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스테그플레이션3
“오빠. 오빠.”
“응.”
“어때?”
“음...”
“뭔가 달라진 거 같지 않아?”
똑같은데.
“음...”
“아이참. 잘 들어봐봐. 뭐 확 변하지 않았어?”
하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내가 말이 없자 예하가 노래를 다시 틀었다.
첼로? 인 듯한 묵직한 악기로 시작해 바이올린, 기타 또... 온갖 악기가 들어간 웅장하고 장엄하고 진중하고 묵직한 음악.
-나는 어둠속에 묻혀있어. 진흙 늪에 빠진 것처럼 숨 쉴 수가 없어.
읊조리는 듯한 예하의 아름다운 목소리.
쿠쿠쿠쿵.
천둥번개가 내리치는듯한 일렉트릭 소리.
“어때? 어때? 괜찮아?”
예하의 자작곡.
음악에 쥐뿔도 아는 게 없는데 평가하라고?
이건 답정너인가.
“좋아. 훌륭해. 완벽해.”
“아이참. 그런 거 말고 진지하게. 한명의 청자로써 느낀바 솔직하게.”
오답이었군.
너 어제도 그렇게 말해놓고 솔직하게 말하니까 삐졌잖아.
그냥 나 괴롭히고 싶은 거니?
“진짜 화 안낼게. 그냥 들리는 대로 말해주세요. 나한테 중요한 거야아.”
“어... 그... 장송곡 같다. 엄숙하고 슬퍼.”
“후우...... 그럴 리가. 희망이 보이지 않아? 여명이 밝기 전이 가장 어둡듯 이 음악의 끝에 실로폰 소리가 희망을 상징하는데. 그렇지 않아?”
내가 뭘 잘못했니? 내가 한 계란볶음밥이 맛없었어?
“그... 그래 보여. 희망이 보이네.”
“아이참. 이건 세상 사람들한테 들려줄 노래얌. 희망을 줘야 하는데 이상한 노래를 틀어줄 수 없잖아.”
아 어쩌라고요.
예쁘고 몸매 좋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지만 작곡 능력까진 없나보다.
신은 공평하시다.
“망이야. 글러먹었어. 사람들이 들으면 글루미선데이처럼 우울증에 빠질 거야. 다시 써.”
에라 모르겠다.
삐지라지.
“힝. 너무해.”
“내가 노래는 잘 모르는데 힘 빼. 너무 힘들어가 있어. 커다란 성당에서 장례식하는 그런 레퀴엠 같아.”
“...... 네.”
힘 빼라는 내 진지한 조언을 예하가 받아들였다.
힘이 완전히 빠져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게 땡볕에 축 늘어진 시금치 같다.
내가 대신 작곡 해줄 수도 없고 기억나는 미래의 멜로디를 중얼거려봤자 예하 스스로 무언가 하려는 데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여름 파김치처럼 식탁 위에 축 늘어진 예하가 고개만 옆으로 돌리고 말했다.
“그런데 위기가 오긴 오는 거야? 수출 역대 최대니 뭐니 그런 기사들밖에 안 보이는데.”
감히 의심을 품은 예하에게 기사를 하나 찾아줬다.
-필리핀 쌀값 300% 폭등
하나 더 찾아줬다.
-브라질 식량위기. 기아국가에 포함
하나 더 찾아줬다.
-유럽 식량가격 10% 인플레이션
“진실은 숨어있지 않아.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에 나중에 큰 문제가 되는 거지.”
“식량난이 진실이라고? 주식하고 부동산은 매일 오르는데...... 어... 모르겠어.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물가가 오른다, 물가가 떨어진다. 라고 말하지만 이건 틀렸어. 정확히 말하면 화폐 가치가 떨어진다, 화폐 가치가 오른다, 이렇게 말해야 해. 그런데 경제학자와 교수님들은 절대 화폐의 문제를 말하지 않아. 국가에서 마음대로 찍어내는 화폐는 신뢰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신성시 해. 그래서 네가 이해하기 힘든 거야. 국가가 화폐를 찍어서 뿌렸어. 세상의 상품은 그대로, 아니 코로나 때문에 전보다 줄었는데 돈은 많아졌어. 이러면 화폐가치는?”
“떨어지겠지.”
“딱 그게 다야. 돈이 많아져서 화폐가치가 떨어졌어. 전에 100원 있던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90원만 남게 되고 10000원 있던 사람은 9000원만 남게 되었어.”
“어... 그런데 똑같잖아? 비율대로 줄어드네.”
“여기까지는 그렇지. 그런데 양적완화 10년 동안 일본의 주식이 어떻게 되었다고?”
“계속 올랐다고. 아... 임금은 전혀 안 올랐다고 했지?”
“어. 결국 사람들이 허상에 눈이 멀어버린 거야. 주식 가격이 오른 게 아니라 주가는 그대론데 화폐 가격이 내려간 것을 반대로 이해한 거지. 양적완화로 인해, 모든 이의 자산을 조금씩 모아 주식과 부동산에 들어가고 노동 가격은 떨어졌어. 즉,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 졌어.”
“그게 문제가 돼?”
“일하면 손해. 주식에 투자하면 연봉을 번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빚내서 아파트를 사라. 그래야 부자가 된다. 모두가 여기까지 이해하게 되었어. 화폐 가치가 꾸준히 내려간 것을 반대로 이해하게 된 거지. 주식은 계속 오르고 부동산은 계속 오르니 앞으로도 계속 오르겠거니 생각하게 된 거야. 하지만 그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기사를 찾아줬다.
-멈춰선 영국. 주유소에 기름이 없는 이유?
-LA 앞바다에 줄서있는 화물선. 컨테이너 트럭이 없다.
-스쿨버스 운전사가 없어서 미군이 운전하는 세상
“돈을 뿌리고 뿌리니, 상대적으로 물가가 올라. 정확히는 물가는 그대론데 화폐가치가 낮아진 거지. 그 결과 성실하게 일하는 것보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이득인 세상이 되었어. 그 결과 사람들이 일하지 않아. 일하면 바보지. 미국의 실업수당 얘기는 전에 했지?”
“어... 최저시급 받고 일하느니 실업수당 받는 게 세 배 더 많이 받는다고.”
“그 결과.”
-도미노피자 분기 적자. 주문량은 늘었는데 배달원이 없다.
“이렇게 되었어. 세계적으로 보면 식량이 모자라게 되었고.”
“어...... 어? 어라? 오빠. 오빠오빠.”
예하가 식탁에 괴고 있던 볼을 들어 올리며 내 어깨를 탁탁 쳤다.
노트북을 검색하더니 자신의 공연 영상을 틀었다.
1년반 전, 코로나 초기에 루비와 함께 발표한 듀엣곡 라이브 영상.
“야.... 너 갑자기 또 날 메기는 거야?”
“쉿.”
-울 오빠가 해줄 거예요.
모두 힘을 내면 이겨낼 수 있어요.
노래가 끝나고 영상 속 예하가 루비와 손을 잡고 멘트를 했다.
-저희 오빠가 말하길 지금 멈춰서면 안 된다고 해요. 힘들고 무섭지만, 지금 멈추면 더 큰 아픔이 올 거래요. 올해 생산을 멈춰서 내년에 식량위기가 온다면 코로나 사망자의 몇 배나 많은 아사자가 나올 거래요. 그래서 우리는 멈춰서는 안 된대요. 움직이세요. 미래그룹에서 1500억 달러를 추가 기부하기로 했어요.
예하의 멘트.
영상 속 자기 목소리를 듣던 예하가 날 물끄러미 봤다.
“오... 나 소름. 오빠는 이 때 이미 짐작하고 있었어? 오빠가 저 멘트 써줬잖아.”
“써 주기는. 작가님이 썼지.”
“대충 방향은 잡아줬잖아. 그 때 이미 식량문제를 예측한 거야?”
“그야... 눈에 보이잖아.”
민망하네.
미래의 흐름을 겪고 났으니 보이는 거지만 말할 수 없다.
“지구인 전체가 100의 식량을 먹어. 그런데 코로나로 누군가 사망하고, 누군가 손을 놓으면 식량이 95밖에 생산되지 않겠지. 이렇게 되면 모자란 5만큼 굶어야 하고, 그건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지. 간단한 상식이야.”
필리핀의 쌀값 폭등.
베트남의 봉쇄와 이상기후, 중국의 수해로 쌀 생산량이 줄어서 그렇다.
코로나로 일손을 놓은 농가도 있고, 운 좋게 주식대박을 치고 은퇴한 이가 놀아서 그렇다.
그 결과 지구 전체의 식량이 줄어들었고, 식량의 가격은 평소엔 똥값이지만, 위기 시엔 끝없이 폭등한다.
동남아도, 남미도, 유럽도, 다 같이 식량 가격이 오르고 있다.
“식량난...... 그것도 양적완화 때문에?”
“양적완화가 시스템을 붕괴시켰으니까. 주가는 그대로인데 화폐가치가 낮아진 이유로 인해 노동가치가 줄어들었고, 코로나로 잠시 쉬던 사람들이 양적완화로 뿌리는 돈에 취해서 일하지 않게 되었어.”
“... 오빠는 어떻게 다 알아? 마치 미래를 보고 온 것처럼.”
뜨끔.
미래가 아니라 과거야. 과거.
“과거에서 예시를 찾아야지.”
“이런 일이 과거에도 있었다고? 그럴리가. 그......”
노트북을 탭해서 아까 열었던 기사를 보여줬다.
[멈춰선 영국. 주유소에 기름이 없는 이유?]
영국의 주유소에 기름이 없다. 석유파동? 무역전쟁? 아니다. 유조차량을 운전할 기사가 없기 때문이다.
항구와 정유사엔 기름이 넘쳐나는데 배달할 화물차 기사가 없어서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영국 정부는 군인을 보내 기름을 수송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영국은 사회구성에 필수적인 일자리 120만개가 주인을 찾고 있다. 화물차 기사, 스쿨버스 기사, 쓰레기 치우는 일, 심지어 초등학교 선생님까지 부족하다. 영국 사회가 마비된 가운데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에 올랐다.
“일이요? 실업수당 받으며 적절한 투자를 하는 게 더 많이 버는데요?”
“사람이 부족하면 임금을 올려야죠. 지금보다 두 배는 줘야 다시 일하러 가려고요.”
이게 현재 영국의 실상이다.
“어... 이상하네. 화물차 몰 사람이 없어서 사회가 정지된 거야?”
“그래. 이게 코로나 시대, 양적완화 시대의 결과야.”
“이게 과거에도 있었다고?”
“어.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
“베네수엘라! 여기?”
“여기도 포함. 과거 영국에도 있었어. 역사에는 복지병 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복지병. 복지가 너무 좋아 일하지 않아 사회문제가 생겼다는 거네.”
“그래. 양적완화로 돈을 찍어내고, 그 돈을 마구 뿌리니 노동가치가 줄어들고,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치만 증가하고, 성실히 일하던 개미같은 사람들마저 일하지 않고 자산투자에만 집중하면서 사회전체의 상품이 줄어들었어.”
“어... 큰일이네.”
“이게 큰일인 게 뭐냐면 스테그플레이션으로 진입하는 거야.”
“그... 건 또 뭘까.”
예하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왕 말 꺼냈으니 마무리는 지어줘야지.
“경기가 과열되면 국가는 어떻게 한다?”
“알아요. 금리를 올려요.”
“참 잘했어요. 금리를 올려서 과열된 시장을 식히지. 그런데 양적완화의 시대에는?”
“금리를 올릴 수 없습니다.”
“정답. 금리를 올리지 못하니 사람들의 빚이 계속 늘어나고 자산가치, 주식이나 부동산은 계속 올라. 그런데 지금은 무슨 시대?”
“코로나 시대?”
“맞아. 실업률은 코로나 이전하고 비교해서 어때?”
“높아.”
“실업률이 증가하고, 망한 회사가 늘어나. 사회에 공급되는 물건은 명백하게 줄어들었고, 식량난으로 구체화되었어. 이걸 디플레이션이라고 해. 그런데 하나가 빠졌네. 뭐지?”
“어.... 물가?”
“맞아. 경기가 침체되면 물건을 사줄 사람이 줄어드니 물건 가격도 내려가. 실업률이 증가하면 물가도 낮아져야 해. 그런데 지금 물가가 폭등하고 있지?”
“어......”
“실업률 증가, 기업 불안정 등 경기가 침체되는데 주식, 부동산이 오르고 물가가 폭등해. 이걸 미국은 단 한번 겪었어. 석유파동 때. 그때 미국은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려서 아예 시장을 정지시켰지. 그럼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 그런 짓 하면 다 죽지 않을까?”
“맞아. 답이 없지. 여기까지 알게 된 전문가들도 지금 손을 놓고 있어. 절벽으로 달리는 열차에 브레이크가 없는 거지.”
“그... 너무 난해해.”
“이걸 괜히 이상한 용어로 배워서 그래. 물가라는 단어를 빼고 화폐가치라고 적으면 돼. 양적완화 때문에 화폐 가치가 똥이 되었어. 덕분에 주식, 부동산이 오르는 거야. 화폐가치가 똥이 되었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거고, 화폐가치가 의미 없어져서 실업률이 오르는 거야. 결국 모든 원인은 함부로 찍어서 뿌린 돈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그... 알았다! 그래서 미래블록이구나!”
예하가 박수까지 쳤다.
“어. 정확해.”
“그래서 오빠가 미래블록을 그렇게 퍼트린 거구나. 국가가 마구 찍어낸 돈 때문에 문제가 생겼으니 마구 찍지 않는 돈을 새롭게 만드는 거였네. 맞아. 자동차나 스마트폰은 이상하다고들 했어. 결국 미래블록의 생태계를 만들려고 그런 사업을 한 거였네. 아. 대기권 밖 새로운 생태계. 이게 비전이었지. 맞아. 맞아. 그랬어.”
예하가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혼자 박수 짝.
“그래.. 그런 거였어. 그래......”
예하가 생각에 잠기더니 멈춰뒀던 영상을 틀었다.
-유어 유니 윌 워크위쥬.
야. 너 뭔데. 왜 갑자기 날 메기는데.
“어. 오빠가 힘 빼라는 말 뭔지 알 거 같아. 괜히 나 혼자 힘 줘서 장송곡 썼었네. 어. 알겠어.”
예하가 벌떡 일어나서 자기의 음악실로 달려갔다.
노트북엔 예하와 루비를 세계적 가수로 만들어준 공전의 히트곡 스탠드 투게더가 흘러나오고 있다.
“벌써 일 년 반이나 지났네.”
코로나.
참 오래도 간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까?
양적완화.
코로나.
둘 다 사회에 위기를 불러일으킬 오류다.
게다가 둘이 함께 하면서 엄청난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 결과는 리만브러더스를 뛰어넘는 초대형 폭탄.
“차라리 빨리 터지는 게 낫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양적완화는 더 오래 가고, 먼 훗날에 더 큰 피해를 입혔을 거다.
차라리 지금 터지는 게 낫지.
게다가 내가 나섰으니 원래 터지는 것보다 더 빨리, 더 약하게 터질 것이다.
잘못된 것은 결국엔 터진다.
- 작가의말
자꾸 지각하네요 ㅈㅅㅈㅅ.
글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네요. ㅈㅅㅈㅅ
글이 너무비관적으로 보이네요. ㅈㅅ...
세계최고의경제학자 슈카님의 최근 방송에 비슷한 내용이 나온것 같지만, 대놓고 표절 맞습니다. 항상 배워요... 그래도 예전부터 써왔던 흐름자체가 그런거니까 봐주세요.
슈카님은 이런 심각한 얘기를 참 재밌게 방송하시더군요, 역시 세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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