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블록딜
[근본 없는 미래 그룹 수익구조 제로]
미래그룹은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이티, 게임, 애니 등을 제작하고 있고, 야구단을 인수했으며 아트스쿨 사업을 준비중이다.
하지만 현재 수익이 나는 분야는 없고, 되려 고정지출만 4천억을 넘긴 상황이다.
이 상태에서 그들이 기댈 수익은 리츠를 통한 부동산 가격상승과 펀드의 수익률이 높기만을 빌어야하며 단 한번이라도 실수할 경우 그룹 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
이런 도박업체성격의 기업이 무너질 경우 산업계 전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 그래도 사람은 죽이지 않지
ㄴ 백제보단 낫다
ㄴ 근데 얘들이 백제 사업 이어받으면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어?
- 하지만 제시가 있지
ㄴ 제시조아
ㄴ 미래 망해서 제시 FA로 방송 출연했으면
ㄴㄴ 오오오 이거시다
ㄴㄴ 제시 공중파 진출을 기원합니다
ㄴㄴ 제시 앨범 못 내나? 우리가 돈 모아서 앨범 만들어 주자
[진짜 기자의 진짜 취재 : 미래그룹 본사 탐방]
한국을 뒤흔들고 있는 미래그룹. 그들의 본사는 아일랜드에 등록되어 있고 실제로 가봤다.
(사진)
이 사진이 미래그룹의 모기업인 FUTURE HOLDINGS 의 본사위치다.
5HEX 규모의 정원과 3층 빌딩, 저택 몇 채가 있을 뿐 사람은 관리인 몇 명만 있다.
누가 봐도 유령회사임을 알 수 있는 미래그룹이 과연 시총 30위권인 백제그룹을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돈 좀 썼는지 이제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기사는 어쩔 수 없지.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따위로 써 대는 기래기를 전부 고소했더니 이제 제대로 공격해오네.
물론 반박하려면 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법인세가 가장 싸기에 콜라, 팡 등 글로벌 기업들의 유럽지부가 전부 아일랜드에 있다.
등록만 아일랜드일 뿐 직원은 대부분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일하기에 아일랜드 지부는 다들 작은 사무실 하나만 임대하는 형식이다.
한 가지 음해를 반박하려면 100마디 말을 해야 하니까 무시해야지 뭐.
“예하야. 여기 어때?”
“와 예쁘다. 아일랜드야?”
근사한 정원과 작은 빌딩, 안쪽엔 대저택이 있는 아일랜드 본사.
“어. 황형이 구매해놨어. 언제든 가서 묵다 와도 돼. 갈까?”
“에? 에에에? 일은? 방송은?”
“방송은 거기서 하고 일은 전화로 하면 되지.”
“힉. 그래도 되는 거야? 정말이야?”
예하가 굉장히 들뜬 표정이다.
내 앞에 풀썩 앉아 등을 대고 둥실둥실 한다.
이렇게 들뜨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어. 가고 싶어?”
“에... 그... 마지막으로 여행간 건 중2때가 끝이라서. 연습생에 이것저것 복잡한 일 많아서 수학여행도 못가고.”
아.
“1박2일 캠핑도?”
“지난번 언니랑 오빠랑 간 게 처음. 바다 본 것도 5년만인 듯.”
아 그날.
처음 그날. 좋았지 그날.
사진을 보며 들떠서 어깨를 들썩하는 예하를 뒤에서 안아줬다.
“우리 여행 많이 다니자. 어차피 돈은 지금부터 미친 듯이 써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써.”
“그래. 헤헷.”
“백제만 정리하고 한 바퀴 돌자. 대형 크루즈도 한 척 살까.”
“헤헤헷. 상상만 해도 좋다앙.”
백제만 정리하고 떠나자.
백제 건설 임시주총 하루 남았다.
오늘은 결정타를 지을 4계가 시행되는 날이다.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은 생각보다 높다.
솔직히 엄청 높다.
일반투자자보다 수익률 높은 건 둘째 치고, 웬만한 기관 투자회사보다도 수익률이 좋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높은 이유를 하나만 뽑자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투자규칙을 정해놓고 철저하게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이게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나 ‘이런 호재가’ 하는 상상이 끼어들지 못한다.
규칙에 따라 사야하면 사고, 팔아야하면 판다.
연금은 주식과 채권의 비중이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주가가 오르면 채권의 비중이 낮아지기에 주식 일부를 팔아 비중을 맞춘다.
주가가 내리면 채권의 비중이 높아지기에 채권 일부를 정리해 주식을 산다.
이러면 자동으로 고점매도, 저점매수가 가능해진다.
사람들은 분위기 안 좋을 때 매수하는 국민연금을 세금 써서 쓰레기 기업 살린다고 욕하고, 더 오를 것 같을 때 국민연금이 매도해서 못 오른다고 욕하지만, 이건 직원도 어쩔 수 없다.
국민연금은 규칙이 그러하기에 그렇게 할 뿐이다.
국민과 언론이 아무리 욕하고 시위하던 말던 직원은 규칙에 따라 제대로 투자되는지 확인만 한다.
오히려 여론에 흔들려 저점에 팔고 고점에 샀다간 감옥에 간다.
다만, 공직자로서 처벌받지 않고 과외수익을 얻을 길은 있다.
“국민연금은? 확실히 지지한대?”
조준선의 질문에 배정구가 크게 대답했다.
“예. 국민연금 지분 10퍼는 확실히 저희 손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주공 직원이 사전정보로 땅투기를 하는 메리트가 있듯이, 국민연금 직원도 메리트가 있다.
경영권 싸움에서 국민연금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의 문제는 경제가 아닌 정치의 영역이다.
물론 바닥의 젊은 직원을 죽어라 야근할 뿐 과실을 먹는 건 연금공단의 낙하산 윗대가리들이다.
“얼마 뿌렸어?”
“1억밖에 안 썼습니다. 어차피 외국계 기업인 미래를 지지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 싸게 먹혔네. 그럼 우리 지분이......”
“31퍼입니다. 우호적인 대주주들 전부 합친 결과입니다.”
“놈들은?”
“34퍼입니다.”
“모자라잖아!”
“아직 의사표현을 하지 않은 은행 등 기관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잡으면...... 엇. 사장님. 또 방송을 한답니다.”
“틀어봐.”
배정구가 비서실 직원이 보내준 링크 주소를 컴퓨터로 열었다.
실시간 영상엔 채인수가 말하고 있었다.
-5년 전 조추동 백제그룹 회장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과 함께 현재의 조준선 사장이 전면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백제컨설팅이 설립되었죠.
이상은 저희가 수집한 자료입니다.
백제컨설팅은 각 그룹 기획실 인원을 짜집기한 회사이며 아무 쓸모없는 회사인데, 각 계열사 매출을 먹어치우며 성장했습니다. 주주분들의 정당한 이익을 갈취한 거죠. 이에 대한 민사고발을 준비중입니다.
뻥튀기된 백제컨설팅의 지분가치를 이용해 조준선 사장은 5년에 걸쳐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누가 봐도 상속세 탈세를 목적으로 한 그룹승계작업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조추동 회장이 쓰러졌다는데 치료과정이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성북동 자택에서 치료중이라는데 그곳에서 일하다가 갑질에 못 이겨 나오신 운전기사와 가정부의 증언을 얻었습니다.
자택에서 조추동 회장을 본 적이 없고, 의사나 간호사가 집에 상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5년 째 얼굴한번 비추지 못할 중병으로 와병중인데 집에 의사와 간호사가 없군요. 누가 봐도 수상하지 않습니까?
조준선 사장은 조추동 회장의 지분을 상속할 경우 내야 할 1조원의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백제컨설팅을 만든 게 아닐까요?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아버지를 냉동 창고에 넣어둔 게 아닌가 심히 걱정스럽군요.
내일 임시주총에서 승리할 경우 백제건설 법인자금이 조추동 회장 자택에 쓰인 정황을 찾아낸 후 곧장 자금회수를 위해 자택을 수색하겠습니다. 특히, 냉동창고를 유심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상속세 때문에 인륜을 저버린 것이라면 저희는 끝까지 갈 것입니다.
간악한 조씨 일가는 법의 심판 뿐만 아니라 사회의 심판 또한 받게 될 것입니다.
덜덜덜.
조준선의 턱이 사정없이 떨렸다.
다 알고 있다. 백제컨설팅의 비리도, 아버지의 사망도.
채인수가 왜 저러는지는 이미 밝혀졌다.
채인수의 아버지가 받았어야 할 1억 가량의 보상금.
고작 그 돈 안줬다고 재벌을 이렇게까지 몰아세우는 건 너무하지 않는가.
눈치를 보던 배정구가 슬라이드 스텝으로 멀어질 때 조준선이 소리 질렀다.
“사! 일단 싹 다 사!”
“사장님. 자금이......”
굴릴 수 있는 자금은 다 썼다.
해외에 숨겨둔 재산마저 싹다 백제건설주 매수하는데 썼다.
“어쨌든 사! 은행에 간청해서 돈을 빌리고, 펀드도 빼. 일단 사. 막아야 해. 경영권이 넘어가면 안 돼!”
이건 당연한 말씀.
경영권을 얻는다면 내부 회계를 볼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다 죽는다.
“최대한 사겠습니다. 프리미엄을 붙여서라도.”
“사! 무조건 51% 넘겨!”
“예. 알겠습니다.”
백제 그룹 주가는 전날 막판에 상한가를 찍었다.
미래 그룹의 발표에서 경영권을 반드시 얻겠다는 의지를 본 것이다.
오늘은 10% 상승에서 주춤거리다가 채인수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상한가에 올랐다.
사생결단.
둘 중 하나 죽자.
채인수의 귀기어린 선전포고에 사람들은 이게 단순한 경영권 싸움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더 오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싸움구경.
상한가에서 움직이지 않는 백제 그룹주를 보며 사람들은 내일 있을 임시주총을 위해 팝콘을 구매했다.
그리고 오후 세시 반.
백제 제련 373만주 블록딜.
백제 건설 200만주 블록딜.
백제 건설 130만주 블록딜.
백제 광업 230만주 블록딜.
충격적인 소식이 연달아 공시되었다.
블록딜이란 주식 시장에서 불특정 다수가 매수 매도를 하는 게 아니라, 대량의 주식을 개인간에 서로 합의한 가격에 교환하는 것이다.
-ㅋㅋㅋㅋ 미래다! 다 죽자!
ㄴ 나 미래펀드에 넣었는데 저거 내 돈이냐? 이러면 손해 아니냐?
ㄴ 운용규칙 보니까 투자 제한 없던데? 법적 문제는 없어
ㄴㄴ 어쨌든 비싸게 산거 아니냐?
ㄴㄴㄴ 아몰랑 내돈 아니니까 PPAP
-널 죽이겠다 널 죽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
ㄴ ㅋㅋㅋㅋㅋㅋ
ㄴ ㅇㄱㄹㅇ ㅋㅋ
ㄴ 진짜 거리에서 만나면 서로 칼빵하겠네
커뮤니티는 미소지었고, 백제그룹은 사색이 되었다.
“어디야! 어디서 산거야?”
사색이 된 조준선이 소리쳤고, 배정구는 고개를 조아렸다.
“그게.... 증권사가 저희 힘이 미치지 않는 베트남에서 인수한 회사입니다. 의무가 없다며 절대 알려주지 않겠답니다. 확인해보니 증권사에 미래그룹 직원도 나가있다고 하는데... 공시를 기다리셔야...”
“당연히 미래겠지? 계산했어?”
“예. 만약 미래가 가져갔다면 미래 비중이 42%입니다. 저희를 빼면 개인 비중이 20퍼니까......”
절대 못 이깁니다, 라는 말은 차마 못했다. 골프채에 맞을까봐.
“사. 기관들에게 사. 우리도 사들여야 해. 무조건 사.”
“프리미엄을 너무 붙입니다. 현재가의 30%를 올려서 부릅니다. 그 가격에 사기엔 자금이... 추가 대출 3천억이 한계입니다. 더 이상 못 빌려주겠답니다.”
“주식으로 딜 해. 일단 백제건설부터 지켜야 해! 자회사 주식 주고 바꿔! 안 되면 라잉펀드 돈도 빼고!”
아랫돌 빼서 윗돌 막기.
카드 돌려막기.
최악의 방법이지만 다른 방도가 없다.
주총 날짜가 먼 회사의 주식을 팔아 백제 건설부터 지킨다.
백제건설만 지키면 순환구조에 의해 타사를 지키는 건 쉬워진다.
“예. 알겠습니다.”
배정구가 나가고 비서실이 전원 전화를 돌렸다.
백제 건설주를 1%이상 들고 있는 수많은 기관들.
30% 이상 프리미엄을 받아들이니 거래가 참 편안하다.
그룹이 손대선 안 될 모든 가치를 담보로 협상을 했다.
밤새도록 긴밀한 가격협상과 주관 증권사를 정해 절차를 밟았고, 모든 거래는 다음 날 장이 열리기 전에 하기로 했다.
2018년 3월 7일 수요일 아침 7시.
백제건설 임시주주총회가 있는 날이다.
“오빠 그렇게 입고 가게?”
이게 왜?
청바지에 흰티, 체크무늬 남방이 어때서. 깔끔하기만 하구만.
“어. 갔다 올게. 방송 잘하고.”
“그래. 나도 방송 잘 할게.”
문 앞에서 짧게 키스를 시작했다가 길게 키스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입구에 기다리던 경호원 네명.
함께 내려가 세단에 올랐다.
택시는 내 정체를 숨기기 위해 타는 거니까 시선이 집중될 때 타면 안 되지.
다섯 대의 경호팀과 함께 이동해 채인수를 태웠고, 권순진을 태웠다.
그 외 기획실과 운용팀이 함께 한다.
전장으로 나가는 용사들.
주총 장소인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블록딜 공시가 연달아 떴다.
백제 건설 200만주 블록딜.
백제 건설 130만주 블록딜.
백제 건설 290만주 블록딜.
어마어마한 거래가 체결되고 있다.
귄순진은 그걸 보며 계산기를 두드려 지분을 확인했다.
“조준선과 그룹이 보유한 주식이 28% 됐어. 국민연금과 우호재벌들 지분을 합치면 47% 되겠는데?”
“그래요? 좋네요.”
아주 좋다.
혹시나 변수가 생길까봐 직접 나왔는데 쓸데없는 짓이었다.
명동 놋네 호텔 리셉션 룸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소중한 1주의 권리를 행사하러 온 주주와 대주주들, 기자 등이 진을 치고 막아 세우며 고래고래 질문했다.
직원들과 경호팀의 호위를 받으며 인파를 뚫고 지나갔다.
가장 앞쪽엔 조준선 사장과 계열사 사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훗. 네놈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채인수와 조준선이 악수했고, 멀리 입구 밖의 기자들과 안에 들어온 주주기자들이 사진을 찍는다.
“자신있나봅니다. 국민연금이 도와주겠답니까?”
“그래. 이제 남은 건 네놈들의 비리를 찾아 털어내는 것이지.”
저 자신감 있는 태도 좋구나.
권순진을 툭 찌르자 고개를 끄덕였다.
권순진이 단체방에 코톡을 날렸다.
-국민연금 붙었다고 했다. 시작해.
이 코톡은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된다.
작전이 시작됐다.
- 작가의말
수익률이 좋은 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잃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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