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폰로이어
“모든 연습생은 폰로이어를 깔고 자신을 보호하세요. 누군가 성공을 미끼로 몸을, 혹은 금전을 요구한다면 녹음파일을 가져오세요. 조져주겠습니다. 폰로이어를 깔 것, 이게 연습생에게 요구하는 단 하나입니다.”
루비는 바싹 말랐지만, 독기는 여전했다.
“그리고 모든 선생님들도 폰로이어를 깔길 권장합니다. 연습생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기 미모를 이용해 데뷔하려는 이도 있습니다. 몸을 바치고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이도 분명 생깁니다. 일이 어긋나면 억지로 당했다며 무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녹음파일을 가져오세요. 선생님들을 보호해 드리겠으며 가해자는 끝까지 조져주겠습니다.”
무서워. 루비.
세계는 지금 미중갈등이 무르익고 있다.
트럼트는 연일 중국을 때리고 있고, 시진핑은 발끈해 눈눈전략으로 강경책을 쓰고 있는 상황.
옆 나라 일본은 미국을 뛰어넘는 양적완화를 하며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을 펴고 있다.
농담이 아니라 공식용어다.
Beggar Thy Neighbor Policy.
일본의 이 정책은 방한 일본인을 줄어들게 만들고 방일 한국인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등 한국을 가난하게 만들고 있지만, 정부에선 7년째 뚜렷한 대응이 없다.
얼마 후 아베의 히틀러식 극우정책에 대한 반발로 반일불매운동이 일어나야 균형이 좀 맞게 된다.
한국은 미투열풍이 한창이며 각계의 고발로 연극계, 연예계 등 이슈화가 쉬운 분야부터 정치권까지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본래 어느 정도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원래보다 훨씬 뜨겁게 타오르는 듯하다.
그건 모두 ‘폰로이어’의 대활약 덕분.
지금도 쉴 새 없이 폰로이어 녹음파일이 언론사와 법정으로 제보되고 있고, 회사에선 자체 검증을 한 후 광고에 이용하고 있다.
-마취 끝났어? 잠깐 교육해야 하니까 간호사들 나가봐. 오우 진짜 삐이이(가명)이네. 야. 인턴들 와봐. 연예인 ㅂㅈ 본적 있어? 뚜루루~ 짜잔. 소변줄 갈기 실습이나 하자. 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찌걱.
폰로이어에 녹음된 이 파일은 전신마취 수술 당사자가 우리에게 보내줬고, 당사자의 동의하에 광고에 이용중이다.
당연히 당사자의 신원은 철저하게 보호해주고 있다.
당연히 성추행 의사들과 관계자들 모두 법정다툼중이고 감옥에 갈 게 확실시된다.
사실 수술실 CCTV는 애매한 감이 있다.
매우 낮은 확률로 의료사고를 찾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피해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맨몸을 보여야 하는 환자의 모습이 모두 녹화되는데 그게 잘 관리되리라 믿는 건 의사의 실수가 없다고 믿는 것과 똑같다.
전신마취를 하면 반드시 소변줄을 꽂는데, 그 장면이 복사되거나 유출되면 어쩌려고.
의료사고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썬 24시간 녹음되는 폰로이어가 최선이다.
병원 내 성추행이 여럿 녹음돼 의료계를 박살내는 중이다.
일부 병원에선 수술실에 세균 등을 이유로 핸드폰을 몰래 가져가는 행위를 금지시키고 있으며 환자는 핸드폰을 살균팩에 넣어 수술실 한쪽에 둘 수 있게 해달라고 시위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병원을 성추행을 옹호하는 더러운 병원으로 매도하며 광고하는 중이고.
-제 여자친구가 제게 성폭행 당했다고 신고했습니다. 전 즉시 구속되었고 8개월째 감옥에 있었습니다. 당시 cctv엔 제게 맞았다는 그녀가 오히려 절 때렸고, 제가 납치했다고 주장하던 그녀가 제 차로 달려와 제 차에 타던 게 찍혔습니다. 경찰은 여자의 진술만 믿고 cctv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고 전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지금은 무죄로 풀려났지만 그녀는 무고죄의 처벌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전 항상 진작에 폰로이어를 깔았어야 한다고 후회합니다.
유명한 사건이다.
CCTV 영상이 있는데도 남자를 잡아가둔 정신 나간 경찰과 검찰, 여자의 무고죄는 손대지 못하는 정부방침, 무죄가 밝혀졌음에도 내 식구 감싸기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경찰의 대환장 콜라보.
변호사를 보내 무죄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 그 사연을 광고로 채택했다.
폰로이어는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수없이 많은 성추행과 성폭행의 증거가 되고 있고, 반대로 꽃뱀과 무고죄를 잡아내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연인이 폰로이어를 깔면 성관계 음성이 녹음되기에 상대가 까는 걸 싫어하지만, 나는 반드시 깔아야 하는 그런 애매하고 필수적이고 이기적이지만 나를 호신하는 강력한 앱.
이 덕에 기존보다 훨씬 많은 미투가 일어나고 수많은 폭로가 일어나고 있다.
극히 일부의 사람만 더럽다.
거의 모든 사람은 깨끗하게 살고 있다.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암덩어리를 치우고 나면 세상은 좀 더 깨끗해지겠지.
당부 겸 폰로이어 광고를 한 루비는 공식 행사가 끝나자 다가왔다.
“오빠 오랜만이야. 예하는 보기 좋네.”
“너 왜 이렇게 말랐어?”
“맞아요. 언니. 식욕이 없어요?”
“아니. 그냥 열심히 한 거지.”
워크 홀릭.
자신의 존재의미를 일에서 찾는 병.
얘기해보니 잠도 거의 안자고 먹지도 않고, 회사에서 24시간 머무르며 진행현황을 보고 또 보고 했다고 한다.
“그런다고 달라질 거 없잖아.”
“불안해서 그래. 제대로 하려고. 정말 제대로.”
“루비 너. 하루 9시간 이상 일하면 해고. 9시간 땡 치면 회사 나가고 업무관련 전화 절대 금지. 주 5일 이상 출근하면 해고. 이렇게 전해둘 테니까 지켜.”
“안돼. 그럼 회사가 틀어질지도 몰라. 불쌍한 연습생들이 협박당할 수도 있고 또...”
비쩍 말라 죽을 것 같은 좀비가 어디 누굴 불쌍해 해.
니가 제일 불쌍하다.
“루비야. 너 없어도 돼. 직원들 다 열심히 해. 다들 맡은 일은 성실히 하니까 넌 방향만 잡으면 돼. 위에서 강하게 금지시키면 일선에서 그런 일은 거의 안 일어나.”
“아니 그래도 내가 봐야 안심이 된다고. 내가 맡은 과분한 자리가......”
“너 아니어도 돼. 사장이란 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야.”
“...... 어. 알아. 그래서......”
젊음과 열정을 바친 회사가 내가 없어도 제대로 돌아가면 얼마나 허무한가.
루비도 그게 불안한 거겠지.
“그래서 내 존재를 보이고 싶어. 나의 가치를......”
“대충 알겠어. 그래도 건강은 챙겨야지. 하루 9시간 이상 일하면 해고. 회사에 전해둘게. 추가로 한달에 1키로 이상씩 찌기. 이거 실패하면 해고. 알겠어? 예하야. 루비 체중재고 와.”
“어? 나?”
“내가 재도 되면 내가 하고.”
루비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아니. 예하가 재줘.”
루비가 예하의 팔짱을 끼고 어디론가 떠났다.
그 모습을 보다가 아트스쿨 교직원을 찾았다.
기획팀, 운영팀, 지원팀.
다들 피곤에 쩔어 있는 모습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야근이 많았나요?”
인사는 채인수가 했다.
내가 나설 자리는 아니지.
“아닙니다. 수당도 잘 나와서 서로 야근하고 싶어 했어요.”
라고 좀비들이 긍얼거렸다.
야근수당.
근무 9시간 이후부터 1.5배, 밤 10시 이후부터 1.5배, 그러므로 밤 10시부터는 2배의 시급이 나오니 하루 밤샘을 하면 일당의 세배를 넘게 받는다.
야근수당이 지켜지기만 하면 야근을 즐기는 이도 꽤 많다.
정부는 52시간 이상 근무를 금지시키는 게 아니라 장기간 야근할 경우 제대로 돈을 주게 만들어야 한다.
인건비가 너무 많아지면 회사에서 알아서 야근을 못하게 되어 있다.
일을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일한 대가를 제대로 주게 하면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정화되는데.
“루비가 멍부죠? 멍청한데 부지런한 상사. 최악이었겠네요.”
내 얘기를 전해들은 채인수가 농담을 건넸다.
직원들이 애매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성실의 표본.”
“그 열정에 감화돼 저희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에휴. 사회생활이란.
“회사생활 전혀 안 해본 애를 사장에 앉히고 사장이 의욕적으로 매일 밤새 뒤적거리는데 뭐 제대로 아는 게 없으니 답답한 혼선이 많았겠죠.”
다 안다는 듯한 채인수의 말에 직원들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억지로 웃었다.
“오빠. 뭐라고욧?”
뒷담화 현장을 걸렸다.
루비와 예하가 팔짱을 끼고 다가와 채인수 뒤에 바싹 붙었다.
채인수가 흠칫 하고는 할 말을 빠르게 전했다.
“루비가 9시간 이상 일하면 해고입니다. 퇴근하고 전화로 지시하는 것도 안 되요. 그런 일이 생기면 저희에게 신고하세요. 비밀보장하고 포상금 드립니다.”
“오빠. 대체 왜 날.”
“이건 루비 건강을 위해서예요. 그러니까 꼭 좀 보호해주세요.”
일에 매달리는 건 알겠는데 사람 죽는 건 못 보겠다.
직원들도 우리의 뜻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꼭 신고할게요.”
“식사도 안하세요.”
“저희도 걱정 많이 했어요.”
잘 되겠지.
“루비야. 점심 같이 먹자.”
“그래요 언니.”
“난 사장이잖아. 여기 있어야...”
“없어도 돼. 원장님이 너보다 천배 경력 좋은 분인데 원장님이 다 하겠지. 넌 운영 쪽만 신경 써. 괜히 나댄다고 좋아질 것 없어.”
“우우우.”
루비는 거듭 권한이 줄어들자 마음에 안 드는지 입을 뿌 내밀지만, 어쩌겠어. 내버려두면 죽을 것 같은데.
행사장에선 정치인들이 물 만난 고기마냥 쏘다니며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 제2의 방탄 어쩌고 하며 숟가락을 올리고, 기자들은 저마다 경력이 훌륭한 선생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느라 떠들썩하다.
진짜 주인공인 연습생들은 겁먹은 병아리떼 마냥 이리저리 뭉쳐서 눈치만 보고 있고.
우리 같은 본사 경영진은 스포트라이트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있다.
행사에 참여한 주요 사장들과 자리를 옮겨 식사를 했다.
밥을 먹으며 루비에 대한 걱정과 각종 사업들 이야기를 하는데 예하가 어깨를 툭툭 쳤다.
“오빠......”
“어?”
예하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는데... 영어다.
“왜?”
“빙빙언니야.”
“아.”
폰 화면은 세 달 전 핀빙빙이 깐 메신저 초기 시험모드.
기존 메신저들을 거의 베끼고 블록체인 시스템이 돌아가는지 시험만 하던 버전이다.
초반엔 예하와 빙빙이 서로 등록하고 구글번역기를 돌린 영어로 잡담하고 사진과 영상을 보내주며 친분을 나누었다.
그러다 핀빙빙이 실종되었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실종이며 지금도 핀빙빙 살해설, 임신설, 성노예설, 인체신비전설 등 온갖 루머가 떠돌고 있다.
예하는 걱정이 되서 메신저로 거의 매일 말을 걸고 물어봤지만, 지금껏 대답이 없었다.
두 달 만에 대답이 온 것이다.
영어지만 나도 알아볼 수 있다.
“예하야, 이건 도와달라는 뜻이야. 에스오에스.”
영어를 못하는 예하를 위해 친절하게 번역해줬다.
“흥. 나도 알거든요. 그게 아니라 빙빙 언니가 도와달래잖아. 도와줘야지. 빨리.”
“어. 상황 좀 물어봐봐.”
예하에게 임무를 맡기고 고개를 들었다.
“경호팀장님, 구사장님 좀 불러주세요.”
“예.”
옆 테이블에서 사방을 주시하던 도윤정이 대답했다.
- 작가의말
젠더 이슈는 최대한 중립적으로 쓸 생각이지만...
일베 메갈 둘다 싫어해서 둘다 마음에 안 들 글이 나올거 같습니다
어.... 걔들이 좌표찍고 와서 악플 1억개 남겨주면 좋겠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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