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세이셀 휴가3
관광용 잠수함을 타고 바닷 속을 누비고 다녔다.
세상은, 우리가 육지에서 보던 하늘에서 보던 바다는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을 갖고 있었다.
산호초와 그 사이를 누비는 수억 마리의 물고기와 해수면 아래로 비치는 햇살은 숨 쉬는 것을 잊을 만큼 장관을 그려냈다.
적도 인근이지만 평균 27도인 온화한 날씨.
하루 두세 번씩 내리는 비도 나쁘지 않다.
햇살을 받다가 비를 맞으며 해변을 걷고, 허리 깊이의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 먹이를 뿌려 고기를 구경하고.
하루는 관광을 하고, 하루는 호텔에서 내내 뒹굴고.
천국이다.
함께 온 사장들은 한국시간으로 오후, 여기선 아침에 이메일과 전화를 받으며 일처리를 했다.
아침밥을 함께 먹으며 일을 처리하고 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여기에 계속 살아도 문제없을 것 같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응? 돈만 있으면 평생 사는 거 아니야?”
예하가 되물었다.
“아니. 여기서 사는 것도 언젠간 지겹지 않을까 해서. 한국의 바쁜 삶이 싫어서 핀란드로 이민 간 사람이 딱 5개월 만에 한국을 그리워한다잖아. 너무 변화가 없고 조용해서 정신병 걸릴 것 같다고.”
“아하. 음... 여기서 방송할 수만 있으면 몇 년씩 있어도 될 것 같은데. 방송 켜고, 춤추고 노래하는 거 찍고, 해변에서 노는 것도 찍고,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찍고. 평생 있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댓글로 소통하고, 돈도 방송으로 벌고? 카메라만 있으면 돼?”
“응. 그거면 돼... 아니다아니야. 오빠도 있어야 해.”
늦었어. 탈락.
“그런데 그러면 싫어하겠지? 한국 사람은 남이 돈 펑펑 쓰는 거 싫어하잖아.”
“한국 사람만이 아니야. 전 세계 다 그래. 어느 나라든 남이 돈 펑펑 쓰며 편하고 즐겁게 사는 거 싫어해. 부정적인 문장 앞에 한국 사람은 이라고 붙이는 거 되게 안 좋은 거야.”
“에? 그럴 리가. 외국은 부자가 돈을 얼마를 쓰든 신경 안 쓴다는데?”
“그거 구라야.”
“에? 그런 거야?”
“그런 거야. 한국사람 중 누군가는 남이 돈 많이 쓰든 말든 신경 안 쓰고, 외국의 누군가는 남이 돈 펑펑 쓰는 거 싫어해. 사람은 다 다르고 사람들은 어디든 똑같아.”
“에에에.”
예하가 대실망했다.
“왜 실망하는데?”
“외국 사람들은 이해해 줄줄 알았는데. 그럼 이곳 영상 올려도 될 거 같았는데. 이런 풍경, 이런 경치를 혼자 보는 게 너무 아까워서 방송 올리고 싶은데 욕 먹을까봐 못 올렸는데. 외국인도 똑같으면 평생 못 올리잖아.”
안타까워하는 예하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
“예하야... 너 지금까지 미래그룹의 대변인이라서 한국인들에게 욕을 먹었잖아.”
“어? 어. 그렇지......”
“미래메신저 때문에 앞으론 전 세계인에게 욕을 먹게 돼. 애플 구글 아마존 페북과 싸우면......”
“흐에에엑.”
전 지구적 어그로.
미처 생각 못 했다는 듯이 예하가 경악했다.
“차라리 대변인 그만하고 가수만 하는 건.”
“싫어. 내가 오빠를 지킬 거야. 내가...”
“에휴 고집은. 그럴 필요 없는데.”
머리를 긁적이다가 예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어떻게든 희망을 좀 줘야지.
“김 카다시안이라고 알아?”
“응? 누구야?”
“몰라? 엄청 유명한데, 가수가 아니라서 모르나?”
“뭐로 유명한데?”
“직업이...... 시끄러운 걸로 유명해?
“응?”
“유명한 걸로 유명해.”
“에헤헤. 그게 뭐야?”
“가십. 막장. 이슈메이커. 뭐 이런 걸로 시끄러워서 유명해. 예를 들어, 친아빠는 미국에서 비호감 1위 변호사였고, 엄마랑 재혼한 양아빠 케이틀린은 철인10종 경기 챔피언인 남자 중의 남자인데 성전환수술해서 여자가 된 걸로 유명해.”
“헐.”
“두 명의 아빠 사이에 6남매가 살고 있는데 각자 애인이 매일 바뀌고 호화 파티를 매일 하고 결혼도 자주하고 이혼도 자주하고 불륜, 바람, 섹스비디오 유출되는 등 온갖 사건 사고 막장 이슈 가십을 만들어서 매일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외국은 남이 어떻게 살든 상관 안한다고? 미국도 한국사람처럼 막장 짓을 하면 엄청나게 욕해. 한국보다 훨씬 원색적으로 욕해.”
“힘들겠다.”
“글쎄. 남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다섯 자매가 전부 인스타 팔로워 1억이 넘고, 유명한 걸로 유명한 유명세 덕분에 모델로도 성공하고, 사업도 잘 되고, 옷을 만들면 우수수 팔리고. 막내는 최연소 억만장자로 유명해지려고 수입을 부풀리기까지 했지. 각자가 유명해지니까 서로 회사를 차리고 옷이나 화장품을 만들고 서로 콜라보하고 서로 인스타로 광고하며 돈을 더 벌지. 한 명 한 명 살아온 방식은 다르지만 그들 나름대로 유명한 덕에 더 유명해져서 다들 잘 살고 있어.”
“뭔가... 웃기네.”
“그렇게 사는 방식도 있다고. 그 집안사람들은 안 좋은 쪽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자꾸 이슈가 되면 관심을 갖는 사람이 생기지. 빠가 까를 만드는 것처럼 까가 빠를 만들기도 하는 거야. 지금 네 처지도 비슷하잖아. 일단 유명하잖아.”
“칭찬이세요? 욕이세요?”
“아니. 냉정한 현실분석. 어차피 널 싫어하는 사람들은 예하 너의 인격을 모르면서 욕하는 거잖아. 미래 그룹의 행보가 자기에게 손해니까 그 대변인인 너를 그냥 욕하는 거잖아.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해봤자 소용없겠지만, 널 싫어하는 사람들의 무의미한 아우성만큼이나 그들 덕에 너에 대해 알게 되는 사람이 있고, 너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될 수록 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거야. 그러니까 그냥 시원하게 내보이지 그래?”
“이런 거 방송하라고?”
“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나 여기 여행 왔어, 나 여름엔 칠레 스키장 갔어, 하며 자랑하고 살아. 네 솔직한 모습을 보고 돈지랄 한다며 싫어하는 사람은 버리고 널 좋아하는 사람만 챙기며 살어. 어차피 앞으로도 쭉 욕먹을 텐데 뭐.”
예하가 볼을 부풀리며 심통을 부렸다.
“뭐랄까 위로가 되지 않는군요.”
“위로 하는 게 아니야. 냉철한 분석이래도. 만약 김 카다시안 집안이 조선시대에 살았어봐. 동네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아 살기 힘들었을 거야. 그런데 지금은 울타리가 사라진 열린 세계잖아. 그들 사연을 들은 열에 아홉이 싫어한다 해도, 열에 한명이 좋아하면 그 숫자가 7억이야. 자꾸 이슈가 나오고 막장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티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짜증내도 그게 뭐 어때서? 말했지? 그렇게 막장가십을 뿌려도 자매 전부 인스타가 1억이 넘는다고. 세계가 넓어졌으니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좋아하는 사람도 늘어나는 거야.”
예전 같으면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게 중요했을 것이다.
대중적 이미지를 챙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울타리가 사라진 후에는 일부에게 사랑받는 걸로도 시장의 크기가 충분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곤충을 싫어하지만, 다양한 곤충을 자세히 찍는 것만으로도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이 충분히 많다.
먹기만 하거나, 잠만 행복하게 잘 자거나, 청소만 하거나.
울타리가 사라지면 갈 수 있는 길도 다양해진다.
“어...... 뭔가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것 같긴 한데......”
“게다가 그들은 본인의 막장 짓으로 욕먹은 적이 많아. 그런데 예하 너는 네 잘못이 없잖아. 네 진솔한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면 널 욕하려고 들어온 사람조차 네 매력에 빠질 거야.”
“에헤헤헤. 오빠처럼? 오빠처럼 내 매력에 풍덩?”
“어...... 나처럼.”
“헤헤헤. 헤헤헤헤헤헤.”
이거 또 고장 났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널 모르는 사람이 널 욕하는 것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넵. 그래. 얼굴로 남친 홀려서 남친 돈 펑펑 쓰고 산다는 욕 따위 무시하고 살 거야.”
“엄청 구체적이네.”
“헤헤헤. 방송. 아 재밌겠다. 바다 가서 방송할래. 춤이랑 노래 세곡 따려고 했는데 그거 연습하는 거 방송해야지. 공식채널엔 못 올리지?”
“어. 다른 사람 방송 시간이잖아.”
“헤헤. 매니저 언니한테 전화해서 내 채널에 방송 켜달라고 해야지. 핸드폰 한 대로 전부 송출 되나? 핸드폰 몇 대 더 빌려야겠네. 유툽하고 미래메신저로 송출하고 또... 헤헤헤. 대본 없이 방송하네. 재밌겠다.”
그러고 보니 항상 대본이 있었구나.
뭐 잘하겠지.
“오빠. 역시 최고야.”
“맞아.”
코밑을 쓱 훑었다.
“최고. 어쩜 이렇게 현명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예하가 내 양볼을 손바닥으로 잡으며 가까이 붙어 말했다.
“나보다 천재는 많은데.”
“나이 먹으며 잘나가는 사람 말고. 스물네 살에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
“태지보이스 해체할 때 태지 형 나이가 24살이었는데? 그 형은 10대에 작사작곡노래춤 다 해서 20살에 17주 연속 1위했어.”
“흥. 오빠는 온갖 욕설과 모략을 뚫고 성공한 거잖아.”
“네가 태지형 잘 모르나보네. 그 형 남잔데 본인 임신설이 진지하게 돌았어. 악마소환설은 귀여운 편이고. 그 형이 당한 중상모략개소리가 미래그룹이 당한 것보다 100배 심했을걸? 그런 걸 다 뚫고 나라의 문화를 바꿨으니 단순히 재능을 넘어선 엄청난 인물이야.”
“아 몰라몰라몰라몰라. 오빠가 최고야. 오빠만큼 현명한 사람은 없어.”
“나야 그저 읍.”
키스 당했다.
예하는 뭔가 커다란 돌덩이를 내려놓은 표정이다.
편한 옷을 입고 해변에서 방송을 켜 여기가 어딘지 자랑을 했다.
사람을 봐도 도망치지 않는 거북이 옆에 가 놀고, 적도의 신기한 나무들을 보여주고 바다의 물고기들을 보여주며 행복하게 웃는다.
돈지랄이니 뭐니 하는 악플들은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하는 글만 쏙쏙 보며 대본 없이 방송을 했다.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자기노래를 부르고, 그러다가 부르고 싶은 트로트나 올드팝도 부르고.
밥 먹을 때도 방송을 켜 놓고 있다.
쟤 저러다가 중독되겠는데.
“이거이거 진짜 너무 맛있어요. 네? 휴가비용이요? 회사에서 전부 내주는데요? 남친이랑 같이 있냐고요? 헤헤헤. 글쎄요.”
호텔 1층 레스토랑에서 창밖의 바다를 보며 방송하는 예하는 더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오늘 방송으로 예하를 싫어하는 사람은 더 싫어하게 되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예하의 진솔한 매력을 보고 더 좋아하게 되겠지.
모두의 사랑을 받을 필요 없다.
“사장님! 사장님!”
지적이고 차분한 이미지의 공은진이 호들갑떨면서 달려왔다.
공장에 불이라도 났나?
“사장님! 대통령님이 지금 오래요. 얼굴 보재요.”
“헐. 오빠. 큰일났다. 대통령님은 다 알고 있는 거야?”
뭐 대단한 것도 아니네.
“임시계약직이 만나자고 한 거 가지고 뭐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 지금 당장 만날 거리도 안 되고. 휴가 끝나고 보자고 해.”
결국 대통령이 호출하는구나.
“오빠... 바람맞히면 끌려가서 고문당하는 거 아냐? 힝. 울오빠 어떡해.”
“사장님 어떻게 그래요? 대통령이 부르는데. 기다리고 있겠대요. 직접 전화 왔어요. 저 심장 떨어질...”
극도로 흥분한 여자 둘이 말을 쏟아냈다.
내가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예하야?”
“어?”
“소리 안 껐지?”
“어? 어어어?”
방송사고다.
채팅창이 불타오르고 있다.
- 작가의말
세계속의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 김카다시안 이한나! 김씨 이씨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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