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새로운 질서3
7월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미래블록의 발행이 중지된 지도 거의 한 달이 지났다.
한 달간의 성적표.
미국이 박살났다.
달러가치가 약간 회복되었지만 예전의 절반정도에 머물렀다.
이 말은 주식가치가 절반이 되었다는 뜻이고, 물가가 100% 폭등했다는 뜻이며, 수많은 기업이 무너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도 미국은 미국답게 미래블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던 나라다.
달러 스왑이 종료되어 달러 가치가 폭락했지만, 빠르게 미래블록체제로 변화했고, 미래블록을 통해 해외의 자산을 긁어오면서 손해를 만회했다.
미래블록을 먼저 보유한 이들이 이득을 보고 끝까지 달러만을 쥐고 있던 이들이 피해를 봤지만, 미국 전체적으로 보면 대략 10%가량 가치하락을 맞은 상태다.
중국은 돌아오지 못할 길에 누워있다.
아편전쟁 이후 거대한 청나라를 유럽국가들이 도축해 뜯어먹었듯이 G2중국이 쓰러지자 그 거대한 몸집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유럽인구 전체에 아프리카 인구 절반을 합친 정도로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이기에 피사의 사탑처럼 서서히 기울자 도저히 일으켜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수많은 기업이 탈중국에 성공했고, 중국에서 다시 규제하려고 미친 짓을 하면 할수록 기울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몇 번 정도 미래블록 생태계를 막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장강홍수와 황화홍수를 2연타로 맞은 중국은 현재 가장 많은 식량을 수입하는 국가고, 내 재산을 기부받는 입장에서 미래블록을 보이콧 할 수 없었다.
거대한 중국의 통제력이 사라지고 공산당의 위엄이 무너지면서 온갖 비리와 부정이 밝혀지고 영향력을 실시간으로 잃어갔다.
일대일로 전략으로 주변국에 영향력을 뻗었던 중국몽 또한 하룻밤의 꿈처럼 스러졌다.
EU는 해체수순을 밟고 있다.
양적완화로 찍어낸 위조지폐를 어떻게든 처분해야 폭락이 멈추는데 국가연합의 특성상 서로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으며 그리스의 탈퇴 이후 하나둘 탈퇴를 선언하고 있다.
EU국가가 탈퇴할수록 유로화의 전체통화량이 줄어들게 되고, 그럴수록 양적완화로 찍어낸 위조지폐의 비율이 증가한다.
덕분에 제조업 최강국 독일마저도 빚에 깔려 드러눕고 있다.
EU전체로 보면 30%자산 손실을 보고 있고, 독일 프랑스 등 EU내 강국이 더 크게 손해를 보고 있다.
금융국가들은 단 한 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도산했다.
싱가포르, 영국, 아일랜드.
금융허브로써, 금융제국으로써 각종 파생상품으로 금융수익을 뻥튀기해 돈을 벌던 국가들은 보유한 채권손실을 만회하지 못해 드러누웠다.
하지만 지구는 그대로 있다.
땅덩이는 그대로 있고 건물도 그대로 있으며 식량 생산량은 지난해와 비슷하고 인류의 인구수도 비슷하다.
누군가 손해를 보면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
제로섬 게임.
주인만 바뀌었다.
주인이 바뀌는 과정을 가장 자세하게 보여주는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가장 심하게 망했다.
가장 신나게 양적완화를 뿌렸던 일본은 아예 국명이 사라질 지경이다.
엔화는 가치가 사라졌고, 세계1위 빚쟁이 국가 일본의 국채 90%를 보유해주던 성실한 일본인들은 전부 거지가 되었다.
미국이 달러를 마음껏 찍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달러의 통화량이 워낙 커서 총량을 비유하자면 욕조에 한 컵의 물을 부은 정도였기 때문이다.
위조지폐는 나쁘지만 위조지폐 100만 달러가 시장에 돈다고 해서 시장 전체가 마비되지 않는 이치.
엔화는 달러보다 훨씬 통화량이 적다.
그럼에도 일본은 양적완화를 미국보다도 많이 했다.
그 결과 전체 통화량 중 위조지폐의 비율이 달러보다도 훨씬 높았다.
미친짓이지만 세계 3위 경제대국이란 명함 덕에 아슬아슬하게 버텨왔던 엔화.
그런데 미래블록이 기축통화로 우뚝 서게 되었다.
순식간에 세계화폐로 등극한 미래블록은 전세계 통화량의 60%를 흡수했다.
미래블록이 많아진 만큼 각국의 통화량은 줄었는데 가뜩이나 위기설이 돌던 일본의 엔화는 더 크게 줄었다.
이렇게 되니 양적완화로 뿌린 엔화의 위조지폐 비율이 더욱 커졌다.
다른 국가들은 자국화폐를 미래블록으로 바꿀 유예기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미래블록의 스테이블 포기 선언과 동시에 발행이 중지되었기에 미래블록체계로 바꿀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일본 정치인들의 자존심 때문에 미래블록을 혐한프레임으로 몰아 엔화애국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게 1년.
엔화의 절반은 위조지폐라는 인식이 자리잡자 너도나도 엔화를 버리게 되었고 이는 짐바브웨달러 폭락처럼 끝없는 자산가치 폭락을 불러왔다.
떨어지는 폭포수가 수면에서 멈추지 않고 수면 아래로 크게 가라앉듯이 엔화를 기초로 한 주식과 부동산 등의 자산들은 평가가치보다 훨씬 크게 폭락했다.
경제가 무너질 때 언제 반등하는가?
잠자코 지켜보던 사자들이 병든 사냥감을 먹으러 나서는 순간에 반등한다.
엔화가치가 평가보다 훨씬 낮아지자 미래블록을 껴안고 있던 하이에나가 나섰다.
대표적인 하이에나가 미래자산운용.
미래자산운용의 권순진은 평가보다 훨씬 낮은 위치까지 떨어진 엔화를 받고 미래블록을 주었다.
그렇게 획득한 엔화로 일본의 강소부품기업 지분을 쓸어 담고 흑자도산한 중소기업들을 먹어치운다.
미래리츠의 정문우 또한 일본 주요도시의 부동산을 거의 공짜로 쓸어담고 거기서 갭대출을 불러일으켜 아예 도시를 샀다.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의 실질적 힘, 강소기업의 지분과 부동산이 평가가치 1/10 가격에 세계에 팔려나가고 대신 들어온 미래블록이 무너지는 일본 사회를 멈춰세웠다.
일본이란 국가가 갖고 있던 자산의 절반이 빚으로 인해 해외에 팔렸고, 아무도 엔화를 믿지 않으니 전국민이 미래블록을 쓰는 나라가 되었다.
미래블록-엔화 교환 중지 10개월 만에 일본은 국가 전체 자산의 60%를 잃었다.
미래그룹이 획득한 가치는 극히 일부분이다.
먼저 미래블록 체계에 합류한 다른 수많은 사냥꾼들이 다함께 나눠먹었다.
비슷한 일은 과거에도 꾸준히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휘청였을 때 아르헨티나의 가치가 해외로 나갔고, 한국이 IMF 사태를 맞았을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한국의 가치가 해외로 뜯겨나갔다.
유럽외환위기 때도 유럽의 가치가 해외로 뜯겨나갔고, 아프리카는 항상 뜯겼다.
휘청이면 가치가 폭락하고 사냥꾼이 돈을 들고 들어와 알짜배기를 삼키면 그제야 안정되는 구조.
피해자는 계속 바뀌지만 승자는 항상 미국이었다.
달러가 기축통화기에. 휘청일 때 필요한 게 달러이기에.
각국이 휘청이는 순간에 사냥해 먹어치우는 건 미국이었고,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나 IT버블, 먼 과거의 경제대공황까지 포함해도 언제나 이득을 보는 건 미국이었다.
하지만 최초로 달러불패가 끝났다.
이제 미래블록이 기축통화다.
개별경제의 휘청임을 막는 건 미래블록이고 미래블록은 전세계에 퍼져있는 주인 없는 화폐다.
예전처럼 미국이 독식하는 건 불가능하고 누가 마음대로 찍어서 자산을 가져오는 금융사기도 불가능하다.
한국은 가장 먼저 미래블록을 받아들이고 미래블록에 충성하던 국가였다.
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미래블록 사용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렇기에 양적완화 버블 붕괴의 충격을 가장 가볍게 받았다.
원화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올랐지만 타국에 비하면 잽 한 대 맞은 걸로 끝났다.
오히려 금융체계변화가 빨랐기에 타국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때 돈을 쓸어 담았다.
미래그룹이 먹어치운걸 제외하더라도 수많은 기업, 기관, 개인들이 보유한 미래블록으로 세계의 자산을 획득했다.
1년 사이 한국은 국부가 40% 가량 증가했다.
그 외 짐바브웨나 엘살바도르처럼 미래블록체계에 빨리 들어온 국가들이 이득을 봤다.
이들이 가진 재산이 워낙 적었기에 타국의 자산을 빨아들이진 못했지만 형편없이 무너진 국가들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좋은 편이다.
코로나가 발생하고 3개월 만에 주가가 반등했듯 세계는 빠르게 적응한다.
미래블록체계는 큰 혼란을 주었지만, 여기까지 오자 혼란의 원인이 양적완화 때문이고 미래블록이 더 큰 혼란을 막았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뤘다.
새로운 질서.
달러는 100년 만에 기축통화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세계는 미래블록 아래에서 새로운 통화체계를 구축했다.
“이젠 암살 위험도 없을 거 같네.”
“그럴까?”
“암살도 이득이 있어야 암살하는 거지. 지금 나 죽여 봤자 욕만 오지게 먹을 걸.”
“헤... 그래도 조심해야 해. 알았지?”
예하가 배를 만지며 말했고, 거기에 손을 올려줬다.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 나는 무수골 집에 예하와 거의 매일 붙어살고 있다.
나야 원래도 집돌이였지만, 꽤나 바빴던 예하가 거의 모든 스케줄을 없애고 집에만 있은 덕이다.
예하는 요즘 태교음악을 녹음하고 있다.
부드러운 발라드나 클래식 변주곡을 연습하고 녹음하고 발매하고.
개인방송은 태교에 해로우니 금지.
집에서 노래듣고, 게임하고, 노래하고, 녹음하고.
은퇴라이프.
이런 삶이 지겨워지면 그때 나돌아 다녀야지.
그런데 지겨워질 것 같지 않다.
“맞다. 예하야. 스페엑스에서 제안이 왔어. 우리 결혼식 우주에서 열어주겠대. 우주정거장에서 결혼하고 신혼여행으로 달나라 여행. 하객 200명까지 자기들이 전액 부담하겠대.”
“헤... 신혼여행이 달나라......”
“그런데 임신한 거 몰라서 제의한 거 같은데. 출산 하고 나서 결혼할까?”
“에... 싫어. 어... 만삭일 때 결혼할래.”
“네... 그러세요. 그럼 이건 거절해야지. 얘들 마케팅 이득만 보고 끝나네.”
우주결혼식과 달나라 신혼여행. 스페엑스에서 신나게 기사를 뿌려서 자기들이 통크다고 광고 잔뜩 하고 끝나겠네.
“오빠오빠. 이 기사 봤어? 오빠한테 경제부총리 자리 준다는데?”
전재산을 기부해도 걱정되지 않는 이유.
언제든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벌 수 있다.
“장관급인가? 그럼 연봉이 얼마나 되지?”
“에... 몰라. 검색해볼까? 1억 5000만 원 정도래.”
“스탠포드대 강연 제의 온 게 20만 달런데. 하루 강연하는 것보다 조금 주네?”
돈 벌려고 하면 얼마든지 벌 수 있다.
무늬만 백수다.
“그러게. 그래도 명예직이잖아.”
“명예라...... 크크큭. 큭. 나의 숨겨둔 힘을 보여줘야겠군.”
한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었다.
“으힉. 뭐야. 오빠.”
“아. 요즘 만화를 많이 봐서 말이지.”
대충 말하며 이메일을 보여줬다.
-연준위원장 추천서.
“보아라. 이것이 나의 가치니라. 우효오옷.”
“어... 어? 뭔소리야?”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위원장 자리 맡아 달래. 현재 위원장인 안드레 루스텔이 직접 메일을 보냈어. 기부작업 끝나고 미래그룹에서 물러나면 바로 자리 주겠대.”
“와... 대단한 거 맞지?”
“경제금융계에서 명예로는 최고의 자리지.”
“오오오. 할거야?”
“봐서.”
명예로운 자리지만 딱히 끌리지는 않는다.
예하에게 메일을 하나하나 보여줬다.
한국의 거의 모든 기업에서 월급쟁이 사장자리 제안서가 들어왔고 놋네같은 이상한 기업은 선심쓰듯 부장자리를 주겠다고 했다.
그 외에 글로벌 기업들도 전부 제안서를 보냈다.
애플CEO.
마소CEO.
가장 굵직한 게 이정도인데 스톡옵션 포함해서 1000억원 연봉을 불렀다.
내가 사장자리에 앉는 마케팅 가치만으로도 그 정도 돈은 뽑아내겠지.
“연봉 천억... 내 전재산보다 많네... 아... 허무해.”
“예하야. 태교. 태교.”
“아. 좋은 생각. 질투와 시기를 버려버렷. 아... 허무해.”
헤드헌팅 메일은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야당에선 비례대표1번 국회의원 자리를 주겠다고 하고, 여당에선 장관자리를 주겠다고 하고, 뜬금없이 그리스에선 대선출마를 약속했다.
그리스 가서 대통령이나 할까. 나가면 당선될 것 같긴 한데.
뚜루루루.
인터폰이 울렸다.
-사장님. 정문에 친구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대학 동기 오상욱이라고 합니다.
그게 누구였더라......
- 작가의말
글속의 일본은 빚때문에 망하고 중국은 공산당의미친짓에 망하고.
미국은 약간 손해보지만수출시스템이 정상화되면 전보다 더 벌게 되요(울타리편에 나온 내용)
미국도 망하게 하고 싶은데 개연성 생각하면 불간응.
미국이 금리 올린다는데 일본은 어쩌려는 지 모르겠네요. 일본만 금리 안올리면 겉잡을수 없이 무너질텐데... 금리 올리면... 망하고...
일본의 금리정책은 계속 흥미진진하게 검색하는 중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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