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애국심2
성수동 본사의 회의실에 사람들이 앉고 적당한 인사치레가 오간 후 연준 위원장 칼 막스가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금융시장의 혼란을 야기시킨 데 대한 의회의 소환장이오. 윤동욱씨는 보름 안에 반드시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두해야 하오.”
“그... 그것이... 저희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보게 된다면 꼭 말을 전달해 출두하게 만들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채인수의 전략은 어리버리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회장님 나빠요, 전략.
그렇게 서로 거짓인 걸 다 알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 공식적인 제안과 거부가 줄줄이 이어졌고.
“거추장스러운 것은 벗어던지고 솔직한 대화를 해 봅시다. 그러니 이곳에서의 대화가 비밀로 지켜지길 바라오.”
어느 순간 통화자동녹음이 필수가 된 것처럼, 24시간 녹음기도 필수가 되었다.
이 자리의 대화가 녹음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다.
칼 막스의 제안에 채인수가 사장들의 의견을 모은 후 승낙했다.
“그러죠. 절대 대화가 새어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휴대폰을 꺼내 꺼놓는 채인수와 사장들.
휴대폰 말고도 펜형 녹음기 등 각종 기기가 나왔다.
같은 행위를 미국 측에서도 반복했다.
이런다고 이 자리의 대화가 녹음되지 않으리라 믿는 사람은 없다.
공개하지 말자는 일종의 요식행위다.
칼 막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모르시오? 어디에 있는지?”
채인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알아도 말할 수 없는 걸 알면서 왜 물어보는지.
“그쪽에서도 파악하고 있을 텐데요. 사라진 세 명. 그들 당사자 말고는 어디 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게 말이 되지 않잖아. 당신들이 모른 채 회장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유지되고 뒷수습을 할 수가 있어? 미리 알고 준비한 거 아니야?”
지금껏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전임 대통령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끼어들었다.
채인수는 속으로 ‘역시 트럼프.’라고 중얼거리며 대답했다.
“그날로부터 며칠 전에 사라질 거라는 통보는 해 왔습니다. 그에 맞춰 대응준비는 했으나 어디로 어떻게 사라질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알게 된다면 납치 고문당해 토설할 수도 있으니 일부러 모른 척 했죠.”
“흥! 자기들이 죽을 짓을 했다는 걸 아는군. 이건 미국에 대한 전쟁 선포야. 절대 그냥 못 넘어가. 당장 원상복귀 시켜!”
얼굴이 새빨개진 트럼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채인수는 빨개진 얼굴을 보다가 솔직한 속내를 물어봤다.
“그런데 야당 정치인이 왜 나선 겁니까? 잘 되면 바이든에게 좋고 잘못되면 협상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텐데 여긴 왜 오신 겁니까?”
채인수는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다.
“사람들이 트럼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항이 있어. 사실 트럼프는 엄청난 애국자야.”
내 말에 예하가 강아지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이상한 사람 아니야?”
“언론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그런 이미지가 씌워지긴 했지.”
“막 미국을 망치는 사람. 미국을 망하게 할 인간이라고 들었는데. 재선하면 세계가 망할 거라고 들었고.”
“한국 기자가 그런 기사만 퍼 나르니 그런 것만 알려졌지. 실제로 행한 것을 자세히 보면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에... 그냥 안 들어도 돼?”
“어. 괜찮아. 평생 몰라도 돼.”
“우...이씨. 알고싶드. 증말 알고싶드.”
예하가 다듬던 양파를 짜장면용 크기로 썰면서 중얼거렸다.
지하실에 갇혀서 같이 요리하는 동안 할 얘기도 없으니 이런 대화나 해야지.
“주한 미군 주둔비 증액. 한국이 보기엔 트럼프가 동네 애들 삥 뜯는 양아치로 보였을 거야.”
“어. 완전 나쁜 놈. 부자면서. 남의 나라 남의 땅 차지하고 있으면서 대여료도 안 내고. 못 됐어 진짜.”
“그런데 미국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뭐? 결국 우리나라가 돈을 버는 건데? 이렇게 볼 수 있겠지.”
“어...”
“미국은 쿠르드족에게 돈과 무기를 줘서 IS에 싸우게 했어. 대신 그들의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학살당하는 걸 막아줬고. 그런데 트럼프는 그걸 끊어버렸어.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하자마자 터키의 쿠르드족 학살이 일어났어. 트럼프 입장에서는 요즘 IS가 잠잠하니까 쓸데없이 돈이 나가는 걸 막겠다는 거야. 4000만 쿠르드족 입장에서는 용병으로 대신 싸워줬는데 배신당한 거지.”
“와. 진짜 못 됐다.”
“그치. 그런데 미국 시민 입장은 어떨까?”
“어? 에... 돈 낭비가 줄어드네. 아니지. 영향력이 줄어들면 손해 아니야?”
“시민 입장에선 그렇게 멀리 볼 필요가 없지. 당장 돈 새는 걸 막은 거잖아.”
“에... 그러네.”
“멕시코 국경 차단. 현대판 만리장성. 불법체류자를 막고, 마약 통로를 막고, 국내의 불법체류자를 쫒아내는 정책. 이것도 인권단체의 굉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시민 입장에선 어땠을까?”
“그...”
“불법체류자를 막고 쫓아낸 행위를 미국인 중 누가 좋아했을 거 같아? 가난한 흑인과 가난한 히스패닉들이 더 좋아했어. 중남미 동족을 막고 쫓아내서 슬퍼한다? 세상은 동화가 아니야. 불체자가 제공하던 저렴한 노동력이 사라질수록 가난한 흑형과 히스패닉들의 삶이 더 좋아져. 이건 지지로 이어지지.”
“에...... 뭔가 비정하네.”
“확실한 건 트럼프가 지금껏 본적 없는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거야. 이전까지 모든 미국 대통령은 경제원리, 이권단체의 압박에 의해 끌려 다녔거든. 예를 들어 부시의 이라크 침공. 아프간 전쟁까진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이라크 침공은 돈을 보고 시작한 거야. 전쟁으로 돈을 벌려는 여러 이권단체가 정치권을 압박하고, 정치인은 이걸로 멋진 그림을 그려 뒷돈과 지지율 두 토끼를 잡을 자신이 있으니 전쟁을 벌였지.
당시 이라크 침공 명분이 뭐였는지 알아? 테러 사전 차단. 테러를 사전에 막기는 힘드니 미국시민의 안전을 위해 적대할 가능성이 있는 적을 미리 분쇄해 티클만큼의 위협도 없애겠다는 거야. 적국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를 없애는 거지. 인류 역사상 가장 패도적인 선언이야.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에 없었지만, 뭐 어때. 이라크는 박살났고, 후세인은 이미 죽었고, 수많은 이권단체가 이미 돈을 챙겼고, 세계는 망한 이라크를 위해 미국과 싸우길 원치 않았지.”
“아.”
“그런데 트럼프는 달라. 일단 돈이 너무 많으니까 자기가 뒷돈 챙기려는 정책은 없어. 이러니 이권단체들이 조종하기도 힘들지. 언론이 트럼프를 까는 이유?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을 조져서 미국의 기업으로 만들려고 하니까 모든 대기업들이 트럼프를 까는 데 돈을 썼거든. 불체자와 마약으로 돈 벌던 누군가가 돈을 써서 트럼프 낙선운동을 주도하고, 무기 판매로 돈 벌던 누군가가 트럼프 비난 기사를 내지. 그 결과 세기의 미친놈처럼 보이지만 실제 미국에선 지지율이 생각보다 높아. 특히 가난한 계층에게 말이야. 의외지? 흑인 탄압에 앞장선 것 같은데 말이야.”
“난 미친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언론 덕분에 굉장히 미친놈 같지만, 행하는 것 하나하나가 미국의 서민을 위한 정책이거든. 굉장히 치졸하고, 쪼잔하고, 세계 1위 강대국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유치한 짓거리를 하지만, 그게 미국의 가난한 계층에겐 좋은 정책이거든.”
“어...... 그래서 애국자구나.”
“전세계 모든 나라가 트럼프를 싫어하고, 전 세계 모든 부자가 트럼프를 싫어하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트럼프를 싫어할 수 밖에 없겠지.”
“어...... 그런데 그 아저씨는 한국엔 왜 온 거야?”
목소리를 깔아서 반전을 줬다.
“미친놈이니까?”
“풉. 그게 뭐야? 푸흐흐.”
“남의 눈치 안보고 평생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인간이니까. 당장 정치적 계산 없이 움직였을 거야. 트럼프는 미국이 손해 보는 게 기분 나빠서 막무가내로 끼어들었을 테고, 바이든과 여당은 어떻게 되더라도 이득이니 냅뒀겠지. 협상장에 미친개를 풀어서 상대를 괴롭혀라, 이런 전략이랄까.”
“푸하하. 아. 너무 웃겨. 결론은 미친 사람이라는 거잖아.”
“돈이 너무 많아서 매수되지 않는 미국을 위한 애국자. 애국광신도가 왔으니 인수형이 좀 고생할 거야. 그리고... 버티기 힘든 공격이 시작되겠지. 미국의 이라크 침공같은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공격이. 미군이 한국을 공격하면? 불가능할까? 어쩌면 우리의 은거생활이 끝날 수도 있어.”
“에이. 설마... 그럴리가.”
“미국이 입을 손해를 생각하면 가능해. 미국이 패권을 잡은 이후 나보다 강하게 미국을 공격한 나라는 없으니. 어...... 그래서 말인데. 예하야. 나 거지 되도 나랑 사귈 거야? 한 푼도 없는 무일푼이 돼도?”
내 말에 예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눈을 한참 바라봤다.
눈동자에 진심을 듬뿍 담아서 깜빡깜빡 해줬다.
“어.......”
예하가 뭘 상상하는지 웃다가 찡그렸다가 헤실 웃다가 반복했다.
저 속마음엔 영화 수십편이 흐르고 있겠네.
“네놈들이 미국에 해를 끼치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서 왔다. 당장 미래블록 개발자 불러와서 모든 미래블록을 소각하고 없애! 그리고 그룹을 해체해!”
미친개가 날 뛴다.
얼굴 빨개진 미친개가 짖는다.
“저희는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했을 뿐입니다. 감히 저희가 국제 통화를 조절할 수 없어서 시장에 가치를 맡겼을 뿐입니다. 법을 지키며 위법사항 하나 없이 성실히 살아왔습니다.”
채인수는 준비된 답변을 했지만, 미친개에겐 약이 없다.
“시끄러. 당장 윤동욱을 잡아오고, 미래블록을 전부 소각해. 그렇지 않으면 네놈들 전부 죽는다. 너희들이 미군을 이길 수 있어? 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소각해.”
채인수는 참 천박하네, 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말했다시피 우린 윤회장의 거취를 모릅니다. 그리고 미래블록의 프로그램은 이미 확정되어 있습니다. 지금에 와선 개발자들도 수정할 수 없습니다. 코드가 공개되어 있고, 그쪽 프로그래머들이 전부 확인했으니 알 겁니다.”
채인수의 말에 트럼프가 뒤를 돌아봤고, 칼리 페르난도가 고개를 살짝 끄덕여줬다.
여기서 멈추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지 않지.
트럼프가 되려 소리쳤다.
“그럼 미래블록 운영권을 미국에 넘겨. 일개 개인이 감히 세계 화폐를 좌지우지 하려 하다니. 화폐는 국가만이 발행할 수 있는 거야! 네놈들이 지구를 지배하게 놔둘 수 없다!”
채인수가 두 손바닥을 들어올리며 으쓱했다.
“말씀드렸다시피 마스터코드가 없습니다. 윤회장에게서 알아내셔야 합니다.”
어쩔건데?
“그럼... 미군이 출동할 수 밖에 없다. 다 죽고, 알카에다처럼 동굴 속에 숨어살면 돈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겠지.”
“저... 정말 미군이 움직일 겁니까? 일개 기업을 상대로?”
“내가 그럴 권한은 없지.”
트럼프가 갑자기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미군이 움직이지 않을 리 없지. 진주만 폭격보다 강하게 공격받았는데 참을 것 같으냐?”
트럼프가 천천히 말을 하며 미래그룹 사장들을 뜯어봤다.
짝. 짝. 짝.
연준위원장 칼 막스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우리의 공식적 입장이 아닌 야인의 생각이지만...... 대충 미국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요. 그러니 어서 윤회장을 찾아오시오. 이러다가 다 죽게 될 거요.”
미친개를 데려오니 알아서 협박을 해준다.
문제가 되도 미친개가 나쁠 뿐, 미국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아니다.
이러려고 데려왔더니 역시 이런다.
미국은 트럼프 사용법을 익혔다.
채인수는 회의실을 나가는 미국 대표들을 보다가 사장들을 돌아봤다.
황영석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주의해야겠네. 백주대낮에 납치시도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야.”
채인수가 말을 받았다.
“차라리 본사에 살아야겠네요.”
“저야 뭐 퇴근 잘 안하니까 상관없죠. 상철이도 그렇고.”
유성주 사장이 웃으며 말했고 정문우만 난감해했다.
“하. 부동산은 직접 봐야 감이 오는데. 제가 제일 위험하겠군요.”
말은 하지만, 다들 여유롭다.
예측했던 절차다.
- 작가의말
저는 한국인이기때문에 트럼프가 싫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국국적이라면...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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