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드론
찹 찹 찹 찹 찹.
“하아 이겋 이겋 이겋.”
예하가 의미 없는 말을 빠르게 한다.
정상 근처까지 왔다는 신호.
좀 더 속도를 올리자.
삐땨리~ 삐요르르르르르~
펜션 벨소리? 에이시 누구야. 무시.
“어빠 잠깐 장까 장깧.”
금방 끝나.
나도 거의 올라왔어.
쵹쵹쵹쵹쵹쵹쵹쵹쵹.
삐땨리~ 삐요르르르르르~
텅텅텅.
드드드드득. 드드드드득.
벨에, 쿵쿵에, 핸드폰 진동까지.
뭐야 썅.
조금만 더 하면 돼.
쵹쵹쵹쵹쵹.
“흐아. 오빠. 그만. 멈춰. 스으으읍. 그만혀유.”
움찔.
예하가 서킷브레이크를 걸었다.
“하아 하아. 오빠. 이 시간에 이러는 건 큰일일거야.”
“...... 그래.”
쑤욱 뽕.
“하아.”
“나가볼게. 옷 입고 있어.”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한 번에 벗어놓은 팬티 더하기 바지를 동시에 입었다.
급하게 벗으며 던진 윗도리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
발기된 녀석을 조정해 티가 나지 않게...
텅텅텅! 윤회장님. 텅텅텅!
벽을 보니 새벽 두시다.
일정도 없는 이 시간에 이러는 건 큰 불이 났거나 누가 죽었거나 경호원이 미쳤거나, 셋 중 하나겠지.
뛰어가 문을 열었다.
4명의 경호팀장 중 한명인 도윤정이다.
“적습입니다. 일단 모시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뒤이어 여자경호원들이 들이닥쳤다.
우리가 벗고 잘 것도 예상했는지 긴 코트까지 준비했다.
속옷만 입은 예하에게 코트만 걸쳐주고 펜션 앞 차로 빠르게 안내한다.
부아앙.
타우바트 섬 중앙엔 해발 110m의 언덕이 있고, 전망대와 보안팀의 통제실이 있다.
거칠게 달린 차가 2분 만에 전망대에 도착했다.
사장 구형재가 달려와 맞이했다.
“침입자 100명입니다. 7분 전 발견했고, 전원 기관단총으로 무장했습니다.”
헐.
“부모님은요?”
“안전하게 모시고 있습니다. 통제실로 가시죠.”
미래경호는 육체 경호를 하는 경호팀과 cctv관리, 도청방지, 무전기 등 장비관리를 하는 보안팀으로 구성된다.
이곳은 보안팀의 중심지.
모니터 90여개가 섬 곳곳을 비추고 있다.
나처럼 자다가 불려왔는지 잠옷차림의 CIA, 필리핀, 한국 정보요원들이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다.
수십 명의 보안팀이 여기저기서 화면을 조작하고 있고, 누군가는 마이크를 잡고 떠나라고 경고하고 있다.
구형재를 따라 달려 통제실로 가니 cctv에 검은 보트를 타고 달려오는 남자들이 비춰졌다.
검은색 일색인 그들은 전원 소총을 메고 있었다.
“어떻게 발견했죠?”
“드론 감시망으로 잡았습니다. 섬 남쪽 2km 해상에서 발견했고, 드론 스피커로 사유지니 떠나라고 전했습니다. 영어, 필리핀어, 중국어, 한국어로 순차 방송했는데 저들이 기관단총으로 드론을 쏴 격추시켰습니다.”
“적이 맞네요.”
“격추될 때마다 새로운 드론을 보내 방송했는데 이제는 발견할 때마다 연사를 해 격추시키고 있습니다. 총 세 번 방송했고, 세 번 격추되었으니 적이 확실합니다.”
타타타탕.
또 하나의 드론이 터지고 화면 하나가 꺼졌다.
“이 속도라면 해안까지 5분 남았습니다.”
“적의 정체는요?”
“모릅니다. 동양계 100여명이라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거칠게 흔들리는 고무보트에서 드론을 격추시키는 걸 보면 특수훈련을 받은 공작원입니다.”
“......”
구형재는 평소에 동생사장아 아이구 동생아, 하며 편하게 말해왔는데 지금은 극존칭을 하고 있다.
“선택해야 하네요.”
“네. 최대한 빠르게.
“저들이 상륙한 후 교전하면 어떻게 되죠?”
“희생이 크긴 하겠지만, 제압 가능합니다.”
“거기 여러분들. 우리가 선제타격하면 법적 문제가 있습니까?”
내 질문은 CIA, 국정원 필리핀정보요원을 향했다.
즉각 통역이 말을 했고, 다들 난감한 듯 고민에 빠졌다.
“......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적이 마약조직원이라면 가능합니다.”
“...... 상부에 물어봐야 합니다.”
국정원은 진짜 쓸데없네.
CIA의 대답이 가장 만족스럽지만......
째깍째깍.
시간이 계속 간다.
결정이 1초 늦어질수록 미래경호 경호원의 사망확률이 높아진다.
“공격해요. 전원 사살. 항복하면 멈추고요.”
“예. 공격해.”
구형재가 우렁차게 명령했다.
보안팀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드론화면이 어지러이 흩어지더니 보트 진행방향 앞쪽으로 이동 후 멈춰 섰다.
“뭐하는 거죠?”
“드론 5기가 한 세트로 움직입니다. 카메라 드론 하나에 소총 드론이 넷씩 붙습니다. 총 500대 출동했습니다.”
아.
더 이상의 경고방송은 없다.
타다당. 타다당. 타다당.
드론의 화면 중앙에 보트가 도달하자 총소리가 울리고 고무보트가 벌집이 되었다.
80여개 드론화면이 일제히 사격을 했고, 20여개의 고무보트는 벌집이 되었다.
어둠속에서 피보라가 퍼진다.
고무보트에서도 일제히 총을 쏴 수십개의 화면이 꺼졌지만, 우린 사람이 아닌 드론이다.
“치엔쉐이! 루쉐이!”
카메라 드론의 스피커에 총소리와 섞여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국어네.
응사하던 침입자들이 물로 뛰어들었다.
육지까지 거리는 대략 200m.
공격 명령이 늦었다면 큰일 날 뻔 했다.
드론을 조작하는 보안팀이 드론을 뒤로 물리고 넓게 산개했다.
모터가 꺼지지 않아 돌격하는 고무보트 위주로 사격해 모든 배를 구멍 내 침몰시켰다.
“이동하면서 쏘는 건 안 되나 보네요.”
“아직 사람처럼 세세한 조절은 안 됩니다. 소총의 반탄력도 심해서 점사 후 재차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도 사람이 직접 싸우는 것보단 낫네요.”
보안팀이 쓰는 드론도 내가 투자한 회사다.
미래에 유명해지는 드론 회사 세 곳에 진작에 투자했지.
돌격하는 고무보트가 모두 침묵하자 해안이 침묵에 빠졌다.
모든 드론들이 상승해 라이트를 켜 적을 찾았다.
상대는 특수부대가 맞는지 물보라 없이 헤엄치고 있다.
코까지만 내밀고 개헤엄으로 헤엄쳐 오는 중인 듯.
아 추억 오지네.
해병대에서도 북한까지 헤엄쳐 건너가야 한다며 전투수영으로 개헤엄만 가르쳤지.
등에 가짜소총을 메고 개헤엄으로 나아가다보면, 군대좆같네가 절로 연사된다.
PTSD 지린다.
어두운 밤인지라 검은 두건만 튀어나온 모습이 바다와 쉽게 구분가지 않았다.
오히려 헤엄치는 도중 물속에서 쏘는 사격에 드론들이 하나 둘 침묵했다.
“그냥 갈겨버리세요. 저 근처 어딘가에 있을 텐데요.”
구형재가 대답했다.
“드론 한 기당 100발밖에 싣지 못합니다.”
그런 문제가.
“라이트라도 끄시던지요.”
답답해. 라이트를 향해 쏴서 내 드론을 떨구잖아.
“그...... 됐습니다!”
드론이 전해주는 현장음에 바람소리가 들린다.
쉬이이잉.
투투투투투투투투투.
위그선! 위그선이다!
드론의 라이트를 표식삼아 시속 400KM 속도로 날아온 위그선 열 척이 바다를 긋고 지나갔다.
한줄로 늘어선 위그선들이 지나가며 기관총으로 밭갈이를 하듯 수면을 우수수 파헤치고 지나갔다.
위그선 바람에 휘말린 드론 일부가 제어를 잃고 추락하자 나머지 드론들은 더 높이 떠올랐다.
쉬이이잉.
투타타타타타.
멀리서 선회해 돌아온 위그선이 다시 기관총다발을 쏟아 부었다.
와... 속시원하다.
이게 공군의 맛인가.
졸라 멋있다.
위그선의 융단사격이 이어지자 드론 일부만 남고 철수해 해안전체를 순시해 혹시 모를 상륙인원을 찾았다.
“경호팀 100명이 흩어져 있습니다. 단 한 명도 상륙시키지 않겠습니다.”
끝났구나.
아무도 안 다쳤다.
다행이다.
신기할 정도로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날 죽이려 100명의 특수부대가 잠입하는 걸 쏴죽였는데 ‘내가 사람을 죽이라 명령하다니! 크흐흑.’ 같은 호구 마인드는 들지 않는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해 미래경호를 PMC 등록 했으니까.
“정말 열심히 정찰해주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 당연한 게 어려운 거죠.
2km밖에서 다가오는 검은 보트를 새벽 2시에 발견할 정도면 정말 열심히 정찰한 거지.
“이제... 수습해야 하는데.”
CIA 아저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기지에서 공군기 10대가 출동했습니다. 필리핀 정부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필리핀 해군도 출동했습니다. 2시간 후면 도착할 겁니다. 잔당 처리 및 시체 회수는 맡겨주십시오.”
필리핀 정보부도 뒤를 따랐다.
국정원은......
“......”
쓸모없네.
대충 처리 됐나.
구형재가 한마디 건넸다.
“이틀만 방공호에 지내시지요. 드론 영상 분석해 총 몇 명인지 확인하고 시체수거로 숫자까지 맞춘 후에 평소처럼 생활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내 목숨을 맡은 분인데 믿고 따라야죠.”
농담하듯 말하자 구형재가 손사래 쳤다.
“아이구 무슨 말씀을. 이러라고 만든 경호회산데 처음으로 밥값 했네요. 허허허.”
“고생하셨어요. 마무리까지 해 주시고 나면 보너스 나갈 거예요.”
“하핫. 예. 동생들한테 말해 놓겠습니다.”
통제실에서 한 층 더 내려가니 입구에 소총을 둘러맨 경호원 둘이 있고, 안에 주요인사들이 모여 있다.
가족, 친척, 예하, 가오리닥똥.
펀드팀을 비롯한 일반인들은 본관 지하 방공호에 숨어있다고 한다.
예하에게 다가가 귓속말햇다.
“옷 입었어?”
“어? 어. 해결됐어?”
“응. 아빠엄마. 해결했어요. 마무리만 하고 평소처럼 지내면 되요.”
“무슨 일이니? 습격이라고 하던데.”
“도둑들이에요. 제가 돈이 많아서. 우리 경호팀이 때려잡았어요.”
“에휴.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엄마가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리자 친척들도 다들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가 많은 편인 큰아버지 부부는 아직도 안색이 창백한 게 많이 놀란 듯하다.
불효했구나.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내가 원인제공을 하긴 했다.
다들 모포에 쓰러져 잠든 거 보고 통제실로 올라갔다.
미국 공군기가 섬을 빙빙 돌다 떠났고, 필리핀 해군이 섬 주위를 수색했다.
상륙하지 못한 적 열셋을 해안가에서 사살했고, 필리핀 군함이 바다에 떠 있는 적을 몇 명 발견했는데 구출하려 하자 소총으로 자살했다.
드론에 피격 후 의식을 잃은 적 세 명을 구한 게 전부다.
자살이라니.
보통 놈들이 아니다.
스스로 자살 할 정도면 진짜 빡세게 훈련한 이들이 아닌가.
그런 놈들이 날 노리고 온 게 섬뜩하다.
드론, 위그선이 없었으면 얼마나 피해가 컸을까?
내 경호팀이 총격전에 패했다면 다 죽었겠지?
아니 드론 정찰이 10분만 늦었다면?
섬찟하다.
낮 동안에도 수색과 시체수거가 계속되었다.
71명.
잠수부들이 계속 건져 올리고 있는데 해류에 휘말린 일부는 영영 찾지 못할 거라 한다.
자다깨다 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오만생각이 교차한다.
안전.
날 잡으면 최소 1조 이득. 최대 3000조.
1억에도 목숨 거는 이가 줄을 설 텐데 1조원이라니.
꾸준히 운동하고 있지만, 난 경호원 한명도 제압할 수 없다.
경호팀의 단 한명이라도 배신하면 난 죽는 건가.
김정남 암살된 걸 보면 독을 피부에 슥 바른 것만으로도 죽잖아.
내 근접경호 200명 중 단 한명을 포섭해 1000억 주고 날 쏘라고 한다면......
불안하다.
마법이나, 내공 같은 게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안전.
예하를 납치해서 100조원을 달라고 한다면?
줄거다.
부모님, 친척을 납치하면?
줄거다.
안전.
새삼 내가 너무 많이 벌었다는 걸 느꼈다.
“적의 정체는요?”
“죄송합니다.”
“저희 쪽 데이터베이스에도 없습니다.”
“저희 쪽도.”
중국계, 혹은 중국인.
알아낸 건 그게 다다.
중국의 특수부대일 것 같지만, 확신할 수 없다.
구출한 세 명 중 한 명은 응급조치 중 죽었고, 둘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가 맡아서 관리하되 미국과 한국, 미래경호가 참여해 정체를 밝히기로 했다.
중국이든, 누군가의 부추김을 받은 중국계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안전이다.
필리핀은 불안하다.
어디선가 요술봉이 날아올 수도 있고, 잠수함이 어뢰를 발사할 수도 있다.
마약 갱단이 돈 받고 쳐들어올 수도 있고.
“제가 미국으로 간다면 미국에선 어떤 조치를 취해주실 건가요?”
......
“한국은요?”
......
어디에 머무르는 게 가장 안전할까?
타우바트섬에서 미래경호가 무기를 들면 안전할 거라 믿었는데 안 되겠다.
상대는 국가급이다.
이번엔 적이 드론과 위그선의 화력을 몰랐기에 피해 없이 막았지만, 다음엔 스텔기가 폭격할 수도 있다.
습격 일주일 후 미국과 한국의 적극적인 구애를 비교한 후, 미군 기지에서 미군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 작가의말
적의 정체는 아무도 모르겠지 키득키득
너무 모르면 안되니까 딱 한문장만 슬쩍 넣자, 못보겠지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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