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백제대학병원
아침 뉴스에 검찰로 넘겨지는 조준선이 등장했다.
상속세를 아끼기 위해 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냉동창고에 넣어 얼려 보관한 게 알려졌고, 할아버지의 친일 이력과 6.25때 아연광산을 샤킹한 게 알려졌으며, 몰수한 자택에서 수많은 비리의 증거가 나오면서 조씨 일가는 천하의 개쓰레기가 되었다.
되도록 조용히 덮고 싶은 정부기관과 달리 미래 그룹 인수팀이 연일 비리를 발굴해 경찰 검찰 언론에 예쁘게 포장해 갖다 주니 매일 기사가 터져 나오고 검찰로썬 죄목을 추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정재계와 사법계와 얽힌 증거들은 따로 챙겼다.
언젠간 쓸 일이 있겠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조준선.
뉴스에서 이례적으로 생방송이 진행되고 있다.
- 피해자 분들께 사죄할 마음이 있습니까?
저 질문은 왜 하는 걸까?
다른 사건에서도 항상 묻던데.
사죄는 개뿔, 이렇게 되서 좆같다 는 마음뿐일 텐데.
기자의 질문에 조준선이 얼굴을 가린 옷을 치우고 당당하게 카메라를 봤다.
모든 사진기가 번쩍번쩍 빛나는 와중에.
- 진짜는 윤동욱이다! 스물네 살 어린놈이 미래그룹의 진짜 주인이야! 니들 다 속고있다아!
라고 외쳤다.
저... 저... 미친놈.
“오빠... 유명해지겠네.”
“그러게.”
예전부터 백제에서 내가 진짜주인이라고 헛소문을 냈지만, 마치 달 착륙 음모설처럼 도시괴담이 되고 있었는데 조준선 놈이 또 저 얘기를 꺼냈다.
니 유언이 그거냐?
조준선이 청사 안으로 들어가자 생방송중인 기자가 마무리 멘트를 했다.
-마치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어요, 같군요. 아무래도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으려는 수작 같습니다.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이 없어져야 한다는 증거가 되겠군요.
잘한다 기자님.
참기자님이셔.
그 회사에서 쫓겨나면 데려와줄게요.
외출 준비를 마치고 예하와 함께 집을 나섰다.
성수동 본사까지 15분.
본사에 왔는데 정문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까요?”
오늘 낮 담당인 주팀장이 물어봤다.
“에... 시위 같은데. 잠깐만 볼게요.”
택시에 탄 채 사람들을 봤다.
군중이 열을 맞추고 앉아있다.
다들 피케 하나씩 들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제발 용서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받은 거 돌려줬습니다 용서를-
“뭘까요?”
무의식적으로 흘린 말에 주팀장이 무전을 했다.
뒤차에서 한명 내려서 알아보려고 하는데 본사 보안팀에서 무전이 왔다.
“합의해달라는 이들이랍니다.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합의요.”
주팀장이 싱긋 웃으며 보고했다.
본사 보안팀이면 하루 종일 지켜봤을 테니 당연히 알고 있겠구나.
“별거 아니네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갈게요.”
“네.”
주팀장님이 무전을 치고 지하로 이동했다.
줄줄 따르는 경호차는 세 대. 많이 줄였다.
미래빌딩 2층에 홍보팀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2층엔 3층 바닥을 터 공연장이나 연회장으로 이용되던 곳이 세군데 있는데 다른 층보다 층고가 높아 다양한 장비를 설치하기 좋은 곳이다.
저마다 다른 분위기의 대형 스튜디오가 세 개 마련되어 장비가 들어가고 있다.
기술팀을 뽑고, 여러 방송인과 계약했다.
이제 라디오 편성하듯 실시간 방송을 24시간 할 수 있다.
계약된 팀이 방송을 하고, 공백시간에는 고양이를 튼다.
대형애묘샵과 계약해 10대의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방송이 빌 때마다 담당피디가 10대의 카메라 중 생동감 넘치는 카메라를 골라 송출할 뿐이다.
밑에 작은 자막으로 기업 뉴스가 흘러가고.
이것도 미래의 아이디어지.
새끼 돼지, 새끼 소, 새끼 도마뱀 등 모든 새끼류에 고정카메라 계약을 준비 중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힐링 하러 오는 채널, 미래그룹 채널 되시겠다.
케이블 방송사 하나 사서 운영하는 것보다 100배 싸고, 100배 효과 있다.
케이블에선 기업 홍보를 대놓고 하면 안 되니까.
“안녕하세요. BJ제시입니다. 본명은 이예하고요. 예하라고 불러주시면 되요.”
예하가 자신의 팀과 처음 만나는 자리.
헤어아티스트, 코디, 메이크업아티스트, 매니저 등 최고의 명성을 가진 이들과 전속계약을 했다.
예하의 전담팀 한 달 월봉 합치면 5억을 넘는다.
예하가 방송하지 않을 땐 성수동에서 다른 일을 하고, 예하의 방송이 잡히면 예하만 봐준다.
명성이 높다보니 다들 3~40대고, 대부분 여자다.
의도했다.
예하의 방송만 짜는 전담피디 자리는 모닥불이 노렸는데 10년 활동하고 은퇴한 파프리카 BJ출신에게 돌아갔다.
모닥불이는 많이 위험해.
우리 예하를 금단의 세계로 보낼 수 없다.
“어머. 너무 예쁘시다.”
“꺄아. 빨리 만지고 싶어. 빨리 그리고 싶어. 지금 그려볼까요?”
30대 아줌마들인데 다들 난리났네.
촬영팀 남자들은 넋을 놓고 있고.
“올라가볼게. 수고.”
“넵. 수고하십쇼.”
예하가 장난스럽게 인사하고 아줌마들과 수다를 이어갔다.
예하는 참 사교성도 좋지.
5층에 미래 홀딩스가 자리 잡았다.
기존 기획팀과 경영지원팀은 정화팀으로 이름을 바꿔 다른 빌딩으로 갔고, 이곳은 이제 미래그룹의 컨트롤타워가 된다.
아직 빈자리가 많고, 집기가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곳에 채사장의 자리가 있다.
“여~”
“고생했어요.”
사흘 먼저 귀국한 채인수는 칸막이도 없는 사장실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다.
“저 아래 어떡할 생각이냐?”
채인수의 말에 창밖을 봤다.
건물 입구에 열을 맞춰 앉아있는 시위대.
시위는 아니지.
명예훼손죄를 합의해 달라는 이들이지.
그러니 저렇게 질서 잘 지키며 방해 안 되게 앉아있는 거겠지.
참 착한 사람들이네.
“냅두면 어떻게 되요? 실형?”
“실형까지 갈 일은 아니야. 돈 받은 기자들은 좀 복잡하지만, 언론사가 담합하면 뺄 수 있을 테고. 가볍게 벌금형으로 끝나겠지. 문제는 법정 기록이 남는다는 거야. 저기 십대 애들도 있는데 나중에 대학원서나 취업할 때 기록이 남지.”
“그렇구나.”
다시 내려다봤다.
아줌마도 있고, 나이 지긋한 할배도 있고, 교복 입은 아이도 있고, 여중딩의 손을 잡은 부모도 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줄맞춰 앉아 조용히 고개 숙이고 있다.
부모는 아이의 선처를 바라고 함께 나와 있는 건가.
“기록이 남으면 많이 안 좋아요?”
“큰 죄는 아니지만 없는 것보단 나쁘지. 면접 점수가 같다면 깨끗한 쪽을 뽑지 않겠어?”
“그렇구나. 그럼 저 중에 우리가 고발하기 전에 찾아온 사람 있어요?”
“없지.”
“됐네요. 그럼. 무조건 처벌로 가요. 어차피 지금 저 사람들 우리한테 사과하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 자신의 미래에게 사과하는 거지. 나의 미래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저놈한테 잠시 숙인다 이거잖아요.”
“크큭 그렇긴 한데.”
지금 저기 있는 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별거 아닌데 그냥 좀 넘어가줘라.
정말 죄송하다. 죽을 죄를 졌다.
치사하게 법으로 싸우다니.
너무 죄송해서 대구역 광장에서 할복해야 할 것 같다.
욕 한 번 했다고 빨간 줄은 너무하잖아.
과연 어떤 생각으로 저기 앉아 사죄하고 있을까?
“제대로 본보기 보이면 다른 사람들은 다음부턴 안 그러겠죠. 용서해주면 욕하고 선처 받는 법이라고 인터넷에 글 쓸걸요.”
“욕 한번 했다고 기록 남는 건 심하지만...”
“심한 게 아니죠. 감히 예하한테 욕했는데 이렇게 넘어가주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홈피에도 올려요. 법적 처벌이 두려워 사과하는 건 사과가 아니다. 고발하기 전에 미리 사과한 사람만 선처한다. 라고.”
죄를 짓고, 경찰에 잡힌 후 자수하는 건 자수가 아니다.
죄를 짓고, 좆 된 걸 알고 사과하는 건 사과가 아니다.
사죄는 걸리기 전에 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거 아냐?
죄를 짓고 상대가 액션을 취하기 전 사과해야 죄를 감경해야 한다.
죄 짓고 숨었다가 경찰에 잡혀 재판에 넘겨진 후에 사죄하는 건 절대 감경사유가 되어선 안 된다.
“그래도 이러면 적을 만들게 될 거야. 별 거 아닌 걸로 과한 처벌을 받았다고 평생 욕하겠지. 분노가 강렬할수록 원한이 클 테고 평생 안티가 될 거야.”
“욕쟁이의 호의 필요 없어요. 저런 것들과 잘 지내봤자 결정적일 때 큰 피해를 입힐 텐데 아예 접근을 막을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도! 예하를 욕한 놈들을 가만 놔두기 싫음!”
“그래. 참 대단하다. 예하는 좋겠네.”
“형을 욕하면 가만히 놔둘게요.”
“아앗. 성차별입니다 찐사장아. 크큭.”
딱딱한 아저씨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백제를 무너뜨린 이후부터인가.
29살이면 아저씨도 아니지만.
“병원은...”
“여기.”
채인수가 자료를 건네줬다.
백제대학교와 백제대학병원.
비상장 재단이고, 5년째 냉동인간이었음이 알려진 조추동이 이사장이며 그 아들 조준선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파주의 백제대학교와 백제대학병원을 묶은 추정가치는 5000억인데 부채가 3000억 있다.
깔끔하게 2000억에 팔아넘기려 했는데 자살 사건으로 500억을 더 깎은 상황.
“자살한 사람은요?”
“여기.”
홍정경. 27세. 백제대 의대 졸업 후 1년 인턴 생활 후 레지던트 과정.
여자치고 특이하게 외과를 선택했으나 적응에 실패하고 자살.
언론에선 미래그룹의 잘못이라고 연일 보도중이고, 미모의 여의사 홍정경이 자살로 내몰린 고통을 다큐로 찍고 있다.
“엊그제 인수했는데 우리잘못이라고요?”
“원래 그런 거지. 아침에 경찰청장이 됐는데 점심에 경찰 실수로 사람이 죽어서 경찰청장이 책임지고 옷 벗은 적도 있지.”
하긴.
주공의 땅투기가 영원한 전통이었어도 발각됐으면 그 책임은 당시 정권이 지는 게 맞지.
“우리가 운영한다 치면,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일단 우리는 외국계 자본이야. 병원을 소유하려면 복잡하지.”
“팔아야하네요.”
“우리 중 누군가가 은퇴하고 그 사람에게 이사장 자리를 주면 가능해.”
“형이 할래요?”
“그럼 사장 못하는데?”
“어... 그런가요. 그럼...... 큰아빠 줘야겠다.”
족벌 회사 간다.
“믿을 수 있어? 친척이라지만 이사장 자리면 많은 유혹이 따를 거야. 본사 컨트롤이 안 될 수도 있고.”
“음.”
간단한 게 없네.
큰아빠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기 힘든데.
“일단 문제부터 해결하죠. 한 번 가 봐요.”
지금까진 수익성이 있는 곳에만 투자했다. 심지어 아트스쿨조차도.
그런데 병원은 운영해봤자 손해가 더 크다.
기존 방식으로 운영하면 이미지 손해가 몇 억 버는 것보다 크고, 퍼주기 운영을 하면 적자인데다가 적이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운영하겠다면 좀 더 확실히 알아봐야지.
예하에게 전화했다.
“나 백제 병원 갔다 올게. 팀원하고 있다가 집에 가.”
-오빠. 나도 갈래. 나도. 우리 엄마 거기로 옮길 텐데 나도 볼래.
그렇구나.
“그래 같이 가자.”
채인수가 타고 다니는 대형 밴에 함께 탔다.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는 밴인데, 안에 침대와, 무려 데스크탑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다.
“컴퓨터?”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하루 세 시간 넘더라. 이렇게 세팅하면 이동 중에 일 할 수 있고.”
“눈 나빠져요.”
“크크크. 할머니처럼 얘기하네. 어차피 메일 읽고, 메신저로 지시하는 정도야.”
효율의 문제인가.
채인수가 많은 일을 하긴 했지.
- 작가의말
써놓고 보니 정치적 문장이 있네요
개인적 성향은 중도파로 둘다 싫어해요. 글 속에 두 당의 허물을 동시에 넣었으니 봐주세요
그럼에도 욕하시는 정치충분들이 계시다면
악플 하앍. 무플보다 악플이 좋아 하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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