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애국심
CIA 동아시아 지부장 칼리 페르난도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지부 전체를 옮겼다.
사라진 윤동욱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다크웹을 통해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내걸었고, 윤회장의 가족친지, 미래그룹 주요인사들에 대한 도청과 감청, 미행과 감시를 진행했다.
여기에 들어간 인원만 200여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꼬리를 잡지 못하니 협력자를 돈을 매수했다.
미래그룹의 부상과 함께 몰락한 백제그룹을 비롯해, 범죄가 들통나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의 친인척과 친구들을 중심으로 협력자를 모았다.
돈이 많이 들었지만, 본사에서는 무한지원을 약속하며 어떻게든 윤동욱을 찾기만 하라고 했다.
그래도 윤동욱에 대한 소식은 쥐뿔만큼도 얻지 못했다.
미래그룹 본사의 비서실과 기획실 내부에까지 끄나풀을 넣었음에도 누구도 알지 못했다.
감청과 위성감시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는데도 전혀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의 흔적이 이렇게 사라질 순 없다.
가족 친지와의 연락, 비서실이나 그룹 내부의 숨겨둔 연락망을 통해 꼬리가 잡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윤동욱은 아예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강압적인 수단밖에 남지 않았다.
정치권을 압박해 미래그룹을 압수수색 하거나 채인수를 비롯한 주요인사를 납치 고문하는 수밖에.
칼리 페르난도는 본사와의 협의를 거쳐 자금을 조달받고 한국의 정치인과 협잡을 했다.
미국의 한 마디면 가울 단풍처럼 바사삭 떠는 한국의 정치인들.
그런데 분위기가 요상하다.
“한국 정부에서 협조불가를 통보해 왔습니다.”
“모든 불법적인 행위를 금지하랍니다.”
“감히 자신을 나라를 판 매국노로 보냐덥니다.”
“미국 대사관 밖에서는 무전기도 쓰지 못하게 하는데요?”
요 근래 한국은 미국에 굉장히 적대적이다.
이건 최근 일어난 탄핵사태 때문이다.
한국의 전임 대통령은 섣부르게 윤동욱을 뜯어먹으려다가 역풍을 맞아 탄핵 당했다.
뒤이어 야당에서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태생부터 친 미래그룹 성향을 띠고 있다.
수많은 정치인이 부정부패로 물갈이 된 후 남게 된 인물은 그마나 흠 없는 인물들.
그렇다보니 매수가 어렵고, 매수해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거액의 뒷돈과 노후보장을 약속해도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허가한 미래거래소.
이게 대단한 반전을 일으켰다.
미래블록을 기초로 한 주식거래소.
단지 그 뿐이라 생각했는데 미래블록의 스테이블 포기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전 세계 주식이 출렁이고 하락하는 와중에 미래거래소의 주식은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허용했고, 미래그룹의 눈치를 보던 정부의 적극 지원하에 한국 대부분의 기업이 미래거래소로 이전상장했다.
그 덕에 전 세계 주가가 폭락하는 와중에 미래거래소 회사들은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선견지명으로 포장되어 널리 널리 광고되고 있다.
‘난 윤회장을 믿었고, 믿고 있으며, 앞으로도 믿을 겁니다.’
주식을 보유한 이의 사고방식은 매우 단순해진다.
보유한 주식이 오르면 기뻐하고 떨어지면 증오한다.
현재 주가가 과열인지 적정한지는 중요치 않다.
주가가 오르면 세력이 올린 거고, 주가가 내리면 세력이 내린 거다.
내가 산 게 떨어지면 정부와 기관과 세력을 욕하고, 내가 산 게 오르면 세상을 다가진 것처럼 기쁘다.
덕분에 한국의 모든 이가 미래그룹을 칭송하고 있다. 세계가 하락할 때 미래거래소는 제자리를 지켰으니.
더불어 미래거래소를 가장 빠르게 허가한 정부도 칭송하고 있으며, 이는 정권에 대한 지지율로 이어진다.
복잡한 사정은 몰라도 내가 가진 주식이 떨어지지 않게 도와줬으니까.
한국 전체가 이런 분위기다보니 미래그룹을 적대하라는 제안에 평소 친미성향의 의원들마저 고개를 저었다.
한국 공권력을 이용한 압박마저 포기.
이러저러한 방법을 찾는 사이에 2022년이 밝았다.
미래블록의 스테이블 포기 선언 이후 4달이나 지났건만 칼리 페르난도는 윤동욱의 행방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했다.
게다가 미래블록의 유통량이 증가할수록 미래거래소 회사들의 주가가 조금씩 상승한다.
주주라면 누구나 미래그룹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한국 뿐 아니라 미래거래소를 허용한 50여개 국가에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시민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미래그룹 비서실에 접촉했다가 몰매를 맞을 뻔 했습니다.”
윤동욱.
20대 중반의 젊디 젊은 청년.
운 좋게 투자를 잘하는 이라 생각했는데, 이쯤되니 무섭기까지 하다.
한국인 전체를 자신의 방패로 만들다니.
한국인 전체가, 아니 미래그룹이 뻗어나간 세계가 그의 부모, 친척, 회사 핵심인원 모두를 지켜주고 있다.
막무가내로 납치했다간 전 세계의 공격을 받을 처지다.
“으. 본사에 연락해. 위성탐색 추가해 달라고. 그리고 해커팀 좀 제대로 보내달라고 해봐. 분명 미래메신저로 연락하고 있을거야.”
“에... 그... 블록체인이라 해킹이... 앗 알겠습니다. 연락하겠습니다."
안된다고 중얼거리는 부하를 노려보자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인력이 더 충원된다고 찾을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그보다 찾아 낸다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미국에서 한국을 석기시대로 되돌릴 정도로 굳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데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 것인지.
그 즈음 미국에서도 교통정리가 끝났다.
대표적인 양적완화 옹호론자인 연준 위원장 칼 막스와 양적완화 비관론자 안드레 루스텔의 설전에서 칼 막스가 승리했다.
수많은 사람과 이권집단이 의견을 모아 달러의 귄력을 지키기로 마음먹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
4개월.
스테이블 포기선언 즉시 윤동욱의 속셈을 알아채고 칼리 페르난도가 뛰어와 중지하라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의견을 정하는 데 너무도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게 민주주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던 미국은 루스타니아호가 독일의 잠수함에 침몰하자 전국민이 극도로 분노했다.
그랬음에도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하기까지 2년이나 걸렸고, 실제 군대를 전선에 보내는 데는 3년이나 걸렸으며 덕분에 전쟁이 끝나갈 무렵 굶주리고 지친 독일을 상대로 가장 큰 과실을 획득했다.
물론 여기에는 늦게 참전할수록 경쟁국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피해가 커지니 좋고, 자국의 피해는 줄고, 무기판매를 통한 이득이 커질 거라는 금융계산이 숨어있지만, 민주주의의 본질이 느린 의사결정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무려 4개월 만에 의사결정을 한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대표단을 한국에 보냈다.
“뭐? 누가 온다고?”
한국에서 아무 성과없이 돈만 까먹던 칼리 페르난도는 지휘권을 넘겨받을 이의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연준 위원장 칼 막스입니다.”
“갸 말고. 다음 누구?”
“유 퐈이어!”
보안이 철저한 CIA 한국지사에 덩치큰 백인 남성이 들어섰다.
칼리의 비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분입니다.”
“뭐? 누가 방문해?”
채인수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주한미국대사와 연준 위원장 칼 막스. CIA 동아시아 책임자 칼리 페르난도. 또...”
“마지막.”
“트럼프입니다.”
“금마가 왜 와? 야당이잖아. 대선 탈락한 지 얼마나 됐다고. 여당일에 왜 끼어드는데?”
“그... 모르겠습니다. 워낙 트럼프다 보니까 트럼프짓 하는 거 아닐까요?”
비서의 한심한 소리를 듣던 채인수는 홀로 고민했다.
미국의 고민.
미래블록의 독립선언은 새로 대통령이 된 바이든에게 매우 강력한 정치적 압박을 주고 있다.
해결하지 못하면 탄핵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야당인 트럼프는 구경이나 하다가 다음 대선에 빈자리를 차지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 발을 들이민다고?
왜?
“아무래도... 미친 것 아닐까요? 애초부터 미친 인간이었지 않습니까?”
비서의 한심한 평가는 무시했다.
“형님들 전부 모아. 대화를 나눠봐야겠어.”
“그러면 시간을 맞출 수 없습니다. 이미 도착 직전입니다.”
“기다리라고 해. 약속도 없이 온 놈들을 뭣하러 맞춰줘.”
“예.”
기다려라.
이게 미래그룹의 달라진 위상이다.
윤동욱 잠적 후 핵심 사장들은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성수동 본사 인근에서만 버텼다.
격동하는 흐름에 맞춰 할 일이 너무 많았고, 혹시라도 있을 암살이나 테러, 납치에 대비해야 했다.
황영석, 권순진, 정문우, 유성주 등 핵심사장들이 모였다.
여기에 IT책임자 김상철도 포함이지만, 개썅마이웨이인 그는 귀찮다고 랩실에 박혀있고.
미국의 압박은 진작 예측하고 있었고, 변수는 트럼프다.
그에 대해 한참 토의했지만 누구도 시원하게 정답을 말하지 못했다.
“동욱이가 그립네. 크게 보는 건 잘하잖아. 큰 흐름을 파악해 미래를 읽는 능력.”
황영석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그러니 회장이죠. 씁. 이대로 가보죠.”
채인수가 대응책을 챙겨들고 사장실을 나섰다.
시끄러운 손님들의 컴플레인에 곤욕을 치루던 비서실 직원들이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안도하며 안내했다.
“트럼프 도널드가 한국에 갔네.”
기사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항상 기사를 챙겨봐야 한다.
혹시나 부모님이 체포되거나, 형들이 금융범죄같은 것으로 엮여 잡혀갈 경우 뉴스로만 알아내 대응해야 한다.
베네수엘라 지하 방공호에서 소식을 얻는 방법은 뉴스 뿐이다.
곁에서 양파를 다듬던 예하가 고개를 돌렸다.
“응? 그게 누구야?”
예하의 부족한 상식에 충격 받은 척 했다.
“미국 전임 대통령이잖아. 너도 만나봤잖아. 대박. 대충격.”
“아니. 아니. 우이씨. 그 아저씨는 도널드 트럼프잖아.”
“그게 헷갈리셨구나. 트럼프가 한국에 갔잖아. 한국에서는 성이 앞이고 이름이 뒤니까 당연히 이래야지.”
“에이. 누가 그래. 외국인들은 이름이 앞이고 성이 뒤잖아.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러줘야지.”
“그치? 그게 맞지?”
“당연하지.”
“그런데 한국은 왜 이럴까? 나 어렸을 때 영어선생님이 세계는 성이 뒤고 이름이 앞이니 마이 네임 이즈 동욱 윤. 이렇게 가르쳤는데.”
“어? 그러네. 그건... 외국에 나갔을 때 그러라고 가르친 게 아닐까?”
“그럼 한국에 와서는 성-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각국의 문화를 존중한다면 말이야.”
“어... 에... 그러네. 이상하다. 헤헤헤.”
“이건 영어교사가 개병신, 등신, 문화사대주의, 자발적노예, 외국환상주의, 개쓰레기, 자국병신만들기 주의자라서 그런거겠지. 한국 문화는 성이름 순서니까 외국에서도 자기 이름을 그대로 부르고 패밀리 네임을 물을 때만 한국은 성이 앞이다 라고 따로 설명하는 게 옳은데 외국에 맞춰 자국문화를 말살하고 무시한 결과야.”
“에이... 그 정도는......”
“영어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겠지. 당시 사회 전체가 서양에 환상을 갖고, 자발적 노예가 되려고 발버둥 쳤으니까 저런식으로 한국 고유의 문화마저 스스로 없애려고 노력한 결과겠지. 한국에선 외국인을 성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면서도 영어로는 자기 이름을 이름 성 으로 고쳐부르게 된 거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말이야.”
“에......”
“됐어. 이제 하나씩 고치면 돼. 옛날 병신들이 한 병신짓을 하나씩 고치는 것도 발전이고, 진보겠지.”
“어... 오빠 좀 무섭다.”
내가 너무 강하게 말했나.
예하 앞에서 이 정도 욕설을 내뱉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그냥 좀 짜증이 나네. 성수동에 연락하고 싶은데 갇혀 있다 보니까.”
지하실 생활에 좀 지쳐가는 느낌이다.
“어... 어. 나도 사실. 녹음실에 혼자 있으면 가끔 우울해지고.”
둘 다 비슷했구나.
위층의 도윤정 사장도 비슷하겠지.
말없이 예하를 안아줬다.
“그런데 트럼프가 왜?”
“아. 맞다.”
- 작가의말
이강인의 스페인방송을 보는데 칸진리~ 라고 부르더군요. 이름밖에 못 알아들었어요
김민재의 터키방송을 보는데 킴민재! 라고 불르더라고요. 이름밖에 못 알아들었죠
이름-성 어순은 전작에도 나왔고, 앞으로 평생 저의 모든 소설에 넣을 생각입니다.
외국문화에 맞춰 이름-성 뒤집어서 소개하지 말자가 제 주장이고... 그렇게 되길 바래요.
제가 커다란 건 못바꿔도 이런 작은 건 고칠 수 있겠죠...어... 그러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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