 확실치 않다.
현재 드러난 것은 오직 윤동욱 뿐.
“시선 처리용인가.”
“그럴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놈 혼자 싸돌아다니며 저희의 시선을 끌고 진짜는 뒤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놈은 잡아야겠지?”
“예. 잡아서 고문하든 아니면 거래하든 그놈을 통해 배후를 알아내야 합니다.”
“...... 그래. 내가 한번 만나보지.”
“예? 사장님께서 나서실 급이 아닙니다.”
“맡겨놔서 잘 되고 있나? 경호원 뚫고 잡을 수 있겠어?”
“핫. 죄송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날짜 잡아. 대낮에. 오픈된 장소에서. 장소는 그 놈이 정하라 해. 일단 협상하지.”
조준선은 한발 물러섰다.
적을 인정하자.
적의 공격은 매우 세련되고 날카롭다.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니고, 윤동욱이란 멍청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들을 때린 것도 어쩌면 우릴 흥분시켜 시선을 고정시키기 위한 책략일 것이다.
만나서 협상하기로 했다.
- 작가의말
화려한 액션이 후두두할 장면이지만... 개연성이 좀 떨어지고...
뭣보다 동욱이 쌈못해요. 야캐요
댓글도배 감사합니다 댓글은언제나 나의 힘 나의 삶 나의 하앍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