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타우바트섬
필리핀 타우바트 섬.
세부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데 10제곱킬로미터 크기에 거주하는 원주민은 없다.
미국의 부자가 섬을 구매해 개발했는데 통째로 매물이 나와서 고작 220억에 구매했다.
국적지는 필리핀이지만, 섬 자체는 내 거다.
강남 아파트 열채 가격에 섬과 리조트 겟.
생각보다 한국 강남은 훨씬 비싸다.
세부 공항에 내려 전세한 유람선을 타고 섬에 들어갔다.
넓은 접안 시설에 배를 대고 300여명이 섬에 올랐다.
준비된 차에 탔다.
섬 둘레에 1차선 차로가 조성되어 있고, 섬 중심 110m 높이의 언덕으로도 길이 나 있다.
“전망대부터 안내할게.”
안내를 맡은 건 먼저 와 있던 구형재 사장이다.
운전하는 도팀장과 구형재, 나와 예하.
넷이 정상에 올랐고, 뒤따라 사장들이 따라 내렸다.
“멋지네요.”
남쪽 멀리 보홀섬이 보이고, 주변은 온통 바다다.
멀리는 검푸른 바다가 깊이를 자랑하고, 가까이는 보석 같은 에메랄드색 산호초 바다가 잔잔히 흐른다.
섬 북쪽은 깊어 콘크리트 항만이 있고 남쪽엔 모래사장이 깔린 해변이 있다
섬 전체에 밀림이 잘 보존되어 있고, 해안 지역엔 밀림을 밀어 이런저런 편의시설과 관광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해안을 따라 띄엄띄엄 지어진 독채 별장과, 나무로 만들어진 방갈로가 있고, 남쪽 해변에 있는 3층 리조트는 평생 살고 싶게 만들어 준다.
멋진 섬이다.
“여기에 전망대를 세울 거야. 24시간 경비초소도 들어오고.”
“여기선 섬 전체가 보이겠네요. PMC는요? 자격이 복잡하지 않았나요?”
“망해가는 프랑스 회사 하나 샀어. 200만 달러에. 빚 갚아주고 무기 가져왔지. 웬만한 해적쯤은 손쉽게 물리칠 수 있어.”
극도로 안정된 한국에선 실감하기 힘들지만, 세계엔 야만과 약탈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동떨어진 섬에 재산을 쌓아두었다간 보트를 타고 침입해온 기관총 해적들이 사람을 다 죽이고 쓸어갈 수 있다.
자위는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어차피 망한 회사였어. 프랑스 노인네 셋만 옛 기억을 갖고 사는데 훈련고문으로 임명했어. 성적 좋은 동생들을 국제 용병으로 등록할 거고.”
미래 경호가 진화하고 있다.
“훈련은 여기서 해도 되요?”
“본토랑 가까워서 좀 위험하지. 필리핀 정부에서 섬을 몰수 할 수도 있고. 그래서 말인데 동 떨어진 섬 하나 더 살 수 있을까? 훈련용.”
“괜찮아요. 정사장님하고 이야기 해보세요. 정형!”
미래 리츠의 정문우에게 섬 추가 구매를 맡긴다.
다시 돌아보니 섬의 전경이 너무 좋다.
2020년 한해를 여기서 보내도 되겠는데.
“정형! 섬 더 사주세요. 필리핀 말고, 국가별로 하나씩.”
나라마다 섬 하나씩 사자. 우리만 쓸 수 있게.
2020년 피난처를 미리 준비하는 거야.
돈이야 넘쳐나고.
사장들과 이야기 좀 하다가 바다를 보고 입을 벌리고 있는 예하를 톡 쳤다.
“바닷가 갈래?”
“에. 헤헤헤헤.”
끝내 트레이닝복을 입고 비행기를 탔기에 삐져서 툴툴대던 예하가 바보처럼 웃었다.
그러다 정색.
“믈글지므스요.”
아 귀여워.
차를 타고 남쪽 해변으로 갔다.
모래사장 해변이야 한국에도 있지만, 남국의 바다는 깨끗함이 다르다.
너무 투명한 바다에 이름 모를 열대어가 떼지어 다니고, 필리핀의 수많은 섬에 둘러싸인 덕인지 파도도 잔잔하다.
거울처럼 맑은 바다.
모래사장 한켠엔 방송팀이 세팅을 하는 중이다.
예하와 잠깐 해변을 걷다가 예하를 모닥불, 민지민지에게 보내줬다.
멋진 바다를 보다가 리조트로 들어갔다.
“잘 지내셨어요?”
“예. 덕분에.”
지혜아빠, 지혜엄마, 유현엄마.
아들딸을 잃은 피해자들.
그들과 리조트 옥상으로 갔다.
카페와 야외삼겹살집처럼 꾸며진 옥상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유리난간 너머로 해변에서 놀고 있는 예하와 미녀들이 보인다.
잠시 그들을 보다가 한숨부터 쉬었다.
“죄송해요. 못 잡았습니다.”
조승학을 놓쳤다.
“아닙니다. 최선을 다한 것 압니다. 잡고 싶은 마음은 저희와 똑같으셨을 텐데요.”
“하아. 답답하네요.”
사라진 조승학.
갑질만 하던 머저리가 혼자 살 수 있을 리 없다.
영덕에서 산속으로 기어들어가 얼어 죽었으면 찾기도 힘든데.
“현상금은 계속 유지할 겁니다. 가끔씩 기획기사랑 조승학의 악행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유투브에 뿌릴 겁니다. 사람들이 바뀐 얼굴의 조승학을 신고할 수 있도록. 죽었을거라 생각하지만, 영원히 계속할 겁니다. 그놈은 죽었어도 영원히 개쓰레기로 남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거면 됩니다. 그거면.”
셋이 눈물짓는데 전처럼 절망적이지 않다.
복수를 얼추 끝냈으니.
“그리고 다음 복수를 시작할 겁니다.”
“저희가 도울 게 있나요?”
셋은 한국에 가면 경찰서에 잡혀간다.
직접적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조승학을 살인청부 한 꼴이니.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겠지만, 고생하는 건 똑같다.
“세분은.”
말을 잠시 멈추고 중년인의 슬픈 얼굴을 봤다.
“이 섬을 관리해주세요. 저희가 언제든 편히 쉴 수 있게. 어찌됐건 저흴 도와준 대가입니다. 괜찮으시죠?”
지혜엄마가 입을 열었다.
“네. 무슨 맘으로 하는 말씀인지 알아요. 그럴게요. 최선을 다할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설렁설렁 해도 되요. 힘든 일은 경호원 아저씨 부르고요. 항상 상주하니까요.”
타우바트 섬은 미래 보안에서 경호팀이 교대로 와서 지킨다.
말이 지키는 거지 교대로 휴가 오는 격.
근무방침을 말하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는 뒷얘기가 있다.
“네. 알겠습니다. 설렁설렁.”
섬에 상주하는 필리핀인은 없다.
대신 오늘처럼 손님이 많이 올 때, 세부에서 사람을 불러온다.
100명을 불러와 일을 시키고, 손님이 빠져나가면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을 관리하는 게 일의 전부.
쉬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엄청 힘들었다더라. 물론 이건 나중 일.
“드릴 말씀이 있으니 같이 내려가시죠.”
“예.”
리조트 3층에 커다란 파티홀이 있다.
거기에 채인수 사장과 홀딩스의 기획실, 경영지원팀 마흔 명이 모여 먹고 마시고 있었다.
이들은 백제그룹에 원한이 있는 이들로 뽑았다.
그랬기에 지난 9주간 열성적으로 일해 주었다.
내려가 잔을 받고, 채운 후 채인수에게 신호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백제 그룹을 완벽하게 사냥했습니다.”
예에에에에!
사기가 드높다.
일제히 소주를 마시고 머리에 털었다.
못 받은 보상금을 받고.
성과급을 받고.
원한을 갚았다.
이보다 좋을 수 없지.
저 멀리 경영지원팀에 섞여 있는 채인수의 여동생과도 눈인사를 하고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이제 다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앞으로 꾸려질 기획실과 경영지원팀에 여러분의 자리는 없습니다.”
이들은 전문적인 이들이 아니다.
사냥을 위해 긁어모은 인력이며. 그간 급한 대로 부탁해왔지만, 앞으로 커질 그룹을 생각하면 기획실엔 전문 엘리트를 채용해서 넣어야 한다.
채인수의 말에 파티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사냥 끝났으니 해고라고?
토사구팽?
대실망.
물론 이제껏 받은 것도 많지만, 사냥 성공을 축하하러 온 휴가지에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찬물을 퍼부은 채인수가 빠르게 말했다.
“그래서 질문하겠습니다. 앞으로 미래그룹엔 새로이 하나의 팀을 만들 것입니다. 일명 정화팀. 은닉된 범죄를 찾아내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팀입니다. 물론 단순히 사회 정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팀은 아닙니다. 공매를 먼저 하고, 조사한 죄를 터트려 이익을 얻을 겁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팀이죠. 다만, 나쁜 놈에게 정당한 벌을 주는 일입니다. 좋은 일이죠. 그런데 그 팀에서 일할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 관련 경력자가 세상에 얼마 없군요.”
채인수가 미소지었고, 사람들도 웃기 시작했다.
“정화팀에서 함께 하겠습니까?”
예에에에에에.
다들 빈잔을 들었다가 서둘러 잔을 채운다.
이어지는 건 격렬한 파티.
증거를 잡아낸 순간, 폭락하는 주가를 보며 환희에 젖던 순간, 등을 얘기하며 먹고 마신다.
이들은 이제 정화팀이라는 미래 그룹과는 상관없는 독립 법인에서 일하게 된다.
옳은 일을 하는 시민단체처럼 누군가의 불의를 캐내고 폭로하는 팀이다.
공매도로 이득을 얻기 위한 팀이지만, 잘못된 건 나쁜 놈들이다.
죄가 없으면 정화팀이 끼어들 일이 없지.
채인수와 동생, 기획실장이 다가왔다.
중년분들께 인사하고 한 테이블을 차지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뇨 사장님이 더.”
어른들의 공치사와 사과가 이어진 후 본론이 나왔다.
“정화팀은 휴가를 마친 후 바로 움직일 겁니다. 첫 목표는 청한무역과 FVV 식품입니다.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아뇨... 잘.”
“상처를 헤집는 거 같아 죄송하지만. 음. 지혜 영상 속 목소리입니다.”
지혜부모님이 눈을 부릅떴다.
조승학과 낄낄대며 대화를 나누던 목소리.
원한이 없을 리 없지.
그들의 동영상은 없지만, 무슨 짓을 했을 지는 뻔하다.
대화내용도 여러차례 들었을 테고.
조승학의 핸드폰을 빼앗았고, 코톡 대화도 전부 확인했다.
그들의 전화번호도 저장되어 있으니 정체를 찾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들에 대해 간단히 조사했습니다. 조승학과 비슷하게 죄를 짓고 다녔고, 비슷한 피해자가 많습니다. 반드시 벌 줄 겁니다. 그런데...... 벌의 수위를 정해주시겠습니까?”
지혜엄마가 물었다.
“수위라뇨?”
“조승학은 완전히 몰락시켰습니다. 어딘가 숨어있다 해도 제대로 살 수 없죠. 이건 함정에 빠트려서 숨겨둔 재산까지 몽땅 뺏은 덕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좀 다릅니다. 기업이 정상적이더군요. 불법적 행위도 약간 있지만 백제처럼 몰락시킬 수 없습니다. 흔들어서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입해 경영권을 뺏어도 집안의 재산까지 빼앗는 건 불가능합니다.”
정상적인 기업은 뺏기 힘들다.
백제를 철저하게 몰락시킬 수 있었던 건, 준비기간이 길고 작전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백제 스스로 몰락할 만한 죄를 잔뜩 지었기 때문이다.
결정타는 4계 블록딜에 속아 스스로 자살한 것 덕분이고.
블록딜 함정과 배정구의 전향이 아니었으면 조준선은 백제를 빼앗겼어도 지분가치 1조에 달하는 재산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죄를 파내 아들놈들을 감옥에 보낼 수 있습니다. 그걸로 만족하시면 그걸로 끝낼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여기에 몰래 데려올 수도 있습니다.”
몰래 데려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다들 이해했다.
죽이고 싶으면 죽이십시오, 다.
흠칫 놀란 어른들이 한참 말을 잃었다.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지혜씨를 위한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채인수와 팀원이 자리를 떴고, 나도 물러났다.
섬의 관리인 셋만 남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EDM을 틀어놓은 시끌벅적한 파티장에서 세분만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있었다.
갓 해가 저문 시간.
리조트 바로 100m 앞에 바다가 있다.
그 사이 백사장에 화려한 조명과 카메라가 줄서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큰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고, 한쪽엔 모닥불, 한쪽엔 바베큐불이 타오르고 있다.
예하와 모닥불, 민지민지 셋이 나란히 앉아 소주를 마시며 깔깔 떠들고 있다.
소주?
이봐요, 기업홍보 방송인데 소주면 전체연령으로 못 틀잖아.
셋이 게임하며 술 마시며 떠들며 깔깔대는데 두 여자는 비키니 차림이다.
스물네살 모닥불PD, 노소정은 작은 얼굴 작은 키에 작은 가슴, 초딩몸매다.
어리고 예쁜 공주님스타일.
성격 털털하고, 엄청난 대식가라는 반전 덕에 갭모에가 인기비결이라는데 뭔진 잘 모르겠다.
스물세살 민지민지, 서민지는 팔다리 길고 얼굴도 시원시원하며 가슴도 큰 아이돌 상이다.
춤과 노래, 편안한 진행이 포인트.
가장 일반적인 인기 여BJ의 특징이자 레드오션의 승리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쟤들 저러다 비키니 훌렁 벗겨지면 기업 홍보채널이 정지당하는 거 아냐?
옆에 있는 예하는 래쉬가드 차림이다.
평소 래시가드를 발명한 놈을 매우 싫어했지만, 그나마 예하가 비키니가 아닌 래시가드를 입어서 다행이다.
아니야. 몸매가 다 드러나잖아.
양옆의 바보들보다 확고한 비교우위에 있는 몸매가 송출되고 있다고.
전세계 바보들이 보고 있어.
나만 보고 싶은데.
예하를 손짓으로 불렀다.
언니들과 웃고 떠들던 예하가 빠르게 다가왔다.
“너...”
옷가지고 뭐라 하면 꼰대 같겠지?
나만 보고 싶지만.
불렀는데 뭐라 하지.
“소주 마셔도 돼? 맥주면 몰라도 취해서 실수하면.”
“아. 이거 민지언니 채널이야. 우리 채널엔 편집본만 올리기로 했어.”
그럼 문제없군.
그럼, 음.
“오빠. 오빠오빠. 그런데에. 미안한데에에.”
“어.”
“미안한데 오늘은 루비 언니랑 자면 안 돼?”
“어?”
왜?
너 뭐 이상한 거 주서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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