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세컨드 어스, 서드 어스
몇 달 전.
여름휴가 겸 친가 외가 친척이 다 모여서 양평 계곡에서 백숙을 먹었다.
백숙에 술 한잔 얻어 마시면서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미술관장 할래요?”
“미술?”
“네. 저희가 미술 쪽 비영리재단을 만들 건데 거기 장을 맡아주세요.”
“얘는. 내가 뭘 안다고 그런 걸 하니?”
“에이. 그냥 명함이에요. 고상하게 차 마시며 수다 떠는 그런 거. 왜... 대기업 사모님들이나 따님들이 그런 감투 쓰고 우아하게 살잖아요.”
“싫다. 생각만 해도 두드러기 날 것 같다.”
“엄마가 싫으면... 이모가 하실래요? 작은 엄마는?”
다들 고개를 저으신다.
오히려 엄마가 의외의 인물을 추천해줬다.
“니 아빠보고 하라 해라.”
“네에?”
“니 아빠가 그런 거 좋아해. 전시회도 자주 갔고.”
“네에에에?”
내 반응에 아빠가 진노했다.
“네이놈. 아빠는 그런 거 좋아하면 안 되냐? 그 표정 뭐냐?”
“아니. 너무 안 어울리셔......”
“시끄럽다. 예술은 차별없는 거다.”
“헐.”
뭐든 삭혀먹을 것 같이 생긴 아빠가 미술을 좋아하다니.
진짜 안 어울려.
“어... 뭐... 아빠가 해볼래요?”
“안 해. 그냥 농부답게 땅 파먹고 살랜다.”
삐졌구만.
“아이. 이건 믿을 수 있는 친척한테 맡겨야 하는 거예요. 어차피 실무진이 다 할 거예요. 해줘요. 가만있어도 되고 하고 싶은 거해도 되고. 그냥 좀 해줘요.”
“흠. 흠. 그럼...... 뭘 하면 되냐?”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네 이놈.”
아빠가 진노했다.
예하는 제네바 프리포트의 수많은 창고중 한 군데를 눌렀다.
프리 제네바 프리포트 특별전시회.
입장료 : 10미래블록
들어가니 100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저희 미래 그룹은 제네바 프리포트에서 100점의 예술품을 준비했습니다. 피카소의 꽃을 든 작은 삐에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 등 누구나 알 법한 유명한 작품들이죠. 이 작품들은 이곳에서 또는 미래 경매장에서 각각 1만 NFT가 발행되어 판매됩니다. 1분마다 호가가 가장 높은 이에게 1 NFT씩 판매합니다. 한 달 후 NFT를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이 주인이 됩니다.”
-일단 하나 사볼까?
-문디 저거 1500억이었을걸
-일단 우리가 낄판 아닌 듯
-몬가 이상한데?
-2000개 샀는데 1등이 2001개 사면 난 거지됨?
-그러넼ㅋㅋ 돈 날리는 거네
-일단 날릴 돈이 음슴ㅋㅋ
“음... 질문해도 되나요?”
민지민지가 손을 번쩍 들었다.
“네.”
“1분마다 한 개씩 팔리면 여러 명이 가질 수 있겠네?”
“맞아요.”
“그럼 여러 개 샀는데 주인이 되지 못한 사람은 손해네?”
“맞아요.”
“그럼 그 사람은 아무것도 갖지 못해?”
“아뇨. 일단 이번에 경매되는 1차 프리 제네바 프리포트는 전세계에서 30번의 특별전시전을 가져요. 거기서 얻을 수익을 NFT 보유자에게 자동 분배해요.”
“그래도... 억울하겠는데.”
“전략을 잘 세워야죠. 저희는 1분마다 팔지만, 다른 이들도 산거를 되 팔 수 있어요. 한 달 후 주인이 정해지더라도 급전이 필요해 NFT를 팔거나 2등이 소수의 NFT를 모아 최대 소유자가 되면 그림의 주인이 바뀌게 되요. NFT 개수를 통해 주인이 바뀌는 건 저희 미래 예술지원재단이 보증해요.”
-일단 사면 이득이다
-무조건 이득
-그렇다고 하나를 1억에 사면 손해지
-그래도 이득 같은데?
-사면 개이득
-ㅅㅂ 뒤로 갈수록 가격 치솟을 듯
-큰손이 안 붙으면?
-나락으로
-아무도 관심 안 가져서 하나 줍줍하면 좋겠다
-1NFT만 운 좋게 구했다가 나중에 수천만 원에 팔면 개꿀
“아. 뭔지 알겠다. 경매 뿐 아니라 앞으로도 쭉 이어지는 거네.”
“네. 영원히요. 추가로 저희 메타버스에서 방문해 보는 수익도 NFT에 분배되요.”
“어... 만약 불타면? 누군가 아마추어가 갖고 있다가 불타면? NFT 조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냥 날리는 거네.”
“그건... 여기 있다. 투자는 원래 그런 거래요. 디지털 NFT는 남겠네요.”
“헐. 어쨌든... 지금처럼 창고에 박혀 있는 것보다 낫겠네.”
민지민지는 이해했는지 매우 좋아했다.
“좋죠. 오빠 말로는 이게 잠들어 있는 미술품을 살릴 거래요.”
군사독재자의 비자금, 정치인의 은닉자금, 기업의 탈세자금, 도둑의 장물, 범죄단체의 마약판돈.
피카소의 작품은 그렇게 숨어있다.
이걸 세상에 꺼내려면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다.
지속적 관심.
제네바 뿐만 아니라 전세계 100여개 창고에 숨겨진 은닉자금이 하나둘 세상으로 나오고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면 각국의 강압에 의해 개봉될 것이다.
이건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어둠속에서 울고 있는 예술품을 살리는 일이다.
NFT를 통한 수수료 적은 간편한 경매.
앞으로 모든 예술품 경매는 미래 커뮤니티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기존 업체는 수수료를 30% 가까이 챙기니까 이제 망할 때도 됐지.
이런 대단한 일을 하는데 모닥불은 별 관심이 없는지 혼자 도 닦고 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헤헤헤. 언니 심심해요?”
“어.”
“그럼 이제 게임하러 가 볼까요?”
“게임? 진짜 된다고?”
“네 되요. 대신 아까처럼 사람들과 부대껴야 해요. 간섭모드밖에 안 돼요. 다른 사람이 밀면 밀리고 때리면 날아가고 그런 세상이에요.”
“어... 하긴 그렇겠네.”
“가 봐요.”
예하가 일어섰다.
“하앙. 한숨 자고.”
“언니. 일어나. 계약, 대본.”
“흐아 자본주의의 노예.”
셋이 일어섰다.
“내 표정이 상대에게 전달되기 위해선 얼굴 전체를 덮는 헬멧이 필요하대요. 저희 고글은 표정 전달까진 못해요.”
“그건 비싸더라.”
“어쩔 수 없죠. 아직 기술 단계가 부족해서. 사실 고글만 있어도 표정이 무뚝뚝할 뿐 게임은 할 수 있어요. 아바타를 따로 만들어서 내가 누구인지 숨길 수도 있고요. 메타버스로 즐기려면 접속 장치인 고글과 양손의 컨트롤러가 필요해요. 물론 피씨나 폰으로 기존 게임처럼 즐길 수도 있어요.”
-실망이네, 동작 감지로 안 되나
-그니까 실제로 뛰고 막고 점프해서 피하고 그런 거 상상했는데
-님 집이 운동장이면 그래도 될 듯
-운동장에서 겜하면 되지?
-부끄러움은 마을 사람 몫?
칼질이나 발길질 등은 직접하면 집안을 파괴하거나 사용자가 다칠 수 있기에 컨트롤러로 해야 한다.
“게임에 과몰입해서 절대 몸을 날리거나 공중 3회전 같은 걸 하면 안 돼요.”
-ㅋㅋㅋ 몰입해도 공중3회전 못한다
-근데 가만히 있는 게 가능할까?
-당구장에서도 몰입하면 몸을 쓰는데
-몸시네루?ㅋㅋㅋㅋㅋ
-컴터로 점프겜 할 때도 어깨 움찔하잖아. 이건 훨씬 심할 듯.
아마 많이들 다칠 거다.
집중하다가 저도 모르게 뒤로 자빠지거나 발차기 팔 휘두르기를 하겠지.
다치면 소송을 걸겠지.
미리 경고하고 또 경고해도 다치는 사람이 계속 나올 텐데.
일단 시작하고 수습한다.
“자, 아까 본 세컨드 어스는 공연, 미팅, 채팅 중심의 지구예요. 이제 우리가 들어갈 곳은 서드 어스입니다.”
어나더 어스의 서드 어스관을 누르니 똑같이 시청 앞 광장에서 시작했다.
“어 뭐야? 왜 이렇게 휑해?”
“그냥 벌판이네.”
“헤헤. 여기는 대지만 있어요. 나머지 모든 걸 사용자가 채워야 해요. 우선 저희를 가이드 해 주실 베터테스터 백분이 함께 할 거예요.”
두 달 전 진입한 베타테스터 백명이 나타났다.
주위를 둘러싸 스크럼을 둘렀다.
이렇게 안 하면 또 관종들의 난입으로 개판이 된다.
“가보죠.”
다 같이 군열이동을 했다.
“순간이동은?”
“순간이동, 단축이동 없어요. 여긴 투명하게 사라지는 비간섭 모드가 불가능하고요, 피케이도 가능한 무법세계에요. 언니들 다들 펫 불러오실래요?”
예하가 설명해주고 자기의 펫 바다소 듀공을 불렀다.
모닥불과 민지민지는 자신의 펫 랫서팬더와 오카피를 불렀다.
“모두 유니크급이니 속도 빠르겠네요.”
베타테스터들도 온갖 펫을 불러 탔다.
듀공이 빠른 것도 웃기지만 게임이니 봐주자.
온갖 동물을 탄 집단이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에 세워진 어느 집이다.
“베타테스터 모닥불팬101호님의 집이에요. 들어가 볼까요?”
“어? 백하나님 집이라고? 어? 입장료 내라는 데? 1블록.”
“여긴 101호님의 사유지거든요. 사유지 주인은 설정한 입장료를 받을 수 있어요.”
“사유지? 땅은 어떻게 사?”
“상점에서 살 수 있어요. 땅을 사고 나중에 경매로 팔 수 있어요.”
가상지구 팔아서 돈 번다.
게임 개발비용은 저기서 다 뽑을 자신 있다.
“우와, 돈 독 오른 것 봐.”
“일단 들어가 봐요.”
“어. 어.”
담장 가운데 문을 통과해 들어가니 거대한 아쿠아리움이 펼쳐졌다.
“와. 수족관이네.”
“이건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베타테스터 모닥불팬101호님이 꾸민 공간이에요. 모래채취해서 유리 만들고 수족관 만들고 바닷물 퍼오고 민물 퍼오고 수중동물들 잡아다 키운 거예요.”
“힉. 일일이 다 했다고?”
“네. 직접 만든 곳이에요. 키우는 것도 직접. 듣기로는 상어 잡다가 몇 번 죽었대요.”
“와... 1블록 받을만하네.”
“그쵸. 되게 예쁘죠?”
“이 정도면... 애착이 장난 아니겠다.”
“언니 이거 그 게임하고 비슷한 거 아니야? 만크래프트.”
“그러네. 이거 표절 아니니?”
“아하하. 저작권은 MS에서 샀어요. 기본 컨셉은 땅을 사서 내 땅에 내가 원하는 걸 만드는 게임이예요. 기술개발로 무기나 갑옷 등을 만들 수 있어요. 몬스터나 공룡 등이 있고, 클랜전, 영지전도 가능하고, 이벤트 레이드도 있고, 뭐랄까 온갖 게임요소가 다 합쳐진 짬뽕이랄까.”
“할 수 있는 게 많겠다.”
“그쵸. 참고로 지난 두 달간 베타테스터 천 분의 하루 평균 게임 시간은 16시간.”
“헐... 어쩐지 요즘 백하나님 안보이더니. 이 정도면 현실라이프 삭제 아니니?”
“그러게요. 왠지 우리가 죄 지은 느낌이네요.”
수족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니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길을 막고 있는 백 명의 용병들과 그 너머에 방송을 보고 찾아온 뉴비들.
여기선 투명 모드가 불가능해서 다가가 공격하거나 만질 수 있다.
만진다고 촉감이 전해지진 않지만, 변태나 관종에게 그건 중요치 않다.
성추행 신고해도 관련법이 없고, 계정을 삭제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미리 100명을 소집한 거지.
“용병단장님이 밀고 간대요. 언니들 따라붙어요.”
선두에서 그리핀을 탄 대장이 대검을 뽑아들었고, 주위에서 창과 지팡이, 장갑차 수준의 방패 등이 등장했다.
길을 열어 달라 해도 관종들은 돌파를 시도할 뿐이다.
“돌진!”
그리핀, 백마, 피닉스, 청룡 등 온갖 짐승이 돌진해 쪼렙 초보들을 옆으로.
화잇.
호잇.
후엣.
밀어내는데 묘하게 느리다.
“뭐야 이거. 카하하.”
“느려! 이상하게 느려!”
-ㅋㅋㅋㅋㅋ이게 뭐야?
-린이지 실사판이닷
-ㅋㅋㅋ린저씨가 개발했냐ㅋㅋㅋ
아... 비웃음 살 줄 알았어.
지켜보다가 민망해서 옆을 돌아보니 유성주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빼빼마른 좀비 같은 유성주는...... 감격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감격? 부끄러움이 아니라?
- 작가의말
마인크래프트가 단 하나의 서버에 잉간의 모든 뻘짓이 누적된 상상 그이상의 세상... 이라 상상하시면 될 거 같아요.
데이터 무게는.... 아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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