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별이 빛나는 밤에4
“대학? 갑자기 왜?”
“학위장사 하는 꼴이 재수 없어서. 솔직히 이제는 대학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잖아. 뉴턴의 시대에는 대학교에서 교수에게 배우는 것만이 최상위 지식을 얻는 유일한 길이었겠지. 하지만 요즘은 모든 논문이 인터넷에 공유되잖아. 마음만 먹으면 모든 지식을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어. 그런데도 4년 4000만원 내고 대학을 다니는 건 졸업장 장사일 뿐이야. 바가지야 바가지.”
“에이. 대학에선 대학에서만 배울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신입생 오티의 술파티? 동아리의 술파티? 축제의 술파티? 대학원생의 노예생활?”
“어? 어.”
“난 대학 다닌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 노노노. 그 수업 뭐였지? 영국극작가...”
“세익스피어 개론?”
“어. 그 수업 졸라 암기과목이었잖아.”
“어차피 너 하나도 안 들었잖아. F받았잖아.”
아차.
한민선과 둘만의 옛날 얘기를 하면 예하가.... 생글생글 웃는다.
무서워.
“어쨌든 그 수업. 첫 수업은 정정기간이라 암것도 안했고, 두 번째 시간은 출석만 부르고 조를 짜고 끝났지. 중간 기말고사 두 번 빼고, 휴강 네 번 빼고, 정식 수업은 8번 했어. 2시간씩 8번 수업. 한 학기동안 전공필수과목을 16시간 수업했네. 그걸 500만원 등록금으로 나누면 2학점에 50만원짜리 수업이었어. 졸라 아깝지 않아?”
“에... 난 잘 모르겠는데.”
한민선이 고개를 저었다.
“암튼 그딴 거 말고 새로운 형식의 대학을 만들 거야. 교제를 다운로드 받게 해주고 인터넷에 동영상 강의를 올려주는 거야. 만약 학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와서 공부하겠지. 한 과목에 이틀이면 끝나지 않을까? 대학교가 16시간으로 한학기를 때우는 수업을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면 이틀이면 돼.
이런 식으로 모든 강의, 모든 과목, 모든 지식을 동영상으로 만드는 거야. 예를 들어 수학 학자의 최고 난제 리만 가설을 연구하기 위해 필요한 테크를 밟으려면 100개 정도 과목을 들으면 되겠지.
초딩 산수를 시작으로 중딩 수학, 고딩 수학, 대딩 수학을 거쳐 최신 이론까지 100개 강좌를 이해하면 리만 가설을 연구하는 수준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여기에 대학교수의 조언이 필요해? 질문이 생기면 전문가에게 메일로 물어보거나 우리에게 물어보는 거야. 앞으로는 AI가 자동 답변해줄 수 있는 시대가 열려.
미래 커뮤니티 안에 미래 대학을 만들고, 거기에 모든 수업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리자. 전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해서 동영상과 함께 올리고. 동영상마다 NFT 만들어서 시간당 1미래블록 받고, 좋네. 수익을 동영상 찍은 학자와 나눠 갖는 거야. 대학을 안 가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모든 학문을 배울 수 있는 학문의 전당으로 만드는 거야.”
“어... 동영상으로 될까?”
가오리가 갸웃했다.
“돼. 시대가 발전했잖아. 정말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열심히 들을 테고 대학을 다니는 것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거야. 옛날엔 이런 동영상 시스템이 없었으니 불가능했지만 이젠 기술이 발전했잖아. 그리고 이건 한국보단 세계를 위해서야. 인도나, 페루같은 제 3세계에 공부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인터넷 대학교를 만드는 거야. 수업료는 미래블록으로 저렴하게 받고.”
“실습은? 실험이나... 연구는?”
“그건 지가 알아서 해야지. 공부해서 사전지식을 다 흡수하고 나면 나머지는 취직해서 일하면서 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대학교에 수천만원 내거나 나라에 그 수준의 대학교가 없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겐 이것만으로도 신세계가 열리지 않을까?”
“그런가.”
가오리가 수긍할 때 닥똥이 끼어들었다.
“큰 문제가 있다. 시험이 없고, 학점이 없고, 졸업장을 줄 수 없잖아.”
“그딴 걸 없애려고 하는 거잖아. 미래대학은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줄 뿐이야.
대학의 존재의의가 뭐냐? 학문의 전진이잖아.
신기술. 신지식. 인류 지식의 끝에서 새로운 지식을 확장시키는 것.
이거야말로 인터넷에서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초 수학부터 지식의 최전방까지 최신 지식을 공개하고 가르쳐. 각자 알아서 배우고 나면? 대학교수의 노예로서 논문을 대리 작성하면서 배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학습하고 연구하겠지. 이러면 결과가 당연히 더 좋겠지. 스스로 관심을 갖고있는 이가 뛰어드니까.”
“야.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 학점, 학위는 어떻게 할 건데?”
“그것 때문에 대학 다니는 거야말로 제일 불쌍한 거 아니냐? 가오리 너 산디 조사했지? 산디의 결말은 뭐가 되냐?”
“평균 시급 6000원, 하루 평균 15시간 근무. 주말 없음.”
산업디자인.
가장 아름답고, 가장 좆같은 직업분야.
디자인에 정답은 없다.
그렇기에 가장 심하게 갈려나간다.
갈면 갈수록 결과가 좋기 때문이다.
갑사인 광고주가 광고를 의뢰한다.
혹은 애플 같은 곳에서 신형기기의 디자인을 의뢰한다.
을사는 듀데이트에 맞춰 결과물을 내놓는다.
갑사의 확인을 받는다.
여기서 갑사 관리인의 욕심이 끼어든다.
갑사의 관리인은 결과가 좋을수록 갑사 내에서 평가가 좋아진다.
결과가 좋게 하기 위해선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을사인 디자이너를 갈아 넣으면 된다.
끊임없이 꼬투리를 잡거나, 새로운 버전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나도 힘들다고 푸념하면 끝이다.
수없이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
을사는 갑사의 요구에 맞춰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하면서 다양한 지시에 따른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버전이 완성된 후 갑사의 관리인은 최종일 즈음에 개중 가장 괜찮은 하나를 골라 상부에 제출한다.
갑사의 관리인이 입으로 지적한 것 만으로 수많은 시도가 이뤄져 좀 더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을 얻게 되고 을사의 디자이너는 수명을 잃는다.
이게 산업디자인의 현실.
남의 고통이 나의 행복이 될 때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 본성에 의해 산업디자이너는 갈려나갈 수밖에 없다.
“산업디자이너가 불쌍한 건 이미 인생 진로를 거기 고정시켰다는 거야. 대학 4년간 산디과를 전공했고, 관련 학과를 이수했어. 인생의 황금기 20대 나이를 4년을 투자했고, 등록금 4000만원과 생활비를 투자했어. 그런데 졸업하고 보니 갈려나가야만 하는 현실만 앞에 있어. 여기서 유턴하기 힘들겠지?”
“어. 전공을 포기한다는 건 수억원의 기회비용을 버린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시급 6000원에 매일 별보고 출근 별보고 퇴근을 반복하는 거지. 이 악물고 버티면서 어쩌다 대박이 터지길 기다리다가 과로사하는 운명이잖아. 그런데 미래 대학이 활성화된다면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줄어들지.
산디 관련 공부를 하고 캐드나 디자인 프로그램을 스스로 깔아서 연습해서 학사 수준이 되는데 1년과 300만원이면 되겠지. 현재 대학교는 거대한 덩치와 화려한 외형을 유지하려고 엄청난 바가지 가격을 씌우고 있으니까. 적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산디일을 하다가 이건 진짜 아니다 싶으면 지금 노노노처럼 다른 일을 찾는 거야. 어때. 훨씬 좋지 않아?”
“대학의 바가지 요금이 문제란 거야?”
“산디 졸업자가 그 좆같은 환경에서 갈려나가는 근본원인이 뭘까? 수없이 많은 산디 전공자가 각자 수억원의 저당금을 산업디자인에 맡기고 사회로 나오는데 사회로 나와 보니 산업디자인 전공자가 너무 많아. 이 직업을 포기하는 순간 거액과 인생 황금기 4년을 폐기하는 결과가 돼니 포기하지 못하고 버티는 거야. 덕분에 회사에서는 노동자를 마음껏 소세지처럼 갈아 넣고 버티지 못하면 버리고 새부품 끼우는 현실이 된 거지.
불쌍한 2~30대는 인생을 산업디자인에 넣고, 수억원의 매몰비용 때문에 최저시급보다 못한 현실에 버티는 거야. 수억의 매몰비용을 포기하느니 하루 16시간 시급 6000원을 받고 주당 100시간 일하는 인생이라도 살자, 이렇게 되는 거야. 그렇게 되는 근본 원인을 보면 대학 때문에 인생이 저당 잡힌 거지. 전에 말한 건축설계도 마찬가지고.”
내 말에 가오리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예하는 오빠 멋져 하며 눈을 빛내고 있지만 못 알아들은 듯 했다.
닥똥커플은 여전히 다른 주제로 둘이 싸우고 있고.
“전공자를 위한 교육비용과 시간이 줄어들면 쉽게 포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전공자가 몰린 직업은 사람이 떠나갈 거다. 사람이 떠나가면 그 사업은 사람이 필요하니 좀 더 좋은 조건에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삶이 좋아진다. 이게 맞아?”
가오리가 떠듬떠듬 내 말을 정리했다.
“정확해.”
“하하핫! 네놈의 말에서 치명적 오류를 잡아냈다아!”
가오리가 신나게 웃으며 잔을 높이 들었다.
아무도 따라 들지 않았다.
“지금 시합하는 거 아니야. 토론대횐 줄 아냐?”
“아잉. 한잔하자. 목마르잖아. 다들 한잔해~ 한잔~”
가오리가 낚시줄에 걸린 것처럼 파닥대자 결국 웃으면서 잔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인터폰으로 맛있는 칵테일 시키고 시원한 맥주를 채워서 짠.
“니 말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후후후. 회사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지. 이력서가 도착해. 누구는 대학 학사 졸업이 떡하니 적혀 있어. 누군 고졸이지만, 미래대학에서 동영상을 보고 공부했다고 적혀 있어. 회사 입장에선 당연히 대졸 학사를 뽑겠지. 결국 미래대학에서 공부한 사람은 취직이 안 되겠지. 어떠냐!”
어떻긴 뭐가 어때.
“그게 대학 다니는 이유인 게 참 웃기지 않냐? 학위장사란 뜻이잖아.”
“그럼 대학생들이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려고 대학 간다고 생각하냐? 결국 취직 잘되려고 대학가는 거잖아.”
“그렇지. 그럼 둘로 나눠보자. 정말 어쩌다가 한 두 명씩 지식을 찾아 대학가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거금을 내고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교수의 노예가 되어 시키는 짓 하는 사람이 지식을 얻기 쉬울까? 아니면 미래대학에서 모든 고급강좌를 섭렵하는 게 지식을 늘리기 쉬울까?”
“어... 동영상 강의가 낫겠지.”
“다음으로 취직용 학위. 대학가면 4년과 생활비 포함 1억을 잃고 학위를 얻어. 그 돈과 시간을 학위랑 바꿨어. 반면 혼자 공부하면 1년 300만원이면 돼. 그리고 자격증 시험을 봐. 자격증은 국가에서 관리하잖아. 그럼 회사 입장에선 똑같지. 학위 따고 자격증 딴 사람과 혼자 공부해 자격증 딴 사람의 차이가 없잖아.”
“그래도 이왕이면 대학 나온 애를 뽑지 않겠어?”
“당장은 그러겠지. 이력서에 누구는 대학6년 석사 졸이고, 누구는 미래대학 70개 강좌 수강이라고 적으면 당연히 대학원생을 뽑겠지. 하지만 세상은 한껏 냉정해. 대학석사 6년간 배운 거랑 혼자 1년간 미래대학 동영상을 본 거랑 지식수준이 같다면? 대학석사는 수억원을 소비해서 졸업증명서를 얻어냈고, 누구는 1년간 100만원으로 지식을 얻었다면? 훨씬 낮은 임금으로 뽑힌 프로그래밍 직원이 대학원석사와 똑같은 효율을 낸다면?
미래대학 출신은 석사출신보다 임금을 덜 받겠지. 그렇다면 저임금인 미래대학생을 뽑는 게 낫지 않겠어? 적자생존. 테이프 산업이 시디에 망해 사라졌듯이 4000만 원짜리 대학은 사라져야 해. 10년이면 무너지겠다.
어차피 뽑고 나서 버티는 건 개인 성향이야. 생각 없이 학사 졸업해서 취직한 후에 실제 필드가 지옥이란 걸 깨닫고 나면 절반 가까이 1년 안에 그만 둬. 학사든 고졸이든 마찬가지로. 그렇게 걸러지다보면 대학출신과 동영상 출신의 차이가 없다는 걸 알게 되고 결국엔 교육비용이 저렴한 미래대학쪽이 우세를 점하겠지.
우리가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니야. 대학이 너무 많은 돈을 벌려고 해서 망하는 거야. 당장 모든 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한 10년이면 대학들이 미달사태가 나고 그때서야 등록금을 깎겠지.”
“제길. 완벽하군. 이길 수 없어.”
가오리놈이 패배자의 표정으로 술을 들이켰다.
무슨 시합하냐고.
닥똥이 참전했다.
“이의있소!”
역전재판이냐?
“대학을 다녀야만 딸 수 있는 자격증이 있소! 건축기사가 되려면 대학을 졸업해야 하오!”
낯가림 심한 닥똥이 모르는 사람 있을 때 목소리 키우는 일은 흔치 않은데.
많이 취했네.
- 작가의말
글의 커다란 주제 중 하나인 '10대의 직업선택과 인생' 이 거의 마무리 되었네요
최대한 스무스하게 진행하기 위해 아이돌,프로야구처럼 다들 아는 직업으로 시작해 의사, 건축설계, 타워크레인, 산디 같은 대중적이거나 이질적인 다양한 직업으로 넘어와 결국 대학 시스템 욕하는 걸로 끝나네요. 20대들의 삶과 직업 전체를 관통하는 시스템에 대한 자연스러운 설명이 되길 바라오나 써놓고 보니 정말 많이 부족하네요
어제 천재흑마법사라는 명작을 봐 버렸습니다. 그걸 봐놓고 보니 내 글이 너무 똥 구려서 다 지우고 싶어져요
그래서 5일만 쉴게요. 지금 쓰면 자칫 카피글이 나오거나 무너질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뇌좀 비우고 비축분 좀 쌓고 올게요
5일동안 천재흑마법사 보고 계세요. 꼭 보세요
뇌 비우고 올게요...
제가 연중하는 건 전부 천재흑마법사 탓임. 암튼 그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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