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메타버스 운동회
기부금 250조원.
국가단위 지원이 아닌 미래그룹 홀로 지불한 기부금이다.
내가 공매도로 벌어들인 수익.
미래그룹 때문에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기부금을 투척하고 있지만, 기타 모든 기업의 기부금 총합보다 미래그룹 기부금 액수가 많다.
2020 노벨평화상을 나에게 준다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당연히 이 미친 기부액수는 미래그룹을 미친 듯이 홍보해줬다.
언택트, 비접촉, 재택 시대가 열리며 애초부터 선두기업이었던 미래그룹은 모든 이용자를 빨아들였다.
미래 게임즈 어나더 어스는 일부 사람들의 삶이 되었다.
현실은 밥 먹기 위한 곳일 뿐 실제 삶은 어나더 어스에서 사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아예 어나더 어스에서 돈을 벌어먹고 사는 가상현실족이 십만 명을 넘어섰다.
어나더 어스의 모든 이용시간이 나머지 모든 게임의 이용시간을 넘어섰으니 이제 독보적 게임이 되었다.
애초에 시대 변화를 미리 알고 있었으니 인수하는 기업들의 전망은 점점 좋아지고, 이는 또 나의 선견지명으로 포장된다.
미래그룹의 주축이 한국인인 게 부각되면서 세계의 한류열풍이 탄력을 받았고, 덩달아 한국의 온갖 것이 한류로 포장되어 수출되었다.
그중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것이.
“짜잔! 빌보드 1위!”
“예하야. 이빨 보이지 마라.”
“우헤헤. 짜잔! 미래뮤직 한국 음원 1위. 미래영상 재생빈도 1위.”
“웃지 마. 자랑하지 마. 조용히 해.”
“101개국 음원 1위. 149개국 재생빈도 1위.”
“하지마. 그만해.”
“스탠드 투게더! 함께 이겨내요! 나의 첫 작사가 이런 기적을!”
“아니야. 운 좋게 시운이 맞은 거지.”
“내 가사 덕임. 울오빠가 도와줄 거예요. 이게 킬링포인트라잖아. 오빠에게 고마움을 느낀 사람이 노래를 듣고, 듣다보니 좋아서 계속 듣게 되어서 이렇게 올라온거지!”
“야야야. 날 죽일 셈이냐? 수치사하게 만들려는 음모지?”
“오빠. 너무 좋아. 너무너무너무너무.”
예하가 달려들어 딱따구리처럼 볼에 다다다다 뽀뽀를 하는데 기쁘지 않다.
인생은 괴로움으로 가득하다.
“예전 곡들도 재생빈도가 늘고 있어. 역주행이라고요!”
재능의 영역은 도무지 모르겠다.
실력이 없으면 안 되지만, 실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 노래가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다.
일반적인 상업코드가 그대로 묻어나는 편안한 rnb.
신기하다.
예하는 k-pop의 흐름과 미래그룹의 호감에 올라탔다.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
“히잉. 옆에 있고 싶어요.”
“방송해야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썩 껴져! 처처처천마데스빔!”
“힝. 넹.”
예하는 연못가 정자에 마이크를 세팅하고 개인방송을 켜고 자신의 노래를 하나씩 불렀다.
집 이층에서 그런 예하를 보다가 도팀장을 불렀다.
“구사장 연락 되요?”
“나흘전이 끝이었습니다. 저에게 루트관리까지 맡겼습니다.”
“이상하지 않아요? 뭔가 정리하는 분위긴데.”
“구사장님은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알죠. 아는데... 느낌이 쎄하네요.”
구형재에게 맡긴 9억 미래블록 때문이 아니다.
자기 주변을 정리하는 게 불안하다.
타우바트 섬에서 습격한 게 중국인 걸 알고 난 후 무언가 작업을 하러 갔다.
비밀루트를 개척하러 갔는데 나한테까지 비밀로 작업을 한다.
왜?
나한테는 말해야 하잖아.
도윤정한테 그날 대화를 말해야 할까?
느낌은 아니라고 한다.
말 할 필요가 있다면 구형재가 말했겠지.
그냥 조용히 있어야 하나.
“구 형은 믿어요. 그냥 상황이 불안하네요. 도 임시사장님이 신경 좀 써 줘요.”
“도팀장이라 부르세요. 호호. 구형은 믿고 기다리면 됩니다.”
“반갑습니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글로벌 메타버스 운동회를 주체한 미래스포츠그룹장......”
닥똥이시다.
한국 야구팀, 영국 축구팀을 비롯해 세계 50여개 팀을 지원하는 세계 최대 스포츠그룹.
그 보스가 닥똥이라니.
내가 시켰지만 졸라 안 어울린다.
이제 스포츠팀의 성적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돈만 팍팍 넣어주고 마케팅효과만 적당히 거둬주면 되지.
IOC가 끝까지 거절하면서 올림픽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정된 이름이 글로벌 메타버스 운동회.
대신 본래 일본올림픽이 열리는 날 개최해 모든 경기일정을 IOC가 짜둔 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대놓고 저격.
그래도 참가자 면면은 대단하다.
기존 올림픽 참가자격이 있던 선수의 90%가 참여한다.
올림픽이 연기되었더라도 세계랭킹 선수들은 훈련하는 게 일이고, 생활이다.
그들 각자가 항상 훈련하던 연습장이 있는 건 당연하다.
선수 입장에서 참가비를 받아 기존 훈련장에서 대회에 참여하는 건 부담되는 일이 아니고, 좋은 일 하며 돈 버는 일이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협회가 미래그룹의 기부효과와 맞물려 선수들의 참가를 허락했다.
중국조차 참가의사를 밝혔기에 임시 직원을 뽑아 촬영 송출을 맡겼다.
거부한 건 일본과 북한뿐이다.
일본은 이해되지만 북한은 참 웃기는 놈들이란 말이야.
“이 대회는 세계가 마비된 코로나 사태에 이겨낼 수 있다는 힘을 주기 위한 대회입니다. 강제 재택근무와 도시 봉쇄로 갇혀버린 모든 분. 힘을 내십시오. 개회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개회식은 전 세계 가수를 초청한 초대형 콘서트로 대체했다.
각국의 지사에서 라이브 공연을 통째로 따서 메타버스로 송출한다.
특별히 꾸며진 대운동장에서 선수와 관계자, 관객이 자유롭게 오가며 공연을 봤다.
입장료는 1미래블록.
이 공연에 무려 2억 3천만명이 입장했다.
10만 명을 수용하는 가상 경기장이지만 겹쳐지면 사라지는 비간섭모드인 덕에 다들 앞에 몰려와 공연을 봤다.
무대 위에서 보면 수만 명이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는 2억 3천만명이 경기장에 들어와 있다.
“형. 설마 렉이에요?”
“와. 못 잡는다. 그래픽 품질을 더 낮춰야겠는데?”
3D로 떠낸 공연실황을 2억 3천만 이상이 보니까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이 과부하가 걸렸다.
“딜레이 1분 넣어야겠다. 중간에 시간 좀 끌고.”
실제 노래 부른 후 1분 딜레이를 줘 그 사이에 미리 데이터를 뿌리게 만들었다.
“와 이걸 즉각 잡네요.”
“어. 그래도 트래픽은 아슬아슬해. 지금보다 두 배 늘어나면 세계 트래픽이 터질지도 몰라. 전지구의 인터넷 사망. 오오. 한번 터트려보자.”
김상철이 묘한데 꽂혔다.
이 형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야?
“마지막 무대입니다. 지금 지구촌 많은 분께 희망을 안겨주고 있는 곡이죠. 제시가 부릅니다. 스탠드 투게더.”
팟.
껐다.
“야. 동우가. 어디가?”
안 들을래.
예하이년.
10m 아래로 뛰어내리는 플랫폼 다이빙 랭킹 71위 모토부 무케게.
그녀는 콩고민주공화국 대표다.
세계대회에 출전해 받은 상금으로 자신의 마을 전체를 먹여 살리던 그녀는 올림픽 취소로 크게 좌절했다.
그랬기에 미래그룹이 참가의향을 묻자 즉각 찬성했다.
랭킹전이 아닌 이벤트 경기지만 참가만 하면 무려 만 달러를 준다고 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랬더니 콩고 수영협회에서 대회에 참가하려면 돈을 달라고 한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콩고에선 선수가 협회에 돈을 내야 선수생활을 할 수가 있다.
우울한 나라.
나라가 주는 건 가난 뿐.
수영장도 없다.
강 위에 직접 만든 다이빙대에서 뛰어야 한다.
이곳에서 훈련해 세계 랭킹에 들었다는 것부터가 기적이다.
대회 당일 무케게는 새벽 다섯시에 나와 몸을 풀었다.
세계 대회기 때문에 시간대가 전부 다르다.
어떤 나라는 새벽 1시에 준비해야 하고 어떤 나라는 아침 아홉시에 준비해야 한다.
몸을 풀며 주위를 보니 친구이자 코치 한명과 대회진행요원인 미래지사 직원 네명이 와 있다.
그리고 정부군 20명이 돈을 받고 호위하러 와 강에서 놀고 있다.
“후우.”
올림픽 무대에 나가는 걸 얼마나 기대했는데.
평소처럼 강 옆 나무 위에 에 얼기설기 설치한 다이빙대로 올라가 누런 강물에 뛰어드는 연습을 반복했다.
그래도 흥이 나지 않는다.
세계 대회에 나가면 천단위의 관중이 보는 와중에 훌륭한 시설에서 뛰어내렸는데.
“코치. 뭐 보고 있어?”
“어? 어. 경기장 모습. 예선 시작했어.”
“봐봐. 관중 많아?”
“아니. 보지마. 안 보는 게 좋을 걸?”
“에... 망했나. 그래도 한번 봐봐.”
미래그룹이 가져온 고글을 빼앗아 썼다.
순식간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10m 다이빙대. 그 아래는 작은 원형 풀장이 있다.
관중석은 원형 풀장을 둘러싸고 있다.
풀장이 아주 좁다.
좁은 풀장 덕에 관중석이 매우 가깝다.
원통형 관객석이 6층높이까지 있고 사람으로 가득하다.
층 사이사이엔 온갖 기업들의 광고판이 붙어있다.
“와. 사람 많다. 몇 명 들어왔어?”
그녀의 질문에 미래지사 진행요원이 답해줬다.
“3천만 명.”
“.... 뭐?”
“3천만 명 결제했습니다. 입장료가 1블록밖에 안 하니까요. 올림픽 시청자수도 그 정도 될 걸요.”
그런가.
그런데 뭔가 차이가 크다.
수많은 객석이 가득차 있는 기분.
아.
시청자가 모두 현장관중으로 보이는 구나.
그때 화려한 다이빙대에 선수가 올라섰다.
“나스카리메네.”
세계선수권에서 몇 번 만난 폴란드 선수.
그런데 그녀의 모습만 다르다.
주위의 관중은 메타버스 등록 때 만든 아바타 모습으로, 약간은 입체 애니메이션 느낌이 난다.
하지만 선수는 실제 모습 그대로다.
다이빙 대 끝에 서서 가볍에 반동을 주며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까지 전부 보인다.
“지금 행동하는 그대로 보이나봐요.”
“컨트롤러예요. 이동하면서 봐도 되요.”
진행요원이 쥐어준 컨트롤러를 움직이니 우글우글한 관중석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대신 아바타가 투명해졌다.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죠. 바로 옆에서.”
여기저기 이동하니 나스카리메의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을 볼 수 있다.
둥.
점프하고 준비한 연기를 펼치고 입수.
나스카리메가 물속에서 수영해 밖으로 나오니 거대한 전광판에 심사위원 다섯 명의 점수가 들어왔다.
“예선통과하겠네.”
부럽다.
더 볼 것 없이 고글을 벗었다.
인적 없는 강가.
직접 만든 다이빙 대.
다시 고글을 쓰니 3천만명이 관람하는 경기장이다.
“내가 연기하면 저렇게 나오는 거죠?”
“네. 배경은 안 따고 인물만 땁니다.
진행요원 네 명 중 세 명은 이미지센서 촬영기사다.
세 방향에서 인물 이미지를 떠서 입체화해 그걸 메타버스로 쏘는 것이다.
저 허접한 다이빙대에서 뛰면 메타버스 화려한 경기장에서 뛰는 걸로 바뀐다.
3천만 명이 보는 앞에서 연기.
“괜찮겠어? 긴장한 거 아니지? 에이씨. 그러게 보지 말라니까. 관중 없다고 생각하고 연습처럼 뛰어.”
코치가 괜히 투덜댄다.
어려서부터 같이 수영하고 놀던 친구라 아주 격의 없는 사이다.
“아니. 짜릿해. 최고야.”
다이빙의 순간엔 집중을 위한 정숙이 필요하다.
차라리 잘 됐네.
집중해서 뛰면, 직관하는 3천만 명이 본다.
“즐겁겠다. 아.”
무케게가 진행요원을 불렀다.
“이 다이빙대는 직접 만든 거라 탄성이 높거든요. 이걸로 하면 제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은데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이미 모든 수치를 쟀고, 허용범위라는 판명입니다. 각자 다른 경기장에서 뛰기에 현장사정의 차이는 묵인하기로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랭킹이 주가 아닌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는 희망운동회니까요.”
“그래도 분명 말이 나올 텐데요.”
그 말에 진행요원이 뉴스 하나를 보여줬다.
[한국, 양궁 노메달. 장마와 바람에 전원 예선 탈락]
대부분의 대결종목은 열리지 않았지만, 양궁, 사격 같은 점수 대결 경기는 개최할 수 있다.
“헐.”
한국의 양궁이 강한 건 무케게도 알고 콩고인인 진행요원도 안다. 전 세계가 다 안다.
“한국에서 며칠째 비와 돌풍이 불었다는 군요. 한국 양궁팀은 쿨하게 인정했고, 그룹에서 따로 위로금을 주기로 했다 합니다.”
70m 길이의 실내 양궁장이 있는 나라는 몇 없다.
형평성을 위해 야외에서 경기했고, 경기시간에 바람이 강했던 지역의 국가들은 억울하게 탈락했다.
그래도 이벤트 경기이기에 다들 용인했다.
이건 대회가 아닌 축제니까 지역별 시차와 환경의 차이를 인정해준 거다.
“그럼 이대로 해도 되는 거죠?”
“네.”
다이빙대에 오른 무케게가 눈을 감고 준비했다.
‘3천만 명이 보고 있어. 선수의 집중을 도우려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침묵해주고 있고.’
기분이 좋다.
힘차게 발을 굴러 뛰었다.
둥.
대회규격보다 탄성이 더 좋기에 평소보다 더 높이 뛰었다.
때마침 아래에서 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고작 20cm 더 뛴 정도겠지만 무려 그 정도 더 뛰었다.
투웅.
두 번째 발 구르기를 해 힘차게 떠오르며 기술에 들어간 무케게는 생각했다.
‘한 바퀴 더 돌 수 있겠는데.’
세 바퀴 돌던 걸 네 바퀴 돌 수 있을 것 같다.
‘해보자.’
3초의 미학.
휘리리릭.
텅.
공중에서 생각하고 수정하며 한 바퀴 회전을 추가하고 입수까지 모든 게 3초 만에 끝났다.
- 작가의말
처처처천마데스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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