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정의 구현2
“정치권에서 견제가 들어왔어요. 대통령은 미래그룹 모든 자회사가 한국 기업이 되었으면... 하는 소련 같은 바램이었고, 밑의 정치인들, 관료들은 그 분위기에 편승해 한몫 단단히 챙기려고 망둥이처럼 날뛰고 있죠. 알고 있었어요?”
“모.. 몰랐습니다.”
“우리 같은 말단에게 정보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키는 것만 해야죠.”
정보통제.
아래에서 위로 정보가 올라갈 뿐 위에서 아래로 가는 정보는 없다.
그래야 부려먹기 좋다.
모든 부서가 다 그렇겠지.
“그럴 것 같아서 말하는 겁니다. 선택지를 드리죠. 우선 이걸 들어보세요.”
-예비군 훈련 때 납치합시다
국정원 4과 부장과 과장의 대화.
요즘 날 찾아오던 놈들의 대화.
칼리 페르난도가 넘겨준 정보이며 1년 전 외국을 떠돌게 한 첩보.
“국정원 4과 부장 안재철과 과장 류승운의 대화입니다. 예전에 타우바트섬에서 처음 만났죠? 당시 예비군 훈련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떠돌던 중이었죠.”
국정원 직원 둘이 사색이 되었다.
“세 가지 선택지를 드리죠. 첫째, 지금처럼 월급 받으며 산다. 둘째, 정의롭게 찌르고 특채로 미래그룹에 고용된다. 셋째, 정의롭게 찌르고 국정원 내부를 정의롭게 바꾸기 위한 투쟁을 한다. 어떻습니까?”
노민우는 생각에 잠겼고, 추상희는 곧장 물어봤다.
“첫 번째를 고르면 불이익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사적으로 부르는 일이 없어질 테니 일하는 게 더욱 편해지시겠죠.”
“셋째를 고르면 지원이 있습니까?”
똑똑하네.
똑똑하니까 국정원 직원으로 뽑힌 거겠지.
그런 똑똑한 사람을 뽑아놓고 똥으로 썩히는 게 부정부패의 유전사슬이고.
“관료조직 내 사람을 심어 나라를 조종할 생각이 없어요. 솔직히 세계 시장과 비교하면 한국의 비중은 9번째일 뿐입니다. 그저 경제원리 외의 잡스러운 견제가 들어오지 않길 바랄 뿐이죠.”
“즉, 아무런 지원도 없다는 뜻이군요.”
“홀로 싸우셔야죠. 부당한 국정원을 청소하고 깨끗이 정화하는 것. 전에 말하길 그걸 바란다고 들었는데요. 이게 올바른 길 아닙니까? 내 도움을 받으면 스스로도 더러워진 겁니다.”
“이기지 못할 겁니다.”
“제가 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닌데요. 이런 정보가 있는데 찌를 거냐고 물어보는 거죠.”
“그렇네요.”
추상희가 생각에 잠겼다.
노민우가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두 명이 같은 선택을 해야 합니까?”
“아니죠. 칼 휘두르는 건 한 손이면 되잖아요. 한 명만 필요합니다.”
“그럼 제가 2번을 고르겠습니다.”
노민우가 추상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나도 추상희를 쓱 봤다.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세요. 자, 이것.”
국정원 부장과 과장에 대해 조사한 것을 넘겨줬다.
거기 나온 자료들만 봐도 충분히 감옥에서 평생 썩을 수 있다.
검사 판사가 ‘국정원의 품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노민우가 자료를 살피며 입을 떠억 벌렸다.
“이... 걸 곧장 발표해야 합니까? 저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아뇨. 무기가 있다고 마냥 던지는 바보는 아닙니다. 이번 발표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분명 꿈틀 할 겁니다. 그때 던져주시길 바랍니다. 기자회견과 무대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우리 사람이라고 공헌하는 것이니 보복도 막아드리죠.”
“예... 감사합니다.”
2번을 골랐으니 막아줘야지.
노민우가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그때까지 생각만 하던 추상희가 질문했다.
“거기서 끝내실 겁니까?”
“네?”
“폰 로이어가 등장한지 2년 반. 전 처음부터 썼습니다. 특히 초기에는 늙은 인간들이 입조심 할 줄 몰랐으니 많은 꼬리가 녹음되었습니다. 나름 조사도 했고요. 썩고 썩은 고인물들 대여섯 명 정도 날릴 수 있는데 녹음에 대한 증거 보충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충격을 주려면 날아가는 목이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요?”
“뭐... 정의로운 일이니까... 그러죠.”
날 건드려서 목 날리는 거다.
하지만 겉으로는 항상 정의를 앞장세워야지.
“전 세 번째를 선택하겠습니다. 썩어빠진 것들 날려버리고 어떻게든 나라를 바꿔보려고 버텨보겠습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면 그때도 받아주시나요?”
“발표 그대로입니다. 포상금과 정의 가산점은 계속 유지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상희가 인사했고, 노민우는 뭣씹은 표정이 되었다.
추상희의 말을 들으니 자신이 쥐 같은 선택을 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가셔서 모은 증거들 보내주세요. 우리 아저씨들이 조사할 겁니다.”
흥신소 아저씨들 바쁘셔.
어쩌면 미래그룹이 탄생한 후 가장 호황인 게 흥신소가 아닐지 싶다.
[(논설) 사회를 지키는 안 보이는 힘]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입니까? 수해가 나면 모두 달려가 돕고, IMF로 힘들어지면 돌반지, 결혼반지를 모아 위기를 극복한 민족입니다. 향약, 품앗이로 서로 돕고, 관혼상제에 다 같이 일손을 모와 큰 행사를 치르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던 민족입니다. 이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불러일으킨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런데 미래그룹이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이웃을, 가정에서보다 더 긴시간을 함께 하는 회사가족을 의심하고 거리를 벌리게 만드니 이야말로 매국이며 나라를 빨갱이의 상호감시 체계로 만드는...
-아 틀딱냄새
-저 한자 어떻게 읽냐?
ㄴ몰라
-누가 요약좀
-뒷돈 받는 거 신고하지 말아달래
-세금 수백억 훔쳐도 생계형범죄니까 봐주래
-우리가 돈을 훔치든 말든 하하호호웃재
-우리가남이가?
ㄴ북당새끼 또 ㅈㄹ이쥬?
ㄴㄴ아앗 형들... 윤형한테 혼난다?
ㄴㄴ히익 윤형님 이건 고양이가...
[오늘의 말씀 : 서로 믿고 사랑하라]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지어며 서로 믿고 사랑하라.
증오는 증오를 낳고 의심은 의심을 낳으메 믿고 따르고 의지하라.
네 심장속 의심마귀가 들어찼으메 의심악귀를 물리치고 사랑의 마음을 품을지어다.
-ㅋㅋㅋㅋㅋ
-에이멘
-ㄹㅇ진짜 이형들은 많이 후달리겠네
-살려줏메ㅋㅋㅋ
별 머저리 같은 논평 말고는 조용하다.
정부도 양당도 이렇다 할 논평이 없다.
눈치만 보다가 분위기 파악이 되면 그때 때리든 엎드리든 정하겠지.
세상이 조용한 것과 달리 우리가 만든 게시판에 익명의 투서가 쏟아졌다.
추상희가 말한 대로 2년 6개월 전부터 폰로이어를 쓴 사람들은 조심성 없는 녹취를 잔뜩 확보했다.
지금까지 발표하지 못한 건 찔러봤자 내부고발자만 나락에 떨어뜨리는 시스템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포상을 받고 일자리도 어느 정도 보장받는다.
사람은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내부고발하면 이득을 보게 만들면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다.
익명의 투서는 내부고발을 위한 절차상 조언을 해주고 증거보충까지 도와준다.
그렇게 잘 다듬어진 후 시발쾅!
죽어라. 쓰레기들.
걷어내면 깨끗해지겠지.
“아마 만 명 정도 될 거야.”
채인수가 평가했다.
“에? 그거밖에 안 돼요? 썩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요.”
“어차피 말단들은 챙기기 힘든 구조지. 말단은 일반 회사원마냥 갈리고 갈릴 뿐이고 고위공무원쯤 되야 큰돈을 만지지. 사람은 항상 최선의 계산을 하잖아. 공무원은 뒷돈을 받을 때 항상 보장된 직장과 공무원 연금을 계산해. 약간의 위험으로 10억 이상 챙길 수 있으면 도전하는 거지 고작 백만원 훔치려고 안정된 직장을 판돈에 거는 건 바보잖아.”
“아하. 그래서 고위 공무원만.”
“어. 실적에 미쳐 미친 짓 하는 놈도 간혹 있지만, 대다수는 철밥통 끼고 윗사람의 부정을 눈감다가 그렇게 라인타고 올라간 후에야 거액을 땡기는 거지. 물론 입막음조로 나눠먹은 사람이 많아지긴 해도, 푼돈 받은 사람은 신고가 들어가지 않을 거야.”
“의외로 많지 않겠네요.”
“그보다 액수가 문제지. 이놈들이 수십조 빼돌렸으면 그거 어떻게 다 주냐?”
“나라에서 줘야죠. 법이 바뀌겠죠.”
“음......”
“여론이 움직이겠죠. 우린 우는 소리만 하고.”
“후후후. 그보다 지사들이 난리다.”
“어디요?”
“전 세계 다. 자기들도 해달래.”
“크크크. 그거 다 해주면 망하겠죠?”
“망해. 100% 망해. 미래펀드 니 지분 전부 처분해야 겨우 맞출 수 있겠다.”
한국의 부정부패가 그나마 덜하다.
한국의 군인이 아무리 빼먹고 아무리 썩었어도 전 세계로 보면 그나마 가장 깨끗한 축이다.
한국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세계가 언론의 이미지메이킹보다 훨씬 썩었다는 말이다.
세계의 부정부패를 다 포상금 줘서 잡으면 회사 팔아야 한다.
“고려해 본다고 해봐요. 적어도 몇 년 만이라도.”
“그래.”
조용히 투서가 날아들고 우리는 취합 정리하고 증거를 보강해준다.
폭풍전야.
정치권에서도 뜻이 갈렸다.
늙은 성리학자의 논평처럼 증오를 멈추고 서로 믿고 사랑하라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행보를 적극 지지하며 수호를 자처하는 이가 생겼다.
원했던 반응.
세상엔 옳은 사람이 더 많다.
부정부패에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그런 이들을 지지자로 끌어들인다.
시발쾅!
2020년 12월은 공직자 전반에 대한 내부고발로 시작되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