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샤덴프로이데
일동 벌떡 기립했다.
“왜 왔어? 어떻게?”
“언니한테 연락해서 물어봤징. 안녕하세요.”
치킨 열 마리가 들어있는 봉다리를 풀며 예하가 일동에게 인사했다.
다들 얼어붙어서 제대로 답도 못한다.
“저도 여기 앉아도 돼요? 같이 오기로 했는데 일이 생겨서. 히잉.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이구 괜찮습니다.”
“어서 앉으세요. 새 잔이 어디...”
이 새끼들 3년 만에 만난 나보다 더 반가워하잖아.
더러운 외모지상주의.
“혹시 BJ제시님 아니십니까?”
“아 맞네. 그분이시네.”
“헐. 대박. 유투브 80만 그분.”
“정말 고우시다.”
거 참 소란스럽네.
얘 스무살이야 이놈들아.
후배들한텐 군대식으로 굴리는 놈들이.
정신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예하는 대답하기 바빴고, 주는대로 넙죽넙죽 받아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술자리에 엄청난 활기가 돈다.
“왜 얘랑 사겨요?”
“혹시 희생정신이 투철한 성격인가요?”
“지금 협박받고 있다면 당~근! 당~근! 을 외쳐주세요. 토끼 귀를 하고.”
아놔 이새끼들이.
“당~근! 당~근! 이렇게요? 냐하핳.”
예하야. 너까지 그러지 마.
농담 섞인 환영이 끝나자 진지한 물음이 나왔다.
“유투브는 어떻게 시작했어요?”
“미래그룹 입사 어려워요?”
“월 수익이... 아코코 알았어 안할게.”
“작곡가분들은...”
“미래아트스쿨은 나이제한이 있나요?”
선배니 후배니 하며 90도 인사를 시키지만, 20대 초반의 미래가 확정안 된 젊음이다.
걱정 가득한 질문에 예하가 질소충전한 희망적 대답을 해줬다.
오상욱이 나에게 슬쩍 말했다.
“돈 다 잃고도 여유로운 게 쟤가 부자여서 그런 거냐?”
참 안타깝네, 이 새끼.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가장 많이 술을 마시고 같이 바보짓을 하던 사이인데...
역시 사람의 본성은 알아채기 힘들다.
“어. 여친 돈 믿고 여유 부리고 있지. 기둥서방, 셔터맨, 봉고맨, 그런 거.”
기분 좋냐?
다신 볼 사이 아니니 서비스 좀 해주마.
“너 임마. 중요한 건 니 내면에 채워질......”
개소리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예하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할 사명감을 갖고 있는지 최대한 친절하고 예쁘게 대답하며 권하는 대로 술을 꿀떡꿀떡 마셨다.
그렇게 잘 보일 필요 없어.
내가 경험한 군대는 발가벗은 인간의 바닥을 보는 곳이다.
정확히는 선임의 바닥이 보인다.
후임은 언제나 피곤하고 진지한 표정만을 유지하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선임은 그 인간의 근원을 보여준다.
바닥까지 훌륭한 선임들이 있었다.
이상국 해병, 하현호 해병.
바닥까지 드러내고도 훌륭했던 사람들.
와...20년도 더 전의 기억인데 지금도 이름이 생각나네.
그리고 선임의 3/4는 쓰레기였다.
저놈은 돈 100만원을 위해 사람을 죽일 놈이다.
저놈은 자기 마누라와 자식을 구타할 새끼다.
저놈은 뇌가 성기에 달려있다.
내가 느낀 인간의 바닥은 그랬다.
내가 본 인간 중 1/4만 괜찮은 사람이었다.
후임들에게 난 어떤 인간이었을지.
회귀전의 나 또한 3/4에 속하지 않았을 런지.
“오빠 뭐해?”
예하가 귓속말을 한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데 억지로 웃는 것 같지 않다.
“즐거워?”
“어. 오빠 친구분들 너무 멋진 거 같아. 아. 나도 대학 갈까?”
글쎄.
본성이 안 보이는 자리인데.
여기 모여 떠드는 이들 중 3/4는 바닥이 별로일 것 같지만.
“예하야, 너 여기 나오면 열애설 막지 못해.”
“에? 모두 오빠 친구잖아.”
친구라.
예전엔 쉽게 썼지만, 지금은 닥똥가오리만 친구라 생각해.
“그리고 괜찮아. 열애설 나오면 인정하지 뭐. 공개 연애할래.”
에헤헤 웃는 예하가 참 행복해 보인다.
술 좀 올랐네 얘.
“그러시든가.”
“어. 헤헤헤. 잔디밭에서 술 마시는 거 너무 낭만 있다앙.”
예하는 팔짱을 껴오며 술잔을 내밀어 짠을 한다.
잔디밭에서 마시는 게 낭만 찾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돈 없어서 그러는 거거든.
너 때문에 술자리가 조용해졌잖아.
남자는 훔쳐보느라, 여자들은 니 미모에 눌려서.
슬슬 치킨도 동나고 있다.
“그만 가자.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
“어? 알았어.”
내일 별 일도 없지만 예하는 곧장 일어났다.
“우리 먼저 가볼게.”
“아 왜?”
“가려면 너 혼자 가.”
“제시님! 한잔 더 하시죠.”
“어? 그럴까요?”
예하가 방긋 웃으며 좋아한다.
“가자.”
우리 뒤쪽에 앉아 일행 아닌 척 경호하던 경호팀도 슬슬 일어났다.
“제시가 족발 열 개 시켜준대. 그거 먹고 놀아. 다음에 또 보자.”
예아아아아아~
환호성을 뒤로하고 예하의 대형 벤에 탔다.
도팀장은 조수석에 앉았고, 운전대를 잡은 건 예하의 로드 매니저, 여자다.
“저기 매니저님.”
“네, 말씀하세요.”
“미래 엔터는 어디 소속되어 있죠? 아트스쿨인가요?”
“아니요. 본사 직속이예요. 홍보부 밑에 붙어있어요.”
미래엔터는 돈 벌려고 만든 회사가 아니다.
예하와 다른 방송인들 도와주려고 만든 회사다.
방송홍보팀에 계약한 이들 보조하기 위해 만들었으니 홍보팀 아래 붙어있나 보다.
“네. 내일 거기 사장 좀 보자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예하가 달라붙으며 물어봤다.
“왜? 왜왜? 나 혼날 짓했어?”
“아니. 내 동기들. 몇 명 챙겨주려고. 몰래. 돈으로 주면 동기사이가 무너질 것 같으니까 몰래.”
“오올. 키다리 아저씨네. 멋져멋져.”
다행히 예하는 반대하지 않았다.
과거의 난 코인 폭락과 함께 모든 돈이 청산당했다.
내 말을 믿고 돈을 넣은 이들도 큰 손해를 봤다.
그 당시 일부러 학교에 가서 사과를 했다.
사과해야지. 잘못했는데.
비난과 욕설이 폭주할 때 차정미가 한마디 했다.
“전 제 의지였어요. 선배님 덕에 알게 됐지만, 저도 검색해보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보고, 제 의지로 투자했어요. 선배님 잘못이 아니예요.”
어린 후배의 말에 비난이 약간 줄어들었다.
차정미.
바닥에 훌륭한 정신이 깔린 사람이다.
안방학동에 살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으니 돈이 많은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얘가 연기로 대성... 하는지는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연락이 끊어지고 티비에서 보지 못했으니 큰 성공은 하지 못했겠지.
그래도 챙겨주자.
며칠 후,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오는 차정미에게 양복쟁이들이 붙었다.
“차정미씨죠?”
“네. 누구시죠?”
남자가 명함을 건넸다.
“미래 엔터 신인발굴부장입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셔도 좋습니다.”
연영과를 다닐 정도면 다들 엔터의 명함은 받아봤다.
차정미는 일단 명함을 챙기고 물어봤다.
“네에... 그런데요.”
“저희 엔터에 들어오시죠. 조건은...”
계약금 3억에 계약기간 3년. 7:3분배.
신인발굴부장의 충격적인 조건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성수동 미래 스튜디어의 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그 외 어떤 샵을 가든 전액 회사에서 부담합니다. 전담 매니저가 붙고, 밴 한대가 지급되며, 원하는 티처를 무한히 붙여주며, 전담 캐스팅 매니저가 추가됩니다.”
“캐스팅 매니저요?”
“차정미씨의 능력을 분석해 가장 어울리는 배역을 찾아 배역을 따내는 일만 합니다. 실질적으로 연기 스케줄을 관리하게 되죠.”
“헐.”
“대박.”
“정미 너 땡잡았다.”
차정미는 너무 좋은 조건에 어안이 벙벙했다.
“왜 저죠? 저한테 왜 이런?”
“가능성이 넘쳐나서요. 저희는 절대 손해 보는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극찬.
“저희는요?”
“우리도 예쁘지 않아요?”
“사실 끼와 매력은 제가 더 넘쳐나는데. 불광동광년이라고...”
신인발굴부장은 차정미의 친구들을 소똥에 붙은 파리처럼 봤다.
“가능성 없습니다. 차정미씨. 계약하실 생각이 든다면 전화주십시오.”
“와 단호박.”
“정미야 축하해.”
“와... 부럽다야...”
“압구정 숍에 매일 가도 되는 거네.”
“대박.”
그냘 신인발굴부장은 총 5명을 만나 계약을 제의했는데, 차정미와 한민선, 그리고 남자 동기 셋이다.
모두 동욱과 잔디밭 술자리를 같이한 인물들.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자 단톡방에 불이 났다.
-전부 그날 술자리에 있던 인물임.
-헐 동욱이 빽인가
-걔가 무슨 힘이 있냐. 제시님! 그저 빛제시님의 은총이겠지
-맞네 미래그룹에 영향력을 끼칠수 있는 제시님의 은총이네
-제시 그는 신인가. 그는 제시 신인가. 신은 그 제시인가.
어째서인지 이 새끼들이 예하만 찬양한다.
그리고 열애설이 터졌다.
잔디밭에 나란히 앉아 팔짱끼고 술 마시는 사진도 떴다.
어떤 새끼일런지...
“우후후후.”
“예하야.”
“으흐흐흐. 오빤 도망 못 가.”
“도망 갈 생각 없는데. 그런데 너 좀 무섭다.”
“으흐흐. 오빤 내거야. 아무도 안 줘.”
무서워라.
“너 방송에서 욕 좀 먹겠는데.”
“세상 모두가 욕해도 오빠만 내거하면 돼. 오빠 내거임. 튓퉷퉷. 하늘땅별땅.”
“...... 그거 부장님 용어 아니니?”
“아악. 사회생활의 부작용인가. 어쨌든 너님께선 내거야.”
“인기가 좀 떨어질 텐데.”
“상관음슴.”
“그러셈.”
너만 좋으면 상관없지.
동기들은 이 정도만 챙겨주자.
나머지는... 알아서 자기인생 살아가라지 뭐.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했다.
“가오리.”
-왜?
“드라마국도 만들 건데, 거기 사장도 너 해라.”
-어? 뭐? 왜? 바빠!
“그냥 해.”
-넵. 규모는?
“매년 작품 10개 찍을 규모로. 물론 각본이 좋아야겠지. 한국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두 편씩, 동남아랑 인도에서도 매년 한편씩 찍을 거야.”
동기들 챙겨주고, 미래아트스쿨의 인재들도 띄워줘야지.
-...... 또라이년. 돈 낭비할거면 그냥 자선단체에 기부해.
“10년간은 컨텐츠 폭발시기라서 찍을수록 돈이 돼. 걱정 말고 사장해. 어차피 니가 할 건 없어.
-어. 암것도 안한당.
“그랴.”
자회사 미래영상스튜디오가 생겼다.
나중에 세계 각국에 자화사의 자회사가 생길 거대한 스튜디오.
아직은 시작단계다.
극본 선정에만 몇 달 걸리겠지.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